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금강경, 나(我相)를 비추는 거울

금강경, 나(我相)를 비추는 거울

 


금강경은 무엇이든 깨뜨리는 다이아몬드와 같은 지혜로 중생의 어리석음과 번뇌를 깨뜨리는 경이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의 삶’을 사는 이들을 위한 경전이다.




금강경과의 첫 만남은 금강경을 독송하기만 해도 눈앞에 벌어진 힘든 일이 해결된다는 이야기로부터였다. 내 인생 사십 대 초반에 벌어졌던 이혼이라는 과정을 건너며 금강경을 많이도 읽었다. 그렇지만 고단했던 법적 절차를 거치고 또 세월은 흘러 피부로 느껴지는 고통스러운 일들이 서서히 줄어들자 이 경을 잊고 살았다.


십 년이 지나서 불교 경전 공부를 하는 도중 아상(我相)으로 나는 금강경을 다시 만났다. 나는 간호사 1명이 근무하는 작은 의원의 내과의사이다. 직원을 채용하고 나면 나는 그가 법을 어기지만 않으면 해고시키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당시 나를 괴롭히던 가장 큰 고민은 새로 채용한 간호사였다. 경험이 많다고 자부하는 오십 대 간호사를 뽑았다. 그런데 그녀는 출근 첫날부터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했고 자신이 일에 서툴다는 자각이 없었다. 이런 경우 나는 간호사가 겸손하게 배우려 하거나 그 사실을 미안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 예상과 달리 콧소리를 내고 친근하게 굴며 월급 인상까지 말했다. 그녀의 이런 행동들을 보며 불편한 내 감정은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이어져 나를 물들여갔다.


어김없이 힘들게 출근해 불교대학 공부로 마음을 달래던 나날 중, 법륜스님이 강의 도중에 금강경 도리인 무아(無我)를 설명하셨다. “화가 나는 마음을 살펴보면 거기에는 반드시 ‘내 생각이 옳다!’ 하는 아상(我相)이 버티고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 이였다. 내가 원하는 간호사의 올바른 상(相)은 접수를 잘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접수도 제대로 못 하고 일을 대하는 태도도 내 생각(我相)과 다르니 그녀만 보면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접수를 잘 해야 한다는 간호사에 대한 나의 기대를 고집하지 않자 청소를 깨끗하게 하고 환자들과 웃으면서 응대를 능숙하게 하는 그녀의 장점이 보였다. 그리고 나도 의사라는 일에 고정되지 말고 상황에 따라 접수일도 하고 청소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었다. 마찬가지로 그녀도 간호사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생각이 들자 내가 그녀를 싫어할 필요가 있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금강경을 통해 내가 화나는 이유가 ‘아상(我相)’임을 알게 되고, 의사라는 상(相)에 집착하지 않으니 삶이 다소 편안해졌다. 그런데 나는 이 전에도 금강경을 무수히 독송했는데 왜 이런 이치를 전혀 몰랐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금강경을 독송하는 힘으로 어려움을 해결한다는 믿음에 의지하고 금강경에 적혀진 글자를 읽기만 했던 것이었다. 경전 강의를 통해 이치를 알게 되니 화가 나는 경우마다 ‘어떤 생각에 사로잡히고 있는지?’하고 자신을 조금씩 살피게 된다. 이렇게 일상이 편안해지니 금강경을 더 자세히 공부해서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금강경 처음에 이 이치를 알려면 자리이타(自利利他), 나도 좋고 남도 좋음을 실천하는, 즉 ‘상구보리 하화중생’하는 보살의 마음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 혼자 공부해서 나만 깨닫겠다는 태도로는 금강경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목요점심 인문학을 만들어 환자들과 친구들을 초대했다. 질병과 인문학의 만남을 통해 병으로 인한 괴로움을 줄이는 것을 기획하였다. 보살의 행을 실천하며 동시에 금강경 도리를 공부해 보려 한다. 금강경이 이렇게 ‘다 함께 행복해지라고.’ 나를 밀어붙인다. 이 길을 가면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가슴이 설렌다.


글_이여민(토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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