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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쿵푸스, 만나러 갑니다

[호모쿵푸스, 만나러 갑니다] 별자리를 만나다 : 먼저 사람이 되자

by 북드라망 2024. 6. 21.

별자리를 만나다 : 먼저 사람이 되자

 

여기 별자리를 공부하는 전직 수의사가 있다. 별자리와 의학, 얼핏 들었을 때는 거리가 무척 멀어 보인다. 후자를 떠올리면 최첨단 장비와 '과학', '기술'이 생각난다. 어떤 문제가 있든 인간의 힘으로 장악하고 파악해 낼 것만 같다. 반면 전자를 생각하면 초자연이나 영성이 떠오른다. 우주의 운행에 인간의 문제를 맡겨둬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이재에서 공부하는 소담 쌤은 어떻게 동시에 이 둘에 관심을 두고 있는 걸까?

 


소담 쌤에 따르면 별자리와 의학에는 공통점이 꽤 있다. 우선 외울 게 많다. 소담 쌤은 수학 문제도 달달 외워서 풀어버리는 암기 능력자다. 외우는 걸 즐기는 것 같아 보인다. 둘째로 별자리와 의학은 모두 어떤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체계다. 소담 쌤은 건강한 것보다는 아픈 게 더 재밌단다. 그런 그에게 문제를 파악해서 적용하고, 거기서 또다른 배움을 얻는 것은 굉장한 기쁨이다.


그러나 암기와 문제해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소담 쌤은 별자리와 의학이 모두 수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가 동물병원 밖에서 의학과 별자리 공부를 계속하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먼저 사람이 되자


소담 쌤에게 궁금한 게 많아요. (웃음) 제가 아는 미약한 정보만으로도 특이한 행적을 밟고 계신 것처럼 보여서요.


공부의 시작부터 물어보시겠죠? (웃음) 춘천에서 초중고를 나왔어요. 지산씨가 인문서당 강원에 계셨잖아요. 그때 어머니한테 끌려서 강의를 몇 번 들었어요.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고 시간이 좀 남았었나 봐요. 어머니한테 물었더니 강좌부터 시작해 보라고 하셔서, 남산강학원에서 1년짜리 강의를 신청했어요. 그러다가 대학 생활이 다시 바빠졌죠.


수의학과를 나왔는데, 6년제예요. 너무 길잖아요. 3년차인 본과 1학년 때가 제일 빡세요. 그 시간이 지나면 알바를 하는 친구도 있고, 연애나 취미 생활에 힘을 쓰기도 하든요. 저는 그때 기숙사에 살았는데, 친구랑 노는 것도 질리고 학교에 짱박혀 있는 것도 답답해서 규문에서 1년 동안 수업을 들었어요. 루쉰, 소세키를 읽으며 글을 썼는데, 가나다부터 배우는 수준이었죠.


방학 때는 베이징과 뉴욕에서 열리는 감이당 캠프에 참가했어요. 이걸 계속 하면 재밌겠다 싶어서 휴학을 하고 남산강학원 기숙사 베어하우스에서 지냈죠. 청년 프로그램 위주로 들었어요. 학교 복학을 하고는 경남 진주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계속 수업을 들었고요.

 

경남에서 매주 오가셨어요? 대단하시네요!
마지막 학년에는 코로나라 학교를 거의 안 갔어요. 서울에서 지내면서 프로그램을 들었죠. 그러고 나서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연구실 공부가 재밌기는 한데, 의학 공부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우선 의학 자격증은 따놓자, 했죠. 따고 나니까 그래도 일은 한번 해봐야겠다 싶어서 동물병원에 들어갔어요. 그 뒤로는 일 년간 주 3일만 출근하면서 사이재 프로그램을 듣다가, 작년 초에 일을 그만두고 눌러앉게 됐어요.

동물병원 일은 어쩌다가 그만두게 되셨어요? 동물병원 다니시면서 MVQ에 글 쓰셨잖아요. 되게 재밌게 읽었어요.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공부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어요. 병원 일이 좀 답답한 거예요.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처음 하는 일이니까 신경 쓰이는 것도 있고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긴장이 많이 되기도 했어요. 물론 재밌는 지점도 있어서 MVQ에 글을 쓰기도 했죠.


글을 쓰면서 제가 동물은 둘째 치고, 보호자한테도 마음을 많이 못 주는 게 느껴졌어요. 동물을 오래 키운 경험이 없다 보니까 왜 저렇게 행동하지, 하는 것도 많았고요. 사실 그런 것까지 고려하면서 의사가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좋은 의사 사례도 많고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까지 안 되는 것 같았어요. MVQ 글이 안 풀렸죠.


부끄러운 모습이 많았어요. 자괴감이 들고, 성질도 나고,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도 동물 관련한 이야기가 나오면 정리가 잘 안될 때가 있어요.

