[인류학을 나눌레오] 기도하는 자로서의 예술가

기도하는 자로서의 예술가 

 

조재영(인문공간 세종)

 

기도하려는 자, 몸의 자세부터 바꾸라
두 해 전쯤으로 기억한다. 인간의 상상력이 궁금하여 신화 세미나를 신청했다. 그러다 그 신화를 짓고 말하며 기억하는 ‘인류학’에 입문, 오늘도 이곳 ‘인문공간세종’에서 학인들과 함께 인류학 공부에 한창이다. 인문세 인류학 공부의 묘미 중 하나는 질문을 안고 떠나는 현장 답사에 있다. 최근 답사 장소는 울산 반구대, ‘기도하는 마음’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신석기 선조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출발에 앞서 기도한 지가 언제였는지 또 무엇을 기도했었는지 생각해 봤다. 

 

나의 기도는 대부분 내가 소원하는 것이 있을 때였다. 꼭 이루고 싶은 게 있을 때, 무형이든 유형이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을 때이다. 나뿐이랴, 인간에게 기도란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그런데 그것이 나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불가능해 보일 때, 나 자신 너머 더 큰 힘을 끌어와 그 성취에 보태려는 시도이다.

소소하게는 이런 것이다. 지난 6월이 생일이었다. 마침 비슷한 날짜에 생일인 동료가 있어 가까운 지인들끼리 모여 생일 축하 자리를 가졌다. 케이크 위에 초를 켜 두고 동료들이 ‘소원’을 빌라 한다. 나는 넓은 작업실을 갖게 해달라는 요청을 포함해서 그 짧은 순간에도 서너 가지 소원을 꾸역꾸역 담아 마음속으로 빌었다. 동료 작가에게 옆구리를 쿡쿡 찔러 무슨 소원을 빌었냐 물어보니 부모님 건강과 큰 사고 없는 무탈을 빌었단다. 

그런데 신기하다. 기도의 내용이 분명 다른데도 불구하고 우리 둘에게 통일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기도할 때가 되자 다잡는 몸의 자세였다. 생일인 동료와 나는 둘 다 마흔이 넘은 이 나이에도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 양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은 채 머리를 숙였다. 가만 보면 이 같은 기도 자세는 생일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인종, 다른 종교를 가지고 살면서도 인간이라면 기도할 때 취하게 되는 공통의 모습들이 있는 듯하다. 몇몇 차이는 있지만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는 등 내 몸을 한없이 낮추려는 모습 말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가 되면 이 같이 자신의 몸을 모아 평소 부산스러운 몸의 움직임들을 잠시 멈추게 한다. 기도하는 그 일시적 시간이나마 나를 현실로부터 분리시키고 다른 시공간의 세계로 보낸다. 그 곳에서 나보다 더 큰 힘과 접속하기를, 내 소원이 그 힘에 닿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울산에 도착하여 만난 7000년 전 신석기 인류도 그랬다. 평소 자신에게 익숙한 몸의 모양새와 그 쓰임을 다르게 바꾸어 현실 너머 다른 시공간 속으로 자신을 이동시켰다. 배를 타고, 작살을 잡아 고래를 사냥하던 몸은 석기를 들고, 암벽에 고래를 새김으로써 이전 자신의 몸을 낮춘다. 인류는 오랫동안 우리에게 ‘기도’를 하려면 먼저 일상에서 사용하던 ‘네 몸의 자세부터 바꾸라’고 말하고 있다. 일상의 자세를 바꾸어 더 낮게 자신을 낮추라고 말이다. 기도하는 마음에 앞서 왜 몸의 자세를 먼저 강조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고래 사냥, 고래가 허락하는 일
울산 반구대 대곡리 암각화는 태화강 상류의 지류 하천인 반구천의 절벽에 위치하고 있다. 너비 약 8m, 높이 약 4.5m 크기로 중심 바위 면이 있고 양쪽 주변 약 10여 곳에 걸쳐 여러 이미지들이 새겨져 있다. 물개, 거북 등과 같은 바다 동물과 사슴, 멧돼지 등의 육지 동물을 함께 볼 수 있으며,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이나 춤을 추는 샤먼 등 인간의 모습도 담고 있다. 

