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실 세미나에서의 청년들과 간디의 만남]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는 힘
박소연(남산강학원)
올해는 내게 여러모로 참 감사한 한 해다. 삶에 여러 가지 소중한 변화가 찾아왔다. 내면적으로 가장 큰 변화를 선물한 사건은 단연코 간디와의 만남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진실 세미나’ 시즌 1이 끝났을 때 간디는 내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았다. 간디의 삶은 내게 큰 울림을 주었고,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지 않도록 나를 경책해 주었다.
온갖 착취와 폭력 가운데에서도 간디는 불살생의 계율을, 수동적 저항을 말한다. 간디는 인도 독립을 위해서 걸었고, 단식했으며, 물레로 옷을 지었다. 아주 단순한 행위들이 그토록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핵심에는 ‘두려움 없는 마음’이 있다. 걷고 단식하고, 물레를 돌리는 행위 이전에 선행하는, 단단히 다져야 하는 마음. 이 ‘두려움 없는 마음’이 뇌리에 박혔다. 자연스레 내면의 여러 두려움을 관찰할 수 있었다. 관찰은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한 사람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다. 또한 마음 밑바닥에 내재한 내 욕망을 마주하게 했다.
다시 마주한 내 모습
작년 3월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와는 세 살부터 스무 살까지 17년을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남편 없이 두 딸을 잘 키워내신 강인하고 호탕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고지식한 면도 있었다. 이로 인한 어머니와의 크고 작은 갈등을 어릴 때부터 많이 봐왔다. 할머니는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주셨다. 나도 할머니를 참 좋아했지만, 어머니를 힘들게 할 때면 솔직히 밉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나를 돌봐주셨고, 조금 커서는 단짝 친구가 되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하지만 점차 우리의 시간은 거꾸로 흘렀다. 내가 성장할수록 할머니는 점점 많은 걸 스스로 할 수 없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내 할 일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하고 예전처럼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아니, 사실 그때는 할머니와 같이하고 싶지 않았다. 사랑과 안쓰러움이 마음 한편에 늘 있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걷는 속도가 매우 느린 할머니를 모시고 다니는 것도, 잔소리도, 심지어 나에 대한 따듯한 관심마저도 부담스럽고 싫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할머니에게 짜증을 내기도, 쌀쌀맞게 대하기도 했다. 친구 같던 손녀가 클수록 무뚝뚝해지니 속이 많이 상하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돌아가시기 3년 전, 뇌졸중이 연거푸 찾아왔고 할머니는 아이가 되었다. 치매는 아니었지만 매일 밤 섬망이 심했다. 섬망 증상이 없는 때에도 할머니의 몸은 제 기능을 많이 잃어서 아주 간단한 일조차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정말 당황스러웠고, 후회스러웠다. 이렇게 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걸,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걸…. 하지만 그런 아쉬움을 오래 곱씹을 겨를은 없었다.
나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지친 어머니와 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할머니 사이에서 괴로웠던 것 같다. 어머니가 정말 애를 많이 쓰셨다. 그걸 지켜보는 게 쉽지 않았다. 아버지가 출근하고 나면 어머니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할머니도 나를 자주 찾으셨다. 그래서 가끔은 내 삶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현실이 싫기도 했다.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집중하는 만큼 남은 일들은 내 몫이 되었으니. 집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숨을 쉬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자신을 혐오했다. 거기에 내가 뭘 하며 살고 싶은지, 뭘 원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막막함까지 더해져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스스로 지지고 볶으며 힘들어하던 3년이 지나고, 할머니는 훌쩍 떠나셨다.
내가 두려워했던 건 ‘수준 이하의 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할머니와의 기억을, 할머니 죽음의 순간을 외면해왔다. 생각이 나면 애써 다른 일에 집중했다. 왜 이럴까. 나는 상처를 받았었나? 그래서 일종의 방어기제를 작동시켰던 걸까? 할머니를 생각하면 이기적이었던 내 모습도 함께 떠올라 외면하고 싶었던 걸까? 그런데 잠시, 면밀하게 들여다보자.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후회와 아쉬움은 당연히 남는다. 그렇지만 그 사람을 추억하면서, 마음껏 생각하면서 아쉬움도 느끼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이를 외면하려 하고, 문득 떠오르기라도 할 때면 스스로를 혐오하는 마음을 가장 먼저 일으키는 데에는 숨겨진 욕망이 있다.
또 하나 더, 과연 내가 느꼈던 미움을, 막막함을, 잠시 벗어나고파 했던 마음을 순전히 이기심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힘든 상황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 않은가. 나는 왜 나를 존중하는 대신 내 감정을 확대해석해 나를 괴롭혔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겐 지키고 싶은 내 모습이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기적으로는 굴지 않는 나. 항상 착하고, 살가운 나. 그런데 나는 이기적이었고, 겉으로 사려 깊은 ‘척’을 하기도 했으며, 때론 어두운 표정으로 다니며 힘든 티를 내기도 했다. 나는 이런 내가 정말 싫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세상에 갈등 하나 없이 늘 좋은 관계가 있을까? 그런 관계는 있을 리 없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최상의 나’라는 표상을 설정해두고 그것에 강하게 애착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니 죽도 밥도 안됐다. 추억도, 참회도, 뭣도 제대로 하는 거 없이 최상의 나와 실망스러운 나 사이에서 두려움만 끊임없이 생산해내고 있었다.
