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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융

[내가 만난 융] 마음의 갈피를 잡자! (1)

by 북드라망 2025. 4. 3.

마음의 갈피를 잡자! (1)

지산씨 (사이재)

 

심리학은 생물학도 생리학도 그 밖의 어떤 과학도 아닌 ‘심혼에 대한 지식’이다.
(칼 융,『원형과 무의식』, 솔출판사, 1990, 141쪽)


 
마음, 모르고 싶다!
칼 융의 저작은 이성, 의식, 의지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설명한다는 게 얼마나 무색하고 쓸모없는 짓인지를 보여준다. 융이 상대했던 사람들은 신경증이나 분열증을 앓던 환자였지만,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람들 또한 느닷없는 강박, 공포, 불안, 콤플렉스를 겪는다. 이성 너머에서, 의식 저편에서 어떤 정신들이, 어떤 신체적 현상들이 불쑥 솟아 나와 인간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이런 사로잡힘은 인간의 의지로 제압되지 않는다.

우리도 어렴풋이 알기는 안다.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누군가는 이유 없이 밉고, 누군가에게는 쓸데없이 적개심이 일어난다. 분명 나임에는 틀림없지만 도저히 나라고 인정하기 싫은, 더 나아가 나라고 하기엔 내가 손을 쓸 수 없는 마음들이 솟구쳐서 나를 붙들고는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까딱하면 미칠 것 같은, 혹은 경계를 넘을 것 같은 상태들의 반복에 진땀을 흘릴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떨려오는 몸과 쪼이는 심장을 부여잡고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잠 못 들던 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겉으론 정의로운 양, 행위의 주체인 양 의기양양 뽐내고 다니지만, 내 안의 나는 날마다 외친다. 마음을 다스려! 정신줄 잡아! 손쓰지 못하는 마음에 자꾸 명령만 내린다.


 
생각해보니 우습다. ‘마음을 다스려!’라고 명령하면 마음이 다스려지는가?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다고 여기는 이 오만함은 또 무어란 말인가? 마음을 다스려보겠다고 명상을 하고, 108배를 하는 등 여러 시늉을 해보지만, 정작 자기 마음의 상태와 그 원인을 알려고 했는가? 마음이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나는 마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마음과 대화한다고 하는데 어떤 마음과 어떻게 하는 것이 대화란 말인가?

융을 읽고는 내가 얼마나 마음에 관해 무지, 무심, 무책임한지를 알게 되었다. 날마다 불안에 떨면서 불안의 정체는 알려고 하지 않고, 그 정도 그냥 넘겨도 된다고 여기는 무식함! 무지도 의지의 결과라더니, 마음을 알고 싶지 않았던 거다. 마음에 빗장을 지른 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무의식이라는 것이 아무리 쓸모없기로서니, 크기가 그렇게 작아도 곤충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보다 못하지는 않지 않은가?”(칼 융 외 지음, 『인간과 상징』, 열린책들, 40-41쪽)라는 융의 풍자적 탄식에 마음이 찔린다.

이건 둘 중 하나다. 마음을 얕보거나, 마음이 두렵거나! 그런데 이런 태도는 같은 태에서 나온 이란성 쌍둥이처럼 보인다. 얕보는 것과 두려운 건 결국 하나다. 영혼의 침투를 막으려는 의식의 책략이다. 자아와 의식의 비대함 속에 들려오는 영혼의 노크가 불편하기 때문에 하찮게 여겨 무시하거나, 두려움으로 회피하는 것이다.

