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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을 나눌레오

[인류학을 나눌레오] 답사, 풍경으로 배우다

by 북드라망 2024. 4. 5.
인문공간세종에서 [인류학을 나눌레오]를 시작합니다. 인류학은 내 삶을 다르게 보는 안목을 갖는 공부입니다. 지금 여기를 낯설게 보고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정답이 따로 있지 않은 공부이지요. 인문세는 인류학적으로 공부하고 사고하기를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합니다. 저마다의 해석(숙제)을 나누고 실험(답사, 잡지, 영상 등)하면서 삶의 지반을 넓혀가는 인류학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답사, 풍경으로 배우다

 

이기헌(인문공간세종)

 

자연학책을 읽고 분기별로 답사를 간다. 답사하며 풍경을 천천히 음미할수록 내 시야는 더 넓어진다. 현장에 가면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가 확연히 드러나고, 생각지 못한 배움이 나타나는가 하면, 그것을 통해 또 다른 공부의 길이 열리는 것을 느낀다. 자연학책만으로는 현실의 풍요로움을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에, 직접 겪고 느낄 수 있는 현장 답사는 자연학에 필수코스가 되었다. 답사는 인류학 공부를 바탕으로 기획되고 자연학 공부는 그 풍경을 통해 확장된다.


지난 2월 27일 오전 10시, 답사팀은 한탄강이 흐르는 전곡리 선사박물관 앞에 모였다. 이곳은 1978년 동아시아 최초로 구석기 주먹도끼가 발견되어 세계 고고학계에 파장을 일으켰던 곳이다. 참석한 팀원은 인류학 학인들과 공지를 통해 신청한 학인들로 총 13명이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연, 박물, 인간’을 주제로 한 답사가 시작되었다. 오전에는 박물관에서 구석기인의 삶을 탐구하고, 오후에는 그들이 살았을 한탄강 유역의 재인폭포를 방문했다. 이어서 백악기 지층을 공부하기 위해 좌상바위를 찾았다. 

 


