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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 예술

[한문이예술] 거북의 그 ‘거대한 시간’에 대하여

by 북드라망 2024. 3. 8.

거북의 그 ‘거대한 시간’에 대하여

 

  
거북이를 좋아하는 선생과 학생의 만남
나는 거북이를 좋아한다. 아마 나를 오랫동안 본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네가 싫어하는 동물이 있어?” 그 질문에 답하기는 힘들지만… 어쨌든 동물 중에서도 거북이를 좀 더 좋아한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도 여러 유형이 있는데, 누군가는 거북이를 동물계 척삭동물문, 파충강의 거북목으로 세세하게 분류하면서 이해하고 싶어하거나 어떤 종류와 부위, 과거를 갖고 있는가를 줄줄 외우며 익히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나의 경우에는 그냥 푹 빠져버리고 만다. 어느 날 정신 차리니 좋아하는걸 깨닫고 그 이후에 이유를 찾게 되는 식이다. 내가 깨달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거북이의 등껍질의 지문같은 주름들, 매끈하면서도 나른한 눈의 모양, 꾹 다문 입의 곡선, 다양한 형태의 발톱과 느릿한 걸음걸이, 혹은 하늘을 나는 듯 바다를 헤엄치는 몸짓같은 것들… 더더더 많지만 지면상 생략하도록 하겠다. 잠깐!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거북에 미쳐있다거나 거북이를 위해 살고 싶은 건 아니니까 그냥 좋아한다고만 생각해달라. (한때 평생 남미의 거북이 봉사자로 사는 걸 꿈꾸기도했지만…….)

혹시 첫 글에서 비 우雨로 시작했던 첫 수업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굉장히 있어보이는 말들로 글을 마무리했지만 첫 수업때의 나는 극도의 긴장상태였다.(링크) 나는 긴장하면 오류난 기계처럼 굳어버리고 마는데, 열심히 준비한 수업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갈수록 긴장은 배가 됐다. 그렇게 시작된 수업, 첫 시간이니 인사와 함께 서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소개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나이나 소속 학교보다도 이름과 좋아하는 것으로 자기를 소개해보라고 권하는데, 그러면 아이들은 보통 만화보기, 게임하기, 그림 그리기나 동물,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한 아이가 동물 중에서도 콕 집어 거북이를 좋아한다며 자기가 키우는 거북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헉! 나… 나두..!! 거북이와 함께 산다니 부럽다….’ 그렇게 거북이를 좋아하는 나와 민혁이는 쉬는 시간동안 한참을 떠들었다. 나는 잠깐의 수다로 긴장이 해소되었고, 그 덕에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었다. 민혁이와 좀 더 거북이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았을텐데 아쉽게도(?) 나와 민혁이는 한자 선생과 학생으로 만나서, 거북이에 대한 대화도 한자와 관련된 내용으로 나눠야 했다. 다행인건 거북이가 한자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라는 점이다^^


