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한다, 나는 자유다
네버엔딩 진리 실험
박소연(남산강학원)
간디의 브라마차르야는 세상 속을 유쾌하게 질주하는 힘이다. 단순히 ‘금욕’이라고 번역하기엔 너무 아까운 개념이다. 핵심 키워드는 관계, 생명력, 행위! 간디는 도시의 수행자이다. 인간을 떠나서는 신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 브라마차르야의 대전제이다. 세상 속에서, 인간들과 함께하며 욕망을 남김없이 분출하는 삶. 그 터질듯한 생명력은 그칠 줄 모르는 행위와 한 쌍이다. 브라마차리는 금욕주의자도 아니고, 허무주의자도 아니다. 그들은 세상을 존속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 행위한다. 세상이 그들의 관심사이다. 개인의 성장은 폭력 없는 세상, 즉 모든 존재의 행복과 동의어이다. 평생을 아힘사(비폭력)를 실천하는 데 주력했던 간디는 쉽사리 좌절하는 법이 없었다. 간디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찾아내는 데 선수였다. “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밖에 요구하지 않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요구한다.” (『마하트마 간디』, 로맹 롤랑 지음, 최현 옮김, 범우사, 47쪽) 행위와 좌절은 양립할 수 없다.
자연스레 그 생명력의 원천을 묻게 된다. 간디는 ‘진리’라고 답한다. 실제로 막막하고 불안할 때 어떤 커다란 힘에 대해서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있다. 절에서 지낼 때 가끔 ‘앞으로 뭐 하면서 어떻게 살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곤 했다. 스무 살이 다 되어가도록 이렇다 할 스펙 하나 없지, 그렇다고 예체능 쪽으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지, 홈스쿨링하며 집과 절만 오가던 탓에 인간관계도 좁지…. 백팔배, 경전 암송, 명상, 울력이 일과의 중심이었던 그때 나는 짬짬이 조급했다. 불안해하자면 계속해서 더 불안할 수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불안이 더 커지지는 않았다. 비집고 들어오는 걱정은 커다란 것을 생각하는 마음에 의해 잘 녹았다. 붓다의 말씀, 보살의 마음, 커다란 비전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수행자의 태도. 끝없는 미래라는 도화지 위에 찍힌 점 하나, 그게 나이고 이번 생이라는 생각. 진리는 늘 나를 현재로 되돌려놓았다. 자주 찾아왔지만 녹기도 잘 녹았던 불안을 데리고 스무 살까지 지냈다.
그렇더라도 그때는 진리는 진리이고, 나의 삶은 또 따로 있다고 생각했다. 낯선 곳에 가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일상을 구성하고 싶었다. 하지만 새로운 일상은 금방 익숙한 일상이 되었고, 거기서 또 다른 불안과 불만이 생겼다. 어디에 가도 비슷하겠다고 느꼈다. 나의 일상을 의심하는 마음을 녹이려면 진리라는 등불이 필요하고, 그 빛을 따라 활발히 움직일 수 있는 생명력이 필요하다. 에로스와 자유를 주제로 글을 다 써 갈 때쯤엔 자유에 한 발짝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막연히 기대했었다. 자유로움이란 내게 아득한 이상향이고, 이번 생에 느낄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들지 않는 감각이었다. 그러나 간디를 만나고서 지금까지 정리된 생각은, 자유는 생산해야 하는 것이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간디는 자신의 생애를 ‘진리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인생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탁월한 말이 있을까. 진리가 삶의 전부인 사람은 좌절을 모르고, 확신을 가지고 나아간다. 생각과 말,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에 괴로워할 새도 없이 행동에 행동을 거듭한다.

