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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쿵푸스, 만나러 갑니다

[호모쿵푸스, 만나러갑니다]생태: 생태적 삶, 내가 사는 세계를 질문하다

by 북드라망 2024. 10. 25.


생태: 생태적 삶, 내가 사는 세계를 질문하다

 

민호는 웃기다. 이게 내가 몇 년간 민호를 스치며 그에 대해 갖게 된 얄팍한 인상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개그동아리를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아, 역시!’하며 남몰래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다고 펀치라인을 멋지게 날리는 스타일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태연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주변의 공기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편에 가깝다.


인터뷰를 하고 나니 그러한 면모는 동아리보다도 종일 뛰어놀던 산천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냇가에서 개구리를 잡고 산에서 사슴벌레는 잡던 아이였다. 계속해서 그들의 뒤를 쫓기 위해, 그러니까 산천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갔다. 하필 ‘공대’에 간 바람에 그러한 바람은 좌절됐고, 우연히 인문학을 공부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다시 시골에 갈 생각을 한다. 아무래도 마음 한 구석에 여전히 개구리와 사슴벌레가 있는 듯하다.


산천이 그에게 개구리와 사슴벌레인 것처럼, 공부 역시도 그에게 구체적인 무언가다. 그는 정말로 친구들과 함께 살기 위한 공부, 자신과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한다. 개구리, 사슴벌레와 함께 사는 법을 배우고 싶었던 것처럼, 이 시대를 친구들과 함께 사는 법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

 



1. 냇가에서 개구리 잡고, 산에서 사슴벌레 잡고
어떻게 규문에 오게 되셨나요?
대학교를 갔는데요. 한 학기를 재밌게 놀고 방학이 되니까 동기들이 각자 집으로 갔어요. 저는 형하고 살던 자취방에서 시간을 떼우고 있었는데, 생산적인 일을 좀 해보고 싶더라고요. 고상하고 허세 부릴 수 있는 그런 일이요. 또 연애하고 싶은 마음도 강했는데 아무 데서나 만나기는 싫었었어요. 그때 저희 대안학교에서 책 읽기를 담당하셨던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렸죠.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곳이 규문이였어요.


아주 불순한 생각을 가지고, 책도 거의 읽어본 적 없는 상태로 규문에 찾아가게 됐어요. 다짜고짜 세미나에 등록했는데 첫날에 3명이 모인 거예요. 그런데 제가 찾는 연령대도 없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얼렁뚱땅 끝낸 다음에 대규모 세미나에 들어갔어요. 그때부터 스스로를 깍두기라고 여기면서, 다른 집단을 체험하러 왔다는 생각으로 다녔습니다. 지각하고 숙제도 안 해오고 술 먹다가 안 가기도 했어요.


군대에 가게 됐을 때도 채운 쌤이 글을 쓰라는 미션을 주셔서 한두 달에 한 편씩 보냈었고요. 휴가 때는 한두 번 찾아가서 밥을 얻어먹었어요. 공짜 밥이 엄청난 메리트였거든요. 전역하고 대학 다니면서는 규문에서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아니면 졸업을 빨리 해야 하나, 엄청 고민했죠. 그러다가 얼떨결에 ‘공부하고 여행하자’라는 컨셉의 소-생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한 달 동안 같이 여행을 갔다 오게 됐거든요. 일주일 동안이나 채운 쌤과 밤 산책을 같이하면서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당시에 규문에 공부하고 있던 다른 청년도 있었나요?

