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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를 위한 사주명리

[MZ세대를 위한 사주명리] 프로 퇴사러 MZ가 사주명리학을 만나기까지

by 북드라망 2025. 9. 3.
오늘,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바로 <MZ세대를 위한 사주명리> 코너인데요, 남산강학원에서 활동 중인 지영, 보경샘께서 연재해주십니다. 이 두 분은 다른 공동체에 사주명리 강의하시는 강사로도 활동하고 계시지요! 왜 사주명리학을 MZ들이 반드시 배워야할까요? MZ세대와 사주명리학의 운명적 만남! MZ세대인 지영샘과 보경샘께서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사주명리학! 앞으로의 연재를 기대해주셔요~*

 

프로 퇴사러 MZ가 사주명리학을 만나기까지

김 지 영(남산강학원)

 


사주명리를 처음 만나다
나는 친구들과 재미삼아 사주 카페를 가끔 들리곤 했다. 고작 태어난 연월일시만 알려준 것 뿐인데, 암호를 해독하듯이 나에 대한 정보를 술술 이야기 해주는 것이 너무 흥미로웠다. 태어난 날짜만으로 나의 성향뿐만 아니라 내 인생의 앞날까지 알려주다니! 마치 바다에 그물 하나 던졌을 뿐인데 다양한 물고기들이 줄줄이 딸려 올라오는 것 같았다. 올해 남자친구가 언제 생길 것이고, 20대 후반에 만난 사람과는 절대 결혼하지 말 것이며, 결혼은 언제할지 등. 가장 궁금했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알려줄 때는 역술가가 말하는 내용을 한 톨도 빠트리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두뇌를 풀가동 했다. 사주명리를 미신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듣는 경험 자체가 재밌었다. 그 이야기가 신빙성이 있든 없든 ‘나’라는 사람에 대해 누군가가 이렇게 섬세하게 풀이해 주는 경험이 있었던가?

나에 대해 알려주는 재미만으로 찾았던 건 아니다. 인생이 막막하여 답을 찾고 싶은 마음에 최후의 수단으로 철학관을 찾기도 했다. 어렵게 입사한 첫 직장에서 적응이 쉽지 않아 퇴사를 고민하던 때였다. 첫 직장은 영화관이었는데, 그곳은 나의 꿈의 직장이었다.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만나는 그 다이나믹함이 좋았다. 출근길이 매일 즐거웠고, 크리스마스처럼 손님이 많을 때는 더 즐거웠다. 그때 영화관 관리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취준생이 그렇듯 나 역시 서류 절차에서만 수십 번 떨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관에서 최종 합격 전화가 왔을 때는 감사함에 몸 둘 바를 몰라 전화 중에도 허리를 몇 번이나 숙였는지 모른다. 아, 이제 원하는 회사를 가게 됐으니 내 인생에서 더 이상의 고비는 없겠구나 싶었다.

직장은 처음인지라 그저 열심히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나는 성실한 편이었지만 일머리가 있진 않았다. 나의 직속 사수는 영화관 내에서도 일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나는 주어진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혼이 났다. 그땐 왜 그렇게 주눅이 드는지 점점 마음이 쪼그라 들었다. 사수와 늘 붙어서 일해야 되는데, 나는 점점 그와 대화조차 두려워졌다. 다른 동료들과는 잘 지냈으나 사수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퇴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입사한 지 1년이 안 됐으니 당연히 힘든 거 아닐까? 남들은 잘 다니는데 내가 나약해서 그런 건 아닐까?’ 직장 선배나 친구들은 하나같이 버티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모두가 똑같이 말했다. 맞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꾸역꾸역 버텼다. 그런데 출근하는 버스가 사고 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매일 반복되자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그때 사주가 생각났다. 이렇게 괴로운데 계속 회사를 다니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사람들 말처럼 그저 버티는 게 맞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괴로움이 극에 달하자 나도 모르게 철학관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용~하다는 곳을 추천받아 2시간을 걸려 도착했다.

생년월일시를 말하자, 역술가는 종이에 알 수 없는 한자들을 쭉 써 내려갔다. 운명이 나에게 뭐라고 할지 한자의 획이 그어질 때마다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마침내 종이를 꽉 채운 뒤 역술가가 말했다. 몇 년 지나면 편안해질 것이니 절대 퇴사하지 말라고. 그 말을 듣고 대략 난감했다. 하이고, 이제 어떡하지. 운명을 따를 것인가, 내 의지대로 행할 것인가!

