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의 출발은 ‘부처’다
- 선종의 종조, 육조혜능
한국 불교사는 기이한 이야기 하나를 전한다. 신라 의상대사 제자 중 한 사람인 삼법 스님은 당나라 혜능을 크게 흠모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혜능이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생전에 참배하지 못한 것을 크게 애통해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육조단경』(이하 『단경』)에서 뜻밖의 내용을 발견한다. “내가 입적한 뒤 5~6년 후 내 머리를 베어 가는 놈이 있을 것”이라는 대목을 본 것이다. 그 순간 무릎을 치며 아주 엉뚱한 결심을 하고야 만다. 다른 사람이 가져가기 전에 내 힘으로 그걸 가져와야겠다! 삼법 스님의 실천력은 대단했다. 그 길로 당대 최고 권력자인 김유신의 부인에게 달려갔다. 부인은 삼법의 계획을 듣고 2만금이라는 큰돈을 선뜻 내놓는다. 이렇게 해서 삼법이 배를 타고 당나라로 들어간 것은 722년. 당나라 삼장법사는 경전을 가지러 천축으로 갔지만, 신라 최고의 지성인이자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은 죽은 혜능의 목을 가지러 당나라로 갔다. 과연 혜능의 머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또한 현대 중국사는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를 전한다. 대장정의 혁명가 마오쩌둥(毛澤東)이 혜능의 열광적인 독자였다는 것이다. 마오쩌둥의 도서 담당 비서는 마오가 생전에 『단경』을 자주 찾았고, 외출할 때도 여러 번 휴대하였다고 회고한다. 마오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영향으로 불교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그는 청년 시절부터 『단경』을 여러 차례에 걸쳐 탐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이유로 그의 선불교 연구는 아주 높은 수준에 있었다. 심지어 어느 스님과의 환담에서 『단경』이 ‘노동인민을 위한 불경’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한다. 이 사실은 공산주의가 ‘종교’를 멀리한다는 우리의 통념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혜능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동방 변방국의 한 중이 머리를 잘라 오겠다고 결심하고, 반-종교적이어야 할 공산주의자가 ‘노동인민적’이라고 추앙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렇게 후대의 숭배자들에게 머리가 잘려 나갈 위험에 처했던 자, 그러나 공산주의 혁명가의 경탄을 받으며 혁명의 씨앗이 되었던 자, 혜능(慧能, 638~713)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불성무남북 :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황매 오조사 선방 안. 남루한 남방 옷을 입은 청년이 무릎을 꿇고 있다. 키는 보통보다 작았고, 달걀형의 얼굴은 햇볕에 많이 타 있으며, 눈자위가 움푹 튀어 나왔고, 광대뼈는 밑으로 축 처진 전형적인 남방 사람이다. 속세에서는 나무꾼으로 살았다고 한다. 양 손 여러 곳에 거친 상처자국이 남아 있다. 반대편 노승은 실눈을 가느다랗게 치켜뜨고 무거운 입을 뗐다.
“어디서 굴러온 놈이냐? 대체 여기까지 뭣 하러 왔느냐?”
“저는 영남 신주 사람인데, 오직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고자 왔습니다.”
“아니, 영남사람이라면 오랑캐가 아니더냐. 오랑캐가 감히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
그러자 주변에서 간간이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런 말을 들으면 대개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발길을 돌리곤 했다. 그러나 이 단구의 청년은 아랑곳 않고 고개를 쳐든다. 그리고 노승의 눈을 무심히 쳐다보며, 어눌하지만 확고한 어조로 이렇게 대답한다.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을지 모르지만, 불성에는 남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랑캐 몸이라고 생각하신다면야 물론 스님과 같지 않겠지만, 불성으로 보면 저와 스님 사이에 무슨 차별이 있을 수 있습니까?”
