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앙숙이 되었는가? (1)
: 시오니즘의 태동
김기윤(남산강학원)
지금까지 네 편의 가자지구에 관한 컬럼을 쓰는 동안, 아니 내가 가자에 관심을 갖게 된 후부터 줄곧 나를 따라다녔던 물음이 있다. ‘도대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왜 이지경이 된 것일까?’. 중동 역사에 무지한 내가 슬쩍 보아도 이들의 역사적 갈등과 감정의 골이 상당히 깊음을 알 수 있다. 영토, 역사, 종교적 문제가 얽혀있어 딱 봐도 길고 복잡한 이야기일 것 같아 애초에 손댈 엄두조차 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가자지구의 자립을 위해 표면적인 접근만 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일에 진정으로 동참하려면 그들이 겪은 일들이 무엇이고 왜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지를 깊숙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바야흐로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볼 때가 온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이 문제는 기원전부터 현재까지 기나긴 역사와 복잡한 이해관계가 맞물려있기에 단 편이 아닌 시리즈 컬럼으로 문제를 풀어보려고 한다. 나는 지독한 ‘역알못’이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이 내용을 공부하겠는가. 하여 시리즈 컬럼은 ‘잘 쓰기’보다는 ‘공부한 만큼 쓰기’가 목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는 영토(지리), 역사, 종교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있다. 워낙 복잡한 사안들이기에, 각 카테고리 별로 서너 편씩을 할애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다각도로 알아보는 기회를 가져보려 한다. 첫 시리즈는 양국의 역사 카테고리를 중심으로 한다. 이번 컬럼에서는 ‘시오니즘’의 태동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것이다. 이-팔 갈등의 가장 큰 쟁점인 영토 분쟁의 중심에 시오니즘이 있기 때문이다.

‘시오니즘’이란, 성지인 시온(예루살렘)에서 쫓겨나 2,000여 년간 박해를 받아 온 유대인들이 시온으로 돌아가 유대 국가를 세우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제의 시오니즘은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 살펴보자.
기원전 1,006년경 유대 민족은 기존에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토착민을 몰아내고, 최초의 유대 국가인 ‘에레츠 이스라엘’을 세웠다. 사울-다윗-솔로몬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왕조는 약 80년간 통일 왕국을 이뤘다. 이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고,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론에 의해 멸망했다. 기원전 605년부터 기원전 586년까지, 신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세 차례의 걸친 침공 끝에 유다 왕국을 정복했다.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전을 파괴하고, 유다 왕국의 왕 여호야긴을 포함한 대규모의 유대인들을 바빌론으로 끌고 갔다. 이 사건이 바로 ‘바빌론 유수’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겪은 첫 번째 디아스포라(diaspora, 헤어져 흩어짐)다.
바빌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노예 생활을 하였지만, 당시 신바빌론의 유대인들은 이집트나 팔레스타인에 있던 유대인들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종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안정적으로 유대교 율법 체계를 강화시킬 수 있었다. 바빌론 유대인들의 율법 체계가 얼마나 우수했는지, 바빌로니아 탈무드에는 이런 구절이 있을 정도다. “이스라엘 땅이 누룩이라면 모든 나라는 밀가루 반죽에 지나지 않고, 그런 이스라엘 땅조차도 바빌로니아에 비하면 밀가루 반죽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책, 279쪽, ‘바빌로니아 탈무드’ 재인용).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믿음의 의지처가 사라지는 경험은, 유대인들에게 어디서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율법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대교 율법을 중요시하는 “이런 특성은 유대인으로 하여금 내면을 돌아보게 하는 한편, 적대적인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 포이에마, 278쪽).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가 신바빌로니아를 점령한다. 키루스 2세는 자신이 점령한 지역의 왕을 살려주고, 그들의 종교를 존중해 주는 등 관용의 아이콘이었다. 키루스 2세는 50년간 신바빌로니아에서 노예 신분으로 있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방시켜주었다. 