최후의 수단이던 철학관의 조언을 듣고 나서도 퇴사에 대한 마음이 접히지 않는 것을 보며 그제야 내 마음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 정말 퇴사하고 싶구나. 결국 운명의 조언을 거슬렀다. 철학관을 다녀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발로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결국 운명은 내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라는 걸 경험하며 그 이후 철학관을 찾아가 답을 구하지 않았다. 나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도 몰라요
첫 직장을 나온 뒤 내가 원하던 다른 직업이 또 무엇이 있었는지 고민해보았다. 당시 유튜브에서 본 자기계발과 관련된 강의를 쉽고 재밌게 하는 강사들이 떠올랐다. 그런데 고작 20대 중반이었던 내가 무슨 수로 그런 강사가 될 수 있을까. 경험도 지혜도 미천했다. 그래서 그나마 많이 해 본 서비스업 경력을 살려서 서비스강사가 되었다. 첫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던 것과 달리 한 달 만에 두 번째 직장에 입사했다. 주로 대학교에서 나의 고객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를 했다. 작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고 깨달은 바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볼 때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강의 경험이 쌓이면서 기업 강의까지 맡게 되었다. 기업 수강생은 나보다 인생경험이 훨 많은 중년 여성과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맡은 주제는 ‘리더십’이었다. 대략 난감하였다. ‘내가? 리더십을?’ 여러 명을 책임져 본 적도 없을뿐더러 아니, 내 삶의 리더도 못 되고 있는데 어떻게 리더십 강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분들 앞에서 내가 마치 그들보다 뭔가를 더 잘 알고 있다는 듯이 꾸며내다 보니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직접 경험하여 느낀 깨달음을 전달할 때는 듣는 사람도 나도 재밌었지만, 억지로 꾸며낸 이야기는 모두에게 고역이었다.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듯이 말하는 강의는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퇴사를 감행했다. 첫 번째 퇴사와 달리 두 번째 퇴사는 큰 고민도 없었다. 내 마음을 따르면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직장은 겨우 일 년 조금 넘게 다니고 퇴사했다. 그때가 26살이었다. 두 번째 직장마저 오래 다니지 못하고 나오다 보니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신중하게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통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했다. 매체에서는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데, 도대체 좋아하는 걸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몰랐다. 좋아하는 걸 찾으려면 경험을 많이 해보라는데,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여기서 무슨 경험을 더 해보라는 건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래서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고 매일 봐도 사랑스러운 것이 뭐였더라? 바로, 동물이었다. 오, 그래! 귀여운 동물들을 돌보는 직업은 오래 할 수 있을 거야! 라며 동물병원에 들어갔다. 실제로 동물들과 일하는 건 몹시 행복한 일이었다. 일하다가 지쳐도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묘하게 그들에게 힘을 받곤 했으니깐 말이다. 그렇게 1년 6개월이 지났을 쯤, 갑자기 ‘나 평생 이렇게 동물병원에서만 일해야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몇 년을 더 할 생각을 하니깐 소름이 돋았던 것이다. 이제 프로 퇴사러가 되어버렸기에 이번 퇴사도 어렵지 않았다.

29살이었다. 일관성 없는 중구난방 커리어에 나이도 있다 보니 이번에는 이직이 쉽지 않았다. 어정쩡한 20대 후반의 구직자. 그만 방황하고 싶었기에 더 이상 좋아하는 일을 찾지 않기로 했다. 뽑아주는 곳이면 어디든 입사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나의 동물병원 경험을 좋게 본 한 회사에 운 좋게 합격하였다. 이후 이곳을 포함하여 총 4군데의 스타트업을 이직하며 옮겨 다니다 보니, 9년 동안 7개의 회사를 다닌 경력이 생기게 되었다.