“칼잡이에게 요구되는 지난한 노력도 두려움 없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두려움 없는 마음이 있다면 칼잡이는 곧 칼을 놓아 버릴 것입니다. 두려움이 없다면 칼잡이에게 더 이상 칼과 같은 도구는 필요치 않습니다. 증오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람은 칼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힌두 스와라지』, 지식을만드는지식, 121쪽)
칼을 놓아 버린 칼잡이라니, 통쾌함이 엄청났다. 칼을 놓아 버린 칼잡이는 더 이상 칼잡이가 아니다. ‘나’라는 관념을 놓아 버린 존재 또한 이처럼 자유로울 것이다. 할머니와 함께 보냈던 세월에, 할머니의 죽음에 이렇게 수많은 ‘나’들이 결부되어 있었다니. 결국 나는 할머니와의 이별보다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어리석은 내 모습을 더 두려워했던 거였다. 이 두려움, 즉 나에 대한 증오는 곧 나에 대한 집착이다. 두려움 없는 사람은 집착하지도, 방심하지도 않는다. 핵심은 망상을 덧붙이지 않는 것이다. 어떤 일에 ‘나’를 결부 짓지 않는 것이다. 고집할 ‘나’는 없다. 수동적 저항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수많은 왜곡을 낳는 ‘나’들을 칼잡이가 칼을 놓아 버리듯 놓아 버리는 데에서. ‘나’라는 표상을 벗어던지지 않는 이상 두려움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상처는 충만함으로
‘나’라는 관념을 내려놓고 할머니의 죽음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일은 없었다. 할머니를 떠올리곤 나를 보는 게 아니라 할머니만을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와의 마지막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할머니는 본인의 의지로 단식을 하고 집에서 돌아가셨다. 단식 이후 밤마다 심했던 섬망 증세가 신기하게도 곧 사라졌다. 버석하게 마른 몸과 달리 정신만은 맑고 또렷했다. 할머니는 스님이 된 큰딸과 절에서 수행하겠다는 작은딸 가족을 따라 불교와 인연을 맺은 이후 십여 년간 ‘관세음보살’ 기도를 입에서 놓지 않으셨다. 매일 염주를 돌리며 기도했고, 어디에서 무얼 하든 ‘관세음보살’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단식을 시작하고 한 달 동안 아버지는 저녁마다 할머니에게 『티벳 사자의 서』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죽음은 닳고 닳은 육신을 옷 벗듯이 훌훌 벗어버리고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생하다. 할머니의 지극했던 십여 년 기도와 어머니의 희생, 부모님과 이모의 절절했던 여행 준비. 이 삼박자가 완벽히 맞았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할머니는 항상 눈을 감고 계셨는데 돌아가시던 날 갑자기 눈을 뜨셨다. 그리고 “고맙다.” 세 글자를 외치고 다시 눈을 감으셨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할머니의 눈빛에는 두려운 기색이 없었다.
아름다운 마지막이었다. 할머니의 말년이 명상요가와 예불, 관세음보살 기도로 채워질 수 있었던 데에는 내 영향이 컸다. 세 살 된 나를 데리고 수행하러 절에 들어가셨던 부모님은 할머니도 함께하길 권했다. 모든 게 못마땅했지만 유일한 손주를 보려면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17년간 할머니는 지극하게 수행하셨다. 그리고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를 건네고 마지막 숨을 뱉으셨다. 할머니는 나를 계기로 70여 년간 익혀왔던 습관을 하나씩 끊어낼 수 있었다. 담배를 끊었고, 불같은 성미를 다스렸고, 고집을 내려놓았다. 나는 할머니에게서 혼미한 상태로 두려움에 떨다가 맞이하는 죽음이 아닌 편안하고 충만한 마지막을 배웠다. 삶을 완성하는 죽음을 할머니는 몸소 보여주셨고, 이는 내 마음속 큰 목표로 남았다. 아, 이제껏 이 소중한 인연을 상처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니!
‘두려움 없는 마음’은 2년 가까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던 돌덩이를 산산조각 냈다. 우리의 인연에 감사하는 가운데 아쉬움과 죄송함 또한 느낀다. 다만 그뿐이다. ‘나’라는 상을 붙들어 쥐고 이리저리 휘두르는 가련한 칼잡이는 되지 않겠다. 예기치 못했던 간디와의 만남에 감사한다.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의 근원인 나에 대한 집착, 나라고 하는 표상을 하나씩 내려놓는 일이 남았다. 간디 공부를 절대 멈출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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