키루스 2세의 이런 행보는 당시 유대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성경에도 그에 대한 매우 긍정적인 기록이 남았다. “주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이에게 말씀하신다. "고레스에게 말한다. 내가 그의 오른손을 굳게 잡아, 열방을 그 앞에 굴복시키고, 왕들의 허리띠를 풀어 놓겠다. 그가 가는 곳마다 한 번 열린 성문은 닫히지 못하게 하겠다. (중략) ”(이사야서 45장 1절). 유대인들에게 키루스 2세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였는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약 2,500년 전 페르시아의 왕 키루스 2세의 관용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스라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2026년 현재, 이스라엘이 미국을 등에 업고 이란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은 아이러니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는 과거 자신들의 조상이 그곳에 살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스라엘의 논리대로 과거의 일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이스라엘은 지금의 자신들을 있게 해준 이란을 공격해선 안된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과거의 일들을 그들의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여 전쟁의 근거로 삼고 있다. 하여 현재 이스라엘의 다른 국가들을 향한 침략과 공격은 그들의 주장처럼 역사적 이념의 중요성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영토 지배 야욕과 배은망덕함이 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과거로 돌아와, 유대인들은 키루스 2세 덕분에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지만, 팔레스타인 땅은 계속해서 지배자가 바뀌었다. 기원후 73년 로마의 지배 시기, 유대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외치는 반란을 일으켰다. 그때 수많은 유대인들이 처형 당하고 성전이 파괴되었다. 반란에 실패한 유대인들은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로 흩어지며 두 번째 디아스포라를 겪는다. 그렇게 흩어진 유대인들은 그들이 처한 곳에서 박해를 받는다.
그중 시오니즘의 태동에 큰 영향을 준 사건이 발생한다. 1894년 프랑스에서 벌어진 드레퓌스 사건이다. 당시 프랑스 장교였던 유대인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프랑스의 군사 기밀을 독일에 넘겼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2년 뒤 진범 에스테라지 소령의 자백으로 사건의 전말이 밝혀졌지만, 프랑스 참모 본부는 프랑스 군대와 국가의 위신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를 묵인했다. 이러한 프랑스 정부의 진실 은폐 행위는 당대 서구 지성인들의 분노와 연대를 촉발했다. 당시 프랑스의 문학가였던 에밀 졸라와 프랑스 참모본부 정보부장 피카르 중령 등 진리를 향한 이들의 투쟁으로, 드레퓌스는 투옥된 지 12년 만에 특별사면되었다. 이 사건은 당시 유럽에 팽배해 있던 유대인 인종 차별과, 군부의 위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진실 은폐와 인권 탄압까지 허용하는 군국주의적 속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 기자였던 테오도르 헤르츨은 드레퓌스 사건을 깊숙이 취재했다. 그는 특히 드레퓌스 대위 군적 박탈 행사에서 적잖이 충격을 받는다. 1895년 1월 5일, 누명을 쓴 드레퓌스 대위의 군적 박탈 행사가 있었고, 연병장에 모인 군중들은 “유대인을 죽이자”라며 욕설을 하고 돌팔매질을 했다. 이때 군중들의 비난은 드레퓌스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닌, 유대인 전체에 대한 혐오였다. 헤르츨은 이 사건을 통해 서구 유럽 기독교 세계의 유대인 차별과 당시 인권 선진국이었던 프랑스의 반유대주의를 통감하였다. 그렇게 그는 유대인들이 서구 유럽을 비롯한 타국에서는 평화를 얻을 수 없다 판단하였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인 시온(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시오니즘 운동’의 주창자가 된다.
시오니즘은 드레퓌스 사건으로 대변되는, 서구 유럽의 적폐였던 군국주의와 인종 혐오 문제에 대한 저항으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의 시오니즘은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를 향한 인종 청소, 이란과 여타 중동 국가들에 대한 전쟁의 이념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런 모순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이상 그들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오히려 수천 년간 유대인들이 받아온 박해와 혐오를 답습하고 더욱 강화하는 것이 된다. 이스라엘 민족의 평화는 영토가 아닌, 혐오와 지배/피지배를 넘어선 차원에 있을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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