특히 50여 가지 고래 이미지가 암벽 좌측에 촘촘히 새겨진 모습이 눈에 띈다. 귀신고래, 범고래, 혹등고래 등 그 종류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수면 위를 튀어 오르는 고래, 수면 밖에서 수증기를 뿜는 고래, 새끼와 함께 유영하는 고래 등 바다에 사는 고래 모습들이 당시 울산 신석기인들에 의해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다. 

 

 

그와 함께 고래를 사냥 중인 어부의 모습들도 그려져 있는데, 20명 정도의 어부가 탈 수 있는 어선이 두 개 새겨져 있고 그 옆에는 부구가 있는가 하면 뱃머리에는 작살을 들고 있는 어부도 보인다. 또 커다란 작살이 고래 몸을 관통한 이미지도 빼놓을 수 없다. 총 40명의 인원이 두 대의 어선에 나누어 타고, 양쪽에서 고래를 몰아오면 작살잡이 어부가 작살을 던져 고래를 사냥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작살에 묶여 있던 부구를 따라 고래의 시체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이를 싣거나 끌어 거주지로 돌아갔을 것이다.  

이른 아침, 해가 뜨면 바다로 나가 배를 띄우는 7천 년 전 인류를 떠올려본다. 매일 마주하는 바다이지만, 바다는 한 순간도 같은 모습으로 이들 앞에 다가오지 않는다. 비가 얼마만큼 내리는지, 구름이 많아 흐린지, 바람은 어느 방향으로 불고 얼마나 강한지, 또 파도의 높이는 어떻게 되는지, 어제 바다 위에서 얻은 정보로 오늘의 바다를 판단할 수 없다. 마치 오늘이 처음인 것처럼 또 그렇게 자연을 살핀다. 

그 바다 수면을 뚫고 고래의 큰 몸집 중 일부라도 눈앞에 보이면 그나마 다행이다. 대체로 깊은 수심에 가려져 몸의 크기, 움직임의 속도 등을 가늠할 수 없고, 수면 위로 튀어 오르거나, 수면 가까이 바짝 붙을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뜨거운 한낮의 땡볕에 살은 계속 타들어 가고 수면 위에 반사되는 강력한 태양 빛에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모르니, 목을 축이는 일도 배를 채우는 일도 편치 않다. 배 위에 있는 동안은 잠시도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한참을 기다려 고래가 보인다. 본격적인 포경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보다 몸집이 몇 십 배나 큰 고래를 사냥하는 일은 한두 명의 어부로는 불가능하다. 두 배에 나누어 탄 40여 명의 어부, 그 전체의 몸과 마음이 마치 한 사람의 그것처럼 합심하여 정교하게 움직여야 한다. 배의 노는 어느 방향으로 돌려야 하고, 또 그 강도와 빠르기는 어느 정도인지... 각자는 배 위에서의 순간순간 전체 호흡에 맞춰 자신의 몸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알고 있어야만 한다. 

 

뱃머리의 작살 잡이는 더욱 긴장해야 한다. 뱃머리에서 바다 전체를 조감하면서 고래의 크기, 고래가 이동하는 방향과 속도 등을 예민하게 읽어간다. 지금 머리를 조준해야 하는지, 배를 관통시켜야 하는지 그 때와 방법에 판단이 서면, 빠르고 정확하게 작살을 던진다. 이것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이날 어부들의 양손에, 부족 전체의 입속에 고래는 없다. 

 

바다, 바람, 비, 태양, 고래... 자연은 이 여러 조건들을 매번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조합하여 매일 다른 상황을 펼친다. 그러나 어부들에게는 예측 불가한 이 상황들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고래를 떠나 생존할 수 없기에 이를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도 없다. 고래 사냥은 선택지 없는 필연이다. 울산 신석기 인류는 자신의 능력치로 파악할 수 없는, 또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으로서의 나약함을 온몸으로 겪으며 실감한다. 자신들의 힘과 의지만으로 고래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직접 부딪쳐 확인하는 것이다. 고래 사냥은 그렇게 매일매일 인간들 자신의 한계를 대면하는 일이기도 하다. 

