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G투어 터키편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인터네셔널 WG(독일에서는 셰어하우스를 WG라고 부른다. Wohngemeinschaft의 줄임말.)에 살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WG 투어를 하자. 취지는 각자의 나라에 여행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 집은 12명이 함께 사는 특이한 경우라, 대화 때마다 등장하는 각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상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다. 독일, 터키, 인도, 헝가리, 코스타리카, 이탈리아, 미국 그리고 한국. 가봐야 할 곳이 많은데, 첫 번째로 우리는 터키에 가기로 했다.
독일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한 후 해장 음식으로 되너를 먹는다. 터키 케밥은 독일 길거리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그만큼 터키 사람들은 80년대 이후 독일에 넘어와 독일 경제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터키는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동시에 면이 맞닿아 있는 국가다. 종교나 역사, 문화 면에서 유럽의 국가들과는 다른 갈래를 가지고 있지만, 유럽 곳곳에 퍼져있는 터키계 노동자들로 인해 굉장히 익숙하다. 2시간 비행이면 도착하고, 독일보다는 싼 물가이기 때문에 비교적 여행하기 만만하다. 나의 플랫 메이트 베이자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 출신으로 독일의 은행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 애의 주도로 우리는 이스탄불로 향했다.
첫날 밤 공항에서는 호주인 아셔가 여행 비자가 없는 걸 입국장에서 알아버려 그 애를 한참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 온 나, EU시민권이 있는 니키와 T 그리고 터키인인 베이자는 특별한 비자가 없이도 통과할 수 있었다. 아샤는 공항에서 50유로를 내 비자를 받고 한참 뒤에야 나왔다. 그게 모자랐는지 공항에서부터 도시까지 닿기 위해 탔던 택시에 여권을 두고 내렸다. 베이자는 공항에 전화를 걸어 택시기사를 찾아 여권을 돌려받아냈다. 네이티브 터키인이자 변호사인 베이자의 똑부러짐에 감동되는 순간이었다. 베이자와 택시기사의 만남도 웃겼다. 여권을 돌려주러 온 택시기사는 베이자에게 반해 구구절절한 긴 사랑의 문자를 남겼다. 요란한 도착이었다. 결국 밤 늦게야 도착한 우리는 숙소 근처의 맥주 집에 앉아 오늘을 회고하며 술을 마셨다.
터키는 미식 국가다.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인 바클라바를 결국 먹고(이것 때문에 터키 여행이 시작됐다.) 여러 케밥들을 먹어봤다. 우리나라 전통음식에는 유제품이 별로 없는 반면에 터키는 굉장히 많은 음식에 요거트&요거트 음료(아이란)를 함께 먹는다. 오른쪽 음식은 물만두같은 것에 요거트와 고추 기름을 끼얹은 음식이다. 나에게는 가장 특이했던 음식...
터키의 길거리에는
이스탄불은 1565만 명이 사는 큰 도시다. 거리를 걸으며 건물들을 보면 유럽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이국적인 느낌이 있다. 도시 곳곳에 모스크Mosque라고 불리는 화려하고 거대한 이슬람 사원들을 볼 수 있고, 하루에 5번 사원에 달린 탑으로부터 기도 시간을 알리는 노래가 전 도시에 흘러 퍼진다. 한국에 노래방이 있다면, 터키인들은 가수가 있는 라이브 펍에서 전통 술 라케Raki를 마시며 모두가 다 아는 오래된 노래들을 함께 부르며 논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호객 행위에 못 이겨 들어온 라이브 펍이었는데, 밴드가 연주를 지지리 못했다. 그들의 음악을 소음 삼아 야외 석에서 술을 마셨다.
