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수술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나는 처음으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외과학의 기본’이라는 수업의 실습 파트를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이론 수업은 진작 끝났지만, 한 번에 소수의 학생만 받을 수 있는 병원 사정 때문에 실습은 일 년 동안 천천히 진행되었다. 어쩌다보니 나는 모든 학생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수술실에 들어간 사람이 되었다.
내가 배정받은 과목은 복벽(Abdominal wall)이었다. 주로 탈장이나 복막에 생긴 종양을 다룬다. 이왕이면 ‘간담췌’나 ‘위장’ 쪽을 보고 싶었지만, 몸 안에 너무 깊숙이 들어가 있는 장기는 관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전해듣자 오히려 복벽 수술을 보는 게 더 잘 된 일이다 싶었다. 외래진료는 몇 번 참여해본 적이 있지만 수술실에 들어가려니 긴장도가 남달랐다.
실습 첫날, 나는 깨끗이 세탁된 흰 가운을 입고 병원에 발을 딛었다. 일반외과 의국 문을 두드리자, 레지던트 한 명이 문을 열어주었다. 나는 멍청하게 물었다. “수술실이 어디죠?”
내가 누구이고 왜 여기 있는지, 레지던트가 정황을 파악하는 데는 이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병원 소속 가운을 입은 사람이 수술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 답은 하나다. 풋내 나는 햇병아리 의대생. 띨띨한 얼굴로 의국 문을 두드린 학생이 내가 처음은 아닐 테다.
기묘한 풍경
친절한 레지던트는 수술실 입구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전용카드가 있어야 출입 가능한 문을 몇 개나 지나고,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신발과 머리에 비닐봉지(?)까지 씌우고 나서야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레지던트는 지나가는 간호사 한 명에게 나를 인계했다. 내가 어리버리 해보였는지 부디 잘 좀 인도해달라고 당부까지 했다. 간호사는 잃어버리지 않게 내 손을 꼭 잡고 다닐 테니 염려 말라고 답했다. 물론 농담이었다. 그 한마디가 뭐라고, 나도 모르게 첫날이라 긴장했던 마음이 풀렸다. 나는 현장 실습 때마다 간호사들에게 많은 빚을 진다. 집중하느라 말 한마디 없는 의사들 사이에서 내가 너무 기죽지 않도록 시시때때로 말을 걸어주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챙겨준다. (간호사들에게 학생이란 시시각각 도움이 필요한 ‘준-환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곧 탈장 수술에 들어가는 외과의를 찾아냈고, 나는 다시 한번 간호사의 손에서 수술 팀에게 인계되었다. (병아리가 된 기분이었다.) 의사는 나에게 환자의 병력을 간단히 설명했고, CT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수술방 번호를 알려주었다. 미리 들어가서 준비과정을 보고 있으라는 것이다.
수술방에 들어가자마자 처음으로 보인 것은 여성의 몸이었다. ‘사람’이 아닌 ‘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미 마취가 끝난 것인지, 나신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는 눈을 감은 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수술실 조명이 어두운 탓일까, 입술에도 혈색이 없어보였다. 수술실 한가운데서 환자는 홀로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환자를 제외한 모든 이가 바빴다. 한 간호사는 카테터로 요도와 질구를 세척했고, 다른 간호사는 수술 부위와 그 주위에 넓게 소독약을 발랐다. 소독약은 형광색에 가까운 다홍색이었는데, 흰색과 초록색으로 도배된 수술실과 강렬한 대조를 이뤘다. 환자 머리 쪽에는 마취과 의사가 서 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이었다. 기관삽관이 제대로 안 된 듯했다. 의사는 환자의 고개를 뒤로 젖히고 후두경을 목 안에 다시 깊숙이 쑤셔 넣었는데, ‘기역(ㄱ)’ 자로 생긴 후두경의 끝이 목젖 위로 윤곽을 드러냈다. 눈을 감은 채 위아래로 흔들리는 환자의 얼굴이 그저 무력해보였다. 그 순간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수술을 받게 되면 저런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게 될까?
이 와중에 가장 기묘했던 것은 수술실의 활기였다. 간호사들은 농담을 주고받았고, 다음 주 예정된 축구경기의 결과를 예측했고, 유튜브로 듣고 싶은 음악을 골랐다. 이 모든 게 환자의 모습과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물론 간호사들에게 수술실 노동은 일상이자 일과다. 이들이 매 수술에 들어갈 때마다 나처럼 환자 앞에서 아연질색하고 엄숙해진다면 오히려 수술을 망칠 것이다. 내가 글을 쓸 때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음악을 듣는 것처럼, 이들도 원활한 노동을 위해 음악을 트는 것이다.
그럼에도 젊은 간호사가 유튜브에서 튼 노래가 샘 스미스의 “언홀리(Unholy)”라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더 이상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이 곡은 ‘바디 샵’이라고 불리는 유흥업소에 가서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짓을 하는 남자에 대한 노래다. 수술실에 있어서 그런가, 이미 알고 있던 가사인데도 괜히 이상하게 들렸다. “At the body shop, doing something unholy~” 아, 노래 취향하고는!
몸은 살아있다
의사가 들어왔다. 레지던트 두 명과 함께였다. 이 수술은 나뿐만 아니라 그들의 실습시간이기도 했다. 가장 쉬운 파트는 레지던트가 나섰고, 어려운 파트가 등장하면 실력 좋은 외과의가 등판했다. 집도의는 손을 움직이면서 입도 쉬지 않았다. 주요 혈관과 신경을 명명했고, 탈장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부위를 보여주었으며, 같은 부위에서 세 번째로 탈장을 겪게 된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레지던트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우뚱하면서 설명을 따라갔다.
