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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일상의 애니미즘

[미야자키 하야오-일상의 애니미즘] 기차 여행 – 속도의 열정과 진보의 배신

by 북드라망 2024. 4. 18.

《바람이 분다》 ②사건

 

기차 여행 – 속도의 열정과 진보의 배신    
  

 

레일 위의 종이비행기
《바람이 분다》를 사건적 측면에서 보면 결정적인 주요 사건은 제로센의 설계 완성이다. 그런데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작품이 다루는 시간은 무려 30년이나 된다. 이 30년 전부 제로센의 발명에 바쳐지는 긴 과정인데, 지로의 마음에 실제 제로센의 형태가 구체적으로 떠오르고 그런 방향으로 설계를 계속해가는 부분은 영화 시작 35분 무렵 즉 나고야의 미쓰비시에 취직하면서부터다. 그 지점을 기준으로 보면 한 가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카프로니 백작이 만든 비행기는 모두 아주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는 대형선이었다. 카프로니는 은퇴에 맞춰서 납품 직전의 폭격기에 잔뜩 사람을 태우고 나타나기도 했다. 지로의 회사는 소형 비행기 제작에 실패하자 결국 독일제 융커스 대형비행기 제작을 수주 했다. 그런데 지로는 자기 꿈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소형 비행기 제작에 몰두한다. 왜 지로는 작은 비행기가 큰 비행기보다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해주려 했던 소년 시절의 꿈을 실현시키려면 큰 비행기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일단 지로가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는 과정을 따라가보자. 지로가 능력 있는 설계사가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집중하는 것은 물론 지로의 강도 높은 연구다. 지로는 슬럼프를 모르는 운동선수처럼 단 한 시간도 허투루 쓰는 법 없이 항공 설계 기술을 익히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학생 시절에는 매일같이 고등어 반찬만 먹으며, 살이 다 발린 가시를 보고 그 우아한 탄성을 비행기에 적용시킬 생각을 할 정도였다. 회사 첫 출근 때 지로가 책상 위에서 흰 비행기를 떠올리는 과정에서는 작은 소용돌이가 책상 위에서 소용돌이치며 지로를 삼키는 것처럼 나온다. 지로가 얼마나 이 꿈에 매달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지로는 나오코가 각혈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고야에서 도쿄로 기차를 타고 가야 했을 때도 가방에 도면 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가는 기차 안에서도 계속 연구를 이어간다. 아픈 아내 옆에서도 밤을 새며 설계를 한다. 작품 속에서 지로의 방은 어린 시절의 방, 도쿄의 하숙집, 나고야의 직원 숙소, 데사우의 호텔방, 신혼집이 되는 상사의 별채 이렇게 네 곳인데, 모두 다 지로스럽게 꾸며져 있다. 개인 취향이 담긴 물건이라고는 하나도 없고(사진 한 장이 없다), 전부 책과 설계도면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로가 꿈꾸는 작은 비행기는 기술자 개인의 이기심, 지로의 예민한 완벽주의를 구현한 물체처럼 느껴진다. 

 

출처 - 다음 영화

 

그런데 사실 나고야까지 가는 과정에 지로가 무엇을 경험하는가, 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가를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야자키는 지로를 연구실에만 두지 않는다. 긴 복도가 있는 학교에서 교무실에 어떤 선생님은 들어가고 지로에게 잡지책을 빌려 줄 선생님은 나오고 계셨다. 하교하는 길 지로의 눈에는 강가에서 다투고 있는 또래 아이들이 보였다. 20살이 되어 교토로 가게 되었을 때는 또 어떤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로가 탄 3등칸을 자세히 보여준다.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한 칸에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공간에서 자기 자리를 양보한 지로가 칸 사이의 복도로 나오는 장면을 보면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진이 나서 기차에서 사람이 쏟아져 나오고 피난 행렬이 도심을 따라 쭉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숫자의 군중이 그려진다. 화재로 다 타버린 도쿄가 빨리 복구되고, 여동생이 찾아와 바닷가를 배로 타고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지로의 눈에는 하차장에서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지로가 나고야에 가서는 또 기차역을 따라 온 노숙자들과 공황의 여파로 화가 난 군상들의 모습을 본다. 지로는 회사 첫 출근 때 복도에서 여직원들과도 눈을 맞추는데, 이 장면은 지로가 그 여성들에게 호감이 있어서가 아니라 많은 사람을 보려고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설계 공장의 여성 노동자는 분명 허드렛일을 맡고 있었을 것이다. 지로는 낮은 자리에 누가 있는지를 계속 보았다.  