네다섯 명이 있었어요. 당시 저에게 굉장히 귀감이 됐죠. 저는 교회에서 살았고 대안학교를 나왔거든요. ‘정상적’인 삶을 살지는 않았는데 욕망은 ‘정상적’이었어요. 잘 졸업해서 좋은 스펙을 쌓고 돈을 많이 벌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게 저의 희망 같은 거였죠. 대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다 저와 비슷한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런데 규문에는 그런 욕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두려움 없이 사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저렇게도 살아지는군’하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를 그만두시고 난 뒤에 후회하신 적은 없으세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뛰어놀며 살았어요. 다녔던 대안학교들도 시골이었고요. 냇가에서 개구리 잡고, 산에서 사슴벌레 잡고, 풀 베고, 그렇게 살았어요. 곤충들, 동물들과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한국에는 동물을 쫓아다니며 연구하는 걸 배울 수 있는 학과가 없더라고요. 그나마 가장 연관이 있는 곳인 환경공학과를 갔는데, 공학은 생태적 자원을 이용하는 데 핵심이 있더라고요. 제가 잡고 놀던 사슴벌레를 살릴 수 없는 학문이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가 십몇 년째 비염이 심한데, 비염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가면 스테로이드제(일명 오트라빈) 처방을 해줘요. 환경공학이 그런 처방 같다고 생각했어요. 비염은 너무 많은 원인 속에서 생겨나는데, 부풀어 오른 비강에다가 스테로이드제를 뿌려서 잠깐 완화시키는 거잖아요. 곧 내성이 생기게 되고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없는 셈 치고 사람들을 안심시켜 주는 것 같아요. 당시에는 굉장히 진절머리를 내면서 떠났고요. 지금은 생태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2. 공부의 쓰임을 생각하다
규문에서 공부하시면서는 대학에서와는 다른, 나름의 고충이 있으실 것 같아요.
몇 주 뒤에 생태에 관한 강의를 해야 되는 상황인데요. 강의를 위해 공부하는 제 모습에 많은 질문이 들더라고요. 추동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경직되게 만드는 것도 같아요. 강의를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소화가 안 된 말을 전해야 된다는 게 좀 답답하기도 하고요. 배우고 싶고 계속 학생이고 싶은데 저와 같은 고민을 끌고 가는 사람이 주변에 잘 안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세미나를 하면 제가 튜터나 반장이 되어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상황이 벅차기도 하죠.


정리가 잘 안되는데, 공부하면서 쓰임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고여 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견문을 넓혀야 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문자로만 세상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익숙한 세계에 갇혀서 제가 마음 깊은 곳에 가지고 있는 두려움이나 연약함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어떤 때 세상을 문자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드세요?
제 오만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규문에 오신 분들은 일상이 다소 안정적인(?)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삶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까, 어느새 소비계층이 된 친구들을 만나거나 오늘처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회 현장에 가면 의문이 들 때가 있어요. 제가 지향하는 목표가 설득력이 없어지더라고요. 제 공부가 한정적인 범위의 사람들 사이에서만 길어 올려진 게 아닌가, 다른 바탕에서 다른 욕망과 문제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불통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너무 힘이 없고 전달력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요.


그래서 11월에 열리는 제 강의 <생태주의를 리좀화하라!>에 저와 다른 배경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함께 공부하는 분들은 들어본 얘기일 수도 있고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장에서 투쟁하시는 분이나 지방에서 숲과 나무를 보고 계신 분에게는 어떻게 들릴지가 궁금해요. 그리고 저처럼 기후 문제를 숙제처럼 갖고 있는 청년들도 많이 와서 문제를 제기해 주시면 좋겠고요.

 

그런데 이게 호모쿵푸스 관련 인터뷰인데, 공부에 대한 이런 고충도 괜찮을까요?

 

 


네 그럼요.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한다고 아무 고민이나 걱정이 없는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공부하며 만날 수 있는 모습을 들려드릴 수 있어서 좋아요. 민호 쌤은 꿈꾸는 미래의 모습이 있나요?

작년에 <청년, 루크레티우스를 만나다>가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올해 봄까지만 해도 소박하게 하루하루 공부할 수 있어서 정말 좋다, 뭘 이루지 않고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섰었는데요. 가을이 되니까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장기적으로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요. 막연하게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예전부터 하고 있고요. 넓은 세상을 한 바퀴 돌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돈을 많이 벌고 싶다거나 정규직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안 드는 것 같네요.


공부 공동체를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으실지 궁금해요.

어떤 방식이 될지 모르겠지만, 하고 싶어요. 이런 시대에 밥을 같이 해 먹고 공부하고, 그 비전 아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건 지금도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지금과 같은 형식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제가 주변에서 보고 있는 인문학 공동체에는 강력한 리더들이 있으신 것 같고 그분들의 출중한 강의력과 지식, 명성으로 운영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와 함께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은 외적인 스펙도 다르고 욕망이나 강의 능력, 글쓰기 능력도 매우 다르거든요. 그래서 어떤 공부 공동체를 꾸릴 수 있을지가 잘 그려지지 않네요.

 

 

3. 생태적 삶, 우리가 사는 세계를 질문하다
‘이런 시대’라고 하니 생각이 나네요. 작년에 책을 내시고 문탁에 북토크하러 오셨었잖아요. 그때 청년 세대의 무기력에 대해 이야기하셨던 게 기억나요. 요즘에도 그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데, 어떤 줄기를 잡고 고민을 이어가야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3년 전인가, 제 한 살 고등학교 선배가 자살을 했어요. 그러면서 주변에서 약을 먹는다는 친구, 상담을 받는다는 친구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맺고 있는 관계 밖으로 밀려나면 바로 우울해지는 저의 모습도 같이 비춰보게 되고요.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공허와 싸우고 있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저도 위태롭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고요.


