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는 것도 인생을 아는 것도 사람을 아는 것도
나날이 어렵다”
열다섯 살의 나는 어른이 되었다고 확신했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인생을 안다고 자부했다. 서른다섯 살의 나는 소설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고 거들먹거렸다. 마흔아홉 살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는 것도 인생을 아는 것도 사람을 아는 것도 소설을 쓰는 것도 나날이 어렵다. 살아온 나날을 되돌아보기도 부끄럽고, 살아갈 날들 바라보기도 무섭다. 그래도 기억하기조차 부끄러운 기억이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젊은 날의 오만이 나를 나아가게 만들었으며,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던 한계와 콤플렉스가 나를 확장시켰으니, 지금 이 순간 또한 나의 무엇인가는 키우고 지나가지 않을까, 그런 믿음으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오늘을 견디고 있다.
- 정지아, 『숲의 대화』, 은행나무, 2013, 「작가의 말」 중에서
정지아 씨가 오랜만에 냈던 소설집에 쓴 「작가의 말」이, 예전에 인상 깊었던, 하지만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시 한 편을 떠올리게 했다.
젊음을 지나와서
김형수
서른 살 처녀로구나 저 심약한 주인공이
화려하게 피고 화려하게 지고
시끄럽지 않고서는 차마 견딜 수 없는
저 때라면 나도 많이 잘못 갔으리
한 마디 해주려다 예뻐 보여 참았다
처녀는 아직 모르는 일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추억은
사치처럼 화사한 슬픔 뒤에 숨고
아무 낙이 없을 때 사람들은 배운다
고독을 견디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보아라, 한 차례 영광이 지나간
폐허의 가슴에선 늦가을 햇살처럼
빠르게 반복되는 희망과 좌절이
다시 또 반복되는 기쁨과 슬픔이
얼마나 꿈같은가 그럴 땐 마치
머나먼 바닷가 인적 없는 섬마을에
꽃 피고 지는 아득함만큼이나
아무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누구나 나중에는 생각할 것이다
돌아보면 참 길게도 오만했다
내 젊음은 하필 그때였단 말인가, 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이십대 중반 무렵까지 일기를 썼다. 특히 중고등학교 때는 잠자기 전에 이불 속에 엎드려 라디오를 틀어놓고, 일기를 쓴 후 소설 혹은 만화책을 읽거나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잠드는 게 나의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당시 일기장에 내가 적어 넣은 문구 하나가 아직도 선명하다. 요약하면, 지금 내가(그러니까 열다섯 살의 중2가) 세상의 일을 다 알고 있다는 걸 잊지 말자, 내가 어른이 되어서 중2를 보게 되면 지금의 내가 그렇듯 그 아이도 성숙(?)하다는 걸 잊지 말자,는 내용이었다.(화끈거린다.)
어릴 때의 일기를 보고 과연 화끈거리지 않을 수 있을까?
열다섯 살에 정지아 씨나 나만,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젊을 때 세상은 그렇게 선명한데, 왜 나이가 들수록 안개 속이 되어 갈까. 흔히들 말하듯 나이를 먹을수록 세파에 깎이며 둥글둥글해져 가고 순응하게 된다면, 왜 세상은 갈수록 모호하게 느껴질까. 여러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내게는 이것이 시야가 넓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아기 때의 시야는 엄마를 벗어나기 힘들지만, 자라면서 엄마 외에도 여러 사람이 있고, 또 사람 외에도 온갖 동물과 사물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성장한다는 것은 다른 존재에게로 시선을 향할 일이 많아지고, 눈을 둘 곳이 늘어난다는 것이 아닐지.
그리고 이 시야는 사고의 폭을 좌우한다. 시야가 넓다는 것은 많은 걸 본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다닌 사람일수록 더 성인(聖人)에 가까울 테지만, 세계는커녕 태어난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어도 훌륭한 깨달음을 얻는 이도 있으니까. 내 경험상 시야는 직접 경험한 것과 연관되며, 또한 그 경험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생각해 볼수록 조금씩 넓어져 간다. 나이가 들수록 당연히 경험은 많아질 텐데, 그 속에서 ‘지금 내가 아는 것이 정말 별것 아니거나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되는 일도 많아지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지금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도 알게 된다
그러고 나면 예전에는 옳고 그름이 명확해 보이던 것이 사실 다가 아니었음을, 그 밑에는 또 무수한 다른 사건과 인연과 감정의 결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청년 때에는 많은 것을 생각한다는 건, 이쪽도 고려하고 저쪽도 고려하는 선명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견결하지 못한 기회주의적 태도라고 여겼다. 아마 청년기에 부딪히는 장애를 넘어서고 나아가게 하는 것은 그런 힘이리라. 하지만 청년 이후에는 장애를 넘어서는 힘이 좀 달라진다. 뚫고 나간다기보다는 에두르는 다른 길을 찾거나 장애를 이해하려 하거나 하는 식으로. 생각해 보면, 쑥쑥 성장하다 정점에 다다르면 천천히 노화가 진행되는 신체에 조응하기 위해서라도 마음을 쓰는 힘 역시 달라져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장년이나 노년에 분노가 치솟으면, 뒷목 잡고 쓰러지기 쉽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계속 나이를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점점 모르는 것이, 보면서도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는 중2가 그저 미숙하기만 하고 틀리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아직 살아야 할 세상이, 겪어야 할 사건이 많은 것일 뿐. 다만 나는 젊은 날 나를 나아가게 했던 오만과 분노보다는 나이를 먹으면서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만큼 넓어진 이해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도 때때로 찾아오는 오만과 분노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추슬러 내는 힘을 가지고 싶다. 하여 드러나지 않은 결들과 마음에도 눈길을 주고 헤아리는, ‘아무것’도 모르겠기에, 넉넉할 수 있는 그런 노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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