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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나의 한반도 석기시대 순례기』 지은이 인터뷰

by 북드라망 2026. 3. 31.

『나의 한반도 석기시대 순례기』 지은이 인터뷰

1. 선생님께서는 앞서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을 출간하시면서 “코로나 이후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부터 선사 박물관과 유적지를 답사” 하셨다고 하시니 관계에 대한 고민과 선사 답사가 무관해 보이지 않습니다. 선사 답사의 계기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코로나 19는 크나큰 고통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염병 자체가 도시 문명의 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탄생과 죽음, 고통과 치유를 둘러싼 인류의 야생적 풍경은 어떠할지에 관심이 갔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전염병은 특히 동물과 인간 사이의 건강한 관계성이 무너진 결과라는 설명도 접했는데, 과연 인류가 문명을 어떤 방식으로 건설한 것인지 다시 알아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인류학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인류가 가족을 이루고, 재배를 하고 가축도 기르면서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두 발로 걷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선사학의 이론은 ‘인류의 진보’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갖게 해주었습니다. 걷게 되면 두 손이 자유로워지지요. 땅과 접속하다가 해방된 두 손은 다양한 도구를 다루는 기술을 계발하게 되었고요, 사족보행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던 얼굴에도 다양한 표정이 나타났습니다. 걷게 되면서 낮의 활동성을 높이기 위해 땀 배출 쉽도록 털이 떨어져 나갔는데, 덕분에 인류는 다른 영장류들과 달리 동종 간의 유대감 형성을 위해 털이 아니라 음성 언어를 계발하게 되었다지요. 


신의 명령이나 특정한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몸을 갖고 있는가가 자연과 사물과의 관계를 결정한다는 데에서 저는 무릎을 치며 공부의 방향을 확실히 잡았습니다. 관계라는 것은 추상적으로 생각해서 될 문제가 아니었어요. 태곳적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미션은 자신의 몸으로, 자신의 도구로, 자신의 활동으로, 하나하나 주변의 모든 것과 적합한 관계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사 인류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그들과 직접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들의 유물이 있는 곳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2. 책을 보고 대한민국에 선사 박물관 혹은 유적지가 이렇게 많았나, 새삼 놀랐습니다. 박물관이나 유적을 선정하는 데나 방문하시는 순서에 어떤 기준 같은 것이 있었을까요? 추천하고 싶은 순서 등도 같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처음 찾은 선사 박물관은 집 근처 공주의 〈석장리박물관〉이었습니다. 일단은 가장 가까운 선사 박물관에서부터 답사를 시작해 특히 눈길이 가는 유물들이 또 어디에 있는지를 조사하게 되었고, 그런 식으로 조금씩 먼 곳에 있는 박물관도 찾게 되었습니다. 석장리의 주먹도끼 한 점에서 시작해서 아예 대규모 주먹도끼 제작소를 찾아 단양에까지 갔던 일, 신석기에 들어오면서 토기를 굽게 되었는데 한반도에서의 시작은 제주도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비행기까지 탔던 일, 전부 새록새록 즐거운 추억입니다. 주먹도끼 하나의 운명을 추적하는 가운데 따로 기획하지는 않았지만 팔도의 박물관과 유적지를 두루 돌아다니게 된 것이지요. 


선사 유물 답사는 박물관 한 군데를 둘러보는 것으로 끝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만약 시작하신다면 한반도 전역의 박물관들 사이에서 나만의 유물 답사 지도를 그린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유물 자체에 대한 관심도 얼마든지 현대적으로 키울 수 있거든요. 주먹도끼를 만들고 쥔 그 손이 궁금하다면 인체의 신비, 동물과의 진화적 관계도 공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전이나 서울 등지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으로 향할 수 있어요. 커다란 가리비에 사람 얼굴을 흉내 낸 신석기 조개 가면에 이끌린다면 인류의 축제와 예술의 역사를 추적할 수도 있습니다. 곧바로 안동에 있는 〈하회세계탈박물관〉에 가는 것도 방법이지요. 선사 답사를 다니다 보면, 점점 더 가 보고 싶은 장소가 늘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나만의 유물 답사기의 지도를 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도구를 쓰며 기술과 예술을 계발한 인간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지요. 그럴 때에는 관련된 자료를 찾으면서 읽고 연구하는 것이 좋은데요, 저는 종교가 따로 없지만 울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 그림을 본 뒤로 종교인류학 공부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요즘에는 종로에 있는 조계사와 명동성당 등 절과 교회도 찾아가 봅니다.     