거북이는 언제부터 신비한 존재였을까?
갑골문甲骨文은 거북이의 배껍질甲과 소의 어깨뼈骨에 새겨진 문자文들을 의미한다. 갑골문은 발견된 이후로 오랫동안 한자의 기원이라 여겨졌다. 한자의 기원이 거북이에 새겨져 있었다니, 어떻게 이런 우연이 다 있을까? 고대 사람들도 거북이를 중요한 생명이라 여겼을 것이 분명하다! 거북이의 속성을 떠올려보면 신비하게 여겨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일단 거북이는 육지와 바다를 모두 돌아다닐 수 있고, 등딱지의 무늬가 균형잡혀 특이할 뿐만 아니라 둥그스름한 돔 형태의 등딱지와 그 등딱지를 받치고 있는 단단한 네 개의 발이 움직이는 걸 보면 세계를 운반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다. 여러 신화에서 거북이가 등장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중국의 경우에는 신비한 부호와 관련된 전설에 거북이가 등장한다. 중국에는 태극과 팔괘의 효시가 된 하도낙서河圖洛書가 전해지는데, 『상서尙書』에 따르면 문자가 없던 시절 복희씨가 황하에 출현한 용의 등에 있는 점을 보고 우주 만물의 이치를 깨달아 팔괘를 만든 것이 낙서洛書이고, 하나라 우임금 시절 낙수에서 홍수가 났을 때 갑자기 나타난 신령스러운 거북의 등껍질 무늬를 보고 세상 만물을 표현하는 부호를 하도河圖라고 한다. 하도낙서는 그림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기호화되며 문자처럼 소통하는 역할을 했다.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문자의 역할을 했다는 그림에 신령한 거북(신괴)의 영향이 닿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는 뭐냐고? <주례周禮>의 기록에 따르면 거북을 채취하고 갑골문을 새길 때마다 치루는 의식에서 소가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그러다보니 거북과 함께 소의 뼈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왼쪽은 중남미 인디언 문화의 우주나무다. 그들은 거북의 등뼈에서 하늘을 지탱하면서 땅을 연결할 뿐만 아니라 뿌리를 통해서 지하세계까지 연결하는 거대한 나무인 우주나무가 자란다고 믿었다.

오른쪽은 힌두 지구의 그림이다. 보통 “World Turtle”이라고 한다. 지구를 지고 있는 거북을 힌두교에서는 아쿠파라(Akupara)라고 한다. 1876년작. 작자 미상.

 


그런데 사실 갑골문을 기록하는 데 거북과 소만 쓰인 건 아니다. 본격적으로 거북의 배딱지가 사용된 것은 상商나라 중후반 부터이고 그 이전에는 넙데데하고 글씨를 새길 수만 있으면 그것이 사람의 머리든, 어떤 동물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되었다.* 그런데 대량의 갑골문이 발견된 곳에서는 대부분 거북이 배딱지를 사용했기 때문에, ‘갑골문’하면 거북이 배딱지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현재까지 발굴된 수많은 유물들 중에서 말의 뼈만 없었다고 하니 어쩌면 고대 사람들은 거북이보다 말을 더 소중하게 여겼을지도 모른다. 쳇. 과몰입이라고 해도 할 말 없지만, 왜 괜히 아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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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씨를 새길 수 있는 폭이 확보되어야 했기에 사용된 뼈들이 대부분 포유류의 뼈라고 한다. 

 
거북이에게 새겨진 인간의 운명
그렇다고 해서 갑골문이 새겨진 거북 껍질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주례周禮>에는 거북이를 취급하는 과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거북이 껍질을 사용하기 위해 주로 가을에 거북이를 잡고 봄이 되면 껍질을 손질해 다듬었다. 가을에 채취하는 이유는 곡식이 영글어 만물이 완성되기 위한 때를 맞추기 위한 것이며 봄에 손질하는 이유는 겨울이 지나 해빙된 후 건조해져서 흠이 생기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정성스레 만들어낸 거북 껍질이 부족해지면 주변 국가로부터 공납까지 받았다고 한다. 굉장히 먼 남해 지역에서 거북이를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걸 보면 거북이 껍질은 꽤나 중요한 자원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목적을 위해 거북의 껍질을 그리 많이 사용했던 걸까? 그리고 왜 그렇게 번거롭게 거북이 껍질을 다듬어 글자를 새겼을까? 조금만 생각해보면 비교적 다루기 쉬운 대나무나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커다란 바위에 글자를 새길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사람들은 갑골문이 적혀있는 거북 껍질이 대량으로 발견된 이후 그 새겨진 문자의 내용을 알아내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 그 결과 거북의 껍질에는 제사와 군사의 운용, 재해의 유무, 농작물의 성장을 위한 날씨, 왕의 수행길에 대한 안녕, 각종 사건사고의 길흉, 수렵채집하기 좋은 날, 질병의 치유, 관료들에 대한 임명, 아이의 출산, 꿈의 계시, 주변국에 대한 공납 등등… 다양한 일들의 미래를 묻고 그 답을 적어놓은 내용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 거북 껍질은 점을 칠 때 그 질문을 적어놓기 위한 도화지였던 것이다! 