지각의 한계를 보다
재인폭포를 만나러 가는 길, 책에서 공부한 내용보다 먼저 풍경이 나를 사로잡는다. 이곳은 위치가 높아서 근방의 넓은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에 한탄강이 흐른다. 강물은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북쪽 휴전선 너머에서 시작되어, 이곳을 지나 서쪽 바다를 만날 때까지 쉬지 않는다. 그 긴 여정은 서울에서 세종까지 고속도로를 달린 거리만큼 멀다니 수치상으로만 짐작할 뿐이다. 시선을 압도하는 협곡의 웅장함에 답사팀 여기저기서 감탄의 말이 쏟아졌다. 걷다보니 길 끝에 재인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멈춤 없는 폭포는 현무암층 절리들에 둘러싸여 그 가운데로 곧고 세찬 소리를 내며 떨어지고 있었다. 바닥으로 떨어진 물은 푸른 빛을 띤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고, 절벽 아래 어두컴컴한 동굴까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웅덩이 물은 맑고 투명해서 바닥까지 다 보여주었다. 폭포 앞 출렁다리를 지나 폭포 뒤로 돌아가면 선녀탕을 발견할 수 있다. 산에서 내려온 물은 이 선녀탕을 들러 한숨 돌렸다가 폭포로 다이빙하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답사 전 책에서 본 재인폭포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한탄강은 52만 년 전부터 세 번의 화산 폭발이 있었고, 그때마다 용암이 한탄강 인근을 뒤덮었다. 뜨거운 용암은 식고 굳기를 반복하여 현무암층을 이루었고, 다시 흐르게 된 물줄기는 현무암 바닥을 깎아내며 새로운 강줄기가 만들어졌다. 강줄기 중간 지장봉에서 내려오는 물은 절벽으로 떨어지며 강과 합류했다. 이때 떨어지는 물은 조금씩 암석들을 깎아냈다. 그로 인해 강에 붙어서 떨어지던 폭포는 조금씩 뒤로 물러나 지금은 강에서 350m나 멀어졌다. 폭포가 뒤로 걸었다는 사실은 놀라웠지만 현장에 와서 보니 무슨 말인지 시원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같이 간 팀원들도 그런 눈치였다. 눈앞에 보이는 웅장한 폭포는 박제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폭포가 이동한다는 것을 상상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도 움직이고 있다는 것인데, 폭포는 전혀 미동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처럼 보였다. 움직이는 시간을 한번 계산해보고 싶었다. 폭포가 시작된 것을 대략 12만 년 전이라고 상정하면 1년에 대략 3mm 움직인다는 결과가 나온다. 100년이 지나도 선녀탕까지 뒷걸음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인간의 눈으로 그 장엄한 뒷걸음을 포착할 길이 없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무지하게 긴 시간 동안 점진적으로 변화를 거듭해온 자연 앞에서,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가늠하긴 어렵다. 현장에서 인간 지각의 한계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내가 생각한 직선이 풍경에선 다르게 나타났다. 과거의 화산 폭발은, 이곳을 용암으로 모두 뒤덮었다고 했다. 흐름을 멈춘 용암은 식고 굳어지면서 내부에 규칙적인 육각형 균열이 생겼고, 균열은 수많은 기둥을 만들어냈다. 세 번의 폭발은 그때마다 시기와 조건이 달랐기 때문에 현무암층이 3단으로 형성된 것이다. 현무암층을 이루는 육각 기둥들은 계곡물과 비·바람을 겪으며 아래로 떨어지거나 깎여나갔다. 덕분에 재인폭포는 지금 모습에 이르게 되었다. 책에서는 재인폭포를 둘러싼 주상절리 3단을 발견할 수 있다던데, 막상 그 앞에서 절벽을 아무리 살펴봐도 비슷한 돌들이 제멋대로 박혀 있는 듯하고, 3단이 어디인지 그 경계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나는 3단 케익처럼 반듯한 층을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하게 구분되는 곧은 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까막눈이 되었다. 책을 펼쳐서 입체적으로 튀어나온 층과 가로로 누운 듯한 층, 절리의 사이즈가 다른 층, 그렇게 3단을 겨우 구분했다. 나는 직선에 대한 내 생각의 한계를 보게 되었다.

 


뜻밖에 상식이 깨어지다
다음으로 찾아간 좌상바위는 다른 존재들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곳은 먼저 갔던 재인폭포보다 더 낯선 느낌이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먼 과거에 도착한 기분이랄까. 책에서 본 대로 ‘백악기’라는 시간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도착 전부터 아주 오래된 세계임을 상정했을지도 모른다. 책에 따르면 좌상바위 중심으로 뜨거운 용암이 솟구쳤던 백악기에는 지금의 동해는 없었고, 한반도가 일본과 아주 가까웠으며 잦은 화산폭발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이곳에 있는 것은 백악기만이 아니다. 고생대에 퇴적층들을 중생대의 화산이 뚫고 나와 좌상바위가 되었고, 그 위로 신생대 용암이 흘렀다. 책으로 볼 때 이곳에 오면 백악기를 감상할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막상 와보니 온갖 시간이 맞물려 풍요롭게 이곳을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지질연대표에서 본 것처럼 시간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저 백악기 바위가 지금 여기의 나를 놀래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존재의 시간은 각각 흘러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존재가 어우러진 중층적인 시간의 풍경을 감상해보자. 산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만큼 거대한 좌상바위는 강 건너편에 늠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신기하게도 하나의 몸체인 듯한 죄상바위의 가운데는 중생대 백악기의 화산이 폭발했던 화구이고 그 주변을 고생대 퇴적층이 감싸고 있다. 앞으로는 신생대에 길을 낸 한탄강이 얕고 넓게 흐른다. 강물이 돌들과 부딪히는 소리가 이곳을 가득 채운다. 그 소리는 느긋하고 유연하고, 쉼 없이 재생된다. 강물 안 이곳저곳 무심하게 자리 잡은 듯한 크고 까만 돌들은 아마도 신생대에 사방을 삼켰던 뜨거운 용암이 식어 만들어진 현무암일 것이다. 한탄강을 건너서는 백악기의 베이지톤 가는 모래밭이 펼쳐져 있고 그 위로 언제부터 이곳에 있었는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돌들이 가득했다. 돌들은 제각각의 성질을 품은 채, 자기 자리를 지키지만 언제든 그 자리를 떠날 준비가 된 것처럼 보였다. 답사팀은 강을 가까이 관찰하려고 모래밭을 향해 걸었다. 두 발이 모래에 닿자 걸음은 속도가 느려졌다. 자연 앞에서 더뎌진 신체는 저항이 아닌 순응의 자세가 되었다.


