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이야기 3편
변화무쌍한 용의 기운, 진토의 계절
봄의 영역에는 세 지지가 있습니다. 인(호랑이), 묘(토끼), 진(용)입니다. 오행으로는 인묘(寅卯)가 목(木), 진(辰)은 토(土)에 속하지요. 진토는 봄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는 흙을 떠올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적당히 축축하고, 적당히 따뜻해서 무엇이든 태어날 것 같은 그런 땅을요.
시공간의 흐름으로 살펴본 진월
진은 우레 진(震)과 같은 글자로 보기도 합니다. 신속하게 옛 것을 씻어 없애고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진은 조개의 상형자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지지에 배속된 동물이 ‘용’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용은 비바람을 몰고 다니는 신령스러운 동물로, 조화를 부리는 신(神)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고보니 이무기가 용이 되어 올라가는 이야기 속 날씨는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왔던 배경이 깔려있었던 것 같습니다. (맑은 날 용이 올라가는 건 왠지 어색하죠?^^;)
그런데 이 용은 앞발(손?)에 꼭 뭘 쥐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여의주! 무슨 소원이든 다 이루어지게 만드는 신물(神物)이죠. 전설에 따르면 이 여의주가 바로 용왕의 뇌 속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추억의 만화 『드래곤볼』을 떠올려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곱 개의 구슬을 모으면 용이 나타나서 소원을 들어주잖아요. (제목인 ‘드래곤볼’이 여의주를 의미하는 것 같네요;) 이렇듯 이야기 속 용은 초월적인 힘을 갖고 있는 신의 모습이며, 때로는 인간을 돕기도 하는 존재로 그려지곤 합니다.
음력 3월인 진월은 이런 용의 기운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음력 4월인 巳月은 여름의 시작입니다. 그러니까 진월은 봄의 끄트머리이자 여름의 관문인 셈이지요. 만물이 열심히 움직이며 자라는 시기가 바로 진월입니다. 24절기에서는 청명과 곡우가 이 시기에 해당합니다. 청명(淸明)은 말 그대로 '맑고 밝다'는 의미이고 화창한 날씨를 뜻합니다. 꽃놀이를 이때 많이 가는 거 맞죠? ^^ 곡우(穀雨)는 봄의 마지막 절기이며, '곡식에 필요한 단비가 내리는 시기'라는 의미입니다. 농사를 지을 때 비가 잘 내려야 곡식들이 잘 자라기 때문이지요.
사주명리에서 본 진토
사주명리에서 진은 양토(陽土)다. 봄의 기운으로 가득한 땅, 넒은 논, 평야로 비유된다. 진토는 용의 이미지처럼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에 대한 신념이 강하다. 삶에 대한 적극성을 띠지만 항상 현실과 상상 속을 오가기도 한다. 하지만 처세술과 사교성이 좋아서 어디서근 인기가 많다. 맺고 끊는 것도 정확해서 냉정할 때는 무척 냉정해 보이지만 속정이 깊은 편이다. 또한 매사에 원리원칙을 중시해서 불법적인 일이나 사리에 맞지 않은 일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의협심을 발휘한다. 그래서 진은 사주명리에서 명예살에 속한다.
─『갑자서당』, 175쪽
지지는 4방위로 배치를 할 수 있습니다. 배치 순서에 따라 ①은 역마살을 ②는 도화살을 ③은 명예살을 의미합니다. 목은 동쪽 방향이지요? 동쪽 방향의 세 지지는 순서대로 인(호랑이), 묘(토끼), 진(용)이 됩니다. 활동성이 강한 호랑이, 귀요미 토끼, 자존심과 신념이 강한 용! 이렇게 생각해두시면 잘 안 까먹을 것 같습니다. 진토는 오행상 토에 속하지만, 지지의 방위로는 동쪽에 배속되어 있습니다. 즉, 봄의 토이므로 목기가 가득 담긴 것이지요.
사주명리에서 방위는 아래 그림처럼 아래쪽이 북쪽, 왼쪽이 동쪽, 위쪽이 남쪽, 오른쪽이 서쪽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던 방위와 다르죠? 수는 음기이므로 아래쪽에, 화는 양기이므로 위쪽에 배치가 되었고, 자수에서 시작해서 인묘진, 사오미, 신유술로 이어지는 순서대로 보시면 됩니다. 계절로는 목이 봄, 화가 여름, 금이 가을, 수가 겨울입니다. 각 방위의 끝에는 토가 하나씩 자리잡고 있는데요, 이 토들은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 가을에서 겨울,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마디를 매개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봄과 여름 사이에는 진토가 그런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구요.