순간 노승은 눈을 치켜뜨고 이 무지렁이를 지긋이 쳐다본다. 불성이나 수행과는 도무지 거리가 멀 것 같은 청년이다. 하지만 웬만해선 뒤돌아가지 않을 당돌함이 그의 전신에 배어 있었다. 순간적으로 노승은 잠시 더 이야기 하려다 멈추고 청년에게 이렇게 말하고 방을 나가 버렸다. “너는 방앗간에 가서 일이나 해라”
동아시아 지성사가 오래도록 전해온 섬광과도 같은 순간이다. 두고두고 회자된 이 장면은 온갖 것들이 겹치고 접힌 혁명적인 출발점이 되었다. 앞에 앉아 있는 노승은 5조 홍인대사. 이 노승의 입에서 튀어나온 “영남 오랑캐[猲燎]”는 고대 중국인들의 오랜 무의식이 표현된 것이다. 여기서 오랑캐를 뜻하는 한자어 ‘갈료(猲燎)’는 본래 ‘사냥개’를 가리킨다. 결국 홍인은 청년에게 “야, 이 무식한 놈아! 사냥개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부처냐? 썩 꺼지거라!”며 모멸스런 말을 건넨 셈이다. 그러나 청년은 거침없이 대답한다. ‘불성무남북!’(佛性無南北, 불성에는 남북이 없다). 어째서 당신과 내가 다릅니까? 귀한 놈과 천한 놈에게 깨달음이 다를 리 있겠습니까? 불성에는 남북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당돌한 말로 강렬한 장면을 만들어낸 무지렁이 청년, 바로 이 청년이 훗날 동아시아 불교사를 완전히 뒤엎은 선종의 종조이자, 우리나라 조계종의 시원인 6조 혜능이다.
불성에는 남북이 없고, 차별도 없다!
혜능은 당나라 중엽 이후 사회‧경제적 발전과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당대의 현실에서 출발했다. 파산한 하급관료들이나 서족 지주들은 승려 지주와 귀족 지주들에 대해서 강한 반발심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귀족들의 차별성, 특히 불성의 차별성을 강하게 거부하였다. 누구는 깨닫고, 누구는 깨닫지 못한단 말인가. 따라서 혜능의 ‘불성무남북’에는 당대의 또 다른 무의식, 즉 ‘우리는 똑같다’는 무의식이 담겨있는 셈이다.
이 첫 장면 하나만으로도 혜능의 혁명성이 단번에 드러난다. ‘반야바라밀(열반에 이르는 지혜)’은 어떤 사람에게든 가능한 것이다. 깨닫기 위해서 최소한의 조건도 필요 없다. 만일 있다면 오직 너와 내가 평등하다는 사실만 필요할 뿐이다. 그래서 청년 혜능은 불성무남북, 남북이 다르지 않다는 말로 이 전제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물론 혜능이 아니어도 역사의 많은 사람들이 평등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혜능의 혁명성은 평등을 주장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똑같음’을 자명한 출발로 당연시한다는 점에 있다. 혜능에게 평등은 쟁취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의 공리(公理)이다. 평등과 깨달음은 그것을 목표로 수행하거나 투쟁하여 쟁취할 것이 아니다. 마치 불성은 본래 청정하나, 흐린 마음이 그것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평등도 세상의 통념과 편견에 의해 가려져 있다. 그래서 원래부터 평등했음을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을 알면 바로 깨닫는다. 그래서 돈오(頓悟, 단번에 깨달음)이다. 이것이야말로 단순하고 명쾌한 혜능선의 핵심이면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그를 사랑한 근원이기도 하다.
본래면목 : 모든 사람이 청정하다
혜능은 일자무식이다. 평생 읽지도 쓰지도 못했다. 어느 날 5조 홍인이 1천 명이 넘는 오조사(당시 동산사) 학인들에게 게송을 하나씩 지어보라 했다. 그걸 보고 ‘가사’(袈裟, 승려가 어깨에 걸친 법의)를 전해주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 제자 중 가장 뛰어났던 신수상좌(606~706)가 게송을 지어 회랑 벽에 써 놓았다. “몸은 보리수요 / 마음은 밝은 거울 같으니 /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 티끌 먼지 안 묻게 하리”(『단경』 32p) 그런데 이틀 뒤, 혜능이 그 게송을 보았다. 그러나 혜능은 글자를 몰랐기 때문에 게송을 직접 읽을 수가 없어 옆에 있던 사람에게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옆에서 읽어 주는 게송을 듣고 혜능은 곧바로 뜻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즉시 자신의 게송을 한 수 읊고자 했다. 글자를 전혀 모르는 혜능은 역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이 읊은 게송을 글자로 써달라고 부탁한다. 그러자 바로 핀잔이 들린다. “자네가 게송을 읊겠다고? 참으로 희한한 일이구나” 하지만 이런 핀잔에도 혜능은 여전히 어눌하지만 확고한 어투로, “미천한 사람에게도 고귀한 지혜가 있을 수 있고, 귀한 사람도 전혀 지혜를 갖지 못할 수 있어요”라면서 “사람을 경시하면 무량의 죄과를 면치 못 한다오”라고 응수한다. 지혜는 글을 아느냐 모르느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글의 상(相)을 넘어서, 글이 지시하는 무상성(無相性)을 깨달아야 지혜인 것이다. 그래서 불러준 게송이 다음 두 편이다.