어쩌다 가게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과 장난으로 담배 몇 개비를 걸고 카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카드 게임을 하며 거리를 종종 바라보았다. 그날 길에는 새벽까지 돌아다니며 북을 치는 여자애와 팔찌 하나를 건네며 돈을 요구하는 조그만 남자애가 있었다. 술집의 어른들, 거리를 걷는 어른들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돈을 뜯는 아이들. 술에 취한 어른들은 자기 동생 대하듯이 꼭 껴안고 놀아주었다. 아이들은 대담하고 끈질겼다. 여자애는 돈을 못 받으면 북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 어른들은 두손 두발을 들며 돈을 쥐어줬다. 그 애는 이 길의 대장 같았다. 자신감 넘치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는 게 즐거우면서도, 어쩌다 나쁜 어른을 만날까 봐 조마조마했다.
사람이 붐비는 터키의 거리 한복판에는 커다란 개들이 배를 까고 낮잠을 잔다. 아무도 그들의 낮잠을 방해하지 않는다. 사람만큼 자주 보이는 고양이들은 경계하는 듯 보이면서도 몇 번 손짓하면 다가와 무릎에서 잠이 든다. 가게 앞에는 그들을 위한 사료과 깨끗한 물 그릇이 놓여있다. 활발히 영업 중인 가게 한 중앙에 누워 낮잠을 자는 개들, 노숙인들의 담요 한켠에서 함께 자는 고양이들을 마주치면 미소 짓게 된다. 식당 안에는 꽃 한 송이, 손톱깎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고, 길거리에는 열쇠 고리를 파는 농인이 길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수어로 말을 건다. 가는 곳마다 관광객들에게 말을 걸며 가짜 명품 백을 파는 행인들이 있다. 길거리에서 히잡을 쓴 여인이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를 옆에 두고 KFC 쓰레기 봉지를 뒤적이며 사람들이 먹다 버린 것 중 살이 붙은 치킨을 고르고 있는 걸 보았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
이슬람과 종교
한국은 60%가 무교고 20% 정도가 카톨릭, 15% 정도가 불교를 믿는다고 한다. 나의 부계 가족은 굉장한 기독교다. 할아버지가 목사셨고, 작은 아빠도 목사다. 고모는 내가 어릴 적 귀농을 하셔 전라남도 보은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모여 만든 농사 공동체에 산다. 가족 모임에 가면 식사 때마다 기도를 하고, 할아버지가 설교하시는 걸 보러 가거나, 방학 때마다 고모 집에 놀러 가도 늘 교회에 가야 했다. 하지만 한번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불교는 자라면서 익숙해졌다. 모부의 집 근처에는 절이 두 개 있다. 작지만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골안사와 화려한 미륵보전 안에 17M의 부처님 상이 있는 대광사다. 고등학생 때는 수시로 부처님께 인사하러 가 재단에 향을 올리고 돌아오곤 했다. 스스로를 불교신자로도 생각하지 않지만 불교에 깃든 의미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가끔 좋은 가르침을 얻기도 했다.
종교는 굉장히 흥미로운 세계이다. 이 세상에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 인간을 겸손하게 한다는 점에서 나는 종교를 가지는 행위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들이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면서도 신의 뜻을 내세우며 차별을 서슴없이 행한다.
터키의 인구 98%는 이슬람을 믿는다. 이슬람에 대해 아예 무지한 채로 가장 유명한 이슬람 사원 중 하나인 블루 모스크Blue Mosque를 방문했다. 건물은 대리석으로 되어있고 건축 양식은 유럽의 성 같으면서도 푸른 색채나 대리석의 문양들이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입구 옆 쪽으로 붙어있는 수도에서는 남자들이 발을 씻고 있었다. 사원에는 보통 맨발로 들어가기 때문에, 신께 기도 드리기 전 발을 깨끗이 한다는 것이다. 여성인 관광객들은 입구에서 천을 받아 머리를 가리고 들어가야 했다.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은 베이자는 치마 같아 보이는 천을 두르기도 해야 했다. 히잡을 쓰고 들어간 사원 안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천장이 높았고 사람들이 모두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해서 발 냄새가 났다. 관광객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힌 한 공간에서 이슬람 신자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안을 둘러보던 중 이슬람에 대한 안내 책자가 있는 곳 옆에 서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남자는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독일어, 영어, 한국어로 된 이슬람 경전 코란을 손에 쥐어주었다. 괜찮다면 이슬람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블루모스크 내부
남자는 이렇게 시작했다.