절반은 남성, 절반은 여성
맹렬한 성욕 때문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모한다스는 브라마차르야 맹세를 통해 성의 경계를 무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간디가 일반적인 금욕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인간의 도덕적 본성에 있어서 하나의 시련이라고 할 성에 대하여 그것을 금지하면서도 혐오를 표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간디는 여성에게 대해서 친절하며 그 성격의 일관된 특징의 하나이다.” (『인도의 성웅 2권』, 루이스 피셔 지음, 민병산 옮김, 일신서적출판사, 248쪽) 아버지의 죽음, 첫 아이의 죽음 앞에서 소년은 커다란 죄책감을 느꼈다. 그때부터 성욕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큰 과제였고, 거의 평생에 걸쳐서 성욕과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럼에도 간디는 여성을 대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오히려 일종의 비전으로 삼았다. 이는 간디의 행위가 죄책감에 기반하고 있지 않다는 증명이다. 여성을 혐오한다는 것은 사실 성욕을 느끼는 자신을 혐오하는 것이다. 간디에게는 자기혐오가 없었다. 간디는 되려 여성-되기를 꿈꿨다. 간디가 그토록 바랐던 비폭력의 신체, 그 구체적인 실현을 모성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잠시 이야기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1922년, 간디는 대중 선동 혐의로 체포되어 6년 형을 선고받고 예라브다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때 간디는 영국 측에서 기운이 빠질 정도로 감옥 생활을 200% 즐겼다. 어릴 때부터 수줍음 많은 성격이었던 간디는 여전히 고독을 좋아했다. 간만에 고요를 만끽하며 기도와 물레질, 독서(이때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읽었다)와 글쓰기에 푹 빠져 지내고 있었다. (혹자는 간디가 아가 칸 궁전에 구금되었던 것을 이야기하며 감옥에서도 영국으로부터 특별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이다. 간디는 다른 수감자들과 똑같이 생활하면서도 독서와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
그렇게 지낸 지 2년이 채 못 되었을 1924년 1월, 급성 맹장염이 발병했다. 간디는 곧바로 푸나의 사순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와중에도 간디는 쾌활함을 유지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겨우 수술이 끝났다. 농양으로 인해 회복이 더딘 간디를 돌보며 간호사는 아마도 그 병원에서 내내 회자되는 듯한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한 여성이 상태가 위중하여 외과 수술을 받아야 했는데, 하필 임신 중이었다. 그녀는 끝내 마취제 투여를 거부하고 말짱한 정신으로 고통스러운 수술을 감내했다. 간디는 이 이야기에 큰 감동을 받았다. 아이를 생각하는 한 마음으로 살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뎌내는 어머니의 마음은 간디에게 있어 세상 어느 것보다 값졌다. 간디는 갑자기 그 여성의 처지가 부러워졌고, 여성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강력한 열망을 느꼈다.
여성이 되고 싶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간디를 보고 놀랐다. 정치의 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남성이 이런 속마음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물레 돌리기를 사랑하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인식되던 물레질 – 그것이 과거에는 어떤 성격이었고 전국적인 카디 운동에서는 또 어떤 성격을 띠었든지 간에 – 에 대한 간디의 각별한 애착에 대해서는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간디는 이를 순순히 인정함으로써 사람들의 구설에 대응했다. 그는 자신이 절반은 여성이기를 열망한다고 당당히 밝혔다.” (『간디의 진리』, 에릭 H. 에릭슨 지음, 송제훈 옮김, 연암서가, 545쪽) 이 대목에서 간디가 자주 취하는 자세가 떠올랐다. 흔히 ‘인어공주 자세’라고 부르는 모양새이다. 흰색 천을 두른 반라의 남성이 다리를 모아 한쪽으로 넘긴 채 다소곳이 앉은 모습은 묘한 인상을 남겼다. 남성 정치인은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왕성한 체력을 원한다. (몇몇) 종교인은 금욕이란 단어에 묶여 다른 성을 혐오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특히 그 시절에) 여성이 되길 원하고, 여성을 깊이 경애하는 간디는 기묘한 정체성의 소유자였다. 남자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한, 정치인과 종교인 사이의 존재!
