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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달

[사막의 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앙숙이 되었는가? (2): 이스라엘의 건국과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재앙

by 북드라망 2026. 9. 10.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앙숙이 되었는가? (2)
: 이스라엘의 건국과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재앙

​김기윤(남산강학원)


지난 칼럼에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시오니즘의 태동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유대인들이 현재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는 과정을 살펴보며, 그 과정 속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의 씨앗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탐구해보려고 한다.

시오니스트들은 유대교의 성지가 있는 팔레스타인 영토에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를 세우길 염원했다. 그들의 바람은 1948년, 팔레스타인 영토 내에 이스라엘 국가 건립으로 이어진다. 미국의 신생국 승인까지 받은 이스라엘은 더 이상 거칠것이 없었다. 거기에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로부터 박해를 받은 유대인들은 세계의 동정 여론을 살 수 있었다. 그 여론은 유대 국가 건설의 정당화에 힘을 실어주었고, 마침내 팔레스타인의 유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정착 초기 당시, 팔레스타인 땅은 영국의 위임 통치가 시행되고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시오니스트들이 보내 온 자금은 영국에게 뇌물로 흘러 들어갔다. 뇌물을 받은 영국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유대인들이 입지를 넓힐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후에 영국이 팔레스타인 땅에서 떠나고 난 뒤,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인종 청소가 시작된다. 팔레스타인을 향한 이스라엘의 무력 탄압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은 바로 1948년, ‘데이르 야신 마을 학살’ 사건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를 피해 팔레스타인 외부 바깥으로 도망가야 했다. 이 사건을 팔레스타인인들은 ‘나크바(대재앙)’이라고 부른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의한 난민 신세를 대재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그들의 민족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영토의 역사는 피지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중해 연안에 접해있는 팔레스타인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두 문명과 이어져있고,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의 거점 역할을 하며 수 천 년 전부터 해상 및 육상 교역로가 발달했다. 이러한 지정학적 조건 때문에 팔레스타인 땅은 기원전 15세기부터 현대까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헬레니아 제국, 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 오스만 제국 그리고 영국 등 끊임 없이 외세의 지배를 받아왔다. 팔레스타인 땅은 두 문명과 세 대륙이 교차하는 교역로이자, 제국의 성쇄에 따라 그 지역의 지배자가 바뀌는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이러한 팔레스타인 땅의 조건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끝없는 외세의 침략과 지배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땅을 지켰다는 자긍심이 있다. 아랍어로 ‘단호함’, ‘끈기’, ‘인내’를 뜻하는 ‘수무드(sumud)’는 팔레스타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세계적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포함된 가자 지구 봉쇄 저항 단체인 ‘글로벌 수무드 함대’의 이름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체성을 이어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유대인의 이슬라엘 건국 사건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정체성을 뿌리 째 흔든 사건이었다. 이전까지의 제국들의 지배는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통치의 영역이었지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을 내쫓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대 국가 건설은 팔레스타인 내의 아랍인들의 추방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수천년간 팔레스타인 땅을 지켜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나크바’는 그들의 자긍심에 크나 큰 상처를 준 사건이었다.

 

 


 -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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