寅부터 순서대로 ①②③, 巳부터 순서대로 ①②③, 申부터 순서대로 ①②③, 亥부터 순서대로 ①②③으로 보시면 됩니다.
사주풀이를 할 때에는 진토가 어디에 위치하고, 주변에 어떤 글자들과 함께 있는지를 먼저 보게 됩니다. 지지의 4칸 중 월지에 있는 진토가 가장 영향력이 강합니다. 월지>일지>시지>연지 순서로 힘이 세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럼, 진토가 어떻게 해석되는지 『누드 글쓰기』의 사례로 살펴볼까요?
진토는 음력 3월, 양기가 충만한 농번기의 땅이다. 냉랭한 가을 기운인 유금에게 그것이 어찌 탐스럽지 아니하겠는가. 유금은 진토를 좋아하여 자신과 같은 금 기운으로 포섭하려는 경향이 있다. … 진토는 나의 정인(正印), 즉 어머니이다.(63~54쪽)
이 사주의 주인공은 월지에 있는 진토가 시지와 연지에 있는 유금에 의해 합이 되어버립니다(진유합금). 정인은 어머니, 학업, 부동산, 문서 등을 의미하는데 그래서인지 어머니와의 인연이 깊지 않았고, 호적이 말소되어 고생을 겪기도 하고, 보증금도 수차례 떼 먹히는 경험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성의 도움 없이 살아온 사주의 주인공은 오히려 스스로의 힘으로 의연하게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누드 글쓰기』에서 만나보셔요~ ㅎㅎ)
인용문에서처럼 진토는 유금과 만나면 ‘금’으로 변해버리고(진유합금), 맞은편에 있는 술토와는 앙숙(?)입니다(진술충). 진토와 인목, 묘목이 함께 있으면 ‘인묘진’으로 방합이 되어 목이 됩니다(인묘진합목). 또 신금과 자수를 만나면 삼합이 되어 버리지요(신자진합수). 이처럼 진토가 어떤 글자들과 함께 놓여있느냐에 따라 목이 되기도 하고, 수가 되기도 하고, 금이 되기도 한다는 거~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진토 캐릭터: 소마 하토리
지지 이야기를 생각하다 떠오른 ‘소마 하토리’는 예전에도 소개해드린 적이 있는 『후르츠 바스켓』의 등장인물입니다. 몸 안에 용의 혼령이 있지요. 물론 만화에서는 용이 아닌 해마로 그려지지만(제가 볼 땐 용이랑 더 닮은 것 같은데, 이름은 海馬입니다;;) 캐릭터 설정이 진토와 잘 맞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진토가 나란히 있는 경우 진진(辰辰) 병존이라고 하는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면 좋다고 합니다. 하토리는 마침 의사! (물론 사람을 살리는 일이 의사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게다가 자존심이 강하며, 자신의 신념이 뚜렷하면서 과묵한 그런 캐릭터이지요. 겉으로는 냉정해 보이지만 『후르츠 바스켓』 속 등장인물들을 은근히 챙기는 속정 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매력 때문인지 조연급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팬층이 두터운 하토리! 게다가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는 특별한 능력도 갖고 있지요. 음양오행을 배우고 다시 보니 이런 부분들이 눈에 띄네요. 지금까지 짤막하게 만화 캐릭터로 '진토'를 만나보았습니다. ^^;
네, 진토는 봄입니다! ^^;;
4월 5일 청명부터 진월에 진입하게 됩니다. 묘월까지는 꽃샘추위때문에 추웠지만 진월부터는 추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양기가 본격적으로 발현되는 시기이니까요. 저도 요즘 출근길에 있는 목련나무를 관찰하곤 합니다. 꽃봉오리가 점점 차오르더니, 본격적으로 하얀 꽃잎이 세상으로 나오기 시작했더라구요. 진월이 되면 목련이 활짝 필 것 같습니다. 진월이 되기 전 주변을 관찰하는 것도 지지의 흐름을 느끼는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럼 다음 지지인 사화(巳火) 편에서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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