“보리수도 본래 없으며/밝은 거울 또한 없다/불성이 항상 청정하거늘/어디에 티끌 먼지 있을까”
“마음은 보리수요/몸은 밝은 거울/맑은 거울이 본래 청정하거늘/어디가 티끌 먼지 물들까” (『단경』, 32p)
혜능의 게송은 신수의 게송과는 확연히 다르다. 신수는 깨달음을 점진적인 노력의 결과, 즉 점수(漸修, 단계적으로 깨달음)로 보았지만, 혜능은 깨달음에 들어서는 길이 점진적인 절차가 아님을 보여 준다. 먼지가 애초부터 있지 않은 것은 두말 할 것도 없고, 그 먼지가 끼게 되는 거울조차 있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안다면 닦을 먼지가 또 어디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혜능은 이 게송을 신수의 게송 옆에 붙여 두고,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홍인화상은 회랑에 내려와 혜능의 게송을 보고 내심 깨우침이 있는 게송이라고 반긴다. 하지만 자신의 칭찬이 혜능을 해치게 할까 염려하였다. 하여 게송을 떼어내 발로 짓밟아 찢어버리면서 아직 견성에 이르지 못한 게송이라고 거짓 폄하한다. 혜능을 위해서 ‘미견성’(未見性, 깨닫지 못함)의 가면을 씌운 것이다. 그러나 홍인은 그 순간 마음속으로 가사와 법을 혜능에게 전해 제6대 조위를 잇도록 하려는 결단을 내리고 있었다.
다음날 홍인은 비밀리에 방앗간을 찾아갔다. “쌀을 다 찧었느냐?” “방아는 다 찧었습니다만, 아직 쌀 속에 섞여 있는 뉘를 고르지 못했습니다.” 말인즉슨 견성은 했는데, 아직 스님의 검증을 받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홍인은 뒤돌아서며 방아를 세 번 탁탁 쳤다. 오늘 밤 삼경에 방장실로 오라는 말이다. 007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은밀한 작전! 혜능이 삼경에 방장실에 찾아가자, 홍인은 가사로 문을 가려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고는 『금강경』을 가르쳐준다. 아마 역사상 가장 밀도 있고, 가장 긴장되며, 가장 아름다운 수업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수업에 보답하듯 혜능은 한 번 듣고 즉시 깨쳤다. 홍인은 바로 전승의 증표인 가사를 혜능에게 전해준다. 바로 선종의 제6대 조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홍인과 ‘불성무남북’으로 불꽃 튀기는 선문답을 하고 방아를 찧은 지 8개월이었다. 심지어 그는 삭발 수계식도 하지 않은 행자에 불과했다. 정식 스님도 아니었던 것이다. 완전히 파격적인 전승이다. 그만큼 홍인이나 혜능은 통념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혜능에게는 고난의 은둔 생활이 시작된다. 홍인이 당부한다. “만약 이곳에 계속 있다가는 사람들이 그대를 해칠 수 있으니, 어서 빨리 먼 곳으로 떠나야 하네. 부지런히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법을 펴려 하지 말게.”(『단경』, 39p) 이 말을 들은 혜능은 즉시 길을 떠났다. 그러나 5조의 법통과 가사가 방앗간에서 잡역 하던 행자 따위에게 전해지자, 수백 명의 학인들은 혜능을 추격하여 가사와 발우를 빼앗아오기로 결정한다. 홍인의 염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제 대추격이 시작되었다. 이 추격 속에 일어난 멋진 장면 하나 더. 추격대의 선봉은 혜명. 혜명은 한 대 이후의 명문가 집안이다. 어려서 불교에 입문하여 23세 때 구족계(비구와 비구니가 지켜야 할 계율)를 받고 5조 문하에 있던 중 의발(衣鉢, 스님이 쓰던 가사와 바리때)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뒤쫓아 왔다. 혜명의 추격이 코앞에 오자, 혜능은 의발을 길가 바위 위에다 놓고 숲 속으로 숨었다. 혜명이 그 의발을 거두려 하다가, 무슨 생각에선지 “제가 일부러 멀리까지 쫒아온 것은 법을 구하기 위해서이지, 가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단경』, 40p)라고 외쳤다. 그러자 숲 속에서 나와 혜명과 대면한 혜능. 그가 말한다. “선도 악도 생각지 마라. 그럴 때 어떠한 것이 그대의 ‘진정한 모습[本來面目]’인가?” 그리고 또 말했다. “내게는 비밀이 없다. 모든 비밀은 바로 너에게 있다!” 그 순간 혜명은 크게 깨달았다.
