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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리뷰대회 당선작] 품음, 흥보의 생존법

by 북드라망 2021. 11. 22.
<제2회 북드라망 가을 리뷰 대회>(링크)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당선(링크)되신 분들께 다시 한번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 이제 오늘부터 리뷰대회 당선작들을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1위 남다영님의 글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품음, 흥보의 생존법


- 1등 남다영

 


흥보는 능하고 놀보는 몰랐던 것

나는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을 언젠가 잃게 될까봐 두렵다. 월세 높기로 유명한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알바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고, 요가를 하고 세미나를 하며 일주일을 보내고 있는데, ‘이렇게 살다가 미래에 땡전 한 푼 없으면 어쩌나’라는 생각이 든다. 전문 기술도, 경력도 없는데다 정규직은 어차피 안 될 거라는 체념이 뒤섞여 미래에 대한 불안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이제는 이 오래된 불안에 종점을 찍고 싶어, 흥보전을 들었다. 극한의 가난을 겪은 흥보라면 나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을까?


흥보는 곱게 자라다 집에서 쫓겨나 온갖 산전수전을 겪다가 대박을 터뜨렸다. 가난에서 대박을 터뜨린 흥보에게는 잘 될 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제일 크게 느낀 흥보의 다른 점은 흥보는 어떤 상황이더라도 상대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흥보는 쌀 한 톨 없이 쫄쫄 굶고 있어도 자기 집으로 날라 온 제비를 반갑게 맞이하고, 자신에게 아무리 못되게 군 형이라도 박에서 온갖 진귀한 것이 나오자 바로 형님을 불러오라고 말한다. 평소 사람들에게는 어떤가. 굶어 죽는 사람 보면 먹던 밥도 덜어주고, 얼어 죽는 사람 보면 입던 옷도 벗어주며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으면 한달음에 달려갔다. 박에서 쌀이 줄줄 나올 때에는 가난한 사람들 모두 자신을 찾아오라고 초대한다. 흥보의 삶은 상대를 반갑게 맞이하고 후하게 대접하는 환대, 그 자체였다.


반면, 놀보는 집의 재산이 넉넉할 때조차 하나뿐인 동생을 내쫓아 버린다. 그 뒤 놀보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흉흉하기만 하다. 부자가 된 흥보네에 찾아가서 돈이 솟아나는 궤짝을 얻어도 놀보가 열어보면 구렁이만 가득했다. 거기다 놀보는 박을 탈 때마다 악재를 겪고 있는데도, 그만 박을 타라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 한 마디를 귀담아들을 줄을 몰라 목숨까지 내몰린다. 


남의 일을 도와주느라 돈 한 푼 만지기 어려웠던 흥보는 밥 한 끼 먹기 어려운 가난 속에서도 제비의 박씨라는 큰 도움을 얻게 되고, 다른 이에게 뭐 하나 나눠주는 일 없었던 놀보는 악착같이 재산을 모았지만 박씨로 목숨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혹은 놀보처럼 노후를 보장해 줄 만큼의 돈을 갖고 있어야 불안해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놀보와 흥보의 상황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흥보전』은 재산이 아니라 다른 이를 반가이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생존에 훨씬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들만 스물다섯이나 되는 흥보네는 굶는 날이 밥 한 끼 먹는 날보다 더 많았어도 한 명도 죽지 않았다. 그 누구 하나 품을 줄 몰라 죽을 위기에 처한 놀보가 살 수 있었던 것도 흥보가 형의 위험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온 덕분이었다. 왜 놀보는 남을 품을 줄 모르고, 흥보는 능했던 것일까? 그리고 남을 품는 것은 왜 살아가는 데 필수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돈만 알았던 놀보

놀보는 오장 칠부라 하여, 심술주머니를 하나 더 찬 듯이 다른 사람을 괴롭혔다. 길 가는 과객 양반 재워줄 듯 붙잡다가 해가 지면 쫓아내고, 가뭄 농사에 물 빼내고, 이장할 때 뼈를 감추는 등 그 순간 다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콕 집어 훼방을 놓았다. 사람들이 가장 절박하게 바라는 것을 빼앗으니, 놀보의 다양한 괴롭힘들이 모두 악질 중의 악질인 이유다.   


다른 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주요 활동으로 삼는 놀보에게 사람들이 다가올 리가 없다. 곁에 갔다가, 무슨 일이 당할 줄 알고 가겠는가. 그래서 놀보 곁에는 사람들이 얼씬거리지 못한다. 흥보가 놀보에게 밥을 빌러 갔을 때도, 놀보는 큰 대궐집 대청마루에 혼자 누워있었다. 놀보의 하인도 허름한 차림의 흥보를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 방으로 데려가지만, 놀보 근처에 갔다가는 무슨 호령을 들을지 몰라 놀보에게는 꽁무니도 비치지 않으려고 한다.      