영혼은 자신의 정체를 똑바로 보기를 촉구한다. 못나고 추악한 민낯까지 샅샅이 비추어 보라고 압박한다. 살던 대로 살지 않도록 자아를 뒤흔든다. 이 작업은 불편하고 불쾌하고 고통스럽다. 하여, 차라리 잠시 잠깐 심장이 쪼이고 몸이 떨려오는 게 낫다. 이미 알아차린 것이다. 그 요상하고 정체불명의 마음을 안다는 건, 편향된 의식과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는 일이라는 이 자명한 진실을. 그래서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나 유용하고 이로운 것들에 더욱 더 몰두한다. 그럴수록 마음의 공황은 더 심해지고 어떻게든 자신의 마성을 드러낼 기회만 호시탐탐 노린다. 허나 우리의 무지는 이 악순환을 운명으로 해석한다. 이성은 운명과 공모하여, 마음을 모르고자 하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모르는 마음, 감히 알려고 하라!
마음을 모른 채 공황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융은 근대인들의 정신적 공황 상태를 심각하게 인식했다. 20세기 인류는 영혼의 집을 잃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망연자실한 상태였다. 그들은 이 허무와 진공상태를 견딜 수 없기에 그 자리를 불합리한 사회적, 정치적 이념으로 채워버린다. 집단의식과 집단이념에 휩쓸린 인류는 종국에는 전쟁을 일으키고 인종주의와 같은 사회적 광기를 폭발시킨다. 마음의 불안과 공황을 들여다볼 힘을 잃어버린 채 과도한 이념의 무게에 짓눌리던 근대인들은 외부의 타자를 증오하는 집단적 광기로 손쉽게 얼굴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모든 책임을 이웃과 사회에 떠넘긴 채 영혼 없는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상징이 없기 때문에 야기되는 정신적 빈곤을 과감히 인정하는 게 더 나은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지성은 엄청난 것을 이룩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의 집은 허물어져 버렸다. 미국에서 제작된 최신의 가장 큰 반사망원경으로도, 가장 멀리에 있는 별 안개 뒤의 최고천을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틀림없이 확신한다.(『원형과 무의식』, 121쪽)


 
융이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정신적 빈곤이 낳은 참혹한 결과였다. 지성의 과도한 사용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정신들’ 즉 상징으로밖에 현시되지 않는 ‘정신들’을 이해할 기회를 박탈해버렸다. 하나의 해석이 불가능한, 지성 너머에서 사유해야만 이해되는 ‘상징’으로부터 현대인들은 한참을 멀어졌다. 일례로 하늘은 대기의 하늘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첨단 과학은 하늘과 신에 대한 정신의 실재를 앗아갔다. 우리에겐 ‘상징의 빈곤’, ‘정신의 빈곤’, ‘영혼의 상실’, ‘집단적 망상’만 남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 이 편리한 사고로 생각이란 걸 멈추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정신들과 소통할 어떤 통로도 막혀버렸다. 차라리 이런 상태를 인정하면 갈 길은 보일 터, 안타깝게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그 책임 소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융은 예리하게 짚어냈다. 이 모든 광기와 혐오와 미움은 영혼의 지도를 상실한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었다고. 21세기 우리들의 현재도 소름 끼치게 비슷하지 않은가?

꿈을 통해 세계대전의 불길을 보고, 온몸으로 사회의 광기에 저항했던 20세기 메디슨맨 (Medicine Man) 융! 융에게 전쟁이나 사회적 문제는 마음의 문제였다. “정치, 사회적 망상은 인과적으로 외부적 조건의 필연적 결과로서가 아니라 무의식의 결정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다.” (『원형과 무의식』, 131쪽)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지 않고 사회적, 집단적 망상과 광기로부터 자신과 세계를 구할 방법은 없다. 융이 ‘정신의 형이상학’에 온 생을 바친 이유는 정신적 공황으로 삶을 파괴하는 현대인들에게 영혼의 지도를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심리학은 왜 경험과학 중에서 가장 늦게 생겨났으며, 우리는 왜 무의식을 오래 전에 발견하지 못했고, 영원한 상들의 보물을 발굴해 내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심혼의 모든 것에 대해 직접적인 경험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더 광범위한 종교적 형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원형과 무의식』, 111쪽)