사실 이 말은 오조사 남쪽 회랑에 써 놓은 혜능 자신의 게송을 풀어 말한 것과도 같았다. 본래면목(본래의 모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청정한 불성이다. 그런데 청청하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 사실 보리수에 비유될만한 몸도 원래 없고 밝은 거울에 비유될 마음도 원래 없다. 몸도 없고 마음도 없기에 몸과 마음을 닦아 청정하게 한다는 뜻 또한 성립될 수 없다. 그러므로 ‘청정하다’는 말은 역설적으로 청정하다는 뜻조차 품지 않아야 한다. 즉 청정함은 청정함조차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본래면목’은 청정하기도 하고 청정하지 않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선도 악도 아니다. 오로지 인연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인연조차 끊임없이 변하므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바로 이것을 일컬어 ‘청정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은 무상한 것이다. 그 순간 혜명은 뺏으려는 가사도, 전승도 무상하다는 것을, 그리고 깨달음의 비밀은 오로지 내 안의 불성에 있음을 깨닫는다. 혜명은 발길을 돌려 따라오던 추격 대열을 오조사로 되돌렸다.
풍번문답 : 오직 마음이 움직인다
혜능은 두 달여 만에 영남(조계)에 도착했다. 그러나 법석을 열고 선법을 펴기까지에는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야만 했다. 혜능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사냥꾼들과 어울려 살면서 3년을 보낸다. 살생이 금지된 스님과 살생으로 먹고 사는 사냥꾼. 상과 무상이 서로 의지하듯, 살생과 불살생이 묘하게 의지해 있었다. 동료들이 산짐승몰이를 할 때 그에게 그물을 지키라고 하면 그중에 걸려든 동물을 놓아주곤 했다. 사냥꾼과 같이 생활한 기간이 짧게는 3년, 길게는 17년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혜능은 불현듯 이러다 늙어버리면 불법을 전파할 시간이 다 달아나겠다는 생각에 산을 내려왔다.
그때 어느 절 앞 당간지주에 걸린 깃발이 나부끼는 것을 본 두 스님이 쟁론을 벌인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 “아니다.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그 절의 주석스님인 인종스님도 지켜보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혜능도 끼어들었다.
그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결코 아니며, 오직 임자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일 뿐이다.