마지막 다녔던 회사는 내 커리어의 정점이었다. 기존 박봉이던 곳과 달리 높은 연봉에 복지와 동료들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러나 잠을 잘 못 잤고 편히 쉴 수 없었다. 일이 너무 많았기에 쉬는 날에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도저히 피곤하여 일을 못하게 되면 마음 한구석이 몹시 불편했다. ‘일 해야 되는데, 왜 누워만 있어. 지금 조금이라도 해놔야 다음 주에 편할 텐데…’ 스스로가 게으르게 느껴지면서 나약함을 원망하기 일쑤였다. 이 회사를 다니면서 어느새 쉬는 법 자체를 까먹게 되었다. 완벽하다고 생각한 곳에서조차 또다시 퇴사하고 싶어 하는 걸 보니 이제는 ‘내가 정상이 아니구나’ 싶었다. 앞으로 어느 회사를 가도 적응하지 못할 것이 뻔히 보였다. 연봉이 올라도 기쁘지 않았다. 연봉이 올라갈수록 일을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일이 많다고 회사에 불만을 터뜨리면 리더가 일을 줄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일을 덜하면서 연봉은 여전히 많이 받으니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고역이었다. 회사에서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월급, 복지, 동료, 업무 등 모든 것이 갖춰졌는데도 나는 왜 여전히 퇴사를 하고 싶어 할까?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이제는 나도 그 이유를 모르겠으니 더 답답했다. 좋은 직장만 가면 인생이 술술 풀리는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괴로운 것인지. 복에 겨운 줄 모르고 나약하게 퇴사나 하려는 마음을 자책하다보니 갑자기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당시 나는 회사에서 제일 인정받고 있을 때였다.

나의 사주를 살짝 스포하자면, 나는 재성이 과다한 편이다. 재성이 많다는 건 일과의 인연이 깊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 그 기운은 다양한 회사와 업무를 경험하는 기회로 발현되었다. 만약 그때, 운명의 지도를 스스로 읽을 수 있었다면 이유를 알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 그저 ‘나만 왜 이렇게 나약하지?’라며 자책하진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사주명리를 통해 나의 운명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동안 해석되지 않던 삶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느낌이었고, 그만큼 해방감이 밀려들었다.

 

 

 

