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게 외침
많은 청년들이 직업으로 공무원을 선택한다. 30년 전 청년이었던 나도 공무원을 직업으로 선택했다. 때론 나에게 주어진 일이 부당하다는 생각도 했고 인정받지 못한 일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해진 위치에 맞는 일을 하면서 관료조직의 유전자를 몸에 잘 장착시키고 있었다. 위계나 나이로 따져본 나의 현재 위치는 상위 5% 정도이다. 이렇게 조직에서 연차가 쌓이고 부터는 개인적인 불만도 줄어들었다. 그런데 작년 연말 나의 안정된 생활패턴에 금이 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새로 취임한 수장이 자신과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나와 또 한 명의 여성 공무원에게 일방 전출발령을 내면서 티오를 만들었다. 나는 그 일을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모욕감까지 느꼈다. 폐쇄적인 방법으로 결정된 결과에 문제를 제기했다. 개인의 문제를 넘어 공직자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해서 동지를 찾았다. 그러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이들은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고 소극적인 위로만 했다.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은 조직의 이미지를 해친다며 드러내놓고 싫어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무관심은 실망스러웠고, 친한 동료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새로운 권력자의 의중을 살피는 상황이 되어갔다.
갑작스럽게 닥친 사건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내가 당한 부당함을 몰라주는 것에 대한 분노도 점점 커져갔다. 이때쯤 루쉰의 소설 ‘작은 사건’을 읽게 되었다. 중국 근대혁명기에 베이징에 사는 주인공은 자신이 탄 인력거꾼이 허름한 차림의 노파를 치는 사건과 맞닥뜨린다. 노파가 일부러 인력거가 가는 길을 방해했다고 생각한 그는, 이 사고 때문에 자신의 일에 차질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맘이 앞선다. 다친 노파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다. 주인공인 ‘나’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인력거꾼은 노파를 부축해 일으킨다. 그녀의 몸을 살피고 자신의 잘못을 직접 주재소에 찾아가 알리기까지 한다. 먼지 뒤집어쓴 초라한 인력거꾼이 다친 노파를 부축해 걸어가는 뒷모습은 차츰 거인처럼 커지면서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의 두루마기 안에 숨겨진 소아(小我)를 쥐어짜게 한다는 이야기다. 100년 전 일어난 이 작은 사건은 내가 겪었던 일과 오버랩 되었다.
일방적인 전출 명령은 조직에서는 사실 흔히 일어날 수 있다. 그때마다 리더들은 조직의 성과를 위해 어느 정도의 희생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나도 그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다. 그 사건을 겪기 전까지, 부품처럼 갈아치워지는 개인의 삶은 보이지도 않았고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주인공이 다친 노파로 인해 인력거를 타고 목적지를 향해가는 것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인사교류 건은 나의 강한 항의로 인해 일단락 지어졌다. 다른 조직으로 간 것은 아니지만 한직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런 일을 겪은 이후에 퇴직 3개월을 남긴 옆 부서장이 리더와 생각을 달리했다는 이유로 바로 보직을 빼앗겼다. 그 사람은 부당하지만 그냥 따르겠다고 하면서 도와주겠다는 내 도움을 뿌리쳤다.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부당함을 바로잡아 달라는 부탁에도 묵묵부답일 뿐이다. 오히려 조직에는 그 부서장이 그럴만한 일을 했을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해졌다. 루쉰에게 쇄신을 촉구했던 이 작은 사건은 나에게 점점 또렷해진다. 그 동안 이런 일들은 얼마나 많이 일어났었을까? 나는 얼마나 무관심 했었던 것일까? 관료조직은 한 인간이 넘어졌을 때 아무도 일으켜주는 사람이 없는 곳일까? 우리들이 조직의 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인간소외를 감당해야하는 것일까? 안정된 삶이란 망상일지도 모르겠다. 공무원에게, 공무원이 되고자하는 이들에게 외친다. “여기 쓰러진 사람이 있다!”
글_이문희(감이당 토요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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