─『육조 혜능평전』, 37p
유명한 풍번문답(風幡問答) 이야기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깃발도 아니다. 움직인다는 것은 기억된 이미지가 인식 대상으로 재구성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저것은 기억이 만들어낸 ‘생각의 생각’, ‘가상의 가상’이다. 깃발이 나부끼는 저 현상도 ‘기억’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그 인식조차 과거의 인식이 반복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마음 밖에서 진리를 구하려고 한다면, 온통 과거의 인식 속을 헤매는 것이 될 뿐이다. 그래서 혜능은 혜명에게 “모든 비밀은 너에게 있다”고 외쳤던 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바람’도 ‘깃발’도, 심지어 ‘움직임’도 과거의 반복으로 인식된 대상이다. 그렇다고 마음이 그대로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조차 마음이라고 할 수 없는 마음이다. 왜냐하면 그것조차 인연 따라 끊임없이 변해가기 때문이다. 이런 인연의 무상성이 마음이 되고, 그 마음이 바퀴가 되어 다시 인연을 무상하게 만들어 간다. 무상한 인연이 만들어지는 바로 그 순간, 과거의 인식패턴도 동시에 작동하며 마음을 만들어 낸다. 그때 가상으로 솟아나는 것이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는 상(相)이다. 상의 상, 상의 상의 상… 놀랍게도 상은 무상과 함께 끊이지 않고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그런데 묘한 것은 이 상(相)이 없으면 무상(無相)조차 없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무상한 인연은 마음이라는 형상이 없으면 굴러가지 못한다. 또 인연이 굴러가야, 그 인연 따라 마음이 구성된다. 이처럼 인연과 마음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무상은 상이 있기 때문에 무상이고, 상은 무상한 것으로부터 생성되어 상이다. 어쩌면 한 쪽이 없으면 둘 다 없는 것이기도 하고, 서로에게 의지하면 모든 것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서로 맞물려 있음’이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무상한 인연에 의해 마음이 움직일 뿐, 마음이 만들어낸 상(相=이미지)인 바람과 깃발과 움직임은 허상임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된다.
그 절에서 『열반경』을 강설하고 있던 인종스님은 혜능이 고수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일찍이 선종의 법통(의발)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전해들은 바 있었다. 인종의 질문에 혜능은 의발을 보여주고 자신이 6조임을 밝혔다. 혜능은 여전히 행자의 신분이었다. 비로소 혜능은 머리를 깎고 비구계를 받게 하는 삭발 수계식을 거행하였다. 드디어 혜능이 정식 출가를 하게 된 것이다. 집을 떠난 지 3년 8개월, 5조 홍인으로부터 의발을 받은 지 3년, 나이는 39세. 하지만 여전히 그는 글을 읽지 못했고, 세상은 여전히 바람과 깃발만 보았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 '바람과 깃발이 움직인다'는 상(相)이 움직인다는 것!
이제 『단경』의 처음으로 거슬러 가보자. 『단경』의 첫 절은 ‘스승을 찾아가는 이야기[尋師]’로 시작한다. 혜능의 아버지는 북경 근처인 범양에서 하급 관리를 하다가 좌천되어 영남 신주로 내려갔다. 신주에서는 성곽의 초소를 지키는 미관말직이었다. 여기서 나은 늦둥이가 혜능이다. 하지만 세 살 때 부친마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머니와 혜능은 별수 없이 남해로 이사해야 했다. 나무꾼 혜능의 삶은 스무 살이 넘도록 가난의 연속이었고, 혜능은 세상이 본래 그런 줄 알았다.
그러던 혜능에게 아주 묘한 순간이 찾아왔다. 어느 날 손님 한 사람이 나무를 사겠다고 해서 관가에 가 나무를 팔았다. 그런데 관가의 문을 나서다가 어떤 사람이 뭔가를 읽고 있었다. 읽고 있는 경문이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했다. 물어보니 『금강경』이라고 한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말이었다. 전혀 글자를 모르는 혜능이 바람결에 흐르는 언어에 매혹당한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스스로의 표현대로 무상에 서 있지도, 상에 서 있지도 않았다. 훗날 혜능은 “경전 자체에는 의문이 없는데 마음에 의심이 있다”(『단경』 , 199p)고 하였다. 아마도 혜능이 『금강경』을 들은 처음도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했다. “마음이 청정하면 서방정토도 여기서부터 멀지 않다.”(『단경』, 162p) 결국 마음이 청정하다는 것은 ‘언제나 이미’ 청정하다는 것이다. 청정하려는 사람은 자신이 출발부터 청정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단번에 출발 자체를 뒤집는 것이다. 몇 년을 공부했고, 몇 권을 읽었고, 몇 명에게 배웠는지는 아무 소용이 없다. 깨달음은 출발을 뒤집는 것이다. 그 순간 그들은 ‘언제나 이미’ 깨달은 자들이다.
마오쩌둥이 혜능에게 매료되었던 것도 바로 그런 점이다. 마오쩌둥은 혜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혜능은 모든 개인이 각자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독창적인 돈오성불설을 제창, 번쇄한 불교를 간이화하는 한편, 인도 전래의 불교를 중국화했다. … 그의 영향으로 중국에 전래된 인도 불교의 지고한 지위가 흔들렸고, 심지어는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매도하는 가불매조(呵佛罵祖)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전통적인 우상과 계율을 부정하면서, 용감하고 독창적인 혁신을 통해 중국 실정에 맞는 외래 종교의 중국화를 이룩했다.
