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 보고 있지만 만나지 못하는 – 연인
여자 친구와 남산으로 산책을 자주 다닌다. 평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걷는데, 어떤 날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길 때가 있다. 나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단번에 알아차린다. ‘너 삐졌지? 또 뭐 때문에 그래?’ 그러면 여자 친구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다. 그러고는 입을 꾹 다문다. 나는 또 ‘왜 말을 못 하냐며’ 답답해한다. 그러면 여자 친구는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며 살짝 입을 연다. 그렇게 서로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다 끝끝내 이유를 듣는다. 풀어가는 과정은 매번 다르지만, 결론은 비슷하다. 질투. 다른 이성 친구와 함께 있는 것만 봐도 가슴에서 열불이 난단다! 그래서 나는 가끔 여자 친구를 ‘질투의 화신’이라 놀린다^^
지금 열애 중인 청춘 남녀들도 비슷한 문제로 박 터지게 싸운다. 그래서 대개 연애를 시작하면 다른 이성 친구는 만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성 친구뿐인가? 친한 동성 친구와 약속 잡기도 꺼려진다. 연인과 함께할 시간을 뺏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친밀했던 사람들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연인 간에는 쿵짝이 더 잘 맞아 졌나? 당근 아니다. 토라지고 화해하고 싸우고 사과하기를 수없이 반복할 뿐. 그래서 나는 궁금해졌다. 연애는 왜 다른 관계를 차단하는 방식으로만 가는 것일까. 그리고 연인 간에는 왜 이렇게 교감이 안 되는 걸까.
연애, 둘만의 블랙홀 속으로
요즘 청년들은 ‘연애’를 시작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다. 얼굴, 키, 성격, 학교 온갖 것들을 재고 따진다. 손해 보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계산기를 쉴 새 없이 두드려대는 것이다. ‘카톡을 먼저 해도 될까? 인스타에 하트를 눌러도 될까?’ 작은 것 하나에 온갖 신경을 곤두세운다. 여기에 화려한 ‘밀당’ 테크닉은 필수다. 언제 치고, 빠지느냐에 따라 승부가 확연히 갈린다. 그러니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청년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연인’이라는 타이틀을 쟁취한다.
그렇게 만난 연인은 ‘데이트’를 한다. 데이트는 평범한 일상이어서는 안 된다. 멋지고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고,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공간쯤은 가줘야 한다. 특히 이날만큼은 돈 쓰는 걸 아까워해선 안 된다. 한 달 치 알바비 정도는 과감하게 지를 수 있어야 한다. 데이트는 ‘특별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 시간을 함께하는 연인은 서로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청년들은 연애하면서 자신이 ‘사랑받고 있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느낌이 사라질까 몹시 두려워한다. 그래서 연인을 통째로 ‘소유’하려 한다. ‘넌 내 거야’, ‘넌 나만 바라봐’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올인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를 싫어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대부분 연인은 둘만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서로를 구속하고, 통제하고, 옭아매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한 연인이 다른 이성과 웃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미치고 팔짝 뛴다! 상대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 사람과 어떤 관계인지부터 시작해 왜 만났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구구절절 설명해줘야 한다. 그것도 부족하면 스마트폰을 제출해 무죄를 입증해야 한다. 그런 일을 겪으면 감시는 점점 심해진다.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 단위로 보고받고, 위치추적기 어플을 통해 실시간으로 동선을 파악한다. 이러니 연인 사이에 다른 관계가 끼어들 틈은 없다.
