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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詩간지

나는 '태양'이다, 고로 존재한다

by 북드라망 2012. 6. 9.
만물을 춤추게 하라

김해완(남산강학원 Q&?)



                                    박두진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은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뙨 얼굴 고은 해야 솟아라.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굴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자리 앉아 애뙤고 고은 날을 누려 보리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블라디미르 쿠쉬, <태양의 비행> 


일단 넋두리부터 하자. 병화에 어울리는 시를 고르기 위해서 저번 달 내내 고민했으나 살이 끼었는가 과정이 신통치가 않았다. 사실 내 옆에 가까이 있는 어떤 병화가 <시간지> 연재를 시작했을 때부터 “박두진의 ‘해’를 했으면 좋겠다”고 계속 말해왔던 터였지만, 나는 가급적 이 시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왜냐. 일반적인 해석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었다. 교과서에서 보면 이 시에서 ‘해’란 우리 민족의 해방과 그 이후에 찾아올 유토피아를 뜻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감히 외람되게도 이 시를 볼 때마다 <웰컴 투 동막골>에 나오는 그녀, 실실 웃음을 흘리며 마구 산속을 뛰어다니는 여일이의 이미지를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벼랑 끝에 (연재날 5일 전에) 몰리자 문득 찾아온 생각. 이게 바로 병화가 아닐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자랑하며, 하이톤의 목소리를 울리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그네들을 위한 시가 아닌가? 좋다, 이걸로 시간지를 써야겠다. 이미 교과서에서 수없이 해석되었던 시니 나 하나쯤 이상하게 해석한다고 별 탈 없겠지(^^).
 
그럼 이제 시를 보자. 맨 처음 이 시를 접할 때면 좀 난감하다. 익숙하지 않은 말투도 말투려니와 내용도 확 와 닿지가 않는다. 해가 떴는데 갑자기 사슴이 튀어나오고 칡범이 달린다고? (이..이것은 해방에 대한 은유적인 표현인가!) 하지만 몇 번 소리 내서 낭독하고 나면 이 시가 확 와 닿는다. 시는 아무것도 감추고 있지 않다. 덩실덩실 솟아오르듯 리듬을 타는 시구와 힘차고 거침없는 문체는 그 자체로 ‘해’를 보여준다. 시인은 지금 해가 떠오르는 그 강렬한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이 시의 주인공은 누가 봐도 해다. 그런데 이 해는 단 한 행이라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어, 좋게 말하면 역동적이고 사실은 산만하기 짝이 없다. 일단 솟는다. 깜깜한 건 싫다고 네 번이나 강조해 몸서리치더니, 단숨에 어둠을 “살라먹는다.” 그러면? 놀랍게도 온 세상에 마법이 걸린다. 해 하나 하늘에 걸렸을 뿐인데 땅에서는 난리부르스가 펼쳐진다. 산과 들의 풍경은 갑자기 “훨훨훨 깃을 치는” 듯이 훤하게 탁 트이고, 지난 밤 아무도 없어 무서웠던 내 마음은 “홀로래도 좋다”는 즐거운 심경으로 변한다. 해는 열심히 일상을 살고 있었던 우리들까지 들썩들썩 흔들어놓는다. 볕 좋은 날 책이 손에 잡히던가. 마침내 우리는 정신줄을 놓고는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뛰쳐나간다! 상상컨대, 이제 한바탕 축제가 펼쳐지지 않을까? “꽃도 새도 짐승도 한자리에” 어우러져 워어이 워어이 춤을 추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좀 무섭기도 하다;;)