개혁가의 남근 숭배적 남성성은 그들의 결정적인 영향력과 그들이 보여주는 끊임없는 이동성에 녹아 있는 것 같다. 그는 늘 움직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늘 움직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한 요구는 때로는 과도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루터가 거리낌 없이 말했듯이 그것은 보다 높은 영감에 의해 – 수태를 하는 여성처럼 – 움직이는 것을 의미했다. (『간디의 진리』, 545쪽)
간디에게 있어 여성성, 특히 모성은 생명을 해치지 않으려는 조심성에 다름 아니다. 보다 높은 영감이란 너무나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마음이다. 잉태하는 순간부터 즉시 자신의 고통보다 아이의 목숨이 더 중요해지는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것은 곧 진리다. 잠시 여성의 처지를 부러워했던 간디는 곧 마음을 다잡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부질없는 짓. 우리가 태어난 그 상태에 대해서 행복을 느끼고, 자연이 우리에게 정해준 의무를 이행하자.” (『간디 전집 3권』, 라가반 이예르 지음, 허우성 옮김, 나남, 588쪽) 사실 진리는 대체로 명백하게 드러난다. 실천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다른 존재의 삶을 위하여, 그의 행복을 위하여 내가 기꺼이 고통을 감수한다는 방향성은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진리는 오직 그러한 ‘의무의 이행’으로 실현된다.
간디의 브라마차르야는 무엇을 하지 않는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브라마차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삶을 산다. 브라마차르야는 생명의 보편성으로 향해 가는 운동 아닐까. 세상 모든 게 궁금하고, 땀을 흘리며 하루 종일 뛰어다녀도 쌩쌩한 어린아이의 에로스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시기의 생명력은 아직 ‘성욕’이라는 하나의 통로로 좁혀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금욕하고 말고 할 게 없다. 남성, 여성으로 나뉠 수 없는, 생명 차원의 에로스 분출만 있을 뿐. “힌두교의 브라마차르야에서 말하는 금욕이란 단순히 성적 활동을 하지 않는다거나 남성성을 제한한다는 뜻이 아니라, 양성이 만들고 상호 의존하는 공고한 일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아이들이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에 결합하는 것을 가리킨다.” (『간디의 진리』, 543쪽)
청년이면서 노년인 사람
나이가 들수록 세상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 사람들에게 더 진심이 되었던 간디의 끝을 모르는 활동성. 점점 그 미스터리가 풀려가는 중이다. 간디 생애 후반기의 활동을 살펴볼 때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된다. ‘아니, 잠시만. 이때 간디 나이가 어떻게 되더라?’ 너무 힘차 보여서 연표를 살펴보면 60대 후반이거나 70대에 접어들었을 시기다. 그럴 때면 조금 당혹스럽다. 며칠 몸을 썼다고 기진맥진해지는 20대 나의 신체가 간디 앞에서는 늘 무색해진다. 특히 분단 국면에서의 북인도 도보 순례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나는 간디의 이 여정이 앞서 살펴본 ‘확장된’ 에로스로 충만했다고 느꼈다. 아무도 77세의 간디를 막을 수 없었다.
독립이 성큼 다가오며 진나의 이슬람 연맹과 네루의 국민회의는 날 선 대립각을 세웠다. 힌두-무슬림 사이에 흐르던 팽팽한 긴장감은 ‘직접행동의 날’을 기해서 서로에 대한 물리적 폭력행사로 변모했다. 캘커타에서 힌두와 무슬림 사이에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졌고, 동벵골 노아칼리에서 무슬림이 힌두를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하르에서는 인구 비율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힌두가 무슬림에 대하여 무자비한 보복을 행사했다. 간디는 도저히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할 수 없었다. 해서 먼저 이슬람교로의 강제 개종 및 힌두 여성 강간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노아칼리에 직접 가기로 한다.
노아칼리는 교통편이 불편하기로 악명 높은 곳이다. 강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마을에 들어가려면 작은 배를 타야 한다. “뉴욕에 있는 현대사정협회가 파견한 필립탈보트는 캘커타에서 마하트마의 숙영지에 가는데 기차, 기선, 자전거, 전마선을 차례로 바꿔 타고 다시 도보로 4일간을 걸어갔다”고 한다. (『성웅 2권』, 258쪽) 나였다면 도착과 동시에 이미 기력의 80%가 소진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오지에서 간디는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1946년 11월 7일부터 47년 3월 2일, 약 4개월 동안 간디는 49개 마을을 방문하여 사람들에게 비폭력의 메시지를 전했다. 간디는 그 길을 맨발로 다녔다. 적의를 품은 사람들이 길 위에 유리 조각이나 오물을 뿌리기도 했는데, 그것들을 밟고 걸었다. 간디의 진심이 통했는지 사람들의 분노도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렇다고 안심할 정도는 아니었다. 간디는 노아칼리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으나 비하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결국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또다시 길을 나섰다.