관계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데이트’밖에 없다. 데이트 코스는 밥-카페-영화-쇼핑-모텔로 정형화되어 있다. 이를 통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끊임없이 자극받는다. 짜릿한 감각을 순례하는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감각이 반복되면 몸은 금방 둔해진다. 이전보다 더 센 놈을 만나야 새로운 반응이 생긴다. 그래서 연인들은 더 맛있고, 흥분되고, 야한 것들을 찾아 헤맨다. 이제 연인들 사이에는 ‘자극을 극대화’하는 일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보통 나를 즐겁게 해주는 것이면 무엇이든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극적인 것에 쉽게 매료되고 된다. 그런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무엇이든 지나치면 병이 된다고 말한다. 과도한 것에서는 잉여물이 남기 때문이다. 잉여물은 몸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뭉친다. 뭉친 것에서는 열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열은 몸을 태워 푸석푸석 메마르게 한다. 그렇게 머리까지 열이 뜨면 피가 솟구치게 된다. 과대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화가 뜬’ 연인들은 서로가 마치 ‘운명적 사랑’인 양 착각하며 둘만의 구렁텅이에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른 관계는 사라져 버린다. 마음을 나눌 친구가 하나도 없으니 연인 간에 의존성은 더욱 높아진다. 그럴수록 서로를 ‘소유물’로 인식하게 되고,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뺏길까 두려움에 떤다. 그런 불안함 때문에 24시간 연인을 ‘스토킹’하고 또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연인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낭만적 판타지 VS 변태적 쾌락
더 중요한 문제는 남성과 여성이 연애에 대해서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접근한다는 점이다. 여성은 주로 낭만적 사랑을 꿈꾼다. 어린 시절부터 드라마나 영화로 연애 세포를 자극받고, 예쁜 장면을 보며 환상을 품어왔다. 맑고 순수한 얼굴에 다부진 몸매를 가진 남자친구! 거기다 지적이고 착하고 애교까지 있어야 한다. 취향 저격! 인물들 간의 ‘달달한 케미’를 보고 있으면 동공은 확대되고 귀는 쫑긋 심장은 쿵쾅쿵쾅 뛴다. 영상 속의 인물과 하나가 되어 자신이 진짜 연애를 하는 것처럼 느끼며 대리만족을 얻는다. 드라마 속 연애를 ‘현실’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남성은 어떤가? 성적인 욕망을 충족하고 싶어 한다. 지금은 포르노 홍수의 시대다. 스마트폰으로 조금만 검색해도 야한 사진과 음란한 영상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그래서 혈기가 왕성한 20대 남성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야한 생각에 빠진다. 길거리, 지하철, 버스 어디서든 여자만 보면 미쳐버릴 것 같을 때도 있다. 손잡고, 키스하고, 섹스까지! 온통 스킨십에 대한 상상뿐이다. 남성은 연인을 통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육체적인 쾌락을 증폭시킬 수 있을지 골몰한다.
이렇게 남녀는 서로 다른 것을 원한다. 여성은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정서적인 소통을 기대하고, 남성은 야동처럼 격렬한 섹스를 바란다. 그래서 여성은 배려, 공감 받지 못한다고 느끼면 쉽게 상처받는다. 그런 연인을 보며 남성은 뭘 잘못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성’ 이외에는 무관심하다. 그래서 어떻게든 갈등 상황을 빨리 끝내보려고 한다. 여성은 또 그런 연인에게 실망하고 결핍을 느낀다. 누구도 상대를 이해하려 마음이 없다. 모두 자기를 만족시켜 달라할 뿐!
이렇게 불통의 상태가 지속되면 어떻게 될까. 빈번하게 싸움이 일어나고 헤어질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거기서 한쪽은 연인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매달린다. 그렇게 연인 관계에는 우열이 발생한다. 연인 간에 권력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을 때 어떻게 될까. 여성은 상대가 자신을 다 받아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연인을 들들 볶는다. 데이트 후에 본인의 집까지 꼭 데려다줘야 하고, 자기가 만나고 싶을 때 상대는 지금 하는 모든 일을 다 내팽개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자신을 지루하게 해선 안 된다. 연인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는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즐거움이 최우선이다. 그게 충족되지 않으면 히스테리를 폭발한다. 정신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성은? 연인에게 자연스러운 성관계 이상의 쾌락을 바란다. 몰카 동영상을 찍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 나만이 소장할 수 있는 영상을 갖고 싶은 것이다. 비밀스럽고 은밀한 것일수록 더욱 흥분된다. 이런 변태적인 욕망을 거부당하면 남성은 참을 수 없다. 자신의 쾌락을 채우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러한 구도에서 연인들의 신체는 어떻게 될까.