이슬람은 평화를 위한 종교입니다. 이슬람에서 믿는 하느님과 기독교의 하느님은 같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유일합니다. 이슬람에서는 예수나 모세와 같은 인물들을 신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메타포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원 안을 둘러보세요. 이슬람은 하느님의 형상을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초상이나 신을 위한 재단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슬람 신자들은 사원 아무 곳에서나 방향에 무관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진 좋았다. 평화를 위한다는 말에 누가 토를 달겠는가. 장자가 떠오르기도 했다. 장자에서는 도를 이야기하지만, 도가 무엇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저 이야기 예시들을 불러와 이런 행위는 도와 비슷하다고 말할 뿐이다. 도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본인에게 주어진 탐구 영역이다.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아파서 의사한테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을 때, 당신은 그가 평생 배운 의학 지식에 대해 모두 묻지 않습니다. 당신은 그냥 믿고 따릅니다. 우리에게는 코란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코란에는 당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동 양식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코란에 쓰여진 대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세계의 인구의 4분의 1, 16억명이 이슬람을 믿고 있습니다.
남자는 질문할 틈을 주지 않았다. 나는 슬슬 내가 히잡까지 쓰고 이런 말을 듣고 있다는 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내게 남자의 말은 설득력이 아예 없었고 위험한 발상처럼 들렸다. 최초의 코란도 인간이 쓰지 않았겠냐고, 그럼 왜 여자들은 차별받으면서도 이슬람을 믿는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주어졌으니 믿으라는 건데 전 세계 16억명이나 이슬람을 믿는다는 게 트루먼쇼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우리는 불편한 마음이 한가득이었지만 결국 그의 말을 듣기만 하다 사원의 기도시간이 되어 퇴장해야 했다. 잘 알아야 반박할 수 있다는 마음에 그날 밤 우리는 사원에서 가지고 온 코란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남자와 이야기하던 사원에서 나와 이슬람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는데 T 무릎에 와 낮잠을 잤던 검은 고양이.
코란은 남자가 말한 것과 같이 행동 지침이었다. 내가 읽어본 성경이나 동양 고전들에 비교하면 그들은 이야기 위주인 반면에 코란은 신의 권능함을 강조하며 굉장히 구체적으로 행동 방식을 지시하고 있다. 그리고 굉장히 남성주의적 관점으로 쓰여있다. ‘남성은 여성의 보호자이며, 건전한 여성은 헌신적으로 남성을 따라야 하며 순종하지 않는 여자는 때려주라.’라는 구절을 읽으면서는 불편함을 숨기기가 어려워졌다. 내가 한정된 정보만 접하고 있는걸까 싶어 인터넷에 검색해봐도 뭔가 좀 이상했다. 인터넷에서는 다들 이슬람이 다 테러리스트는 아니라는 말하는 것에만 집중해 있었다.
그날 밤 니키와 이야기를 나눴다. 니키는 이 종교가 너무 위험해서 이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나 국가에 들어오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논리 자체가 차별을 정당화하려는 이들의 논리라 이 생각을 하고 자기도 놀랐다고 했다. 완전히 해볼 만한 생각이었다. 이미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공생해야 할 지에 대한 조금은 현실적인 질문이 생긴 것 같았다. 몇일 뒤 니키와 다시 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니키는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해본 바를 말해줬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이런 자유적 가치를 방해하는 사람들이지, 무슬림이라는 특정한 집단이 아니야. 코란에 씌여진 걸 보면 무슬림이 자주 이러한 가치와 반대되는 쪽에 있지만, 무슬림만을 그렇게 특정해서 말한다면 그건 차별인 것 같아.
맞는 말이었다.