이쯤에서 1편에서 잠깐 언급했던 인도인들의 생애 주기, 아슈라마 이야기를 해야 한다. 아슈라마는 브라마차르야 혹은 안테바신(학습기), 그리하스타(가주기), 바나프라스타(임서기), 산야사(유랑기)의 4단계로 나뉜다. 학습기에는 부모를 떠나 스승께 배우며 욕망을 다스리는 훈련을 하고, 가주기에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공동체에 기여하는 삶을 살며, 중년이 되면 가족을 떠나 홀로 숲에서 수행하는 시간을 보낸다. 노년기에는 무소유로 이곳저곳을 걸림 없이 유행한다. 이때 중요한 네 가지 삶의 덕목이 있다. 다르마(의무), 까마(욕망의 충족), 아르타(공동체에의 봉사, 자녀를 낳고 기름), 그리고 모크샤(해탈)이다.
마누 법전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인간에게) 최고의 선이 다르마와 아르타를 얻는 데 있다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것이 관능적 쾌락인 카마의 만족에 있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오로지 다르마의 획득이, 혹은 아르타의 획득만이 현세에서 최고의 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 가지의 총합에 최고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결론이다.” (...) 그것은 생애의 각 단계에 주어지는 힘이, 점차 확대되는 힘의 총합에 더해지고 이후의 단계에 재통합되면서 전체의 생애 주기 속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후성적 원리이다. (『간디의 진리』, 46쪽)
간디가 그토록 생기발랄할 수 있었던 건 각 생애주기를 개별로 밟지 않았기 때문이며, 삶의 세 덕목을 분리하여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르마, 아르타, 까마는 간디가 존재하는 그 시점에서 늘 총체적으로 작용했다. 그런 점에서 브라마차르야를 실천하는 간디는 77세에도 청년이며, 히말라야가 아니라 마을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점에서 그리하스타에 해당하는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그의 마음은 정치적 성공과 좌절에 휘둘리지 않았으므로 그곳이 히말라야라고 볼 수 있으니 바나프라스타에 해당하며, 또한 그의 모든 활동의 배경에 진리가 있으므로 산야시의 삶을 살고 있기도 하다. 세 힘의 총합은 간디를 순간마다 모크샤, 해탈의 비전으로 이끌었다. 간디는 청년이면서 중년이면서 노년인 묘한 생애주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간디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욱 힘차고 명랑해졌던 이유, 급진적인 실험은 오히려 생애 후반기에 이루어졌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진리로도 불리는 신을 보기 위해서 모든 행위를 하고 만물에서 진리를 보는 자는, 노년을 장애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런 탐색에 관한 한, 구도자는 자신을 불멸이라 하고 영원히 젊다고 간주한다. (『간디 전집 2권』, 588쪽)
내가 20대라고 해서 꼭 브라마차리인 것만은 아니다. 이를테면 산야사의 시기에 추구하는 진리, 조금 작게 부수어 말하면 나의 의무를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창조할 것인지 생각하는 마음은 20대인 지금 가장 밑바닥에 굳게 다져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깨봉에서 공부하면서 세대가 뒤섞여 어우러지는 데 아무런 어색함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60대 후반에 접어든 선생님들이 나보다 더 MZ 같고, 힘찰 때도 많다. (^^;) 이건 아마도 우리의 생애 주기가 맞닿아 있기 때문 아닐까. 청년기는 어느 때보다도 진리와 자립, 소유의 문제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기이고, 노년기는 20대보다 활발하고 명랑한 것이 당연한 인생관. 간디에게서 재미난 것을 배웠다. 진리의 구도자는 늘 성숙을 거듭할 뿐, 결코 늙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리 실험은 절대 끝나지 않는다.