많은 인간들 그리기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 다이쇼 시대, 항공학을 배우는 대도시 학생을 그리려다 보니 많은 사람을 묘사하게 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지로가 일하는 회사가 대기업이라서 직원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미야자키가 군중씬 그리기를 좋아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작 《벼랑 위의 포뇨》가 지극히 단순한 인적 구성 안에서 이야기를 풀었던 것, 무엇보다 8만 신들의 온천장이라지만 실은 또 어느 정도 셀 수 있을 정도의 캐릭터만 나왔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두고 보면, 미야자키가 《바람이 분다》에서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그렸는지 놀라게 된다. 미야자키가 전쟁이 한창인 도시를 그렸을 때는 《붉은 돼지》에서도 그랬지만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군중이 모두 한 방향을 보면서 같은 표정으로 크게 환호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바람이 분다》는 다르다. 모두가 전쟁을 준비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도시 사람들, 공장 직원들의 표정이 제각각이다. 이 각각을 따로 생생하게 그려내기 위해 지브리 스텝들이 얼마나 애를 썼을지 아찔하다.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방법으로 히틀러의 만행이나 제국주의자들의 추악한 횡포, 그에 고통받는 민중을 그리는 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어떤 국면에도, 일상의 어떤 국면에도, 그 누구도 같은 얼굴로 있지 않다는 점을 볼 수 있는 방식도 있다. 지로가 꿈꾼 작은 비행기는, 각자 다르게 생긴 만큼 그 욕망 또한 다 다를 것이며 모두가 같은 시간에 같은 곳을 향해 날아오를 리 없다는 생각에서부터 나왔다. 


대학 시절부터, 나고야 시절에서 독일의 데사우 호텔방에서까지 지로의 동료 혼도는 계속 ‘일본이 가난하다’고 한다. 두 청년에게 ‘일본이 뒤쳐졌다‘는 것이 비행기 개발의 저해 요인이다. 하지만 지로는 소가 비행기를 활주로까지 끌고 가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리처럼 뒤뚱거리며 하나씩 날아오르더라도, 나라마다 엔지니어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가? 회사에서 상사들은 지로와 친구 혼조를 경쟁자로 본다. 지로는 그 누구와도 경쟁하지 않기에 자기가 만든 나사라든가 여러 가지 기술을 아낌없이 동료에게 제공했다. 그 누구도 같은 꿈 같은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 지로다. 그러므로 카프로니가 십 년 열정을 바쳐보라고 한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매진했을지 알 수 있다. 지로는 작은 비행기를 개발해서 저마다 다르게 날기를 바랐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비행기들 중 어떤 것도 돌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에 얼마나 고통받았을지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처참했을 것이다. 

 


철마(鐵馬)의 눈물
작품 초반에 지로가 꿈에서 깨어날 때 모기장 너머 마당을 본다. 근시인 지로는 잘 보이지 않아 안경을 쓰고 초점을 맞춘다. 미야자키의 주인공이 안경을 쓴 것은 처음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지로가 안경을 썼다는 점을 이렇게 강조한다. 지로는 눈이 나빠서 비행기 조종을 할 수 없다는 점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카프로니는 비행기 조종사야 많고 많지만 비행의 꿈을 현실화시키는 설계사야말로 멋지다고 한다. 


그런데 비행기 설계사가 되기 위해서 지로에게는 마주해야 할 현실이 있다. 그 첫 번째가 비행기 제작이 군사적 목적 이용과 뗄 수 없다는 점이다. 일단 제작에 너무 많은 비용이 들고 그것은 다시 돈으로 회수되어야 하기 때문에 상업적 이익이라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크고 강력한 물건은 구매자가 국가가 될 수밖에 없고 결국 비행기는 전쟁 등의 목적에 주로 동원되버린다. 그래서 지로의 첫 번째 꿈에서부터 계속 군대가 나왔다. 미쯔비시 취직 후 첫 번째 소형기 시험 비행에서 추락 사고가 있었을 때, 상사 쿠로사와가 말하듯 당국이 지원을 철회하면 지로는 연구를 할 수가 없다.  