 


놀보 또한 다른 사람들을 쫓아내기에 바쁘다. 놀보에게 다른 사람 도와주느라 돈 하나 모으지 못하는 동생은 집에 둬야 할 이유가 없다. 집에는 도둑이 들까 싶어 사람 때릴 몽둥이들이 종류별로 즐비하다. 그런 놀보가 사람을 불러들일 때는 딱 한 가지다. 상대를 통해 더 큰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그가 사람을 모으는 장면은 딱 하나 있는데, 박을 타기 위해 인부들을 불러들일 때이다. 그가 전혀 관심도 없었던 제비를 집에 들여 놓고자 하는 것도 더 큰 재산을 불러올 것이라는 계산 하에서였다.


오는 사람도 없고, 있는 사람도 쫓아내는 놀보에게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다. 그에게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다른 사람이야 괴롭든 말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동생이 몇 년 만에 찾아와 다 떨어진 갓끈을 쓰고,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도와달라고 울고불며 빌어도 ‘이 녀석을 어떻게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게 할까’를 골몰한다. 그 결과, 놀보는 몽둥이를 든다. 


놀보가 몽둥이를 들고 지켜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다. 더욱더 으리으리한 대궐집으로 만들어 주고, 아끼면 아낄수록 쌓여가는 돈. 그에게는 밥보다도 돈이 더 중요했다. 제사상에서조차 밥 올리기가 아까워 돈을 대신 상에 올렸다가 다시 그대로 가지는 식이었다. 그마저도 돈 한 푼이 사라지자, 다시는 잃어버릴 일이 없게 낱돈 대신 돈 꾸러미를 올려놓고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놀보의 예측 가능한 세상

놀보의 삶은 돈을 모으고 지키는 것이 전부였다. 사람도 드나들지 않는 대궐 같은 집에서 놀보는 어디 갈 생각도, 필요도 못 느낀다. 어떻게 돈을 더 굴릴 수 있을지 생각하면서 대청마루에 혼자 늘어져 누워 있을 뿐이다. 그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돈! 흥보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바로 흥보네로 달려간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사람과의 변화무쌍한 관계 대신, 확실한 양을 알려주는 돈을 택한 그에게 인생은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자신이 욕심 부린 만큼 모이는 돈이니, 돈만큼 자기마음대로 되는 것도 없었을 거다. 그저 모으고, 모으고, 모으면 되었다. 이를 위해서 다른 사람이 들어올 자리는 없었으며, 혹 들어온다 해도 나눠야 해서 손해만 볼 것이니 내쫓으면 그만이다. 모으기와 내쫓기, 놀보의 방식은 단순했다.


하지만 놀보에게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흥보가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것이다. 놀보의 머리로는 누군가에게 빼앗는 것 외에는 흥보가 부자가 된 이유를 설명할 도리가 없다. 놀보는 어떻게 모함을 해 흥보에게서 그 막대한 재산을 빼앗을까 여념이 없다. 


그런데 흥보가 알려준 부자가 된 이유는 너무 뜻밖이다. 제비 다리 하나를 고쳐주었을 뿐이라는 것. 놀보는 흥보의 어떤 마음이 말 못하는 제비도 박씨를 물게 했는지는 관심이 없다.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면, 자기도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결과만 보인다. 언제나 제 마음대로 되었던 놀보에게 그 방법을 따라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는 돈도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제비집을 만들 때도 많은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한다. 찰벼 짚도 한가득 모으고, 직접 흙도 뭉쳐 집안 곳곳에 제비집을 만들기 여념이 없다. 제비가 돈도 아니고, 생물이 오고 가는 데에는 때가 있는데도 계절에 상관없이 한겨울에도 제비를 찾아 돌아다닌다. 다른 사람은커녕, 아주 작은 미물에게도 관심이 없던 그가 세상이 그의 뜻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돈만 많이 모을 줄 알았던 그에게 남은 것은 눈앞에 있는 결과만 볼 줄 아는 좁은 시야였다.


사람을 살림으로써 살아가는 흥보

놀보와 흥보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나, 됨됨이는 망아지와 송아지만큼이나 달랐다. 놀보는 다른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뺏고 훼방을 놓았다면, 흥보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발 벗고 도와주었다. 어진 사람 모함하면 대신 나서 밝혀주고, 애잔한 놈 불행 보면 달려가서 구원해주었다. 그는 곤란한 처지에 처한 사람을 돕느라 동분서주하였다.