 

스스로를 부끄럽다고 느끼셨다는 게 멋있는 것 같아요.
더 멋있으려면 바꾸면 될 텐데, 쉽지 않았어요. 연재가 그런 기회이기도 했을 텐데 때가 아니었나 봐요. 글을 못 쓰겠다고 얘기하고 나니까 해피해피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그때만큼 고민을 열심히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일을 피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기분이 많이 다운되어 있었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인가 고민도 했고요.


'아직 사람이 덜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병원에서도 연구실 생활에서도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번뇌가 일어났을 때, 그걸 확실하게 넘어가 보라고 지지해 줄 곳은 연구실인 것 같았어요. 일은 어떤 식으로든 할 수 있는 거니까 내가 사람이 될 수 있는 곳으로 가자, 해서 연구실에서 공부하게 됐죠.


2. 사람을 받아들이는 공부, 별자리

연구실에서 생활하면서 이전보다 좀 더 사람이 되신 것 같으세요?
의사가 되기에 저는 좀 쪼잔한 것 같아요. 텍스트를 분석하는 건 굉장히 재밌거든요. 텍스트는 이해를 못 해도 내 잘못이지 텍스트 잘못이 아닌데, 사람한테는 그런 태도를 잘 못 취해요. 어떤 사람과 부딪히면 그 사람 탓으로 돌리게 되더라고요. 사실 신체적인 차이도 있을 텐데, 그런 걸 잘 읽어낼 수 있는 쪽으로 공부가 더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 공부에 별자리가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별자리를 처음 공부하셨을 때 어떠셨을지 궁금해요.
제 차트 보는 걸 좋아했어요. 어떤 지점을 포인트로 잡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거든요. 남들한테 말 못 할 고민을 혼자 풀어볼 수도 있었고요. 제 태양이 11번과 12번에 걸쳐 있는데, 11번은 공동체 하우스고 12번은 무의식 하우스거든요. 12번에 뭐가 있는 사람들이 사주나 별자리 공부를 많이 한대요. 그 영향도 있었을 것 같아요.

태양이요?
태양은 나의 중심이 되는 거예요. 사주로 치면 일간 같은 거죠. 가장 편할 때 쓰는 별자리라서 처음 만난 사람한테는 오히려 잘 안 나와요. 처음 만난 사람에게는 동쪽 별자리가 더 많이 보이죠. 동쪽 별자리는 내가 보이고 싶은 사회적인 모습이에요. 또 태양이 내가 밖으로 드러내고 싶은 액션이라면, 달은 내가 받아들이는 방식이에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감정을 어떻게 느끼는지가 달에 배속되죠.


행성은 똑같이 10개고, 별자리도 12개가 있는데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행성들끼리 이루고 있는 각도도 있어요. 예를 들어 태양이 전갈자리라 통찰력 있고, 숨겨뒀다가 펼치는 액션을 굉장히 잘해요. 근데 달이 반대편인 황소자리에요. 그러면 내가 하는 행동이 편안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죠. 디테일하게 들어가면 더 세밀한 행성도 있어요. 머큐리는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방식, 비너스는 관계를 맺거나 돈을 벌 때 쓰는 방식이죠.

 

별자리 공부를 계속 해 보니 어떠세요?
별자리와 전생에 인연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붙어요. 제가 사람을 받아들이는 폭이 넓은 편이 아닌데요. 별자리를 봐주고 사람 얘기도 듣다 보니까 그게 좀 넓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별자리 차트를 읽어주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않은 관점으로 말하게 될 때가 있거든요. 신기하죠. 사람의 고민을 별자리를 통해 보면 더 세밀하게 읽히기도 하고요.


별자리가 내 한계를 보여주기도 해요. 또 누구나 별자리를 가지고 있잖아요. 어떤 별자리든 깊게 파보면 다 너무 멋있는 거예요. 현실에서 그렇게 살 수 있느냐는 둘째 문제이지만, 별자리를 보면서 사람의 기질이라는 게 멋있게 갈고 닦일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확신을 많이 얻은 것 같아요. 멋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들 별자리가 궁금하기도 하고요. '저 별자리를 저런 식으로 쓸 수가 있구나' 그렇게 공부하면서 멋있는 리스트를 작성해 뒀어요. (웃음)

 

멋있는 리스트라니, 궁금해요!
가령 연애를 잘하는 사람들이 간혹 관계를 잘 안다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있더라고요. 저 자신감은 뭘까, 생각했었는데요. 7번 하우스가 일대일 관계를 맺는 거예요. 연애도 그렇고 좀 진지한 관계 있잖아요. 그런 관계(7번)에서는 나(1번)와 반대되는 사람들을 찾게 된다고 보기도 하거든요. 내가 필요로 하고 잘 쓰지 못하는 지점인 거죠.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진지한 관계를 많이 쌓아온 사람들은 나와 이질적인 기운을 훈련해 온 거예요. 그런 점에서 7번 하우스가 관계에 있어서 수행의 별자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존경하게 되더라고요.

