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의 역겨움, ‘차라’의 가르침
내 속의 무엇이 니체와의 만남의 계기가 되었을까. 억지로 만난 척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던 중, 대략 10년 전 쯤 공부하던 팀에서 했던 연구가 생각났다. ‘해방 공간의 교육력 연구’라는 주제의 논문이다. 당시 내가 정리하고 있던 내용은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이 되자, 조선땅 곳곳에 지금으로 치면 중등학교가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힘으로 세워졌고, 나는 이 힘을 조선인들에게 내재해 있는 ‘교육력’임을 논증하고 싶었다. 내가 사는 마을에 학교가 세워진다면 ‘누구는 땅을, 누구는 돈을, 누구는 자갈과 흙을, 누구는 시멘트 몇 포대를, 누구는 자신의 노동력’을 기꺼이 내 놓았다. 이러한 힘은 조선땅에서만 발휘된 것은 아니다. 일제시대 조선땅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어 허허벌판 간도로 이주한 사람들도 엉덩이 붙일 곳만 생기면, 아이들을 가르칠 학교를 세웠다.
우리에게는 이렇듯 ‘교육’ 혹은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우리의 교육 제도들은 이러한 배움에 대한 열망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다. 이후 우리의 교육은 이러한 열망을 ‘왜소화’하고 ‘왜곡’시키는 방식으로 고착되었다. 나는 이것을 바꾸고 싶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이 이렇게 강한 사람들인데, 지금 우리의 공부는 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가. 새로운 틀은 없을까. 이런 고민에 대한 나름의 애를 써 본 것이 나의 지난 시절 공부이자 일이었다. 나는 교육학을 전공하며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것과 관련된 연구와 일을 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애를 썼던 대부분의 일에서 ‘새로운 제도’에 대한 나의 기대와 내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은 언제나 어긋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동안 내가 나름 헌신했던 일은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깨고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자 했던 일이었고, 기성 조직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패할 때마다 나는 ‘나의 능력으로는 새로운 규칙을 안착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점을 반성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마음의 더 깊은 곳에서는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거부하는 기성 조직에 대한 ‘역겨움’이 더 컸다.
역겨움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던 때, 나는 그 전에 책을 통해서만 알고 있던 ‘지금의 공부(남산강학원 & 감이당)’를 만나게 되었다. 대략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니체와의 강렬한 만남을, 나아가 ‘차라’의 가르침을 주제로 나의 글을 써야한다. 나는 교육학을 했고, 니체는 고전문헌학을 했다. 나는 기존의 교육학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니체도 당시 고전문헌학적 방식의 공부와 글쓰기를 버렸다. 고전문헌학적 공부와 글쓰기로는 당시 니체가 체험한 시대에 대한 ‘역겨움’과 그 극복의 길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감이당 공부를 만나지 않았다면, 니체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제도를 붙들고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제도를 붙들고 있을 생각이 없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변화시켰을까? 니체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그 동안 너의 공부와 노력에는 ‘자기 극복’이 없었다. 너는 언제나 너의 ‘정의로움’을 앞세워 남을 탓하고, 제도를 바꾸면 다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다! 나는 일찍이 그러한 너의 ‘정의로움’이 얼마나 궁핍하고, 추하며, 가엾기 짝이 없는 자기만족인지를 알고 있었다. 특히 너는 제도를 앞세워 스스로를 작열하는 불꽃이자 숯으로 생각하고 있었지 않느냐?”(니체, 《차라》) 그렇다! 하마터면 나는 작열하는 불꽃이자 숯으로 살다가, 딱딱하고 남을 재단하기 좋아하는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가 될 뻔했다.
이제 나는 ‘차라’의 가르침에 나를 올려놓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나의 말, 생각, 행동, 나아가 나의 세포가 ‘위버멘쉬’의 길로 하나하나 변해갈 것으로 기대하며!
글_안상헌(감이당 금요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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