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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송 전라북도, 전라남도 옛이야기 풀어 읽은이 인터뷰

by 북드라망 2020. 10. 29.

낭송 전라북도의 옛이야기』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라 ‘낭송’과 더욱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은 각 지역별로 옛이야기들이 모아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선생님께서 어떤 인연으로 전라북도의 옛날이야기들을 풀어 읽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고향은 ‘생강’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입니다. 어릴 때 붉은 황토밭에서 생강을 캐다가 친구들과 소꿉놀이 하던 추억과 할머니가 생강으로 만드신 ‘편강’의 달콤매콤한 맛이 생각이 나네요. 제가 살던 시골 동네는 이십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작고 포근한 동네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집집마다 숟가락 개수까지 다 알고 지내던 사이였죠. 


어릴 때 부모님은 두 분 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 갔다 돌아오면 집은 항상 텅 비어 있었어요. 전 가방만 던져놓고 동네 이리저리로 쏘다니며 놀다가 해 질 무렵 엄마가 퇴근하실 때를 기다려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동네에서 재미있는 놀거리들을 찾곤 했는데 제일 좋았던 기억은 동네 어귀 정자에 항상 담배를 물고 앉아 계시던 할머니들이 해 주시던 이야기였어요.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불러다가 고구마나 옥수수도 챙겨 주시고 이야기도 들려주셨어요. 정신없이 할머니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금세 시간이 가서 나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전라북도 옛이야기를 낭송으로 풀어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잊고 지내던 유년의 기억이 떠오르며 기뻤습니다. 자칫 나의 어린 시절이 외로운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었는데 옛이야기가 그 시간들을 포근하게 채워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망설임없이 고향의 옛이야기들을 낭송으로 엮는 작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2.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각 지역의 사투리가 이야기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일 텐데요. 사투리로 옛이야기들을 낭송할 때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또 사투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나요?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낭송입니다. 소리를 통해 이야기들은 살아 움직이며 생명력을 갖게 되지요. 특히 이야기 속 사투리에는 표준어로는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그 지역만의 정서와 특징들이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사투리가 지닌 특이성 때문에 입말의 아름다움이 돋보이고 리듬감도 잘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전라북도 사투리는 충청도보다는 경쾌하고 남도보다는 정감 있고 따뜻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듣고 쓰던 말이라 이야기 속에서 사투리들을 다시 만나게 되니 반가웠고 편안함을 느끼며 작업했습니다.



3. 『낭송 전라북도의 옛이야기』를 풀어 읽으시면서 느끼신 여타의 지역과 다른 전라북도 옛이야기만의 특징을 한 가지만 꼽아 주세요. 


전라북도의 옛이야기들에는 유난히 효자, 열녀에 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동안 나에게 열녀의 이미지는 한평생 정절을 지키며 가슴에 은장도를 품고 사는 양반가 아녀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나라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따라 죽거나 평생 수절한 아녀자에게 열녀라 칭송하며 열녀비까지 세워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기보다는 억지로 열녀가 되기를 강요받은 것이지요.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서는 흔들리는 사회질서를 잡기 위해 열녀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나라의 기강을 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옛이야기 속에서 만난 평민 열녀들의 모습은 좀 다릅니다. 


그녀들은 정절을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강요받는 양반가 여인들과 달리 사랑하는 남편의 목숨을 위해서라면 정절도 버릴 수 있는 여성들이었습니다. 남편을 구해 준 남자에게 가서 자식을 낳아 주고 다시 남편에게 돌아오는 열녀, 남편을 죽인 원수와 살면서 끝까지 진실을 밝힌 열녀, 벼슬 한자리 얻어 보려고 열녀를 찾아다니는 남편에게 열 남자와 잔 자기가 열녀 아니냐고 천연덕스럽게 묻는 열녀들까지 그녀들은 제도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며 살아간 멋진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전라북도에도 열녀와 관련된 유명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이도령과 성춘향의 설화로 유명한 남원입니다. 옛날부터 남원에서는 매년 음력 4월 8일이면 거대한 규모의 춘향제가 열리는데 올해로 벌써 90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춘향제는 일제 강점기나 6.25 전쟁 중에도 멈춘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춘향이 긴 세월 동안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춘향이 조선시대 지배계급이 강조한 수동적 열녀의 모델이 아니라 오히려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 남자에 대한 사랑과 신의를 지킨 여성, 지배층의 권력에도 굴복하지 않은 당당한 여인이었기에 민중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살아남았던 것은 아닐까요.