터키는 내가 처음 방문해본 이슬람 국가다. 이슬람에 적잖이 충격 받아 질문을 계속 하는 나에게 베이자는 터키의 이슬람은 이란 등의 나라에 비교하면 극단적인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다. 예를 들면 한 커플이 결혼을 약속하기 위해 증인을 부를 때, 여자는 남자의 반이기 떄문에 남자 2명을 부르거나 여자 4명을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100개도 넘게 더 해줄 수 있다고 했다. 16억이라는 거대한 숫자의 무슬림 중 반은 여자일텐데, 왜 그들은 자신에게 수많은 제약이 걸림에도 이슬람을 믿는 건지, 왜 대부분의 테러리스트들은 무슬림인지, 질문들에 베이자는 이렇게 답해줬다.
그들에게 종교를 선택할 자유가 동등하게 주어지는 건 아닐거야. 네가 태어났는데 네 가족이 독실한 무슬림이라면 너도 그 공동체에서 배척되지 않기 위해 그들과 비슷해져야 했을 경우가 대부분이었을거야. 그리고 이슬람 국가들이 대체로 발전한 지역이 아니기에 모두가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 이슬람에는 지하드Jihad(영어로는 striving, struggling)라는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는 용어와 힘을 상징하는 가자Gaza(영어로는 Power, Strength)라는 개념이 있어. 해석의 차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살인이나 무력이 허용될 수 있다는 거야.
이슬람은 다양성과는 거리가 먼 종교구나, 아니 사실 그런 종교가 있던가 싶어지며, 종교란 무엇인지 또는 세상의 복잡함에 대해 가늠해보게 되었다.
그리운 장소에 초대하기
터키에서 유독 한국 생각을 많이 했다. 나의 고향과 비슷한 점 또는 안 비슷한 점들을 보며 한국을 떠올렸다. 터키에는 하맘Hamam이라고 불리는 대중목욕탕이 있다.(한국에서는 사우나가 한국에만 있는 특이한 문화처럼 여기지만 터키 뿐만 아니라 독일에도 목욕탕이 흔하다. 보통 남녀 혼성이며 독일 사람들은 재정적 여유가 있으면 집에 습식 사우나를 설치할 만큼 좋아한다.) 이슬람에서는 신을 뵙기 전 몸을 씻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고 한다. 한국의 공중 목욕탕처럼 가운데 뜨거운 물을 두고 바가지로 몸에 물을 부으며 목욕하는 방식이고, 한국의 세신사처럼 마사지를 해주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이 사우나의 존재가 자꾸 죽전에 있는 누리에뜰 사우나를 생각나게 했다. 목욕시설 뿐 만 아니라 안마의자, PC방, 노래방 등 놀이 시설도 굉장히 잘 되어있어 종종 갔던 곳이다. 이들과 목욕탕에서 주는 황토색 옷 입고, 식당에서 미역국 한 사발 들이키고, 몸 뿔려 때 밀고, 식혜랑 구운 계란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재밌을 것 같았다.
나는 이들을 어디에 데려가서 무엇을 하고 싶을까? 다들 내가 해주는 떡볶이를 좋아하니 미금역에 있는 나의 근본 떡볶이집 영심이네, 솔이 엄마가 하시는 한의원 가서 침 맞고 쑥뜸 냄새에 취해 달큰한 낮잠 자기, 집 근처의 절에 가서 노을 보기, 고기동 끝에 있는 한정식 집 산사랑에 가서 한국의 반찬 문화 보여주기, 고모네 양계장, 내 친구들이 평화운동을 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남해의 전통시장, 한옥 인테리어를 한 사찰음식점. 차를 빌려 전국을 한 바퀴 도는 모습도 상상해보았다. 한국에 가기를 주저하면서도 그리운 장소들이 생각났다. 나에게는 숨 쉬듯이 자연스럽지만, 이들에게는 그곳에서 무엇이 새롭고 놀라울지 궁금해졌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함께 한국에 가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 이들을 초대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며 여행이 끝이 났다.
터키 원정대. T가 중간에 돌아가야 해서 마지막 남은 최후의 4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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