거북 껍질에 새겨진 내용들은 대부분 국가의 중요한 일을 예견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뼈에 구멍을 뚫어 불에 굽는 것이 점占을 치는 것이고 그 뒤 쪼개진 모양을 보고 그 결과를 읽어내는 것을 복卜**이라고 해서 이를 합쳐 이런 국가적으로 치뤄진 점술행위를 점복(占卜)이라 불렀다. 그런데 왜 거북 껍질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것일까? 결과적으로 봤을 때 그 이유는 조작 방지를 위해서였다. 그 전까지는 문자를 새길 수 있는 뼈라면 어느 가축이나 인간도 가리지 않고 새겼었는데 시간이 지나 뼈의 쪼개짐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인위적으로 결과를 조작할 수 있게 되어 점의 영험함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거북의 껍질에는 일정한 모양과 결이 있어서 쉽게 결과를 조작할 수 없었기에 거북점이 가장 높은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그 이후부터 여러 점복 의식 중에서도 거북점이 가장 보편적인 점복의식이 되어 상나라 중후반 시기의 유적에서 다른 뼈보다 거북이 배딱지를 대량으로 찾을 수 있던 것이다. 거북이는 분명 국가 차원의 귀한 동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거북이가 귀해서 의식에 쓰이게 된건지, 아니면 의식에 거북이가 쓰였기 때문에 귀한 동물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점복의식 안에서 여러 의미와 신묘함이 생겨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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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卜은 불에 구운 뼈가 쪼개진 가로 세로의 모양을 본따 만들어진 글자다.

 
거북이에게 박제된 고대 중국
갑골문이 사용되던 상나라 시기에 이뤄진 점복은 단순히 미래를 알기 위해 행해진 것은 아니었다. 갑골문이 사용되던 상나라는 국가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을 통해 국가적인 용무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은 주변 씨족들에 대한 구속력을 발휘하는 근거를 점술의식을 통해 마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통치자에게는 절대적인 권위가 필요했고, 그 용도로 그들만 물어볼 수 있는 방법(갑골문)으로 점을 쳐 그 결과를 주변 국가들에게 통보함으로써 통치권력에 권위를 확보했다. 따라서 갑골문은 점복 제의의 모든 과정을 기록하며 신과 소통하기 위한 것으로 주술적인 용도의 문자이자 제정일치의 수단이었다. 점복 의식이 가장 많이 치뤄진 상나라 후기에는 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복인, 정인, 점인 세 명의 관리를 두었는데 복인은 귀갑을 직접 다루며 징조를 읽는 사람이며 정인은 갑골에 직접 이름이 표기된 책임자였고 정인은 상나라의 정치권력에 막강한 영향력으로 점을 친 결과에 따라 왕의 의사와 반대되는 의견을 낼 수도 있었다. 이렇게 미래를 점치는 일이 후대로 갈수록 체계가 갖춰지는 것으로 보아 왕권도 점의 결과에 제한을 받을 정도로 점의 영향력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갑골문이 새겨져있는 유물. 쪼개져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점을 치는 행위 자체는 상나라 보다 훨씬 이전 시대부터 존재해왔다. 그럼에도 상나라의 거북점이 이전과 달랐던 것은 그것이 문자와 의례를 결합함으로써 통치권력의 권위를 높이는데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 목적 덕분에 갑골문에는 그 시대의 다양한 모습들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시기의 노예제도, 음악과 제례, 수렵채집 행위들이나, 모계사회의 흔적이 남은 면모도 살펴볼 수 있다. 왕비나 무녀같은 특수한 신분의 상층 계급의 여성에 대한 내용이 남아있기도 하니 갑골문은 국소적이지만 생동감있게, 그 시대의 모습을 깊이 알 수 있는 문서다.