언제 스스로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셨어요?

3-4년 전 인데요. 원치 않게 규문에서 방학을 맞게 된 일이 있었어요. 공부를 쉬어 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집에 일주일 동안 있었죠. 반지하 원룸이다 보니 햇빛이 한 줄기도 안 들고 할 일도 없는 거예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고, 마음속에 분노 같은 건 있는데 그게 어디를 향해야 되는지 모르겠고. 그때 좀 위태롭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최근에 친구 몇 명과 모여서 블로그를 쓰고 있어요. 한 친구가 주 6일을 일하고 밤에 퇴근해요. 생일날에도 그랬는데, 그날은 게임도 하고 싶지 않고 유투브도 보고 싶지 않았다는 얘기를 썼더라고요. 너무 위태로워서 아버지가 시골로 데려가서 사는 친구도 있고요. 또 제가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에게 보다 심각한 소식도 많이 들어요. 그러면서 제가 느끼거나 가지지 못했던 감각들, 신체적 위협을 배우게 됐어요. 제 친구들보다 더 한 공허와 싸우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민호 쌤은 생태적인 삶을 고민하고 계시잖아요. 이 문제와 ‘생태적인 삶’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있을까요?
아직은 잘 모르지겠만, 자기 손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공간을 꾸리고 돌보는 감각이 문제를 이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밥을 같이 해 먹으면 표면적으로만 봐도 배달 음식을 시킬 가능성이 줄고, 남기는 음식도 줄고, 냉장고도 하나면 되잖아요. 또 기후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먹어야 될지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 할 수 있고요. 먹고 싶은 것만 먹을 수 없고, 언제 뭐를 어떻게 해 먹어야 하는지 상의해야 하니까요. 


제가 규문에서 밥을 해보니 할 일이 많아도 다른 사람을 위해 음식을 준비할 때는 시간을 뺏긴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맛있게 먹어주면 기쁘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그 시간만큼은 활기가 돌고 딴생각도 안 할 수 있어요. 뿌듯하기도 하고요. 밥하는 건 늘 즐겁죠. 그래서 손발을 놀려 뭔가 만들고, 서로의 생활을 돌보는 일이 울적함의 사이클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그게 생태 문제와 직결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마음의 생태랄까요?


어떤 삶이 생태적 삶이라고 생각하세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이 시대에 자기성애적인 생태주의가 있는 것 같아요. 자기 흡족감에 기반해서 자기애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펼쳐지는 거죠. 전혀 생태적이지 않은 것도 생태주의라는 이름이 붙잖아요. 이를테면 ESG 경영이라던가요. 최근에 유명 배우가 자식을 위해 차를 구매했다는 뉴스가 났는데요. 차가 없었던 게 아니라, 자기 자식을 위해 본드를 하나도 쓰지 않은 수억짜리 캠핑카를 샀다는 거예요. 그걸 친환경적이라고 하는 거죠. 생태가 자기 정당성과 면죄부, 흡족감을 위해 이용되는 거예요.


그렇지만 생태주의에는 지금의 시대를 의문시하고 자기 삶을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동력도 있는 것 같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생태적인 삶이란, 글쎄요. 자기가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 같기도 해요. 자기가 알고 있던 바운더리가 흔들리게 되고, 일상에 대해 강렬한 태도를 취하는 삶을 생태적 삶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11월 8일부터 온라인에서 5주에 걸친 민호의 생태 강의가 열린다. (자세한 정보와 신청은 링크 에서) ‘생태’에 관해 탈탈 털어보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그가 오래도록 꿈꿔왔던 ‘생태적 삶’, 그리고 규문에 들어오며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 ‘인문학자의 삶’, 마지막으로 그와 친구들이 이 시대에 처해 있는 ‘무기력한 삶’이 그에게 마구 교차하고 있다. 인터뷰하는 동안 민호는 아직 그 삶들의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다며 은근슬쩍 거리를 두고 싶어 했다. 그러나 실제로 발 빼기는 그리 수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시골의 자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산천과 함께 살기를 생각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친구들의 아픔을 듣고 자신의 아픔을 곧잘 찾아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함께 서 있는 이들과 같이 사는 삶을 꿈꿀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인터뷰_김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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