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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연의 브라마차르야

[박소연의 브라마차르야] 타아(他我)-되기: 정욕과 미각 통제(1)

by 북드라망 2026. 1. 7.

욕망과 맞짱 뜨기

타아(他我)-되기: 정욕과 미각 통제

박 소 연(남산강학원)

 

신은 “강력한 집착을 보이는 존재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간디는 이를 한마디로 ‘무욕’이라고 했다.” (『간디의 삶과 메시지』, 루이스 피셔 지음, 박홍규 옮김, 문예출판사, 26쪽) 신, 즉 진리와의 합일! 간디가 한평생 욕망을 제어하려고 애썼던 이유다. 그런데 ‘무욕’이라고 하니 왠지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고, 만사 귀찮아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간디’란 이름만 알던 때에는 나도 비슷한 오해를 했다. 금욕이니, 무욕이니 하는 말들이 세상과 동떨어진 삶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거부감이 들었다. 내겐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한가득 있는데, 열정을 가득 담아 활동하고픈 영역도 많은데 무욕이라니?

생태주의, 동물해방, 전장연, 페미니즘, 기후 정의, 반전 운동 등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들을 보면 설렌다. 책 읽고, 글 쓰며 신나게 공부하는 지금, 언젠가 나의 공부가 세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를 소망한다. 어떤 영역에서 무슨 일을 하든 세상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 ‘브라마차르야’(금욕, 청정한 행)라는 주제에 관심이 갔던 또 다른 이유였다.

사회운동을 평생토록, 온몸을 던져 실천했던 사람이 바로 간디다. 이를 가능케 했던 힘은 바로 ‘무욕’을 비전으로 한 브라마차르야의 실천이었다. ‘무욕’의 경지란?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상태다. 집착에는 사심이 가득 담겨 있다.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것뿐만 아니라 행위의 결과를 바라는 것 또한 사심이다. 집착 없이, 사심 없이 행위 하는 것. 나를 위한 일과 타자를 이롭게 하는 일의 완벽한 일치. 이러한 간극 없음이 간디가 원했던 삶이다. “간디의 자아는 (예외없이) 모든 위대한 정신(그것은 많지 않지만)처럼 모든 인간의 자아다. 그 자아는 타아(他我)다.” (『마하트마 간디』, 로맹 롤랑 지음, 최현 옮김, 범우사, 198쪽)

‘자아’에서 ‘타아’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수행은 기쁨이었다. 간디는 자신의 활동이 ‘이기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최종 목표 ― 자기실현, 즉 진리와의 합일을 위해서는 집착을 부수고, 자아를 부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디의 개인적인 수행은 불가촉천민의 고통, 인도인들의 아픔, 폭력이 만연했던 당시의 세계와 분리되지 않았다. 간디는 늘 가장 핍박받는 자들의 편에 서서 말하고, 글 쓰고, 단식했다. ‘이기적’, ‘개인적’이란 말은 간디에게는 ‘이타적’, ‘공적’의 뜻이었다. 이기적으로 굴지 말라는 대신 말의 뜻을 전복시켜버리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브라마차르야는 이처럼 강한 능동성을 내포한다. 간디를 보면, 금욕은 ‘행위’의 다른 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욕망과 끝까지 ‘맞짱’ 떴던 행동가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자.

 

 

 

감각의 재배치

20세쯤 되었을 때 그는 건설적인 생활의 첫 페이지에 ‘포기’를 두었다. 자기를 정복할 것. 이 임무가 그에게 의무로 생각되었다고 그는 말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임무는 하나의 쾌락과 같았다. “그것은 나를 매혹시켰다.” (위의 책, 194쪽)