 

만약 운이 좋아 오늘 우리 손에 고래가 들려진다면 그것은 인간인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고래를 잡은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자연이 우리에게 고래를 보내 준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고래가 인간에게 잡혀주겠다 스스로 허락할 때만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 간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힘에 스스로를 온전히 내맡기는 것뿐이다. 즉 자연을 바꾸려 들지 않고, 아니 바꿀 수 없으니 스스로를 변화시켜 자연에 자신을 맞춰간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매번 다른 상황을 긴밀하게 읽고 판단하며, 알맞게 행동하기 위해 쉬지 않고 애쓰면서 말이다. 이것 외에 고래를 잡을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 그렇게 인간은 자연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진다. 
 

그렇다, 고래 사냥의 성패는 고래의 마음, 자연과 우주의 뜻에 달린 것이지, 인간들 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해서, 생존을 위해 고래가 절실했던 인간은 자신들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신과 우주에게 ‘고래를 보내 달라’, 또 고래에게 ‘우리에게 스스로 와 달라’ 간절히 기도하며 소원하는 일에 정성을 쏟는다. 

 

기도로서의 암각(巖刻) 행위 
기도는 자신들에게 고래가 와 주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신에 가닿을 때, 해서 신이 고래를 보내줄 때, 혹은 고래 스스로 움직일 때 비로소 성사된다. 이제 밤이 되면 이들은 암벽 앞으로 모인다. 횃불로 주위를 밝히고 자신들이 염원하는 고래 이미지를 돌 위에 새기기 시작한다. 기도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이들의 기도는 석기와 망치를 손에 든 암각행위여야 했을까? 

어두운 밤, 암벽 앞에 서서 고래를 조각하는 울산 신석기인들의 모습에 더 다가가 보자. 석기를 대고 돌망치를 두들겨 가며 한 땀 한 땀 작은 점을 새기고 그 점들에 연속성을 부여하며 선을 만들거나 면을 만들면서 천천히 고래를 새겨간다. 두 손으로 질료를 대면하며 온몸으로 작업 과정을 관통해 내야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조각가의 모습이다. 그렇게 7천 년 전 인류가, 조각을 전공하고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는 현재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드로잉과 회화 작업은 종이나 천 위에 펜, 붓 등을 이용해 선을 가볍게 긋거나 빠르게 면을 채우는 것이 가능하다. 그에 비해 조각하는 일은 고된 육체노동과 긴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특히 돌 조각은 단단하고 딱딱한, 또 강하고 무거운 돌의 물성 덕에 다른 재료에 비해 그 정도가 세다. 흙을 덧붙여가며 작품을 만드는 소조작업의 경우 부드럽고 유연한 점토의 특성으로 적당량의 흙을 떼어 내어 한 손에 든 채 작업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만큼 작게 또 크게 작품의 크기를 조정할 수 있다. 나무 조각의 경우도 나무가 돌보다 상대적으로 유약하여 조각할 때 힘이 덜 들어가고, 정교한 조각도 쉽게 된다. 무게 또한 더 가벼워 이리저리 돌려가며 조각할 수 있다. 몸이 편한 자세에 맞춰 나무를 움직일 수 있으니 조각하는 동안 덜 고단하고, 같은 형상을 제작한다 할 때 완성의 속도도 빠르다. 

더구나 울산 반구대 암벽화의 경우 끝이 좁은 뾰족한 석기로 견고한 돌 표면을 쪼아 미세한 점을 덜어내듯 조각하는 ‘조탁’기법으로, 수일 아니 수개월, 좁쌀보다 작은 한 점을 암벽 위에 반복적으로 새겨 겨우 하나의 선과 면을 얻는다. 셀 수 없는 무수한 점들을 돌 표면에서 덜어내며 고래를 새기는 동안 팔, 다리, 손 어깨, 신체 어느 부분 힘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다. 현대 돌 조각가들이 필요에 따라 기계를 이용하여 원하는 면적이나 부피만큼을 단번에 덜어 내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 과정에는 노동과 시간에 있어 어떤 비약도 없다. 