─임극과의 대화, 『육조 혜능 평전』, 226p
중요한 것은 혜능에 의해 중국화된 불교가 인도 불교의 지위를 흔들었다고 설명하는 장면이다. 마오쩌둥의 말대로 혜능의 선종은 유가, 도가, 묵가 같은 중국 전통사상과 불교의 융합이다. 서로 흡수되며 영향을 주고받았다. 그러면서 중국불교는 인도불교가 갖고 있는 통념과 우상을 뒤흔들어 놓는다. 선종은 정통 불교의 통념적인 부처를 꾸짖기까지 한다. 바로 그 가불매조(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욕하다)의 정신과 실천이 마오를 매료시킨 것이다. 마오는 혜능의 말대로 모든 사람이 언제나 이미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이 관점과 똑같이 그는 대장정 시기와 옌안 투쟁 시기를 거치면서 누구나 원래부터 똑같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였다. 그래서 그들의 ‘민주주의’ 정신은 ‘모든 고난을 함께, 평등하게 짊어진다.’는 원칙이었다(『무질서의 지배자 마오쩌둥』, 124p). 오직 이 정신만이 대장정을 이끄는 힘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마오의 대장정은 평등을 쟁취하기 위해서 투쟁한 것이 아니다. 대장정을 통해 ‘언제나 이미’ 평등했음을 증명했을 뿐이다.
그래서 혜능이 말한 바, 중생이 부처다[衆生是佛]. 중생(衆生)은 “무리지어(衆) 사는 것(生)”이다. 따라서 무리지어 살고 있는 우리가 언제나 이미 부처다. 깨달음으로 가는 대장정의 출발점은 곧 불성무남북, 즉 평등인 셈이다. 그리고 그 평등의 근거가 청정한 본래면목이며, 기억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 알아차림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처로 가는 길의 출발점은 부처다. 중생이었다가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불평등하였다가 평등해진 것이 아니다. 부처는 언제나 이미 부처였다. 혜능은 이 혁명적 출발로 삶을 뒤집었다. 마오쩌둥은 그 출발로 세상을 뒤집었다. 출발이 끝이다.
자, 우리의 삼법 스님은 어떻게 되었을까? 혜능의 머리를 취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 신라에서 유학 온 현지 유학생 대비 스님을 만난다. 그리고 서로 의기투합하였다. 꼭 목을 탈취합시다! 두 스님은 중국인 장정만을 고용하여 마침내 소주 보림사 육조탑에서 혜능의 머리를 탈취하는데 성공한다. 바로 그 머리를 모셔온 곳이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믿거나 말거나이다. 그러나 중국에는 탈취 기도가 있었으나 실패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비스님이 잡혔다가 그들의 자비로 풀려났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삼법과 대비가 혜능을 실제로 찾아간 것은 사실인 셈.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야밤에 찾아온 동방의 스님에게 혜능이 밤새 『금강경』을 강해하고, 그에게 제7조를 승계하는 상상 말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혜능의 목은 잘렸어야 맞다. 그 계획 자체가 혜능 그 자신과 신라 스님들이 공모한 ‘가불매조’였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_약선생(감이당 대중지성)
※ <약선생의 철학관>이 작년 6월 4일에 개점하고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40편의 글이 모였네요. 약선생님은 여러분의 댓글을 읽고, 답변을 다는 것이 너무 즐거우셨다고 합니다. 이번 글은 시즌 1을 정리하는, 시즌 1의 마지막 글입니다.
마지막 글이라고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드라마들도 시즌 2, 시즌 3… 하지 않습니까? <약선생의 철학관>도 시즌 2로 다시 돌아올 예정입니다. 후훗! 그럼 시즌 2에서 또 만나뵙길 바라면서~ 그동안 이 코너를 애독해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우리, 다시 만나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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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같은 삶을 살 것인가, 내가 원하는 삶을 고민할 것인가 (4) | 2013.06.12 |
살덩이들의 무한한 순환,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 (4) | 2013.0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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