 


3. 선사시대를 본다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생활방식도 가치도 전혀 달랐던 그 시대를 지금 보아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제가 선사 유적을 자주 찾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몇 만 년 전 그들이 오늘날의 우리와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연천에는 〈전곡선사박물관〉이 있습니다. 상설전시실 안에 구석기 동굴의 모형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 안에 프랑스 여러 동굴의 구석기 예술을 재현하고 있어요. 처음 보았을 때 동굴의 우둘투둘한 벽면에 그렸다고 하는 선사인들의 그림은 가히 충격적이었지요. 미켈란젤로도 울고 갈 세련된 솜씨로 동물이 그려져 있었고, 붉은 암료를 손 위에서 입으로 뿜어 손가락 모양을 나타낸 것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 그림은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이 잘려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었는데요, 도대체 어떤 의식이, 무엇을 향한 욕망이 그와 같은 형태를 낳게 했는지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알 것도 같았어요. 동물과의 연대감, 자신의 활동에 대한 자의식 같은 것을요. 재현품을 본 것임에도 프랑스 어느 동굴의 선사인과 제가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저라면 동물에 대해, 저 자신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겠지요. 


선사시대를 공부하면 인류의 한 존재로서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겪는 인생의 번뇌가 인류라면 누구나 했을 법한 고민이라는 데에도 생각이 미치게 되고요. 그 오래된 질문에 대해 얼마나 많은 답들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아득해집니다. 저는 이처럼 인류의 오래된 질문과 지혜를 하나하나 음미하는 공부법을 인류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사시대에서 출발하는 인류학의 가장 큰 장점은 하면 할수록 타인과 나의 차이와 공통점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선사 유물 답사는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사람들을 더 깊이 느끼게 해주고, 그럼으로써 오늘의 내 관심과 고민을 더 넓게 조망하게 합니다. 계속하다 보면, 기계와 AI와도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현재에 공생의 지혜를 더 풍요롭게 계발할 수 있지 않을까요?    
  
4. 선생님께서는 이 책에서 “쓰고 싶은 내용, 쓰려는 의욕, 이 모든 것들 이전에 나의 손이 있다”고 말씀하시긴 했지만 제가 보기에 이 책에서만큼은 선생님의 손보다 먼저 ‘발’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제껏 해오신 ‘사유의 답사’가 아닌 직접 ‘발로 뛴 답사’라는 공부 형식이 선생님께 어떤 것을 남겼을지 궁금합니다.

 

아,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답사기를 쓰기 위해서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이고 유물이 나를 부르는 곳까지 가야 하지요. 걷는다는 것은 땅과 교감하는 일이고 답사는 유물과의 직접 대화이니까 걷기와 답사는 본질적으로 같은 일입니다.   


발로 뛰는 답사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습니다. 답사가 거듭될수록 보고 싶은 유물이 늘어나고 그만큼 이동하는 범위가 커졌습니다. 초반에는 선사유적지를 다녀올 때 반나절이면 되었습니다. 뭘 보아야 하는지도 잘 알 수 없어서 박물관 전체를 휙 둘러보기만 할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다음번 갈 때에는 보이는 것이 늘어나고 궁금함도 더 생기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물 하나를 보는 시간도 늘어났고, 유적지 근처의 강변이나 언덕까지 두루 돌아보게 되었어요. 나중에는 아예 박물관 인근의 시장과 공원까지 다 둘러보았습니다. 


주신 질문을 듣고 생각해 보니 왜 그렇게 답사 반경이 확대되었는지 알겠습니다. 바로 발로 걸었기 때문입니다. 주먹도끼만 해도 처음에 볼 때에는 크기라든가 재질, 돌 떼임의 상태를 관찰하는 데에만 급급했어요. 그런데 자꾸 걸으면서 박물관을 찾는 와중에 주먹도끼를 만들었던 누군가의 손이 떠올랐고, 결국 그 사람들이 돌아다녔을 주변 풍경까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제가 걷는 만큼, 전시실을 돌아다니고 박물관 근처를 서성이는 만큼, 그 장소의 기운과 교감하게 되면서 유물과 더 가까워진 것이지요. 


책에 쓰인 정보를 확인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답사를 갈 필요가 없겠지요. 대상 앞으로 직접 몸을 움직이는 일은 선사의 주먹도끼라 하더라도 그것과 새롭게 관계 맺는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유물과 맺었던 관계의 결실로 책이 출간되는 일까지 생겼습니다. 진품도 있고 재현품도 있었지만 어떤 유물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일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의 어려움과 소중함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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