브라마차르야의 실천이 선사한 기쁨이 무엇이기에, 간디는 그에 매혹되었다고까지 이야기했던 것일까? 디테일하게 들어가 보자. 우선, 성욕만 통제한다고 해서 브라마차르야가 아니다. 눈, 귀, 코, 혀, 손과 발… 몸의 모든 감각기관을 함께 제어해야 하며, 끝에 가서는 생각마저도 다스려야 한다. 그중에서도 “으뜸가는 죄인”은 바로 혀, 입맛이다. 간디가 미각 통제를 중요하게 생각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미각이 가장 보편적인 감각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우리는 미각에 있어서만큼은 한없이 관대하다. 외설적인 것을 보고, 난잡한 이야기를 듣고, 거짓말하고, 도둑질할 때 사람은 부끄러움을 느낀다. 19금 영화를 지하철에서 보지 않는 것처럼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다. 자칫하면 경멸과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각은 예외다. 많이 먹는다고, 미각의 쾌락을 즐긴다고 해서 눈총을 받지 않는다. 되려 다양한 음식을 종류별로 찾아서 맛있게 먹는 걸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간디에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 미각에 대한 탐닉이 “도덕의 문제가 아니란 말인가!” (『마음을 다스리는 간디의 건강 철학』, 간디 지음, 김남주 옮김, 뜨란, 90쪽) 이건 마치 산적 떼 구성원이 산적 질을 문제 삼지 않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모두가 집착하고 탐닉하는 영역이라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먹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한 번도 스스로의 예속성과 야수성을 깨달은 적이 없다.”(위의 책, 91쪽) 우리는 다른 생명을, 타자의 노고를 먹고 산다. 우리가 먹는 달걀에 5천만 마리 수평아리의 죽음이 연루되어 있다는 걸 안다면,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커다란 눈에 맺히는 눈물을 안다면 입맛을 따져서는 안 된다는 게 간디의 생각이다. 여하튼, 인간은 이렇게 아무런 죄의식 없이 미각을 발달시켜왔으므로, 식욕의 제어는 가장 어려운 문제가 되었다. 해서 미각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다른 감각기관의 제어는 비교적 자연스레 따라온다.

미각 통제가 중요한 두 번째 이유는 식욕과 성욕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를 지탱하는 욕망의 두 축은 식욕과 성욕이다. 생명은 성행위를 통해 태어난다. 살기 위해 먹고, 또 그 에너지로 종족 보존의 본능을 실천한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거칠게 말하면 식욕과 성욕의 고리 안에서 산다고 봐도 무방하다. 식욕과 성욕의 만족은 뇌에서 동일한 도파민 보상 회로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극적인 음식, 술, 고기의 섭취는 욕망을 부추긴다. 사찰에서 오신채가 괜히 금지된 게 아닐 테다. 해서 브라마차르야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입맛부터 다스려야 하는 것이다.

 



간디는 먹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입맛도 까다로웠고, ‘용량이 큰 위’를 타고나서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어야 배가 찼다. 그러다 영국 유학 시절 채식주의를 만나고부터 이러한 습관을 바꾸려 애쓰기 시작했다.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나가니 양념 즐기던 버릇이 떨어지고 리치먼드에서는 맛이 없던, 양념 없이 익힌 시금치가 맛이 있었다. 그런 여러 가지 실험 결과 참맛은 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간디 자서전』, 간디 지음, 함석헌 옮김, 한길사, 121쪽) 고작해야 열아홉, 스물의 나이에 이런 멋진 사유라니! 미각이 재창조되는 순간이었다. 맛을 따지지 않게 되자 엄청난 자유의 공간이 열렸다. 거칠고 쓴 음식이나, 산해진미나 간디에게는 한 가지였다. 모든 음식에서는 마음 따라 최고의 맛이 났다. 이후에도 단식을 비롯하여 견과류만 먹거나, 과일식을 하고, 우유나 소금을 끊는 등 오밀조밀한 실험을 계속하며 몸을 다스렸다. 그러면서 간디는 생활을 점차 간소화했다. 양복 입길 즐기던 소년은 어느새 흰색 도티 한 장으로 만족하게 되었다. 방 안의 물건들이 하나둘 빠지더니 나중에는 텅 빈 방에 물레 하나 두는 것을 가장 좋아하기에 이르렀다.

감각의 배치가 바뀌자 욕망의 에너지가 자연스레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변호사 일, 공동체 운영, 인권운동, 정치활동 간호 등을 한 몸으로 다 해낼 수 있었다. 간디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냈다. 만약 간디가 홀로 망동하는 성욕을 제압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면, 어디 수도원에라도 들어갔다면, 브라마차르야의 계율을 평생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봉사의 장 한가운데에 자신을 던진 순간부터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매 순간의 극기와 꾸준한 실험은 활동의 자리에서, 공동체에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운데 빛을 발했다. 이렇듯 욕망을 제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욕망의 에너지를 다르게 쓸 수 있는 곳에 나를 던져 놓는 것까지가 ‘브라마차르야’이다. 그리고 둘은 늘 함께 가야 한다. 금욕은 고삐다. 고삐의 역할은 방향을 잡는 것. 강한 욕망이 괴로움을 낳는다면 날뛰는 말에 고삐를 채우듯 다스려야 한다. 그다음엔 다른 곳을 보면서 마음껏 달리면 된다. 새로운 방향으로 욕망을 마음껏 발산하면 된다. 그 순간 금욕은 억압이 아닌 기쁨이다.


― 다음 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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