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다른 존재와 연결되기
강평옥 쌤은 수지에 살며 인문공간세종에서 인류학 공부를 하고 계신다. 우리는 수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운동을 하고 오셨다는 선생님이 먼저 내게 안부를 여쭤보셨다. 요즘 만나고 있는 은둔고립청년 이야기를 조금 해드렸더니, 곧바로 은둔고립청년들에게 화가 많을 것 같다고 짚으셨다. 놀랍게 정확했다. 은둔고립청년에 관해 처음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이 무기력하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노와 같은 격렬한 감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놓친다. 하지만 강평옥 쌤은 은둔고립청년들의 삶을 꽤 정확하게 그려내셨다.
인터뷰하며 그가 상상을 자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덕분에 그는 지금 이 자리에서 시간을 뛰어넘기도 하고, 공간을 이동하기도 하고, 존재를 변형하기도 한다. 글을 쓸 때는 주먹도끼 만드는 선사시대 사람들의 삶을 그렸고, 대구 박물관에 가서는 고래와 협응하며 사냥하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을,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현대 청년들의 삶을 상상했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뻔하지 않다. 상상의 기준이 ‘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상상은 시공간을 움직여 다른 존재들을 인식하는 것,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그 존재를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되는’ 작업이다. 그러니까, 인류학이다.
1. 소비에서 만들기로
어떻게 인문학 공부를 시작하게 되셨어요?
고미숙 선생님이 EBS에서 임꺽정 강의를 하신 걸 봤어요. 너무 재밌는 거예요. 당시에 검색을 해보니까 수유너머가 해방촌에 있더라고요. 회사와 집이 분당에 있었으니까, 너무 멀잖아요. 바쁘기도 했고요. 회사에 일이 많고 늘 야근해야 하고, 언제 불려 나갈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가끔씩 일 년에 한두 번씩, 잘 알지도 못하는 곳을, 5년 동안 검색했죠. 어느 날 검색을 하다가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검색해야 하지’ 했어요. 보니까 남산강학원이 충무로로 이사를 갔더라고요. 4박 5일 여름캠프가 열려서, 여름휴가를 포기하고 거기에 참석했어요. 숙박하면서 책도 읽고 낭송도 하고 나니까 묘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 남산강학원에서 1년짜리 프로그램을 들었어요. 마지막 학기에 규문에 계시는 채운 쌤의 니체 강의를 들다가 규문에 오게 됐고요. 규문에서 오선민 선생님의 글쓰기의 정원 수업을 들으면서는 제가 책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제대로 읽은 책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무슨 의미냐고 물어보시는데 대답을 하나도 못 하겠더라고요. ‘세상에 이런 게 있다니’, ‘나는 공부를 해야 되겠다’ 했죠.
거의 1년여 공부를 재미있게 했어요. 그러다가 개인적인 일로 공부를 거의 1년 반 안 하게 되었고요. 이렇게 공부와는 멀어지나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그때 오선민 선생님이 규문에서 나와서 세종으로 가시면서 전화를 주신 거예요. 제가 생각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처음 공부 시작하기까지도 5년이 걸렸잖아요. 그런데 오선민 선생님이 공부를 같이 하자고 하셨을 때는 하나도 묻지 않고 하게 됐어요. 지금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회사 다니기에 바빴지, 이럴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일에 엄청 몰두하셨었나봐요. 워커홀릭이셨을까요?
워커홀릭은 그 일이 좋아서 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 저는 그냥 시키는 일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처음에는 이 회사에만 들어가면 좋겠다, 그다음에는 여기서 버티면 좋겠다, 승진하면 좋겠다, 더 안정적이면 좋겠다, 이걸 계속했어요. 그러다가 지금은 10년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적이게 됐는데, 얼마나 더 안정적이어야 될까 싶어진 거죠.
사람들하고 술 먹으면 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그런 얘기 하잖아요. 그러면 저는 돈 많은 사람은 별로 부럽지 않고,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제 삶은 돈 많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처럼 살고 있는 거예요. 제가 저 자신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시작해야겠더라고요.
공부하고 글 써보니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예전에는 소비하는 걸 좋아했어요. 소비의 주체로서 돈 번 보람을 느끼는 거예요. 여전히 그렇기도 하지만, 요즘은 정말 이거밖에 없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가 단추를 못 달거든요. 청소도 잘 못하고, 만들기도 잘 못해요. 만드는 사람들은 만들기의 소중함을 알 텐데, 저는 그런 걸 잘 못 느껴봤어요.