4. 선생님께서 풀어 읽으신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옛이야기를 소개해 주시고,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아기장수 우뚜리 이야기입니다. 우뚜리는 몸통만 있고 다리는 없는 모습으로 가난한 산골 부부에게 태어납니다. 하지만 우뚜리는 태어나자마자 말을 하고 시루 안의 콩나물을 수십 명의 군사로 만들 줄 아는 비범한 능력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뚜리가 영웅으로 태어난 것을 안 부모는 임금이 알게 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러자 우뚜리는 비록 지금은 윗도리만 있고 아랫도리는 없는 반쪽짜리 영웅의 모습이지만 3년이 지나면 완전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부모는 콩 한 말, 생쌀 한 말과 함께 우뚜리를 뒷산 큰 바위 안에 숨겨 줍니다. 


얼마 후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고 싶어 전국 산신령들을 찾아다니며 제사를 지냈는데 지리산 산신령만이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허락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왕은 이성계가 아닌 우뚜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이야기를 들은 이성계는 우뚜리를 찾아 죽이고 왕이 됩니다. 


줄거리만 본다면 아기장수 우뚜리는 완전한 영웅이 되는 날을 기다리다 마지막 하루를 채우지 못하고 그만 죽임을 당하는 슬픈 영웅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부패한 지배층에 대한 민중의 저항의식이 숨어있습니다. 우뚜리는 민중의 희망을 담은 미래의 영웅을 상징하며 언젠가는 반드시 세상을 구하러 올 것이라는 희망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뚜리는 실패한 영웅이 아니라 전설을 통해 계속 되살아나는 ‘죽지 않는 영웅’입니다. 전라북도 부안에 녹두장군으로 유명한 전봉준의 동학혁명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우뚜리와 같은 새로운 영웅의 부활을 기다리는 민중들의 또다른 바람이 담겨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5. 마지막으로,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낭송집 작업을 위해 참고한 한국구비문학대계 전라북도편 이야기들은 각 지역을 찾아다니며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녹취하여 풀어 쓴 것입니다. 저는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무척 당황스러웠습니다. 눈으로만 읽는 것에 익숙했던 저에게 어르신들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 이야기에 다른 두서너 개의 이야기들이 섞이면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끝나버리기도 했으니까요. 어릴 때 재미있게 들었던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기대했는데 잘 정리되지 않고 줄거리의 내용조차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방법을 바꿔 보기로 했습니다. 눈으로가 아니라 소리내어 읽어보기 시작한 거죠. 그러자 이야기의 맛이 살고 훨씬 재미있게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원고를 쓰고 다듬을 때는 줄거리나 문맥 구조에만 초점이 맞춰지며 글로만 보이던 이야기가 소리내어 읽기 시작하자 문장들이 리듬을 타기 시작하며 한 편의 연극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을수록 마치 내 몸에 맞춘 것처럼 입에 착 달라붙기 시작했습니다. 


 옛이야기는 아무리 같은 줄거리라 할지라도 말하는 사람과 때에 따라 매 순간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됩니다. 왜냐하면 이야기하는 사람의 몸짓과 표정, 전달하고 싶은 마음들까지 모두 이야기 속에 녹아들어 그 사람만의 맛을 가진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낭송 전라북도 옛이야기도 활자로 쓰여졌지만 눈으로 읽는 책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자신만의 맛을 더해 소리로 읽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와 손자가 같이 마주 앉아 서로 한 편씩 소리내어 읽어주기를 해도 좋겠고 여럿이서 이야기 속의 인물들을 나누어 역할극을 해 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또 판소리같은 형식의 1인극 소리극을 만들어 봐도 좋지 않을까요?