 

국가의 입장에서 전쟁은 나쁜 것이 아니다. 카스테라 사건이 있은 뒤에 지로와 혼도는 가난한 나라에 대한 생각을 한다. 독일 융커스 회사로부터 기술 이전을 하는 대가로 송금하는 돈이면 일본의 아이들에게 매일 덮밥과 카레라이스를 줄 수도 있다. 혼조는 ‘가난한 나라가 비행기를 원해서 우리가 비행기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눈에 밟히지만 그들의 밥을 빼앗아 비행기를 연구한다는 사실은 모순이다. 이 대화 끝에 혼조는 내일 동경에 결혼하러 간다고 한다. 눈앞의 아이들이 굶주리도록 내버려두고 비행기를 개발하는 이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겠다고 하다니 이것도 모순이다. 

 

소형기 시험 비행 사고에서 비행기 추락 직후에 지로가 하는 말은 ‘낙하산!’이다. 비행기 사고는 한번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 13세의 지로가 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빌린 잡지에 년도가 나오는데 1918년이다. 미야자키 개인의 정리에 따르면 낙하산이 실용화된 것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날 즈음이었다고 한다. 1914년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비행기란 가문비나무와 물푸레나무를 골조로 해서 그 위에 천을 씌워 침금으로 보강한 기체였다. 여기에 기관총이 달리자마자 바로 공중전이 시작되었다. 복잡한 조종법, 전술의 개량에 맞춰 비행기가 계속 개발되었다. 목제 모노코크 동체, 강철관 골조, 두랄루민판, 강력한 엔진, 전금속제의 비행기까지 차례로 기술이 발전했다. 그런대 4년의 전쟁 기간 동안 17만 7천 기가 생산되었지만 전쟁 직후 임무가 가능했던 기수는 1만 3천이었다고 한다. 16만 여의 기가 부서진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찔해하며 쓴다. ‘이 비행기에 타고 있던 젊은이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조종사, 기관사, 총수, 통신사들은 모두 놀랄 만큼 어리고, 놀랄 정도로 빨리 소모되어 죽어간 것이다.’(『반환점』, 182쪽) 3차원 공간을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표적을 쏘는 것은 어렵다. 아니 공중전의 어려움 이전에 나무나 철이 하늘 위에 뜬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 매달리는 사람은 두 발 달린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려 하기에 남의 목숨을 위협하면서 자기도 위협받는다.  

 

그런데도 왜 비행기를 개발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줄어들지 않을까? 지로도 포기를 몰랐다. 미야자키는 속도에 대한 열망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많은 젊은이가 공중의 병사가 되는 것을 동경하며 파일럿에 지원했다. 진흙 속을 기어 다니는 참호전의 병사가 되기보다 낫다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열광에, 청년들은 홀려 있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소망은, 하늘을 자재로 고속으로 날아다니는 자유로 변하여, 속력과 파괴력이 젊은이들의 공격 행동을 돋군 것이다. 오늘날 신호를 무시하며 질주하는 젊은 폭주족들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속도야말로 20세기를 몰아넣은 마약이었다. 속도는 선이었고 진보였으며 우월이어서 모든 것이 기준이 된 것이다.(『반환점』, 183쪽)

 

1924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지로의 나이는 20살이다. 지로는 1904년생이니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1868년으로부터 이미 30년이 훌쩍 넘긴 시점에 태어났다. 비행잡지를 읽고 이탈리아 설계사를 멘토로 삼을 정도로 근대의 가치 안에 푹 잠겨서 나고 자랐다고 할 수 있다. 속도는 선한 것이다. 우월함이고 진보이기 때문에 비행기야말로 지진의 불안과 생활의 가난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된다. 그래서 작품에는 처음부터 근대적 속도를 상징하는 기차가 계속 등장한다. 첫 번째 꿈에서 포탄에 떨어질 때도 지로 왼쪽 편으로 기차가 달린다. 설계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지로는 기차를 타고 상경한다. 물론 기차 안에서 나중에 아내가 될 나오코도 만난다. 나고야에 갈 때도 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장면이 길게 나오며, 나중에는 힘찬 기적 소리와 함께 독일 데사우에 입성한다. 이때 깔리는 행진곡과 기차 밖으로 보이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유럽 풍경, 그리고 도시에 들어서자마자 하늘을 보고 있는 지로와 동료들의 모습은 기차가 선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제시한다. 

 

출처 - 다음 영화

 

그런데도 지로는 이 선한 속도에 어딘가 불안함을 느낀다. 속도를 따라 잡아야하기는 하지만 소가 비행기를 끌고 간다는 것이 좋고, 빠르지 않아도 가볍고 아름다운 비행기에 자꾸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로는 알고 있다. 그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도 무기를 실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그런데 국가와 회사는 내 속도 즉 자기 문명이 더 우월하다고 자랑하고 더 ‘빨리’ 부를 얻기 위해서 무거운 무기를 싣고 날자고 한다. 이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다. 나중에 동료들과 속도를 높일 연구를 함께 하면서 지로는 무기를 버릴 수 없기 때문에 늦는 거라며 국가와 회사를 비꼰다.  