그러나 나는 이 귀한 수업을 공유할 수가 없었다. 수술대에서 두 발짝 떨어진 곳에서 이들의 널찍한 등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모두 살균처리 된 수술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들과 접촉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수술환경은 오염될 터였다. 한데 다들 어찌나 키가 크던지, 수술대에 누운 환자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을 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때 간호사 한 명이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그래가지고 뭘 보고 배우겠냐면서, 내게 10cm 높이의 스툴을 가져다준 것이다. 스툴 위에 서서 목을 쭉 빼자 비로소 환자의 복부가 보였다. 왼쪽 사타구니의 속공간이 드러나 있었다. 사타구니 속에 서혜관(inguinal canal)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해부도가 아니라 두 눈으로 확인한 첫 순간이었다. 처치를 끝낸 외과의는 수술용 메쉬(이식용 그물망: 손상된 조직을 보강하고 지지하기 위해 사용된다)를 솜씨 좋게 말아서 서혜관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수술실을 빠르게 떠났다. 이제 남은 봉합은 레지던트의 몫이었다.
수술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이 위화감은 어디서 기인하는 걸까. 몸 입장에서는 어마어마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환자는 가만히 누워있기만 했다. 마취를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고, 나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환자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몸이 죽은 게 아니라 잠들어있을 뿐이라는 걸 실감한 건 이튿날 수술에서였다. 이 환자도 탈장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경우가 더 심각했다. 환자는 십오 년 전부터 신부전을 앓고 있었고, 신장이식을 시도했으나 거부반응 때문에 계속 실패하다가 세 번째 신장이식에 성공했다. 한데 신장을 반복적으로 이식한 자리가 느슨해지면서 그쪽으로 장이 탈출해버렸다. 수술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이식한 신장을 건들지 않으면서 개복을 해야 했고, 탈장 정도가 심했기 때문에 복막도 열어야 했다.
수술부위가 큼지막한 덕분에 나는 드디어 개복 장면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메스가 움직일 때마다 타는 냄새가 났다. 피부 밑 지방이 정말 노란색이라는 것도, 복근이 생각보다 두께가 얇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자 마침내 창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소장이 공중으로 점프했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이렇게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다. 순식간에 여섯 개의 손이 달라붙어 창자를 몸 안에 붙들었다. 귀를 찌르는 듯한 기계음 소리가 들렸고, 마취과 의사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약물을 조절했다. 환자는 여전히 의식이 없는 채로 누워있었지만, 환자의 몸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약물의 효과 덕분인지, 수술대 위는 곧 다시 잠잠해졌다. 수술도 재개되었다. 환자는 아까처럼 조용히 누워있었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잠시 잠들었을 뿐, 몸은 살아있다!
이상한 특권
병원 입구를 지날 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나는 병원에 들어가는 환자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다. 내 의학적 지식이나 기술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의사와 환자가 양단에 서 있고 그 사이에서 내 자리를 찾는다면, 나는 여전히 환자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렇지만 병원 안에서 나는 ‘환자가 아닐 수 있는 특권’을 가진다. 내가 병원 로고가 박힌 흰 가운을 입고, ‘학생’이라고 쓰인 명찰을 목에 걸었기 때문이다. 가운과 명찰은 내가 의학의 세계에 속해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표다. 이 증표는 정말 힘이 세다. 동등한 인간의 자격을 갖췄음에도, 환자는 내 몸을 건드릴 수 없는 반면 나는 그들의 몸을 ‘본다.’ 그들의 피부를 만지고, 심장 소리를 듣고, 배를 두드리고, 심지어 몸속까지 들여다본다. 왜 이들은 나에게 이토록 은밀하고 소중한 영역을 허락하는 것일까?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당장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도 없는 무능력한 사람인데? 물론 환자에게는 학생의 접근을 거부할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 그럴 확률이 적다는 것도 모두가 안다. 그들의 눈에 우리는 ‘잠재적 의사’이기 때문이다.
좋은 의사가 되어보겠노라는, 약간은 식상하고 교과서적인 다짐은 이 희한한 느낌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내가 아는 한에서는 말이다. 의사가 환자를 만지는 게 정당화되는 이유는 치료를 위해서다. 치료한다는 명분이 없는 우리는, 오늘의 배움을 미래에 만나게 될 환자를 위해 훌륭히 쓰겠다고 약속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틀린 말이 아니다. 의학이라는 지식과 기술은 몸을 제공해준 수많은 생명에게 빚지고 있으니, 이를 배웠으면 빚을 갚는 게 맞다.
너무 비장하게 들리려나? 그런데 내 마음은 비장함과는 거리가 멀다. 평정심을 위해 균형점을 찾고 있을 뿐이다. 수술대에 벌거벗고 누운 여인과, 몸의 숨겨진 욕망을 노래하는 유행가와, 노련하게 메스를 드는 의사들 사이에 서 있는 내 자리를 ‘말이 되게끔’ 이해해보려는 노력이다.
기묘한 기분이 엄습하는 모든 순간이 약속의 순간이 된다. 환자들과 함께 병원 입구에 들어갈 때, 수술실에 서 있을 때, 나는 누구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갑자기 ‘현타’가 올 때마다 나는 같은 생각을 반복한다. 언젠가 이 모든 게 남들처럼 익숙해질 날이 올까? <환자>와 <의사>의 두 항 사이에서 일관성 없이 널뛰는 이 마음도 견고하게 자리를 잡게 될까? 그 날은 약속을 실행하는 때일까, 혹은 약속을 잊은 때가 될까?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글_김 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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