고대사회에서 이런 태양을 신神으로 모셨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정동진에 해돋이를 보러갔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새빨간 동그라미가 바다에서 쑥 하고 솟더니 어둠에 잠긴 마을을 순식간에 환하게 밝힐 때는, 여기서 ‘신’을 떠올리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 되는 것. 해가 만물에 넘치는 생동(生動)을 불어넣는 것은 어떤 초월적인 힘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해가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기가 보여주는 당연한 특징이다. 우리는 해가 뜨면 움직이고 해가 지면 쉰다. 인류가 태어났을 때부터 따라왔던 원리다. 이 밝힌다는 것 자체가 역동적인 행위가 아닐까? 낮에 햇볕이 내리쬘 때, 그 아래서 우리는 솟아오르고, 훨훨 날고, 뛰어다니는 등등 한 순간도 멈춰있지 않는다. 세상 만물이 다 그렇다. 비록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위일지라도 그저 수동적으로 자신을 내비치고 있는 게 아니다. 따스하게 스스로를 달구는 바위 역시 양기를 품는 것이다. 그러니 빛이야말로 가장 양적이라고 할 만하다. 가장 짧은 순간에 가장 멀리까지 퍼지며, 그 빛이 닿는 구석구석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이것이 병화(丙火)다. 갑목과 을목이 대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운이었다면 병화는 그 힘을 이어받아 땅을 박차고 스스로 화려하게 팽창하는 기운이다. 개인적으로 천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운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가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보이는 모습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병화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조건 없는 따스함에 놀라곤 하는데 그렇다고 그들이 일부러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가 만물을 키우는 것처럼, 자기 길을 걸어가면 저절로 그 근처의 온도가 따스해지는 그런 원리다. 해를 닮은 병화들은 “애뙨 얼굴 고와” 외모가 예쁘고, “홀로래도 좋다(상관없다)”는 긍정100% 마음으로 눈치 없이 이곳저곳 들이대다가 폐를 끼치기도 한다. 덕분에 병화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리 진지하고 무거운 분위기더라도 끝까지 침잠할 수 없다. (*^^*)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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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꽃을 꽂은 그녀가 이렇게 묻는다. "내 미친 거 니 말고 딴 사람도 마이 아나?" 


그러나 실이 있으면 허도 있는 법. 이 양기의 끝은 텅 빔, 아무것도 남지 않는 허무함이다. 병화는 화기답게 스스로를 남기지 않고 모조리 태워버리려는 성향이 있다. 그 저돌성 때문에 타기 싫은 것들에까지 불통이 튀거나 사건사고가 많이 생긴다. 문제는 병화가 그 사건 앞에서 ‘차분히 앉아서’ ‘고요하게 생각하기’란 매우 힘들다는 거. “달밤이 싫여”라고 외치며 기운 따라 마음 따라 무조건 양지로만 뛰쳐나가려는 병화는, 정작 생각해야 할 순간에 확 그냥 정신줄을 승화(!)시켜버린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병화의 아름다움은 실속 없는 경박함으로 미끄러져버린다. 빛은 불꽃과 다르다. 그것은 순식간에 펼쳐진 만큼 순식간에 거두어지며, 손에 붙잡을 수 없기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우리는 오히려 촛불처럼 음적인 불에 화상을 입고 화재를 당한다) 화려함 속의 채울 길 없는 헛헛함. 병화의 양기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로 뜨거운 불꽃을 품어야 한다.

어쨌거나 이 시는 즐겁다. 읽는 내내 몸도 함께 들썩거린다. 자칫 비장하게 해석될 수 있을 ‘어둠’ 같은 행연조차도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이 시가 노래처럼 운율을 타기 때문이다. 어떤 심각한 상황이든 개의치 않고 춤추고 노래하기, 이게 바로 병화의 힘이다. 그리고 이 발랄함이야말로 바로 내 마음에 혁명의 불꽃을 지필 출발점이다. 무겁게 고민하기만 해서는 내 일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외부의 영토에 뿌리박거나 기댄 상태로서는 도약할 수 없는 것이다. 자, 우리도 병화의 고민 없는 춤사위에 즐겁게 동참하자! 여기서 강도 높은 불꽃을 지필 수 있느냐는 그 다음의 문제다. “애뙤고 고운 날”을 맞이할 다음 스텝은 벌써 시작되었다.

TIP. 이삼십대 화재경계령

이번 달은 병오(丙午)월이다. 불꽃이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솟구치는 불기둥의 달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신줄을 놓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특히 火기운 충만한 20대 30들). 물론 순수하게 타오르는 화기는 아름답지만, 뜨겁게 데워진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고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칡범과 만나면 칡범과 놀고” 놀자판으로 가다가는 그냥 망해버리는 수가 있다. (-_-;;) 이 열정을 함부로 발산하지 말고 잘 품어야한다. 가을에 수확하는 열매가 단 까닭은 바로 이 뜨거운 햇살을 저 깊은 곳까지 품었기 때문이다. 올해 말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이번 달에 정줄 놓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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