 

 

또 지면에서 어림잡아 3~4m 이상 되는 암벽 높이에 고래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사다리 등 높은 곳에 손이 닿을 수 있는 보조 도구를 사용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편편한 지면 위에 두 발이 닿는 것보다 아슬아슬한 나무 사다리 위에 서 있을 때 신체가 감수해야 할 위험의 정도는 당연히 커진다. 이들 어부 조각가들은 환경 조건이 주는 위험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암벽 높은 곳까지 빼곡히, 넓은 암벽 가득히, 고래 위에 고래, 고래 옆에 또 고래, 그렇게 간절하고 절실하게 고래를 새겨 나갔다. 말 그대로 고래에 ‘미친’ 자들처럼 말이다.

그뿐만 아니다. 고래 조각 시 요구되는 정신적 집중력은 어떤가? 종이 위 연필이야 실수하면 지우개로 지워도 되고, 검정 위 물감이 다 건조되면 그 위에 흰색 물감을 얹어 다시 칠할 수도 있지만 돌에는 조각의 흔적이 한 번 새겨지면 전 단계를 다시 돌이킬 수도, 다른 것으로 덮어 감출 수도 없다. 해서 석기를 들고 돌 앞에 설 때면 온 정신과 마음을 담아 조각하는 그 순간에 온전히 몰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들 눈은 생각 이상으로 예민하여,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형상의 크기, 기울기 등 단 1mm의 차이가 생겨도 호랑이가 개로 혼동되어 보이거나, 붓이 연필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정교해야 하는 이 조각 작업을 할 때 고래를 눈앞에 두고 따라 그리느냐? 그렇지 않다. 낮에 보았던 고래는 이미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다. 지금 이 순간 오직 ‘고래’, ‘고래’에 몰입하며, 사냥 할 때 보았던 고래의 길이, 생김새, 움직임 등 고래와 관련된 것이라면 모든 것을 하루 종일 잊지 않고 기억해두었다 꺼내는 것이다. 낮에도 밤에도 고래는 이들 의식을 떠나지 않는다.  

이 같은 일련의 조각 과정을 생각해 보면 이들 암각 행위의 목적이 단순히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대상 표현이나 이미지 복제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초에 그것이 목적이었다면 조각 대신 그림을 그리거나 흙, 나무 등 돌보다 상대적으로 수고가 덜한 재료와 제작방식을 선택했을 것이다. 또 그 결과물로서의 이미지도 가장 완성도가 높은, 최종의 한 두 점이면 충분했을 테니 말이다.

울산 신석기 인류는 자연, 신, 우주의 초월적 힘, 바다 위에서 온전히 포착할 수 없었던 그 힘이 이 거대 암벽 속에도 담겨 있다 믿었다. 돌은 신이 담긴 물질이자 사물이며 신의 몸 자체다. 밤이 되면 이들은 이 암벽 앞으로 돌아와 손으로 돌의 표면을 만지며 그 힘과의 접속을 시도한다. 

횃불로 어둠을 밝힌 후 의식을 치르듯, 모든 마음과 정성을 담아 한 점 한 점, 돌 위에 아니, 신의 몸 위에 고래 이미지를 새긴다. 신의 몸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기에 단 한 번의 망치질도 소홀할 수가 없다. 또 돌이킬 수 없기에 한번 새겨진 흔적은 그만큼 강력하게 신과 연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신의 몸인 돌과 고래 이미지는 조각하는 행위에 의해 결합되고, 둘은 분리될 수 없는 합일된 몸으로 재탄생한다.

 

어두운 밤, 조각하는 어부의 두 손은 멈출 줄 모르고 그 정신은 신과 고래로 가득 차 있다. 암벽을 희미하게 밝히는 불빛, 조각하는 몸짓의 그림자, 적막을 더 깊게 만드는 물소리, 이따금씩 들리는 동물의 울음소리와 함께 어부는 그렇게 점차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래와 합일된 신을 만난다. 자신들의 기도가 신에 가닿는 순간이다. 어부들은, 아니 예술가들은 이처럼 밤이 되면 낮 동안 마음 깊숙한 곳에 저장해둔 고래 이미지를 하나 둘 몸 밖으로 꺼내어 서서히 돌 위에 펼치는 의례를 치른다.  

