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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을 나눌레오

[인류학을 나눌레오] 인류학 잡지와 함께 공부의 항해를 시작하다

by 북드라망 2024. 5. 3.

인류학 잡지와 함께 공부의 항해를 시작하다 

 

곽은남(인문공간 세종)

 

혼자가 아니야. 함께만 있지! 네가 없으면 나도 없어. 인문세는『인류학 탐구생활』이라는 잡지를 만든다. 이 잡지는 그냥 나올 수 없다. 인문세 전공인 인류학을 공부하는 만큼 잡지가 나오게 되어 있다. 4호까지 발간한 지금은 인류학 공부와 잡지가 한 몸으로, 잡지 분량 때문에라도 인류학 공부를 살찌워야 한다. 잡지의 글은 현장 답사에서 나온다. 글쓰기의 토대가 되는 현장 답사는 인류학 수업과 병행하여 연간 3∼4회 정도로 진행된다. 연간 잡지도 답사를 다니는 횟수만큼 나온다. 인류학 공부가 순항하면 잡지 만들기도 한결 수월하다. 잡지 만들기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인문세 학인 4명이 편집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데, 잡지가 손에 들어오기까지 편집팀만으로는 어림없다. 인문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인들과 답사를 다닐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현장 선생님들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잡지 만들기의 단계는 이렇다. 첫 번째 단계에서 답사와 숙제라는 인문세만의 약속을 통과한 글을 대상으로 원고를 선정하고 다듬는 작업을 한다. 이때 학인들에게 글을 수정하라고 쪼기도 하고 오타나 비문을 찾아서 교정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 전체 목차를 정하고 글을 이리저리 나누고 배치한다. 이때가 편집팀이 가장 골머리를 앓는다. 세 번째 단계는 글 내용과 꼭 맞는 사진을 일일이 고르고 디자인 작업을 하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잡지가 하자 없이 인쇄되었는지 확인하고 독자들에게 발송한다. 


나는 네 단계 과정을 이끄는 편집장을 맡고 있다. 처음 편집장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인류학 공부라는 것이 책상머리로는 될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인류학을 공부하는 학인들은 스텝으로 공부방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스텝들은 자기 깜냥껏 총무, 회계, 유튜브, 페이스북 관리, 행사 진행 등을 맡고 있었고 나도 여기서 함께 공부하려면 무슨 일이든 해야 됐다. 하지만 그 일이 공부의 곁다리로 내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었다. 편집 일은 혼자 꼬물거리며 할 수 있어서, 남과 덜 부딪치겠다 싶어 냉큼 나섰다. 학인들과 부딪치느라 내 공부를 못 하게 되면 나만 손해라는 계산을 먼저 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계산했던 손가락을 입에 물고 눈을 질끈 감는다. 내가 입은 손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끼친 손해를 생각하니 그렇다. 편집장 때문에 이만저만 고생이 아닌 편집팀원 덕분에 혼자만 알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되어 가고 있다. 나는 회사에서 혼자 방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남과 함께하느라 감정에 시달리느니 ‘혼자하고 말지’로 일관했던 것 같다. ‘혼자 한다’는 태도는 고정관념을 굳건하게 하였고 편견들은 나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잡지 만들기라는 ‘함께’의 장에서 내 마음속에 똬리를 튼 고정관념을 볼 수 있었고 공부에 새로이 눈을 뜨게 되었다.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글쓰기
잡지 만들기 1단계는 글을 쓰는 학인들과 함께하기다. 더불어 나도 글을 쓰는 학인이 되어야 했다. 글쓰기야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해 오질 않았던가. 나는 글을 쓰는 학인이 아니었나? 잡지의 글쓰기는 뭐가 다르다는 것일까? 잡지 만들기는 글을 쓰는 사람을 혼자 두지 않았다. 학인들이 글을 쓰지 않으면 잡지가 나오지 않으니, 편집팀 전체가 서로의 글쓰기가 얼마나 진척되고 있는지 눈을 뜨고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동동거리기만 했지,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지 않을까 동동거리기는 처음이었다. 나중에는 꼭 잡지 때문이 아니라 무엇을 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나도 편집팀원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잡지의 여는 글이 제때 나오지 않으면 발간 시기를 맞추느라 팀원들이 하얗게 밤을 불태워야 했기 때문에 무조건 써야 했다. 