 
거북에게 담겨있는 간절함
민혁이를 만나 즉석에서 수업내용을 바꾸면서 이후 3회차 동안 거북의 껍질에 새겨진 갑골문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 거북의 껍질을 벗겨 글을 새겼다고 하니 아이들은 잔인하다고 하기도 하고, 고대에 이루어진 의례행위에 대한 놀라움과 거북함 같은 것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좋아하는 걸 말할 때 혼자 신나서 들뜨곤 하는데 다행히 아이들은 그런 나에게 동화되어 수업을 집중했던 것 같다. 하루는 민혁이가 키우고 있는 거북이를 데리고 와서 아이들과 직접 글씨를 새겼다는(!) 배딱지를 살펴보기도 했다. 나로서는 일종의 ‘합법적 덕질’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나 할까?

거북과 갑골문에 대한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아이들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점술이 그들에게 간절한 질문이었다는 점이었다. 점술이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했던 것으로 보아 이렇게 점을 치는 행위는 고대 사람들이 주술적인 일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것 이전에 어떤 간절함 때문이라는 걸 아이들도 이해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슬쩍 미래에 일어날 일 중에 무엇이 가장 궁금한지 물어보았다. 아이들의 대답이 와르르 쏟아졌다. “제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궁금해요!”. “코로나가 과연 끝날까요?”, “좋아하는 야구팀이 우승할지 궁금해요!”, “우리집 반려동물은 얼마나 살까요?” 등등. 이어서 얼마나 그 답을 얻기 위해 간절할 수 있느냐를 물었을 때 별다른 대답은 없었지만…ㅎㅎ 조금이라도 미래의 사건사고를 알아채고, 이에 대비하며 지금의 일상을 유지하거나 문제를 없애고 싶어했던 간절함. 그 간절함을 이해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나보다. 만약 그 능력을 손에 쥘 수 있다면 무엇이 두렵겠는가! 분명 점복은 굉장히 경건하고 정성을 쏟아야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간절함은 때로 신묘함과 함께 재밌는 역사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 같다. 몇 천년 동안 잠들어있다가 갑골문이 1899년에 발견된 일이 그렇다. 왕의영이라는 사람이 말라리아에 걸려 치료제를 수소문하고 있었는데 한 의원이 용골龍骨을 갈아 달여마시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 진단했다. 말도 안돼! 용골龍骨은 용의 뼈라는 의미인데 도대체 용의 뼈를 어떻게 구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그 당시 흙에서 나온 이상한 뼈를 사용하면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소문 속의 그 뼈를 구해보니 공통적으로 이상한 부호들이 새겨져 있었는데 청동기 명문, 금석학 학자이기도 했던 왕의영은 수소문 끝에 이 뼈가 하남성에서 발견되어 약재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남성은 고대부터 중국의 중심으로서 중국 문명의 발산지였는데 그 곳에서 농부들이 땅을 매다가 찾은 특이한 덩어리들을 약이라며 약재상에게 팔았던 것이다. 그렇다, 갑골문이 새겨진 거북이의 배딱지는 금문학자에게 우연히 발견되기 전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한 동물인 용의 뼈라며 약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청나라 시절에 살던 왕의영이 발견하기 전, 당나라 시절에도 ‘용골’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도 하니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갑골 파편들이 사람들의 입 속으로 사라졌을지 모르는 일이다.

나는 거북이를 생각하면 남매 가수 AKMU가 부른 <고래>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오, 거대한 너의 그림자를 동경해. 이 넓은 바다를 누비는 너의 여유….” 아, 나는 거북이를 동경하고 있구나. 거북만의 속도와 시간으로 긴 세월을 살아가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몇 천년동안 그 시대와 함께 박제되었다고 생각하면 거북과 함께한 그 모든 시대가 말 그대로 ‘거대해’보인다. 복잡하고 다사다난하지만 어찌보면 순간일 뿐인 인간사를 그저 묵묵히 함께하는 수호신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거북점을 쳤던 사람들 중 몇몇은 나처럼 거북의 속도를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떻든 발걸음을 옮기는 그 묵직한 속도를 말이다.

 

 

글_동은(문탁 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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