지로는 속도가 지닌 모순을 파악하고 있다. 미야자키는 모두가 추구하는 그 ‘속도’가 결국 파시즘과 연결된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한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기술자들이 우러러본 바로 그 하늘에 히틀러의 비행기가 잔뜩 날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분다》 개봉 직후, 미야자키는 변절했다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울처럼 반전주의가 미야자키의 근본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끔찍한 무기 개발자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는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비행기와 개발자의 성품도 너무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러나 《바람이 분다》에는 반전의 메시지가 곳곳에 들어 있다. 미야자키는 속도의 신에 복종했던 지로가 느낀 모순이라든가 인식의 한계를 명확하게 지적한다. 미야자키는 그것을 다시 ‘기차’를 갖고 표현한다. 기차는 고산지대의 휴양지, 마의 산으로 지로를 데리고 가주었다. 그곳에서 지로는 전화(戰禍)로부터 도망친 사람들을 만나 죽음이 없는 비행을 꿈꾼다. 그런데 지로가 손에 든 것은 종이비행기다. 철로 된 비행기는 절대 꿀 수 없는 종이비행기의 꿈은, 철과 천이 결합된 흰 우산으로까지는 승화된다. 우산은 바람 좋은 날 뒤집어서 잘 날리면 가벼운 물건 몇 개쯤 실어 보낼 수 있는 수송기가 될 수 있다. 우산으로 쏟아지는 장대비를 겨우 막으며 언덕을 함께 내려왔던 지로와 나오코의 모습은 흰 우산 비행기를 지상에서 사용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런데 행복한 마의 산으로 지로를 인도했던 기차는, 다음에 나오코를 고산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고산 병원은 결핵 환자들의 요양소로 나오코는 회복되어서 내려오지는 못한다. 환자들 여럿이서 침낭 안에 들어가 찬 바람을 맞고 있는 병원씬의 첫 부분에서 저 멀리 산 밑 오른쪽에 기차가 지나간다. 장면의 병치로만 보면 나오코가 병원에 간 뒤로 지로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 그만큼 나오코의 병색도 깊어진다. 중간에 나오코가 지로와 마지막 시간을 보낼 결심에서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녀는 3등칸을 타고 나고야에 도착했다. 2등칸을 타고 다니던 소녀가 3등칸을 타게 되고, 신혼집 하나도 마련하지 못하는 처지에서 하루종일 혼자 방안에 누워 있다가, 마지막에는 다시는 내려오지 못할 산으로 올라간다. 이것이 기차가 지로에게 선물한 운명인 것이다. 속도의 신이 지로를 데리고 가는 곳은 죽음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지로의 제로센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발전한 다른 비행기의 출현으로 하늘의 통제권을 빼앗긴다. 전쟁의 마지막에는 미 해군을 공격하기 위해 자살 특공대의 비행기로 쓰여 전멸한다. 비행기는 지로의 의도와 달리 전쟁의 수단이 되었다. 이런 결과만 놓고 보면 지로의 30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중간에 혼도와 우정도 나누고 나오코와 사랑도 했으니 나쁘지만은 않았다고 해야 할까?  


미야자키가 그런 식으로 문제를 슬쩍 회피할 리는 없다. 초반의 꿈에서 카프로니는 분명하게 말한다.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와 없는 세계 중 자신은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를 선택한다고. 비행기는 피라미드가 있는 세계 즉 위계가 있고 위의 뜻에 따라 아래를 억누르게 되어 있는 곳에서 만들어진다. 지로는 어떻게 생각할까? 지로는 그 꿈을 꾸기 전, 학교에서 상급생이 하급생을 괴롭히는 것을 막아섰다. 우리는 지로가 피라미드가 없는 세계에서도 비행기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온 힘을 다해 증명해보려 했다고 할 수 있다. 경쟁이 없고 사랑과 헌신이 있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지로는 카스테라를 아이들에게 주려 했고, 결핵으로 고통받는 연인을 위해 비행쇼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기차를 타고 이른 곳, 비행기를 개발하며 도착한 곳은 폐허였다. 그런데도 지로는 감사하며 다시 꿈꾸기로 한다. 모순과 위험이 없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글_오선민(인문공간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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