왼쪽 귀가 먼 것은 부인에게 많은데, 그것은 자주 성내기 때문이다. 오른쪽 귀가 먼 것은 남자에게 많은데, 그것은 색욕이 많기 때문이다. 양쪽 귀가 다 먼 것은 좋은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 많은데, 그것은 기름지고 단 것을 많이 섭취하기 때문이다.
(낭송 동의보감 외형편, 류시성, 송혜경, 북드라망, p63)
신경질 부리고,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맛집을 순례하는 우리 시대 연인들의 모습처럼 보이지 않는가? 연인들은 양쪽 귀가 다 막혀 있다. 귀가 막혔다는 건 단순히 외부의 소리를 못 듣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 맥락 파악을 제대로 못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연인들은 상대에게 자신의 불편함을 호소하지만, 상대는 그것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도리어 왜 자신에게 그런 요구를 하냐며 삐치거나 자기주장만 내세울 뿐이다. 소통할 수 없는 관계에서는 인생에 있어 배움과 성장이 생겨나지 않는다. 오직 변태적이고 폭력적인 욕망만 남을 따름이다. 이런 식의 연애는 주변 관계를 망치고 연인 간에도 지쳐 떨어지게 만든다. 그리고 결국에는 삶이 무너진다.
유연하게 변신하는 정(精)
연인과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유연함을 지닌 장부는 바로 신장이다. 우리 몸에서 신장은 타고난 생명의 에너지를 주관한다. 그 에너지는 ‘선천의 정’이라 불리는데, 정은 물의 형태로 우리 몸 여기저기에 존재한다. 남성의 정액, 여성의 생리혈, 눈물, 진액, 뇌, 오줌, 심지어 뼈까지. 정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신해가면서 몸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준다.
연인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정’의 변용력이 필요하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연인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러한 연인을 자신의 판타지 속에 가두면 제대로 만날 수 없다. 그저 자신의 머릿속에 박제된 연인의 모습과 사귀고 있을 따름이다. 교감은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고 궁금해 하고 알아가는 과정, 그와 동시에 내 생각과 태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리고 연인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교감은 인생과 세상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연애를 통해 존재가 성장하고 변신할 수 있다. 그로부터 둘 사이에는 환상적 ‘케미’가 발생하는 것이다!
신장(腎臟)을 신장(伸張)하라!
그리고 신장은 ‘에로스’의 원천이다. 신장은 정액(성호르몬)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다른 것과 접속하는 힘인데, 특히 연애 관계에 있어서 상대와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그래서 신장은 연인을 향해 달려가고 집중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이 힘이 쾌락적으로만 쓰이면 어떻게 될까. 생 에너지인 정액이 과도하게 몸속을 빠져나가 신장은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연인과 교감이 안 될뿐더러 기존의 연애방식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연애방식을 창안하려면 일단 신장이 튼튼해야 한다. 신장은 ‘상상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신장의 물은 척수를 타고 뇌까지 닿는데, 이 과정이 부드럽고 매끄럽게 흘러야 뇌세포가 활발하게 활동한다. 이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연애에 대한 비전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다른’ 연애를 상상해볼 수 있을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더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상대의 멋진 삶을 진실로 원한다면 소유욕을 제어할 수 있다. 연인의 친구 관계를 끊어버리는 건 연인을 망치는 짓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인에 대한 신뢰는 연인이 ‘내 것’이 될 때 생기는 게 아니다.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연인의 모습을 볼 때 신뢰가 쌓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연인과 내가 특별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때 믿음이 형성된다. 이처럼 ‘나’의 즐거움만 충족하는 게 아니라 연인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연애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새로운 연애를 창안해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신장(腎臟)을 신장(伸張)하라!
글_Moon 빈 (청스, 의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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