답사팀은 돌이 지천으로 널린 강가에 서서 현무암, 화강암, 응회암, 편마암 등을 구분해 보았다. 오전에 박물관에서 구석기의 주먹도끼를 보고 왔으니 돌에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석기인을 상상하면서 돌을 만져보고 두드려보고 부딪혀 깨뜨려 보지만 쉬운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돌들은 각각 다른 단단함을 가졌다. 다른 색, 다른 무늬, 다른 모양을 가졌다. 현무암은 까맣고, 강도가 약하다, 구멍이 송송 뚫린 것도 있고, 구멍이 없는 것도 있다. 화강암은 단단한 성질이고 밝은색으로 검은 알갱이도 보이고, 반짝이는 알갱이도 보인다. 줄무늬를 띈 것은 편마암이고, 진한 회색으로 보이는 것은 응회암이다. 저마다 다른 시간과 성질을 가진 이 돌들을 보며 누가 더 멋지고 예쁘고를 견줄 수 있을까. 사정이 다른 존재들을 동일한 맥락 속에 줄 세울 수 없다. 좌상바위 맞은편으로 사람들이 정갈하게 돌탑을 줄지어 세워두었다. 돌탑은 맨 아래 돌에서 점차 위로 갈수록 크기가 작아진다. 다른 기준은 없다. 소박하고 신성한 돌탑에서 이유 모를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쌓아놓은 돌탑이 아름다운 이유는 각각 시간도 생김도 다른 돌들이 무너지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강가에 모여서 돌을 만지며 놀고 있는 학인들도 그렇게 보였다. 가득한 차이를 안고서도 사람들은 돌을 보고 강을 보며 공부한다고 여기에 모여있다. 

 



다른 공부의 길이 열리다
재인폭포에는 전설이 있다. 답사팀은 재인폭포를 향해 걸으며, 이곳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했다. 외줄타기 재인(才人)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그녀를 탐낸 마을의 원님은 일부러 잔치를 열고, 이 폭포에 칼집 낸 외줄을 걸어 재인에게 외줄타기를 시켰다. 원님의 뜻대로 재인은 줄이 끊어져 죽음에 이른다. 원님은 아내를 탐하려다 아내에게 코가 물리고, 아내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마을 사람들은 부부의 넋을 기리기 위해 폭포에 ‘재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마을은 ‘코문이’라는 이름에서 오늘날 ‘고문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폭포의 차가운 냉기가 느껴지듯 으스스한 것이 전설의 고향 시나리오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했다. 답사팀은 원님은 왜 그렇게 예쁜 여자를 탐내는지 감정이입이 되어 흉을 보면서, 재인이 외줄을 탔던 곳은 어디인지, 아내는 왜 다른 데도 아니고 코를 물었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곧게 떨어지는 신성한 폭포 앞에서 사람들은 ‘외줄타기’에 다른 세계와 연결을 말하고 싶었을까. 욕망의 어긋남은 중심을 잃게 만들어 곧 낙하로 이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풍경 속에 얽혀있는 이야기의 근원을 파고들어 알고 싶었다. 