흥보에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혼자의 힘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지만, 흥보가 조금만 거들어 주면 얼마든지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형님 집에서 쫓겨난 흥보는 이 사실을 적극 활용한다. 지금 여기에서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사람들이 있는 다른 곳으로 찾아가면 방법이 생길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그는 식구들을 데리고 곡식과 돈이 많이 오가는 포구를 전전하기도 하고, 전국에 있는 온갖 산을 찾아다닌다. 돌아 돌아다니다 흥보네는 결국 고향 근처 인심이 순한 ‘복덕’이라는 마을에 터를 잡는다. 아무리 먹을 것이 없다지만, 그들에게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살아갈 수 있는 덕이 있는 곳이었다. 


흥보네를 지탱한 것은 첫째도 사람이었고, 두 번째도 사람이었다. 흥보네 부부는 품을 팔아도 밤낮으로 밥 한 끼 먹기가 어려웠다. 아들만 25명이라 하루 번 돈으로 한 끼 먹기도 턱없이 부족했다. 흥보네는 삼순구식,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먹을 정도로 밥을 먹을 수 있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다.


그 신세가 서러워서, 흥보 마누라가 차라리 자결을 해서 이 꼴을 안 봐야겠다고 울며 죽으려고 한다. 옆에 있던 흥보가 그럼 자기가 먼저 죽어야 한다고 목을 매려 하니 그걸 본 흥보 마누라는 죽고자 하는 것은 잊어버리고 뜯어 말린다. 흥보네 부부는 지긋지긋한 가난 탓에 목숨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는 있었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 죽는 꼴만큼은 절대 볼 수가 없었다. 옆에 있는 사람은 살려야 해서 흥보네는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흥보네가 25명이나 되는 아들들이 있는 것은 부양해야할 자식들의 수이기도 했지만, 그들이 삶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단단한 생명줄이기도 했다. 


흥보의 미세하고 넓은 세상

흥보네는 가난을 참으로 길게 겪었다. 자식을 한 번에 둘, 셋씩 낳았다지만, 쫓겨난 후에 무려 스물다섯 명의 아들들이 생겼다. 그 햇수가 십년은 족히 넘는다. 제비가 박씨를 물어주었다지만, 그것을 기르는 데도 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돈을 모으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던 놀보와 달리, 타인을 살리는 것이 먼저인 흥보네는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처지를 헤아리는 데 무뎌지지 않았다. 의복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밥을 빌어먹고 다니느라 낯가죽은 점점 두꺼워져도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얻고자 하지 않았다. 흥보가 돈이 생겼다고 좋아라고 하며 가져와도, 흥보 마누라는 그것이 주운 돈이면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여 제자리에 돌려놓으라고 말한다.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흥보가 매품팔이를 해서 버는 돈이라면 흥보 마누라는 흥보가 몸이 상할까 울고불고 말리며, 제발 한 대도 맞지 않게 해달라고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를 한다. 심지어 흥보는 자신을 쫓아낸 형에게 밥을 빌러가는 것인데도, 밥을 얻지 못하는 것이 걱정스러운 이유는 형님이 박덕하다고 소문이 날까봐서이다. 그는 형에게 몽둥이찜질만 당하고 와서도 아내가 형을 원망할까 형을 감싼다. 


늘 남의 상황을 헤아릴 줄 아는 흥보에게 허투루 지나갈 만한 순간이 없다. 제비의 다친 다리를 치료하는 것일 뿐인데 조개껍질을 곱게 빻아 오색실로 찬찬히 감아주고, 박씨 하나를 심어도 씨앗 심기 좋은 길일에 맞추어 볕 좋은 곳에 단단히 심고, 박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 지붕이 위태로울까 미리 단단한 나무를 괴어 놓는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정성을 다했다. 아무리 작은 미물의 상처도 지나치지 않았으며, 때에 맞추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것이 필요한지 주시하였다.    


매일 굶고 허덕이는 흥보였지만 살 방도를 찾는 데는 예리해져 갔다. 흥보는 초반에만 해도 마누라를 부여잡고 가난을 견디기 힘들어 죽어야겠다고 통곡을 했었다. 그랬던 흥보가 시간이 지나 박이 열릴 때에는 가난해서 죽겠다는 마누라를 두고 말한다. 울지 말고 이리 와서, 박을 타서 어린 자식들을 구완하자고 말이다. 별반 다를 바 없이 가난한 하루하루가 계속 되는 것 같아도, 흥보는 그 속에서 살 길이 있다는 것을 찾았다. 박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절망하지 않고 박을 탔다.   