 
심리학은 20세기에 탄생했다. 광인들이 20세기에 별나게 많아져서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이해할 ‘의식(儀式)’이 그저 의식에 지나지 않고, 종교적 형식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즉 삶을 해석하고 마음을 돌보던, 교회 즉 종교라는 ‘영혼의 치유사’가 그 역할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융은 개신교 시대의 교회에 남아있는 건 지루한 설교와 강요된 맹목적 믿음뿐이라고 파악했다. 목사였던 아버지에게 융이 실망한 건 이 때문이다. 견진성사에서 성 삼위일체상을 정신의 상징으로 이해하는 앎이 자취를 감추었고, 예수의 삶을 우리의 삶으로 체험케 하는 의례가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하는 현실이 심리학을 탄생시킨 것이다. 갈 곳 모르는 영혼들이 번지수를 찾지 못하자 사람들은 교회가 아니라 병원을 찾게 되고 그 결과 심리학이 탄생하고, 정신분석이 시작된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정신, 무의식은 이렇게 발굴되었다.

부르주아 가족과 빅토리아시대 도덕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탄생시켰다면, 신성의 빛이 사라져버린 교회와 어둠에 갇힌 신성이 융의 분석심리학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런 결정적 차이가 융과 프로이트를 갈라서게 한 것이다. 융은 무의식을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성에너지로서의 리비도로 보지 않는다. 융에게 무의식은 정신적인 것이었다. 리비도는 성에너지가 아니라 생명에너지로 이해되었다.

융에 의하면 20세기의 발명품 무의식은 삶의 의미가 퇴색되는 지점에서 의미를 촉구하기 위해 상징의 형태로 스스로를 현시한다. 이렇게 보면 인격 해리, 마음의 분열은 자연스런 현상이요, 만인 공통의 현상이다. 다만 문제는 해리되고, 분열된 인격들을 인정하지 않을 때 일어난다. 의식의 어떤 조각들이 범람할 때 무의식은 자율적으로, 강박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꿈으로, 환상으로, 신체 증상으로, 어떤 정동(情動)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무의식은 의식의 입장에서 볼 때 위협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그 인격들이 모두 나를 구성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다음 과정이 열린다. 자아와는 다른, 자아가 모르는 존재이기에 타자인, 내 안의 타자들 그리고 외부에서 나를 비추는 타자들을 인정하여 그 설 자리를 조정하고 상호 침투될 때 정신은 빛을 발한다.

융은 그렇게 보았다. 이미 내 안에 여러 인격이 있다. 또한 그 인격들의 지도도 내 안에 있다. 그러니 감히 알려고 하라! 보이지 않는 그 마음의 신호에 응답하라! 프로이트로부터 출발했지만 융은 다른 항구에 닻을 내렸다. 영혼의 안내자 융은 이제까지 모르던 마음을 감히 발명했다. 저 시원의 생명체로부터 내려온, 유전하는 정신의 실재! 바로 집단무의식이다. 마음을 외면하는 자는 집단의식, 집단이념에 자신을 의탁한다. 융은 이 일방성의 위험에 대응하여 무의식이 출현하는 것임을 발견하였다. 무의식은 의식의 경향성을 숙고하게 하는 실재다. 달리 말해 집단의식의 대극으로서의 집단무의식에 주시하지 않으면, 그리고 그 무의식과 대화하지 않으면 삶은 의미를 창출하지 못할뿐더러 자칫 삶이 황폐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저 중국 명나라의 왕양명이 누대로 전수된 마음의 적골혈(滴骨血)을 발명하여 고귀한 사람살이의 실현을 알려주듯, 융은 20세기 심리의 적골혈, 집단무의식을 통해 마음의 길을 밝혀주었다. 적골혈은 같은 피를 이어받은 혈육이라는 뜻이다. 유전자가 발명되기 이전 시대에는, 혈육 간에는 피를 물에 떨어뜨리면 서로 뭉치고, 뼈에 떨어뜨리면 속으로 스며든다는 속설이 있었다. 국경, 인종을 막론하고 온 인류는 집단무의식이라는 공통적 정신을 이어받았다. 생명체의 청사진으로 영원히 이어지는! 어찌 알지 않을 수 있고, 어찌 환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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