『낭송 전라남도의 옛이야기』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라 ‘낭송’과 더욱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은 각 지역별로 옛이야기들이 모아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선생님께서 어떤 인연으로 전라남도의 옛날이야기들을 풀어 읽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말’과 ‘입’의 인연이 많은 식상과다 인간형인지라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신나게 말을 풀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입을 좀 다물고 조용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인연이 되어 용인에 있는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 접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함께하게 된 첫 세미나가 ‘낭송’ 세미나였습니다. 고독한 사색의 공부는커녕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입말을 살려야 하는 공부를 만난 것이지요. 그렇게 5년을 지내면서 내가 정말 낭송을 ‘습관’이 아닌 ‘차이’를 만들어내는 공부법으로 만들고 있는 것일까 하는 고민이 생겨나던 즈음, 낭송 세미나를 통해 전라남도 옛이야기 시리즈 집필 의뢰를 받았습니다. 


조용한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낭송을 만나고, 낭송에의 철학적 고민이 시작되자 옛이야기라는 새로운 낭송의 장에 연결되고, 더구나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고 직장생활까지 한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이 연고는커녕 몇 번 가본 적도 없는 전라도 지역의 옛이야기를 만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런 난감함들은 오히려 저를 오롯이 ‘옛이야기들’ 속으로 용감하게 걸어 들어갈 수 있게 하는 힘과 동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옛이야기로 만난 전라남도는 낯선 듯했지만 유쾌했으며 따뜻했습니다. 또한 집필 작업으로 만나는 낭송 역시 힘들었지만 같이 합을 맞추어 작업했던 (강원도, 경기북부)동학들 덕분에 예정된 시간에 즐겁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수많은 인연들과 아슬아슬한 삶의 모퉁이들을 돌고 돌아 입과 말을 통해 끝없이 흐르는 것처럼 전라남도의 옛이야기 역시 저라는 뜻하지 않은 시절인연을 만나 새롭게 변주되고 재탄생할 수 있게 되었기를 소망해 봅니다.  



2.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각 지역의 사투리가 이야기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일 텐데요. 사투리로 옛이야기들을 낭송할 때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또 사투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나요?


경기도에서 산 지 10년이 되어 가는 제게 사람들은 말투만 보면 경상도 사람인 줄 몰랐다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곤 합니다. 내가 표준어를 잘 사용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 비슷한 것과 동시에, 나에게는 일종의 모국어와도 같은 사투리가 잊혀져가고 있구나 하는 아쉬움과 불안함이 그것입니다. 


 사투리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인 표준어의 기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지방어로 규정됩니다. 더구나 교통과 통신기술의 상상을 초월한 발달로 지역과 중심 간의 현장성의 차이가 사라지면서 표준어의 편리성과 우월성은 점점 더 그 지위를 넓혀가고 있고, 사투리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급속히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 편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는 현장성의 기록으로서, 또 그 현장성을 낭송으로 강렬하게 체험해보는 기회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낯설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다른 지역들의 다양한 사투리를 만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물어보고 유추해 보고 또한 음미해 본다면, 자기 자신과 이웃으로의 새로운 확장성을 도모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요?  



3. 『낭송 전라남도의 옛이야기』를 풀어 읽으시면서 느끼신 여타의 지역과 다른 전라남도 옛이야기만의 특징을 한 가지만 꼽아 주세요. 