흥보가 다른 이들을 살리는 삶을 살면서 보이는 건 더 섬세한 세상이었다. 날지 못하는 제비 한 마리, 곤경에 처한 사람, 배를 주리던 처자식들을 구하려 하다 보니, 그의 세상은 더욱더 넓어져 있었다. 흥보는 제비 다리를 고쳐주다 정이 들어, 집에서의 간단한 소일거리는 제비와 보내고 아침저녁으로 제비집을 살펴보게 되었다. 어린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잡일을 하고, 병영까지 갔다가 발견한 건 돈보다 자신을 더 중히 여기는 아내의 기도였다. 마치 구불구불한 주름들이 밋밋한 면보다 더욱 표면적이 더 넓듯이, 그의 세상은 섬세해질수록 넓어져갔다. 


좁은 시야에서 넓은 시야로

흥보와 놀보는 서로 다른 세상에 살았다. 흥보의 세계에서는 사람이 가득했지만, 놀보의 세계에서는 사람이 없고 돈만 보였다. 흥보는 다른 이가 있기에 뜻밖의 시련을, 뜻밖의 도움을 받는다. 사람이 가득한 세계에 살았던 흥부는 앞으로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흥보는 어떤 결과를 바라고 하기 보다는,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발 벗고 나섰다.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집중했고, 눈앞의 상황에 최선을 다했다. 


반면 놀보는 언제나 자신의 계산아래 이득이 되는 행동만을 취하려 했다. 더 많은 이득으로 계산되는 것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 외의 일들은 무시되었다. 그 결과, 흥보에게 제비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보는 흥보와 제비 사이의 일이 손쉽게 따라할 수 있는 일로 여겨졌다. 제비와 흥보, 둘 사이의 수많은 인연조건들은 보이지 않았다. 놀보에게 세상은 이득과 아닌 것으로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놀보의 세계는 오래 갈 수가 없었다. 삶은 누군가를 꼭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놀보는 제비를 통해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집에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제비의 박을 통해 놀보네에 온 사람들은 놀보와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라, 놀보가 가진 돈의 원주인들이기도 했다. 놀보가 부자가 된 데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재산도 있었는데, 그 재산들은 놀보네 조상이 다른 이로부터 훔친 것이었기 때문이다.


놀보는 자신의 재산을 빼기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재산은 어떻게 뺏을지 날을 세웠지만, 그럴수록 그의 세상은 점점 좁아졌으며, 다른 사람의 조언 하나 듣지 못하였다. 제비가 물어준 박씨에는 보구풍, ‘원수를 갚는 바람’이라고 명백히 적혀 있었지만, 놀보는 그마저도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놀보는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없었기에, 다른 이들이 도움을 주려고 해도 받지 못했다. 놀보의 시선은 언제나 미래를 향했지만 그의 시야는 매우 좁아 눈앞의 결과밖에 보지 못했다. 반면 흥보는 눈앞의 상황에 최선을 다 했지만 그의 시선은 아주 미세하여 지나치기 쉬운 곳까지 가닿았다. 


그 동안 나의 시선도 놀보와 다를 바가 없었다. 내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 돈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어떤 일에 뛰어들기도 전에, 그 일이 안정적인 보수를 보장해줄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돈에 대한 근심에 빠지기 전에, 나의 삶이 다른 사람을 살리는지 스스로에게 되물어봐야 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좁은 시야에 갇혀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돈만 걱정할 때의 나는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그 어느 것 하나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10월, 북꼼 리뷰를 친구들과 준비하면서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 대신 8000자를 써야한다는 근심으로 한 달을 보냈다. 이번만큼은 팀에 누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마음에 매일 조금씩 썼고, 효과가 좋아 친구들에게도 매일 조금씩 쓰기를 제안했다. 팀 모두가 끝까지 글 한 편을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게을러질 수가 없었다. 각자 다른 글 한 편을 쓰고 있었지만, 같이 글을 쓰는 친구들의 마음이 함께했다. 덕분에 흥보의 풍성하고도 섬세한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하루하루는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넓어진다. 무언가 더 하고 싶게 하며, 움직이게 하고, 못 할 것만 같던 일을 할 수 있게 변화시킨다. 그러니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 하느라 아무것도 못하고 마음만 붕 떠버리느니,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인연들을 살게 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 편이 나를 살리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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