무조건 글을 쓰느라 글에 대한 자의식이 생길 틈이 없었다. ‘글쓰기 울렁증이 있어서, 아직 공부가 모자라서’를 걱정하는 시간에 ‘서론은 어떻게 써야 하나’를 고민했다. 내가 글을 쓰고 있어야 학인들에게 글을 쓰라고 독촉할 수 있었기에 나 또한 쓰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학인들의 글쓰기는 나의 글쓰기를 밀어주었다. 쓰다가 포기할 것 같은 학인이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끝까지 쓰고 싶어졌다. 생각을 더 밀어 가는 글을 보면서 나도 같이 생각을 밀어 가고 있었다. 잡지의 글쓰기는 혼자서는 안 된다. 김장철도 아닌 것이, 잡지철이 되면 서로를 글쓰기에 담궈야 한다. 치사하게 네가 안 쓰면 나도 안 쓴다고 상대의 발목을 잡고 시작하다가, 쓰다 보면 어깨를 토닥이고 더 잘 쓰겠다고 등을 돌리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머리를 맞대고 고치고 있다. 아마도 글쓰기의 풍경이 있다면 언어를 조탁하기 전에 몸으로 관계를 빚어내는 것이 먼저 있지 않을까 한다. 내가 글을 쓰는 학인들에게 스며들자 나의 글은 나만의 글에서 벗어나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공부는 함께해도 글쓰기는 온전히 자기만의 몫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잡지를 만들다 보니 어디까지가 혼자의 몫인지 그 경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작년 일본 북해도 답사에서 저녁마다  그날의 글감을 가지고 재잘댔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어떤 글을 써보려 한다고 말하자 낮에 봤던 박물관 유물들이 밤새 글쓰기를 따라 헤쳐 모였다. 글을 쓰라고 박물관이 살아 움직인다니! 아마도 글을 쓰지 않았다면 박물관은 관광상품으로 기념품 코너만 생각나는 장소였을 것이다. 글발이 오른 친구 옆에 있으면 글감이 퐁퐁 솟아났다. 그 친구는 아주 작고 미묘한 것에 관심을 가지고 차이를 발견할 줄 알았다. 어쩜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을 찾아내고 감탄하는지,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나도 차이를 느껴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글감은 저 멀리 커다랗고 대단한 주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잡아끄는 이야기에 천천히 머물며 그 자리를 관찰하는 것에 있었다. 글 친구는 ‘어제 이 숲에 곰이 출현했다는데, 내가 걷는 길에 곰도 다닌다니 놀랍지 않아’에서 곰과의 연결을 생각하고 이 세계는 인간만이 사는 데가 아님을 발견하고 있었다. 


잡지에는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글도 실렸고 완성된 글은 처음이라는 학인의 글도 실렸다. 즉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글도 글쓰기가 서투른 학인의 글도 있다. 이들의 글을 보면서 함께 글쓰기는 전문가이거나 글을 잘 쓰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어떤 위계를 떨쳐 낼 수 있었다. 함께 글쓰기는 글쓰기의 최적화도 아니고 완성된 한편의 멋진 글로서의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서로가 넘어가지 못하는 지점을 깨우쳐준다면 함께 글쓰기는 글쓰기의 좋은 훈련 방식이다. 맨날 글이 별로다, 글을 못 쓰겠다고 하소연하는 편집부 학인이 처음 글을 쓰는 학인을 붙들고 몇 날 며칠을 같이 수정하더니 말이 달라졌다. 우리는 글을 못 쓰는 것이 아니라 글 고치기를 못하는 것이라고 야무지게 말한다. 자기 글에 대한 방어적 태도만 버려도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고 한다. 더는 못 고치니까 말하지 마! 이런 태도는 함께 글을 쓰는데 위험한 태도다. 하여 함께 글쓰기는 달달하기만 하지 않다. 함께 글쓰기는 괴롭고 아슬아슬하기까지 하다.  자기 글을 방어하는 데 급급한 미성숙한 자기의 모습을 보게 하고 자기가 부정당하는 듯한 기분조차 느끼게 한다. 


내가 글쓰기를 혼자만의 전유물처럼 느꼈던 것은 글을 쓰는 ‘자기’에 집착해서이다. 글은 자기만의 고독한 산물이자 자기가 낳은 소유물처럼 여겨졌고, 글을 쓰면서 나오는 자기는 일상에서 분리된 특별한 어떤 자기처럼 보였다. 글을 비판하면 나를 비판하는 것 같았고 자기가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글쓰기를 특별한 자기와 동일시하는 것은 아무나 글을 쓸 수 없다는 위계를 갖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류학을 공부하다 보니 ‘자기’는 사람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형식임을 알게 되었다. ‘자기’는 살아있는 사고들의 처소이자 역동적인 과정에서 창발하는 덧없는 경유지일 뿐이다. 글쓰기는 덧없는 자기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었지 자기의 전부가 아니었다. 글을 쓰면서 붙들어야 할 자기는 없었으며 오히려 세상의 수많은 자기들이 내 안에 들어와 글을 쓰라고 의미들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이럴 때는 글을 쓰고 나면 자기가 쓰고도 자기가 아닌 듯 놀라기도 했다. 글쓰기는 고정된 자기가 갖는 편견을 알아채는 것만으로 성공한 것이다. 
 