사주명리를 다시 만나다
완벽한 조건의 회사에서 가장 괴롭게 일하고 있던 그 당시, 우연히 한 선배의 소개로 ‘감이당’이라는 공부 공동체에서 온라인 수업을 주말마다 듣고 있었다. 감이당은 인문학과 고전의 지혜를 배우며 일상을 공부로 채우는 곳이다. 나에게 감이당은 충격 그 자체였다. 노동하지 않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번 졸았지만 2년 동안 온라인 수업을 꾸준히 들었다. 머리에 지식이 쌓인 건 아니었다. 그러나 기존에 내가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너무 좁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게 되었고, 공부를 하면 그 시야를 넓힐 수 있을 거란 확신은 분명해 졌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을 배울 때마다 어떤 즐거움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지극한 재미가 있었다. 공부를 할수록 공부만큼 나와 남에게 이로운 다른 것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회사를 퇴사했다. 공부가 일상이 되는 삶을 살아보겠다며 간 감이당에서 사주명리학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처음 공부 공동체 갔을 때, 사람들이 MBTI를 묻지 않고 사주 일간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감이당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었을 때 사주명리의 기초 개념은 배운 상태라서 크게 놀라진 않았으나, 일상에서 사주명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대화가 오가는 것이 신기했다. 사주명리는 사주의 대가들이 진지하게 각 잡고 설명해주는 ‘권력의 명리학’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곳은 ‘모두의 명리학’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사주명리학을 많이 알든 조금 알든 기본 개념만으로도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인생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처음에 감이당에 와서 나의 사주를 스스로 해석하기 어려웠을 때는 도반들의 도움으로 괴로움의 원인을 찾았다. ‘대운이 바뀌어 공부를 시작했구나, 네가 왜 그렇게 일복이 많은지 알 것 같다(공부공동체에 오자마자 주방을 맡기도 했다), 아버지와의 불안정한 관계’ 등. 도반들은 나의 사주를 요리조리 함께 보며 이렇게도 해석해 보고, 저렇게도 해석해 보았다. 나조차도 찾기 어려웠던 괴로움의 원인을 사주명리학과 도반들의 도움을 통해 읽어 내자 그 괴로움이 다르게 보였다. 그때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야겠다고. 누군가 아프거나 괴로울 때, 그것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인간은 누구든 자신의 운명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던가. 친구를 만들기에 이보다 더 좋은 도구가 없었다. 사주명리학을 잘 공부해두면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게 나는 친구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사심 가득하게 사주명리학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의 비전탐구 지도, 사주명리
사주명리학은 기본만 알아도 친구를 만들기에 어렵지 않다. 그런데 나는 어쩌다가 사주명리학을 더 깊이 공부하게 됐을까? 미신으로 생각하던 사주명리를 어쩌다 강의까지 하게 되고 이렇게 책까지 쓰게 된 걸까. 사주명리학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는 사주명리학에서는 운명을 정해진 각본처럼 짜여있다고 말하는 줄 알았다. 길흉화복을 판단하여 미래를 맞히는 운세 풀이의 도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니 ‘정해진 운명’ 따위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주명리를 ‘숙명론’적으로 받아들이면 해석은 자연스레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데에만 머물게 된다. 나 역시 퇴사하기 직전에 철학관을 찾았으나 전문가의 조언을 흘려듣고 내 마음대로 행동했다. 운명은 결국에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행로이다. 물론, 그 마음이 아무 방향성도 없이 마구잡이로 요동치는 것은 아니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사람에게 타고난 ‘마음과 신체의 패턴’이 있다고 말한다. 그 패턴이 삶에서 반복되면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을 매번 반복하다보니 마치 운명이 정해져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타고난 패턴을 이해하게 되면 과거를 새로운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고, 미래 역시 다른 방식으로 연출할 수 있다. 사주명리학이 숙명론을 넘어 ‘비전탐구’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순간,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찝찝함이 사라졌다. 그 이후 나는 사주명리학의 실용적인 매력이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MZ세대 친구들은 사주명리학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전문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N포털 사이트에 따르면 서비스 이용률이 가장 높은 분야는 사주명리/타로 운세다. 그중 이용자의 72%가 바로 MZ세대라고 한다. 또한 모바일로 운세 콘텐츠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앱 역시 10~30대 비율도 무려 83%에 이른다. 한마디로 MZ세대들이 사주와 운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내 주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남녀를 불문하고 사주명리에 대한 관심은 높다. 하지만 대부분 스스로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전문가’나 ‘서비스’에 의존한다. 누군가에게 케어 받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에 대한 탐구도 직접 하기보다는 전문가 상담을 통해 해결 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MZ세대는 MBTI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상담 없이도 스스로 찾아보고 공부한다. 각 유형별 특징을 줄줄 외울 정도로 적극적으로 탐구하기도 한다. 반면 사주명리학에 대해서는 전문가나 주술가의 영역이라고 여기거나, 미신이라는 인식 때문에 거리감을 느껴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사주명리는 스스로 탐구하기보다는 전문가나 서비스에 맡겨버리는 일이 많다. 나는 이 점이 무척 안타까웠다. 사주명리학에 대한 오해를 풀고 더 많은 친구들, 특히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할지 모르는 MZ세대와 이 매력적인 지혜를 나누고 싶었다.

나는 사주명리학을 통해 그동안 설명되지 않던 내 모습을 이해하고 내 운명을 긍정하게 되었다. 이해하고 긍정하게 된 만큼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졌다. 예전에는 ‘왜 내 인생만 이토록 구겨졌을까’ 생각했지만, 명리학을 공부해보니 모두의 사주는 공평하게 구겨져 있었다. 나에게 없는 것이 타인에게 있고, 타인에게 없는 것이 나에게 있었다. 누군가는 시작은 쉽지만 마무리에 약하고, 누군가는 시작이 늦어도 끝맺음이 단단한 것처럼 말이다. 타인의 운으로 오늘 나의 밥 한 끼가 해결되기도 하고, 나의 운으로 누군가는 일이 풀리기도 한다. 부족하고 넘치는 점을 서로 보완하며 살아간다는 것도 내가 사주명리학을 통해 배운 관계성이다. 내가 나를 읽을 수 있는 만큼 타자가 보이기 시작했고, 타자가 보이기 시작하니 세상과 우주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주명리학을 통해 나와 타자, 그리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 것처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자연의 이치 속에서 배우게 된 것처럼, 친구들에게도 사주명리가 길흉을 점치는 도구가 아닌 비전을 탐구하는 도구로서 요긴하게 사용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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