 




3. 수행으로써의 의학

수의학과는 어떻게 가게 되셨어요? 의학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원래는 의사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현실적인 조건 때문에 수의대에 갔는데, 결과적으로는 괜찮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마 의대에 갔으면 바빠서 인문학 공부를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건강한 신체보다는 아픈 게 더 재밌는 것 같아요. 언제부터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몸이 아픈 걸 분석하고 치료법을 찾는 걸 재밌어했어요. 건강한 강아지는 마냥 이쁘고 귀엽지만, 아픈 강아지를 보면 어디가 아픈 걸까 싶잖아요. 외우는 걸 많이 했고 잘했다 보니까, 생물도 재밌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서양의학 같은 경우는 극단적인 병이 많은 것 같아요. 서양의학으로 제 몸을 판단하면 증상을 억제하는, 일시적인 방식으로 접근을 해서 잘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오히려 한의학을 배울 때 좀 더 재밌는 것 같기도 해요.

어머니가 약사셨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한의학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시는군요.
어머니가 한의학을 더 많이 권했어요. 양약이 센 걸 아시기도 했고, 인문학 공부를 하시니까 가급적이면 병원을 안 보내셨죠. 자기 몸을 스스로 회복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물론 어머니한테 의학을 배우지는 않아요. 공부에 대해서는 서로 터치를 하지 않기 때문에, 각자 플레이 합니다. (웃음)


티베트 의학도 한의학처럼 독자적인 뭔가 있더라고요. 일본 의사가 티베트 의학을 배우고 와서 쓴 책이 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티베트는 물자가 좀 심플해요. 가난한 도구에 마음이 끌리더라고요.

 

예전에는 티베트에서 스님들이 불교뿐만 아니라 기술 쪽으로도 공부하셨대요. 중생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알아야 하니까요. 자비심을 베풀기 위해서이기도 했고요. 의학도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공부 중에 하나였던 거죠.


이번에 다람살라에 갔을 때 박물관에 진료법에 대한 그림을 봤어요. 나무 모양처럼 진단하는 법이 한눈에 알아보기 쉽게 되어 있더라고요. 학생친화적이다. (웃음) 서양의학은 이렇게까지 분류해야 돼, 싶을 정도로 뭐가 너무 많거든요. 저희가 앞으로 머무를 숙소 근처에 의과대학이 있어요. 입학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가서 분위기라도 좀 보고 싶어요. 아프면 진료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기대도 되고요.

티베트에서 의학은 수행의 일종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소담 쌤에게 별자리가 그런 것처럼요.
별자리가 시공간의 상징 같은 거니까, 인간뿐만 아니라 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겠죠.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라는 전제에서는요. 아유르베다를 베이스로 한 책 중에 『12감각』이라는 게 있는데, 거기에는 별자리와 감각을 매치해 놓기는 했더라고요. 재밌었어요. 


책에서는 임상으로 한 거라기보단 철학적인 의미에서 본 거예요. 예를 들어 청각은 뭉뚱그려서 받아들이지만, 시각에는 뭔가를 분별하는 기능도 있거든요. 나와 거리감도 좀 있어야 하고요. 분별하고 분리하는 사유와 맞닿는데, 그게 처녀자리와 같이 갈 수 있어요. 처녀자리도 구분하는 기운이거든요.

티베트에 가서도 별자리 공부를 계속하실 생각이세요?
개인적으로 번역 연재를 하고 싶어요. 별자리 텍스트가 애매한 게, 실용적으로 나온 텍스트가 대부분이에요. 철학적으로 다룬 책이 거의 없어요. 별자리는 확실히 학문이거든요. 점성학이라는 학문이 있었으니까요. 저는 이걸 텍스트로 좀 더 읽어보고 싶어요. 별자리 공부는 그냥 평생 하면서 살 것 같은 느낌이에요.


소담 쌤은 곧 남산강학원의 윤하 쌤과 함께 다람살라로 떠난다. 올해 초, 소담 쌤과 윤하 쌤은 주역 괘를 뽑았는데 각각 수산건 괘와 중수감 괘가 나왔다. 하필 가장 힘들다는 우기에 가기 때문일까? 4대 난괘들을 뽑았다.

 "피해 갈 수 없다, 그냥 고생하고 오자. 좀 겪고 나면 괜찮지 않을까, 살아만 있자, 하고 생각했어요."


우선은 티베트어를 배울 거다. 언어도 외우는 공부라 좋아한다. 길거리에 동물이 많은 것도 좋다고 했다. 가까이에서 개를 만날 수 있어 기대되는 모양이다. 채식하기 좋게 되어 있는 것도 그의 흥미를 끄는 것 같다. 사람들이 정이 많은 것도 재밌단다.


완전히 낯선 환경이 그에게 또 다른 수행, 또 다른 재미를 줄 수 있기를. 아니, 우선은 우기만이라도 무사히 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인터뷰_김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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