우선 전라남도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벼락바위, 원숭이 바위, 칠형제 바위, 시루떡 바위, 주전자 바위 등등 섬과 바다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경기도가 서울로 가는 길목인지라 양반들의 이야기가 특히 많고, 또 산지가 험한 강원도는 호랑이와 유배에 얽힌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면, 거기에 비해 전라남도는 벼슬 이야기나 무서운 동물 이야기는 많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물들은 인간들의 흔하고 자잘한 욕망들에 빗대어져 익살스럽게 등장하고, 또 서민들은 기지와 진솔함으로 양반들을 능가하며 자신들만의 배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특이한 점은 세상을 혁명적으로 바꾸고자 하거나 권력 지향적인 욕망들로 그려지기 쉬운 영웅들의 서사가 전라남도의 옛이야기에서는 일상과 맞닿은 소박한 해법들 속에서 빛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되 작은 목소리들도 소외되지 않는 지극히 인간적인 세상을 바라며, 비록 열악한 사회적 환경 속에 처하게 되더라도 특유의 성찰과 상상력으로 재치 있고 용감하게 그것들을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남도 특유의 진정한 풍요로움과 지혜가 무엇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4. 선생님께서 풀어 읽으신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옛이야기를 소개해 주시고,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내가 느그 아부지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아들이 일터에서 돌아오니 아버지가 둘이 되어서 나란히 문 앞에서 아들을 맞이합니다. 천년 묵은 흰쥐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둔갑을 한 것이죠. 서로 자기가 진짜라고 우기다가 결국은 ‘살림살이 알아맞히기’ 내기에서 진짜 아버지가 지게 되면서 자기 집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는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는 자신의 자리를 도로 되찾아오게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옹고집전’이 떠오릅니다. 심술궂고 인색한 옹고집을 응징하기 위해 도력 높은 도사가 풀(草)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진짜 옹고집을 혼내주는 이야기 말입니다. 쥐 혹은 풀이 사람으로 둔갑하고, 진짜가 가짜에게 쫓겨나는 억울한 상황, 결국은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주인공들에게서 우리는 권선징악, 인과응보 같은 전형적인 옛이야기의 심상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두 이야기를 비교하며 비슷한 듯 다르고, 혹은 잔혹(?) 동화 같은 스릴을 느낄 수 있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먼저, 두 이야기는 비슷해 보이지만 주인공들의 성장 과정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옹고집이 단지 회개와 반성만으로 자신의 자리를 수동적으로 되찾았다면, 아버지는 고통스런 수행 속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자리를 되찾아옵니다. 또, 옹고집의 불행은 자신의 악행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지만, 아버지의 불행은 그 원인을 짐작할 수 없다는 점에서 권선징악과 인과응보만으로 점철되어질 수 없는 우리네 예측불허의 인생사를 겸손하게 느끼게 해줍니다. 


한편, 심리학자 폰 프란츠가 옛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숨은 욕구와 소망 같은 심리적인 문제들을 볼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저는 이 이야기에서 아들의 숨은 욕구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혹시 아들은 자신의 진짜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있지는 않았을까? 농사만 열심히 짓는 성실한 아버지, 그러나 살림살이와 자신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것이 없는 아버지. 그렇다면 이런 마음들이 아들로 하여금 진짜 아버지를 무의식적으로 쫓아내게 만들지는 않았을까요? 


논리적 설명이 생략되어 오히려 풍부하게 읽힐 수 있고, 같은 듯 다르게 변주될 수 있는 다양한 우리 옛이야기들의 강점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게 해준 이야기 중의 하나였습니다.



5. 마지막으로,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처음에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 편을 보았을 때 좀 어리둥절했습니다. ‘뭐지? 어린이용 옛날이야기책인가? 아닌가… 어른용인가?’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제 안에 도사리고 있는 옛이야기에 대한 일종의 편견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옛이야기는 그저 어린 시절의 감수성과 도덕성 함양을 위한 통과의례거나 혹은, 교육과정 속에 한 챕터로만 기능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전라남도의 옛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제일 먼저는 피식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과 다음으로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탄성, 마지막으로는 안타까운 한숨이 저도 모르게 새어 나왔습니다. 뒷걸음질 쳐서 과거로 들어가는 듯했지만 결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었고, 오래되어 낡지 않았을까 했지만 생기 있는 반짝거림은 눈이 부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옛이야기들은 빠르고 복잡한 현대의 삶 속에서 저만치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낭송Q시리즈를 통해 이런 것들을 되살릴 수 있는 계기, 혹은 사투리로 함께하는 낭송이라는 새로운 신체적이고도 지성적인 감각을 회복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어린이에서 어른까지 모두가 새로운 질문과 상상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도와주는, 세상에서 가장 초보적이고도 어른스러운 ‘책’이 되기를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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