에로스(욕망)의 유쾌한 질주
간디를 ‘까르마 요기’라고 부른다. 모든 행위를 요가로 만드는 사람. 행위 하나하나에 깊은 호흡을 불어넣는 요기. 삶이 도대체 뭐야?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야? 자유롭다는 건 또 뭐야? 질문을 잔뜩 품고 떠난 여행에서 간디는 시종일관 ‘행위’ 하나만을 강조했다. 행위가 삶이고 자유라고 답했다. 생각과 말, 말과 행동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이유는 행동이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의 원대한 목표를 모르고 있다. 그 목표는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우리의 행동에 의해서 결정되지, 우리가 말에 부여하는 정의에 의해서 결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현명하게 현재를 돌본다면, 미래는 스스로 돌볼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오직 제한된 행위 영역과 제한된 비전을 주셨다. 그날의 선은 그날로 족하니라. (『간디 전집 3권』, 370쪽)
그날의 선은 그날로 족하다는 말. 모든 불안과 불만은 저 멀리 미래로 치달아가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우리는 제한된 행위 영역과 제한된 비전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루를 벗어나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되려 답답증만 커질 뿐이다. 답답하고 우울할 때를 돌이켜보면 그 마음에 담긴 건 욕심밖에 없었다. 현 상태에서 저 멀리로 도약하고 싶은 마음.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 나는 계속해서 제한 구역을 벗어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제한된’ 행위 영역과 ‘제한된’ 비전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간디의 행위 하나하나에, 그의 하루에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있다고 느꼈다. 하루에서 영원을 사는, 신비로운 감각이다.
지난 1년 반을 간디로 가득 채워 살았다. 배우 덕질을 해보았던 경력을 살려서 내내 넘치는 스릴을 즐겼다. 나는 한 배우를 좋아하게 되면 그가 연기했던 거의 모든 작품을 다 시청한다(전문 용어로 ‘필모그래피 깨기’). 간디에 대해서 공부할 때도 비슷했다. 처음에는 대표작(?)인 자서전이나 그 외 문집을 흥미롭게 읽었고, 조금 지나서는 작가의 해석이 풍성하게 담긴 평전을 재미나게 읽었다. 그러다 자서전만 읽어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사실을 하나라도 발견하면 몹시 행복해했다. 간디뿐만 아니라 그의 주변인들, 특히 카스투르바이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단지 간디의 아내가 아닌 사티아그라히 카스투르바이를 만났고, 세상에 그녀를 알리고 싶다는 바람도 생겼다. 간디와 관련된 책이 생각보다 많아서 책 사 모으는 재미도 쏠쏠했다. 사놓기만 하고 못 읽은 책이 많은데, 덕질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행복한 일이다. 과거의 사람이 이토록 생생하게 현재의 내 삶에 들어와 있는 것이 신기하다.
언젠가부터, 특히 여름에, 가끔가다 열기가 몸에 갇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햇볕을 오래 받으면 전신의 피부밑으로 열이 화끈거리는 게 느껴진다. 유쾌한 느낌은 아니다. 뜨거운 몸이 너무 부담스럽고 갑갑하다. 이런 현상은 사주 상 넘치는 목(木) 기운 때문일 수도, 뭐에 한 번 빠지면 뛰어들어서 헤엄치길 좋아하는 나의 습성 때문에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신체를 가진 내게 간디 공부는 분출구였다. 공부한 만큼 글을 쓰고 나면 열기가 빠져나가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열기를 쏟을 데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앞으로 더욱더 시원해졌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능동적이고 힘차게!
언젠가 큰스님이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진실하지 못한 것은 경사가 심해 발붙일 수 없는 땅에서 몸을 지탱하는 것과 같고, 진실한 태도는 평평한 땅 위에 편안히 앉은 것과 같다”라는. 진리를 행위하는 사람의 에로스는 돌부리 없고, 도타운 흙이 깔린 평평한 땅을 내달리는 것처럼 막힘이 없다. 진리는 멀리 있지 않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나의 진리이며, 진실이다. 진리 위에서 이유 없는 삶은 없으며, 그래서 모두의 삶은 진리로 드러날 수 있다. 간디는 노아칼리로 가지 않을 수 없었고, 비하르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간디의 진리는 발을 옮겨 증오와 폭력에 사로잡힌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이처럼 순간마다 진리를 행위하려면 강렬하고 응축된 힘의 잉여 없는 분출이 이루어져야 한다. 에로스가 행위의 원천이 되고, 행위가 자유를 선사하는 간디의 길. 나는 지금 길의 초입 어딘가에 있다. 앞으로 갈 길이 구만리지만, 매우 흥미롭게도 이 길은 매 순간이 자유와 해탈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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