그런데 더 이상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니까 요즘은 글쓰기를 통해서 그런 걸 해보고 있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 보고서를 만들지만, 보고서는 분업 프로세스 중 하나고, 이거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잖아요. 글쓰기는 보고서와 달라요. 수학 문제처럼, 아주 조그마한 거라도 자기가 풀면 재밌잖아요. 만든다는 게 엄청 힘들지만 자기만 느낄 수 있는 소중함이 있는 것 같아요.
2. 주먹도끼 만드는 것처럼 글 쓰기
북드라망에서 인문세 선생님들과 함께 <인류학을 나눌레오>를 연재하고 계시지요. 글은 어떻게 쓰고 계신가요?
팀을 꾸려서 두 달 전부터 시작해서 매주 사람들과 함께 보고 있어요. 우리는 그 사람이 쓰려고 했던 한 문장을 생각해 보고 그거에 대한 질문을 해요. 그래서 혼자 글을 쓰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방식으로요. 그렇게 적어도 8번은 고쳐서 올라가거든요. 일필휘지가 어디 있겠어요. 8번이 문제가 아니라 10번이라도 해야죠.
그래서 주말에는 거의 약속을 안 잡아요. 저녁 늦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피곤하더라고요. 출장도 많이 다니고 운전도 많이 하니까요. 출근이 1시간 정도 걸려요. 퇴근길에는 전화가 많이 오지만, 출근길에는 아직 근무 전이라 괜찮거든요. 그때 글에 관한 생각을 제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집에 와서는 주 3일 밤 10시부터 11시까지 인문세 온라인 독서실 ‘밤글이’에 참여해요. 10시에 줌을 켜서 각자 글을 쓰죠.
처음에는 ‘척’하며 그럴싸하게 쓰거든요. 사람들이 그 글을 보고 질문해 주면 나도 뭔지 모르겠으니까 집중하게 돼요. 진짜 궁금해지는 거죠. 답은 중요하지 않아요. 답을 푸는 과정에서 산으로 갔다가 들로 빠졌다가, ‘날씨도 좋은데 왜 이러고 있나’ 했다가, ‘내가 이걸 완성시킬 수 있을까’ 하기도 하고요. 마치 주먹도끼를 만드는 과정 같아요.
“선사시대에는 석기, 뇌, 고기 트라이앵글이 작동한다. (…)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윤리는 살아 숨 쉬던 ‘생명’과 먹을 것이 된 ‘고기’를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은 고기가 될 생명을 쫓느라 숨이 차게 뛰고 그 과정에서 가끔은 다치기도 하고, 고기를 잡고 해체하느라 도구를 만들면서 고심하고 또 도구를 만들다 자기 손을 찧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즉 신체 활동과 고통이 필요하다.” (강평옥, <석기, 뇌, 고기 트라이앵글>, <<인류학 탐구생활 vol.5 빙하 이후 이야기>>)
주먹도끼요?
전 시즌에 공부했던 <<빙하 이후>>(스티븐 마이든)에 주먹도끼 만드는 이야기가 서너 번 정도 나왔는데, 엄청난 훈련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게 조각이랑 똑같아서 깨진 걸 붙일 수 없잖아요. 각도와 힘을 조절해야 하고, 돌의 성질을 고려하면서 계산하기도 해야 하고요. 잘못됐으면 버릴지, 다시 해볼지 결정도 해야 하고요.
전곡선사박물관의 관장님 유튜브에 주먹도끼를 만드는 영상이 있어요. 거기가 주먹도끼가 대거 발견된 곳이거든요. 그걸 2시간 동안 봤는데, 특수한 장갑을 끼고 하시더라고요. 멍이 들기도 하고, 자기 손을 찢기도 해요. 그런데 하다 보면 손가락을 깨는 거지, 처음부터 손가락을 깨려고 시작하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12월 첫째 주에 북드라망 <인류학을 나눌레오>에 올라갈 글을 쓰고 있는데요. 주제가 관찰이에요. 쓰다가 너무 답답해서 회사 사람과 커피를 마시다가 관찰이 뭐라고 생각하냐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상대는 “그게 갑자기 뭔 소리예요?” 했죠. (웃음) 생각을 해보고, 뜯어고치고, 무너뜨리고….. 그런데 이거 쓰면서 좋았던 게 뭐냐면요, 제가 스스로 질문을 뽑아냈다는 거예요.
그렇게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책을 읽고, 답사를 가고, 글쓰기로 마무리하며 살고 있어요. 북드라망 <우리 세미나를 소개합니다>에 제가 쓴 글이 있어요. 한번 읽어보셔요.(링크) 인류학 공부가 얼마나 신체적인지 아실 수 있을 거예요.