 

세상을 향하는 글쓰기
인문세는 ‘공부해서 나눈다’는 비전을 가지고 출발했다. 공부하는 사람이 공부를 나누는 방법으로 글쓰기를 생각하게 되었고, 글이 우리끼리 알아듣는 이야기에서 인류학을 공부하지 않는 이웃에게도 읽히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랐다. 처음에는 내 글을 내가 쓰고도 잘 안 읽히는데 이웃에게까지 읽히는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고 하니 능력 밖의 일인가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웃에게 읽혀야 하는 글쓰기는 우리의 공부를 키우는 양분이 되었다. 세상과 함께하기는 무엇보다 편집장의 능력을 키워주었다. 편집장이 원고를 수정하는데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힌다는 기준은 아주 유용했다. 우리가 글을 수정하는 것이 대단한 내용을 고치자고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한테는 익숙하지만 함께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를 쉬운 말로 고치거나 설명을 더 하는 연습을 하자는 것이다. 잡지의 글이 가족이나 이웃, 직장 직원에게 읽혀야 된다는 원칙은 내가 읽히는 글을 쓰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자 전에는 보이지 않던 글에서 고쳐야 할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글의 내용이 문제가 아니라 오타와 비문이 없는 글이 먼저였다. 


편집팀은 디자인 단계로 넘기기 전에 원고를 더 이상 손보지 않도록 오타와 비문, 띄어쓰기에 심혈을 기울인다. 가령 사진을 앉혔는데 원고를 수정해서 글이 늘거나 줄면 사진도 같이 조정을  해야 해서 작업이 배로 힘들어진다. 작업이 힘들어지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잡지의 수준이 오타와 비문에 달려 있기 때문에 눈에 불을 켠다. 편집팀의 자부심은 잡지에 오타와 비문이 없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작업이 한글 띄어쓰기다. 맞춤법과 띄어쓰기 덕분에 국립국어원은 가장 친근한 기관이 되었고 책상에 한글 맞춤법에 관한 책이 쌓여갔다. 띄어쓰기는 할 때마다 긴가민가 너무 어려웠다. 띄어쓰기에 비해 오타를 잡는 건 수월했다. 하도 편집팀에서 오타와 비문 타령을 해서인지 원고에서 오타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았다. 문제는 비문에 있었다. 심각한 것은 비문이 비문인지조차 모른다는 사실이다. 내가 쓴 글에서 비문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비문의 심리학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심각하게 고민했다.


잡지를 만들기 전까지 내 글에 비문이 있는지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비문이 있으면 어때, 글의 내용이 중요하지’ 했다. 이런 나를 보더라도 비문을 쓰는 것은 멋진 해석, 좋은 글에 대한 위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글쓰기 습관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혹은 이것저것 떠오르는 대로 자신의 생각을 움켜쥐고 놓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천천히 스텝을 밟지 못하고 떠오르는 말을 서둘러 쓰는 바람에 글이 꼬이고 비문을 쓰게 되는 것이다. 글에 대한 조급함이 비문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심리적인 비문을 치료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글을 쓰고 나서 소리 내어 읽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문장이 길고 어딘가 이상하면 비문일 확률이 높았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어 보는 것도 꼭 필요하다. 잡지가 나왔을 때 내 글만 읽고 던지면 비문은 고쳐지지 않는다. 
 

