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약 도전기

올해 9살이 된 큰아이가 드디어(!) 알약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투약병에 물약과 가루약을 섞어서 먹여왔는데, 이 작업이 꽤 귀찮다. 투약병을 준비하여 물약과 가루약을 비율에 맞춰 섞고 약을 다 먹고나면 씻어두어야 한다. (매번 먹을때마다 투약병을 버리기도 아깝다.) 물약의 종류가 많아질수록 챙겨야할 약은 많고 가루로 된 약은 날이 조금만 습해도 금세 눅눅해지기도 해서 신경이쓰인다. 그런데, 몇달 전 어딘가에서 8-9살 나이 아이들의 알약 성공담(?)을 보았고, 엄마 주도하에 알약을 도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얼떨결에 알약을 받게 되었다. 약사님께 "알약은 언제부터 먹어요?"라고 여쭤보았더니 도전해보라며 물약에 알약 반알을 주셨다. 작았는데도 삼키기가 어려웠는지 물만 넘기고 약은 입안에 그대로 있는 것이 여러 번이었다. 목을 뒤로 젖히고 물을 조금 넣어주고 그 다음 목구멍쪽으로 약을 투입! 삼켜! 이 과정을 반복한 뒤 겨우 넘길 수 있었다. 아이는 알약에 적응하기 힘들었는지 약을 먹을 때가 되면 "또 알약이야~ 망했어ㅜㅜ"라고 말하곤 했다.
두번째 도전은 조금 난이도가 높아졌다. 의사 선생님께 "선생님 알약으로 주세요~"라고 말씀드린 뒤, 약국에서 약을 받았다. 어라? 그런데 물약이 없다. 알약만 세 개 였다. 동그란 약 한개, 반알짜리 두 개였다. '큰일났다. 아직 세 개까지 먹기는 힘들텐데...' 약사님께 "물약이 없네요?"라고 여쭤보니 이제 알약을 먹을 수 있어서 물약이 필요없다고 한다. 그렇다. 이제 어른들처럼 알약으로만 약을 먹게된 것이다! 아이는 집으로 오면서부터 힘들 것 같다며 툴툴거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인 것을.
물약이 없는 약봉투는 참 가볍게 느껴졌다. 알약을 삼키는 과정을 세 번이나 반복해야한다는 생각에 아이도 나도 약간은 긴장했지만, 알약먹기는 하면 할수록 수월해졌다. 물도 덜 흘리고 실패없이 한번에 넘겼다. 약을 모두 먹고나면 아이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만 8년을 물약+가루약만 먹어오다 알약을 먹은 사건(!)은 우리에겐 놀랍고도 대단한 일이었다. 마치 인디언들의 통과의례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알약을 먹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른인 우리도 분명 삶의 마디마디에서 넘어서는 지점이 있을텐데 이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고는 있지 않은지 떠올려본다. 그러니까 이런 (무려 8년만에 알약을 삼키는)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어른이 되었고, 지금도 한발 한발 삶을 살아내고 있으니 나를 좀 기특하게(?) 여겨야겠다는 뜻이다.
친구에게 이제 아이가 알약을 먹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니 아직 자기는 알약을 하나씩 삼킨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아~ 어른이 되어도 그렇게 할 수 있구나~! 또 한번에 넘기지 않는다고 해서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구나!란 마음 또한 들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각자 나름의 방식이 있고 또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를 통해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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