3. 환산가능한 세계와 환산불가능한 세계
선생님께 인류학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아직 연구 중인데요. 인류학이라는 게 폭넓어서 뭐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내가 누구랑 살아가고 있고 뭐와 연결되어 있는지 연구하는 학문이거든요. 보통 우리가 살아갈 때 나의 능력, 나의 소유, 나의 욕망처럼 ‘나’로 귀결되잖아요. 그런데 인류학은 그 중심이 너무 자신에게 국한되지 않도록 하는 공부예요. 공부를 하면서 너무나 많은 존재와 함께 살고 있는데, 그 존재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보이지 않았던 거죠.
우리는 너무 쉽게 “상관없다”는 말을 쓰잖아요. 사실 내가 상관없다고 해도 사실은 상관있어요. 모든 것은 상관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상관없다”는 말이 애써서 연결을 부인하는 말 같아요. ‘관찰’에 관한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음에 ‘상관있다’로 글을 써야겠다 싶더라고요. 글쓰기는 이런 게 재밌는 것 같아요.
어떤 존재들을 보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공부 시작하기 전에는 먹는 것도 여행 가는 것도 엄청 좋아했어요. 주말에 하는 일이 뭐였냐면, 검색해서 어디 맛있다 그러면 찾아가는 거예요. 전국의 맛집 가고, 풍경 보고, 좋은 호텔에서 자고, 무슨 체험해 보는 거 좋아했죠. 그런데 지난 4-5년 사이에는 연구실 선생님들하고 답사를 많이 다녔어요. 제가 다녔던 여행과 많이 달랐죠. 같이 다니던 친구가 지금 불만이 엄청 많아요. 언니가 없어져서 혼자가 됐다고, 돌아오라고요. (웃음)
이번에 저희가 부산과 울산 쪽을 다녀왔어요. 출장 때문에 울산 장생포에 많이 갔었는데요. 고래고기를 먹으면서도 그것에 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공부하고 가서 보니, 이 땅에 고래가 살았고 사람들이 고래를 잡았다는 게 뭉클하잖아요. 고래를 잡을 때는 어떻게 했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저는 고기를 클릭해서 새벽에 받고, 냉장고에 넣었다가, 먹기만 하잖아요. 내가 보지 않으면 그냥 다 배경인 거예요.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 선사 시대 고래잡이배, 조선 시대 조운선, 작살포를 장착한 포경선이라는 서로 다른 배 3척을 탔던 사람들을 만났다. 한반도 바다 사람들은 모두 바다를 경외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살기 위해 분투했다. 나는 바다에서 내가 잃어버렸던 대칭성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강평옥, <바다, 대칭성의 공간>, <<인류학 탐구생활 vol.5 빙하 이후 이야기>>)
선생님의 무게 중심이 일에서 공부로 옮겨온 것일까요?
꼭 그렇다기 보다는요. 제가 부동산 관련된 일을 해요. 돈을 굴려서 돈을 벌려는 사람, 세금을 줄이려는 사람, 투자를 할지 말지 결정하려는 사람을 만나죠. 돈에 대한 욕망이 여기 들어가 있어요. 제가 그걸로 돈도 벌고 공부도 하니까,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이곳은 환산이 가능하고 대체가능한 세계인 거죠. 그런데 제가 공부하며 만나는 세계는 도무지 환산되지 않고 대체될 수 없는 곳이에요. 제가 그런 두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 것 같아요.
제 몸에도 엄청 베어 있을 거 아니에요. 편의적이고 효율적인게요. 내가 언제까지 얼마나 더 그럴지 생각해 봐요. 또 순간순간 어떤 것들을 대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자동으로 환산하고 있는지를 바라보고요. 그런 게 아주 큰 기쁨을 주죠. 원시 부족 공부를 하면서 그런 걸 생각해 보게 돼요.
강평옥 쌤의 직장은 돈-욕망의 한가운데에 있다. 하지만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자신의 일터를 도외시하지도 않는다. 그는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회사원이고 동시에 열심히 공부하는 인류학도이자 글 쓰는 사람이다. 두 세계의 사이, 그 어딘가에 강평옥 쌤의 현장이 존재한다. 독서, 답사, 글쓰기에서 자기 몸에 벤 직장의 세계를 발견한다. 출근길에는 써야 할 글을 떠올리고, 출근해서는 회사 동료들에게 글의 힌트를 얻고자 한다. 둘 중 어느 하나도 대상화하지 않은 덕분에 그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사이에서 새로운 공부의 장을 찾을 수 있었다. 나의 현장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대신 여러 각도에서 골똘히 살펴보는 것, 그것이 인류학도가 공부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인터뷰_김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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