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관계 – 알바
24살, 나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카페 알바를 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청소하고, 과일을 깎고, 샌드위치를 만들다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 된다. 회사 근처 카페라 점심시간은 그야말로 ‘피크타임’이다. 손님들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그에 맞춰 나도 재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초인적인 ‘반사 신경’으로 커피를 뽑고, 과일을 갈고, 동시에 설거지도 하고 빵도 굽는다. 오후 2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거의 녹초가 되어있다. 하지만 정작 속을 끓이는 일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것이었다. 카페 사장님은 ‘주휴수당’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힘들게 구한 일자리를 놓치기 싫어서 또 관계가 껄끄러워질까봐 나는 당장 말하지 못하고 혼자 쌓아두었다. 몇 개월간 그렇게 끙끙 앓다가 결국에는 얘기를 했는데, 곧 잘렸다.^^
이처럼 사장님에게 ‘갑질’을 당해 아무 말도 못 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갑질’을 넘어 ‘을질’을 하는 청년들도 있다.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틈만 나면 농땡이를 치면서, 가게 안의 상품을 마음대로 사용하는! 그러면서 아무런 말도 없이 잠수를 타고 안 나와 버리기도 한다. 잠적하면 돈은 어떻게 받냐고? 이들은 특출난 ‘신고 정신’으로 받을 건 다 받아내고야 만다.
두 사례는 전혀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 두 경우 모두 자신을 ‘을’의 위치에 두고 있다. 그러면서 ‘갑’의 위치에 있는 점장님에게 끌려 다니거나 혹은 자신이 하는 일을 ‘갑’에게 떠넘기고 무책임하게 방임해버린다. 이러니 알바 현장에서 펼쳐지는 관계는 갈등이 깊을 수밖에 없다. 점장이나 알바생이나 서로가 피해를 봤다며 난리다. 그뿐이랴? 함께 일하는 동료들 간에도, 매일 마주치는 손님에게도 편안하게 다가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알바 현장에서의 관계는 어쩌다 이렇게 불편해진 걸까?
‘알바천국’에서 ‘알바지옥’으로
청년들은 대부분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알바를 시작한다. 성인이 됐으니 부모님에게서 자립하기 위해, 스스로 돈을 모아 해외여행을 떠나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처음에는 이렇게 가지각색의 이유를 가지고 설레는 마음으로 ‘알바천국’에 접속한다.
‘알바천국’ 앱을 쭉~ 둘러보면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종류는 그렇게 많지 않다. PC방, 노래방, 편의점, 서빙, 카페 등 거의 다 ‘서비스 직업’이다.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를 꾸밀 줄 알아야 한다. 외모부터 시작해서 감정까지도. 그리고 상품을 팔기 위해 말을 포장할 줄 알고 표현도 과장되게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청년들은 알바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속이게 되고 또 자기 자신을 속이게 되면서 뭔가 찝찝한 감정을 경험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감정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걸 많이 느낀다. 가족과 다투고, 친구와 싸우고 온 날에도 요동치는 감정을 숨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매뉴얼대로 반복해야 한다. 상냥하게 미소 짓고, 큰 소리로 인사하고, 매번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힘든 내색’을 하면 여기저기서 컴플레인이 들어온다. “여기 서비스 왜 이래? 아휴 재수업성~!” 게다가 진상손님까지 들이닥칠 때면 알바생의 마음엔 손님들에 대한 피로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한테는 관심이 잘 가지 않는다. 금방 사람이 나가고 채워지는 알바라는 특성 때문이다. 어차피 오래 볼 사이도 아니니 적당히 알려주고 도와주며 하하호호 웃어준다. 나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러다 똑같은 시간을 일하는데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하는 것 같으면 의심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쟤 왜 저렇게 일을 안 해?’라며.
더군다나 알바생들이 하는 일은 ‘단순’하다. 그래서 누구나 금방 익숙해진다. 그러다 권태로운 감정도 빠르게 찾아온다. 지루하다는 생각에 빠지면 빠질수록 초반의 활력과 패기는 어딜 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진다. 결국에는 좀비 상태나 다름없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알바생들은 ‘현타’를 경험한다. ‘알바천국’이 ‘알바지옥’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설렘과 호기심이 사라지고, 자신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기분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으로 너무 고단하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신체적인 건강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그 이유는 ‘밥’ 때문이다. 알바생들은 ‘밥’을 제대로 챙겨 먹는 경우가 드물다. 법적으로 4시간을 일하면 30분 쉴 수 있는데, 그 안에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빠르고 신속하게! 그래서 주로 가까운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라면을 먹거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햄버거를 먹는다. 이걸 매일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입은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지고 몸은 가공식품에 중독될 것이다. 이러한 식습관은 혈관에 기름기를 만드는데, 이로 인해 뇌혈관은 막히고 뇌에는 충분한 혈액이 공급되지 않는다. 뇌에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으면 외부를 경험하고 감각하는 기능이 둔해진다. 보고 듣고 만지는 신경들이 모두 뇌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옆에 있는 사람의 기분이 어떤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캐치’가 잘 안 된다.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기가 참 힘들다. 그러니 사람들과 만나는 상황 자체가 긴장되고 어려운 일이 된다. 그러니 알바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관계들이 부담스럽게만 느껴질 따름이다.
점장 vs 알바, ‘시급’한 문제
특히 사장님과의 관계는 더더욱 어렵다. 시간과 돈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점장님들은 ‘돈’을 주고 알바생을 쓴다. 그러다 보니 내가 구매한 ‘시간’만큼은 알바생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점장님 입장에서는 주어진 시간 안에 최대의 효율로 알바생을 써먹는 게 이익이다. 그렇지 않으면 ‘최저시급’을 주는 게 너무 아깝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 핸드폰만 보지 말고 뭐라도 찾아서 일했으면 바라고, 한 사람의 손님이라도 더 받기 위해 일을 재빠르게 처리해줬으면 바란다. 설령 그것이 ‘위험천만한 오토바이 배달 알바’라도 말이다.