 

예술, 나를 낮추는 일 

 

나의 출발점은 인간을 [도구를] 다루는 동물로 파악하는 것이다. ‘다룬다’는 활동은 연결하고 분리하는 일이다. 그러는 와중에 인간은 나라는 유기체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다. 손은 인간이 신경 조직 없는 무기물인 실제 사물을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자아를 비유기체적으로 확장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도구를] 다룸으로써 자신의 유기체적 윤곽을 넘어 고양하는 인간의 비극이다. (『뱀 의식』, 아비 바르부르크 지음, 김남시 옮김, 읻다, 163쪽) 

 

 

아비 바르부르크는 『뱀 의식』에서 인간은 스스로 포착할 수 없는 비유기체적 존재를 생물형태적, 애니미즘적으로 친숙한 형태로 또 조망 가능한 존재로 표현함으로써 자신들의 바람과 의지를 실현하려 했다고 말한다. 

 

손으로 물질을 직접 건드려 몸의 낯선 감각을 일깨우고, 손으로 도구를 집어 몸의 새로운 작동법을 확장시키는 일은 몇몇 목적에 따라 몸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던 기존 방식, 기존 감각들을 풀어 분리, 해체시킨다. 또 손으로 물질, 사물, 도구를 받아들이면서 포착 불가능한 존재와 조망 가능한 존재 즉, 구체적 이미지 둘 사이의 통로를 만든다. 물질, 도구, 신체들은 ‘행위’를 접점 삼아 서로에게 간섭하고 엮여가며 재구성된다. 행위 속에서 물질, 도구, 신체는 분리불가능해지고, 누적된 행위는 전에 없던 낯선 이미지와 형상을 현실로 펼쳐낸다. 

 

‘나’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내 몸은 ‘나’라는 규정된 회로로만 작동한다. 정해진 소수의 회로는 정해진 대상과 정해진 방식으로만 접속하며 더 견고해지는 한편 더 고립된다. 그 한계로 인해 가늠되지 않던 대상들은 몸에 새로운 회로, 새로운 작동법을 생성하며, ‘나’라는 유기체의 한계선을 풀어 확장시킬 때에만 가닿을 수 있다. 

 

자신의 몸을 낮춘다는 것은 ‘나’라는 유기체로서의 몸, 익숙한 방식으로만 작동하던 그 몸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몸의 견고한 윤곽을 열어 비유기체적 상태로 자신을 되돌려놓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른 모든 존재와 관계 맺고, 그 존재에 가닿으려는, 또 그래야만 한다는 의지의 실천이기도 하다. 기도는 나의 힘과 의지만으로 아무것도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내 몸을 낮추어 즉 ‘나’를 분리, 해체시켜 다른 존재에게로 나를 열어 두는 일이다.

 

일상을 되돌아보면 대부분 우리 몸의 자세는 ‘나’를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먹는 행위, 말하는 행위, 일하는 행위 등 행위 마디마디가 ‘나’라는 존재의 욕구, 필요와 목적을 더욱 견고히 한다. 그 욕구들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열어 두는 일에는 몸의 자세를 낮추는 것, 그 만한 훈련법이 없다고 오래전 인류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나는 평소 예술가는 세상에서 유일하고 독창적인, 또 그 창조성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작품을 창작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이름을 남기는 자인 줄 알았다. 그래서 누구보다 ‘나’가 돋보이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울산 신석기 어부 예술가들은 말한다. 예술가는 기본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기도하는 자로서 예술가의 핵심은 유기체로서의 자신을 거둬들이고 자연, 신과 우주로 자신의 몸을 확장시키는 것에 있다. 해서 예술가인 내가 조각해야 하는 것은 내 신체 밖 예술 작품 이전에 열린 몸으로서의 나 자신이다. 내 신체의 유기체적 윤곽들을 부수고, 해체해서 비유기적 상태로 나를 넓혀가는 일이다. 기도하는 자로서 예술가는 특정한 목적과 함께 특정한 방식으로 깎인 자신의 몸을 낮추어 어느 목적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혹은 어떤 목적과도 접속할 수 있는 본래 상태로 몸을 돌리는 자, 해서 울산 신석기들이 그렇듯 고래도 만나고, 사슴도 만나고, 세상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그들의 뜻과 조응하며 사는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