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사람과 글과 약이 있는 인문약방』 - 제 병도 병이지만, 저한테도 관심 좀

『사람과 글과 약이 있는 인문약방』 

- 제 병도 병이지만, 저한테도 관심 좀  

 

 

 

나는 한 해에 두 차례 정도 꼭 눈병에 걸리곤 한다. 그래서 안과에 가곤 하는데, 안과에서 처방 받는 약은 거의 매번 똑같다. 그리고 지금까지 두 차례 원형탈모를 앓았는데, 병원에 가면 해주는 치료와 처방이 매번 같다. 의사가 탈모반의 상태를 보고, 탈모반 전체에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는다. 처방약은 스테로이드 연고. 아마도 그게 해당 질병에 대해 검증된 교과서적인 치료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같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갈 때면 어딘지 모르게 찝찝한 기분이 들곤 한다. 내가 앓고 있는 병은 분명 ‘나’, 그러니까 입고, 먹고, 활동하고, 자는 총체적인 내 생활, 내 유전인자 등에서 비롯된 문제일 텐데 대부분의 의사는 나의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은 데서 오는 섭섭함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나’를 이루는 그런 것들에 대한 관심 없이 이루어지는 치료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할까 싶은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물론, 그 주사와 약들을 먹고 완치가 되기는 했으니, 그동안 쌓인 의학적인 데이터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환자’가 아니라 ‘환자의 병’에만 관심을 기울여도 자잘한 질병들은 치료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런 찝찝한 기분으로 약국에 들어가서 조제된 약을 받을 때가 되어서야 기분이 조금 풀린다. 그러니까 ‘복약지도’를 받을 때 말이다. ‘혹시 OOO에 알러지가 있지는 않으시죠?’라거나, ‘이거 드시면 속이 좀 불편할 수 있어요’라거나, ‘증세가 좀 나아지면 OOO랑 OO는 안 드셔도 되요’ 같은 말을 듣다보면, 병원에서 사라져버린 내 개체성이 조금 회복되는 느낌이랄까. 심지어 ‘OO에 자주 걸리시면, OO 같은 걸 드셔도 좋아요’ 같이 영양제를 권하는, 어쩐지 경계해야 할 것 같은 약사님의 세일즈 멘트마저도 고마울 때가 있다. 그러니까 병을 앓고 있는 ‘나’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나는 병원에 갈 때나, 병원에서 막 나올 땐 영 안 좋은 기분이 되곤 하지만, 약국을 나설 때면 안 좋았던 기분의 대부분이 회복되곤 한다. 얼토당토않은 소리이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꼭 병원 다음에 약국에 가게 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람과 글과 약이 있는 인문약방』의 부제는 ‘현직 약사가 들려주는 슬기로운 병과 삶, 앎에 관한 이야기’다. 원래부터 약국을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글이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문장을 아래 뽑아놓았다.

 

조금만 아파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고 걸핏하면 약을 삼킨다면 내 몸에 대한 앎이 쌓여 갈 수 없다. 내 몸에 대한 앎이 없으면서 어떻게 ‘셀프’가 되겠는가? 의료 분야는 전문성이 고도화되어 있고 그만큼 정보의 비대칭성도 크다. 달리 말하면 ‘셀프’를 행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사실 진정한 ‘셀프’는 약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아는 것보다는 자기 몸에 대한 관심과 앎에서 오는 게 아닐는지. 자신의 몸에 대한 앎이 있어야 의료화된 사회에서 휩쓸리지 않고 지혜롭게 그리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김정선, 『사람과 글과 약이 있는 인문약방』, 북드라망, 56쪽 

 


눈병과 원형탈모에 이어, 나에게는 만성 비염마저 있다. 덕분에 두통을 자주 앓는다.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기온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하는 날엔 오전 내내 코를 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코를 풀다보면 처음엔 머리가 그냥 좀 무겁다가 결국엔 아프다. 딱히 해야만 하는 일이 없거나, 그냥 쉴 수 있는 상태라면 그대로 버티고 있다 보면 코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는지 콧물도 멈추고, 두통도 대충 참을 만큼 가라앉다. 나도 그걸 안다. 그런데 세상 일이 그렇게 여유 있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 날이면 꼭 시간 안에 해야 할 일이 생기거나, 회의가 있거나, 하다못해 운전이라도 하게 된다. 그러면 다른 선택지가 없다. 나는 그럴 때면 진통제를 삼켰다. 

위의 문장을 읽었을 때, 내가 내 몸을 대하는 태도와 병원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똑같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글에는 ‘몸’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여기서 ‘몸’은 앞서 이야기한 ‘내 삶의 총체로서의 나’일 것이다. 나조차도 거기에 관심이 없는데 어느 누가 거기에 관심을 기울일 것인가. ‘자기 몸에 대한 관심’은 ‘머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먹는다’로 환원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렇게 머리가 아픈 이유, 만성비염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나빠지는 이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게 ‘자기 몸에 대한 관심’에 훨씬 더 가까우리라. 그게 잘만 된다면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질병을 적당히 끌어안고 사는 지혜도 터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질병에 대한 관심이 그에 해당하는 약의 복용으로 환원지 않는 것처럼, 건강도 단순히 질병이 전혀 없는 상태로 환원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내가 만드는 내 온 삶이 내 건강이고 윤리이고 정치다. 그 삶이 만들어 내는 자율만큼이 나의 건강이다.”
같은 책, 176쪽, 맨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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