반대로 알바생은 주어진 ‘시간’ 동안 자신이 정해놓은 ‘선’까지만 일한다. 아니면 최대한 일을 안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자신이 손해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온갖 꼼수를 다 고민한다. ‘출근할 때는 정각에 딱 맞춰서 오고, 퇴근할 때는 10분 전에 유니폼을 갈아입은 채 나가기를 기다려야지!’ 그리고 수시로 화장실을 들락날락한다. 몰래 스마트폰을 보기 위함이다. 또 알바들은 ‘소확횡’을 한다. ‘작지만 확실한 횡령’을 한다는 의미이다. 법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매장의 상품을 ‘내 것’인 양 사용하고, 먹고, 가져가는 것이다.
이렇게 점장과 알바는 이렇게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있다. 둘 다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더 ‘이득’이 되는지 따지고 재는 데에만 머리를 굴린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다 보면 삶이 허탈해진다. 왜 그럴까? ‘내 것’만 생각하다 주변에 있는 ‘관계’를 다 놓쳐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점장은 ‘내 가게’ 물건이 안전한지 CCTV로 알바생을 감시한다. 알바생은 ‘내 휴식’을 보장받기 위해 사각지대를 찾아 숨어든다. ‘내 것’만 중요한 세상 속에서 점장과 알바는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관계가 되어 버렸다.
특히 알바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늘 알바 현장 바깥에 존재한다. 학교 공부, 취업 준비, 여행 등. 지금 알바를 하는 것은 다른 ‘중요한 것’을 하기 위한 ‘과도기’일 뿐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청년들은 알바 현장에 오롯이 집중하지 못한다. 아직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결핍감에 빠져있기도 하고, 지금 하는 이 일이 하찮게만 느껴져서 빨리 이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조급함에 시달리기도 한다.
시선이 외부에 있다 보니 일터에서 자연스럽게 ‘수동적인 자세’가 된다. 매뉴얼에 적혀있는 대로만 일하게 되고 또 누군가가 시키기 전에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작은 쓰레기를 발견해도 그냥 넘어가 버리고, 동료가 무거운 물건을 옮기느라 애쓰는 것을 봐도 살짝 눈길을 돌리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그러한 행동이 나에게 ‘유익한 것’이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 눈에 보이는 일을 의도적으로 피하다 보면 찝찝한 감정만 남는다. 그렇게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둘 쌓이다 보면 관계에 미묘한 긴장감이 생기고 불편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의 눈치를 요리조리 살피게 된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비겁한 모습을 숨길 수 있을지 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생각은 많아지고 결국에는 비위가 상해서 소화불량에 걸리게 된다. 그리고 음식이 들어오면 그것을 잘 흡수해내지 못한다. 음식을 내 몸의 에너지원으로 변환시키는 작업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온몸에 에너지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다. 그러면 사지는 무기력해진다. 이렇듯 외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삶에는 활력과 생기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래서 알바생들은 일이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하다. ‘월급’을 받기 위해 긴 시간을 억지로 버티게 될 따름이다. 그렇게 되면 빨리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만 불쑥불쑥 올라오고,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이렇게 참고, 억누르다 보면 자존감만 떨어질 뿐이다.
방향전환, 심장(心腸)이 핵심(核心)
이렇듯 청년들은 알바를 하면 ‘수동적인’ 태도로 임하기 쉽다. 다른 방식에 대한 상상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반대로 ‘능동적’으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바보같이 착취를 당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내 한 몸 불살라 점장님의 ‘부’를 늘려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능동’ 역시 점장과 알바생의 수직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니 부정적인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계를 떠나서 다른 방식으로 일을 할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알바에서 잘리고 지금 공부하고 있는 남산강학원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해서 강감찬 TV, 주방 보조 등등. 여러 가지 일을 오가며 밥벌이했다. 그렇게 일과 공부를 병행해 가며 느낀 게 하나 있다. 능동과 수동을 넘어서 내가 일하는 현장에선 내가 ‘주인’이 돼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마음을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나’에게 좋은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주인’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일단 함께 하는 사람이 소중해진다. 같이 사업장을 꾸려나가는 동료가 고맙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에 부딪혔을 때도 그것이 부당하거나 억울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보다 그 문제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질문하고 실천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러한 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은 어디에서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관계에서, 활동에서 겪는 일들을 배움으로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게 새로운 걸 배우고 변화시켜 나가다 보면 자신의 삶에 당당해질 수 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 것인지를 결정하는 장부는 바로 심장이다. 몸에서 심장은 ‘군주’의 역할이다. 군주가 국가의 흐름을 조절하듯이 심장은 우리 신체의 활동 방향을 만들어 낸다. 군주의 말 한마디가 전국에 영향력을 끼치듯 심장이 펌프질하면 피가 온몸에 퍼지면서 영양분을 공급해준다. 그런데 혈만 공급해주고 끝인가? 아니다. 혈이 자유롭게 몸 안을 흘러 다니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가 필요하다. 이렇듯 심장은 유형의 혈과 무형의 기의 흐름을 모두 작동시킨다. 여기서 무형의 ‘기’가 바로 오장육부를 순환하면서 마음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다.
마음의 해석이 달라지면 심리적인 흐름도 변한다. 이전에 스트레스를 받던 일들도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지금 일하는 작업장에서 소외되는 게 아니라 청춘의 기운을 한껏 발휘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의미심장(意味深長)한 심장(心腸)의 건강이 핵심(核心)이다^^
글_Moon 빈(청스 의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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