 

더불어 함께 자리 정하기
잡지 만들기의 두 번째 단계에서는 목차를 정하고 글을 배치한다. 함께 쓰는 글쓰기이지만 글의 위계는 있다. 어떤 글이 머리말로 와야 하는지, 중간에 있어야 하는지, 마무리로 적당한지, 글의 순서를 정해야 한다. 이때 편집장 노릇이 가장 필요하다. 누군가는 머리 꼭대기에 있어야 일이 돌아간다. 편집장은 팀원들이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사전에 고민을 좀 더 해야 하고 문제를 던지는 사람이다. 꼭대기에 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다. 팀원들이 자신의 주도권을 가지고 활발히 움직일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글의 배치는 편집장의 취향이나 친소관계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장 크게는 이번 호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주제에 따라 움직인다. 편집팀과 회의할 때도 이번 호 표지의 큰 제목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래야 세부 목차를 잡을 수 있고 목차에 따라 놓이게 될 글이 보인다. 제목을 정하려면 전체의 주제 안에서 개개의 글의 맥락을 읽어야 한다. 세부 목차도 마찬가지다. 세부 목차 제목을 지을 때 표지의 제목과 동떨어지면 어딘가 튄다는 느낌이 든다. 표지 제목과 목차의 제목, 각각의 글들이 서로를 물어 가면서 하나의 잡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 


세상에 위계는 존재한다. 글에서 위계를 보자면 어떤 기준에 의한 일방적인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서로 맞물리며 보충하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글이 의미가 불충분했다면 다른 글로 보완이 되기도 했고, 나오는 글로 맞춤하게 총정리가 되는 글도 있었으며, 한 편의 글이 길었다면 다른 짧은 글로 인해 적당하게 읽히기도 했다. 글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가 상호 침투하면서 어떤 효과를 자아내고 있었다. 글을 배치하다 보니 함께하기는 하나의 기준에 의한 획일적인 전체로서의 ‘함께’가 아니었다. 함께하기는 서로의 개성을 살리거나 부족함을 보충하는 상보적인 관계가 되어야 했다. 그래야 함께 할 수 있고 함께 안에 각자의 개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수많은 손들과 함께하기 
잡지의 세 번째 단계에서 또 다른 편집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 이 과정은 건너뛰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글의 내용이 좋으면 그만이지 시간도 돈도 없는데 디자인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사람들이 잡지를 받자마자 목차 순서대로 글을 읽는 게 아니었다. 독자들은 잡지에 나온 사진을 훑고 나서 읽고 싶은 글을 골랐다. 아무리 글을 잘 쓰고 백번 고친들, 읽어 주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오히려 사진이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을 보며 나는 왜 글 이외의 모든 것들을 작고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하며 눈여겨보지 않았을까를 생각했다. 사진이 글을 읽게 만드는 결정타가 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잡지의 여백이나 종이의 질, 색상과 글씨체가 잡지가 읽히는데 결정타로 작용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하기란 내 기준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수많은 손들이 있었기에 ‘함께’가 가능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잡지 만들기 마지막 단계는 하나씩 포장해서 발송하기다. 그동안 앉아서 편하게 받아보기만 했지 작은 선물이라도 이렇게 많은 손길이 필요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잡지를 보낼 사람을 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는 일이다. 우리와 관계를 맺었으면 하는 공동체를 빠트리면 안 된다. 세종에 있는 도서관이나 지역사회와의 연결도 고민하여야 한다. 같이 공부하지 않지만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선생님들도 잊으면 안 된다. 전체 세미나에서 선생님들이 들고나는 사정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잡지가 나올 때마다 주소가 매번 달라지는데 확인하지 않고 보냈다가는 아까운 잡지만 날리게 된다. 잡지를 받는 선생님에게 따로 인사 메모를 쓰기도 하는데 메모에 쓴 이름과 주소가 엇갈리면 이런 결례가 없다. 우체국에 가는 길에 비가 오면 잡지가 젖을까 우산을 씌워 주면서 잡지가 무사히 전달되기를 빈다. 잡지만 해도 뒤에서 묵묵히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기에 독자와 함께할 수 있었다. 타자와 함께하기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무한한 활약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함께하는 공부 
잡지를 만들면서 가장 큰 변화라면 공부가 이전과 다르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공부를 소비하는 사람에서 생산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발심이 절로 들었다. 잡지 목차를 만들 때였다. 이 글을 누군가가 읽는다면 어떻게 읽힐까를 고민하다 보니 거기에 내 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글도 누군가에게 읽히겠구나 싶었다. 평생 훌륭한 스승들의 글을 읽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내 글이 읽힐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읽는 사람에서 읽히는 사람으로의 변화는 공부에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잘 읽어야 잘 읽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둘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스승들의 공부가 나를 통해 지나가고 있었고 내가 공부의 전달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수많은 스승들에게 배운 공부를 전달하는데 그 전달할 기술의 부족을 실감했다. 나는 지금 잡지를 만들며 학인들과 함께 글쓰기의 기술을 하나씩 익혀가고 있다. 이 과정은 혼자가 아님을 체득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공부는 혼자 할 수 없다. 사람들과 함께하기에 공부가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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