사람들은 자연을 신화로 남겼다. 신화가 지금까지 힘을 잃지 않고 전해지는 이유는 시간이 모두에게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중층성을 모아주기 때문이다. 재인폭포가 생성된 것은 신생대이지만 뒷걸음질친 것은 수만 년에 걸쳐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고, 미래는 자연의 질서 속에서 다른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신화를 통해 자연의 인과 관계를 끊임없이 재생시켰다. 인문세 탐구생활 3호의 「할머니 빤스에 얽힌 비밀」(오선민, 『자연, 신과 바람과 사람들』,(인문공간세종))은 제주도 설문대할망의 기원 설화와 관련된 글이다. 이 글에 따르면 전설 속 할머니가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빨래하고, 요리하는 것은 만물과 관계성을 의미한다고 한다. 

 

신화는 형태 발생에 관심을 둔다. 풍경을 해석한다. 지세학이다. 자연학이다. 대지는 원래 거인의 몸이었다. 늙어 죽든 살해되든 모든 육신은 대지가 된다. 그리고 그 대지로부터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난다. [중략] 제주도를 한번 멀리서 바라보듯, 상상해보자. 내가 서 있는 땅에서 친근한 할머니를 떠올리면 어떻게 될까? 모든 풍경에서 부모와 조상을 보는 감수성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서도 곧잘 발견되던 것이다. 풍경 속에 우리의 모든 과거와 모든 미래가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시간이 과거-현재-미래라고 하는 단선적 궤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따로 이유가 없다는 사고는 삶을 중중무진(重重無盡)의 현재 속에서 바라보게 하지 않을까?(오선민, 『인류학 탐구생활 3호 - 자연, 신과 바람과 사람들』(인문공간세종), 9쪽)

 

 

사람들이 신화에 풍경을 담고 인간사를 빗댄 것은 왜였을까? 글에 따르면 인간은 광대무변한 자연이 나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끊임없이 사고했다는 것이다. 자연 안에서 만물은 서로 뒤엉킨 사이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나는 자연과학이라는 공부가 관찰과 실험으로 증명하는 공부라고 생각했다. 돌을 분석하여 연도를 알아내거나, 어떤 광물을 포함하고 어떤 강도를 갖는지를 파악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신화를 알고 보니 인류는 현미경 같은 고도의 과학 도구가 없었던 옛날에도 자연의 질서를 이해했고 이야기를 만들고 전하며 살았다. 사람들에게 자연은 밝히고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 속에 살아가는 것 자체였다. 우리가 걸으며 원님 흉을 보고 재인부부 불쌍하다며 편들고 안쓰러워하는 그 마음 같은 것이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연결을 말하는 이야기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언젠가 풍경을 담은 지혜 하나를 만들어 보고 싶어졌다. 

답사는 하루 일정이었기에 시간 관계상 한탄강 하류만 다녀오게 되었는데 다 보지 못하고 남겨둔 풍경이 아쉬웠다. 매달 가고 싶은 심정이다. 답사라는 배움의 장이 좋다. 경이로움을 마주할 때 그 울림이 좋고, 그 경이에 나도 무관하지 않게 엮여있다는 것이 벅차다. 나는 답사에서 풍경과 조금씩 친해지는 것을 느낀다. 특히 돌들과 좀 더 놀아보고 싶어졌다. 그동안 자연학 세미나는 생명을 탐구해왔다. 생명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지구의 탄생과 순환, 동식물의 진화적 과정 등을 살펴보았다. 곧 열릴 다음 자연학 시즌에서는 지구의 돌에 대해 톺아볼 예정이다. 호흡하지 않는 돌이지만 생명과 무관하지 않고, 50억 년 전부터 끊임없이 변화해온 지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6월 25일로 계획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 답사는 신석기 인류가 절벽에 그린 고래 그림을 탐구하러 간다니 무엇을 볼 수 있을지 벌써 기대된다. 나는 계속 자연학을 공부하고 풍경에서 길을 열어가고 싶다.

 


※ 참고문헌
「할머니 빤스에 얽힌 비밀」, 『인류학 탐구생활 3호 - 자연, 신과 바람과 사람들』, 인문공간세종
「연천 전곡리 답사 자료집」, 인문공간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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