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다른 아빠의 탄생』 지은이 인터뷰 1

 『다른 아빠의 탄생』 지은이 인터뷰 1


1. 『다른 아빠의 탄생』은 세 명의 아빠들이 쓴 육아(育兒) & 육아(育我) 분투기입니다. 먼저 세 아빠들의 소개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요, 각 선생님들의 아빠로서의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우자룡] 겁 많은 소심한 사람으로 40여 년 간 살아왔습니다. 책을 쓰며 돌아보니 대한민국 40대의 평균적 성향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허세 가득한 중년 남성. 언제나 청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느덧 40대 중반이 된 제 모습입니다.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직장에서 인정받고 싶고, 경쟁에서는 승자가 되고 싶고,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싶어 안달입니다. 자존감이 높지 않아 자존심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후배들에게 인정받는 선배가 되고 싶지만 소위 ‘꼰대질’도 자주 합니다. 입으로는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하면서 가부장적 질서를 아내에게 강요합니다. 나이는 반백을 향해 달려가지만 여전히 모자란 사람입니다. 모자람에 더해 모순에 가득 찬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흔 살을 전후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르게 살아 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더군요. 일을 줄이고, 소비를 줄이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려 하고, 지배와 복종보다는 관계에 신경을 쓰려 합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나의 부덕함을 매일 깨닫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의 욕망에 집중해 보려고도 합니다. 문득 지금까지 내가 욕망했던 것이 진정한 나의 욕망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면 인정받는 구조에 익숙해지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고 있습니다. 혼자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악기도 배우고, 살사댄스도 배우고, 멍하니 혼자 집에 앉아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승연] 곧 29개월이 되는 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입니다. 대학 시절부터 별명이 ‘정군’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정군’으로 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이젠 이름이 낯선 느낌일 정도고요. 저는 출판사에서 웹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짜 ‘일’은 주로 아내와 딸이 모두 잠든 밤에 하고 있습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합니다. 장래에는 어떻게든 글을 쓰고 그걸 ‘직업’으로 삼고 싶기 때문입니다. 잘 되면 ‘작가’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질까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진성일] 아들과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입니다. 첫째 아들에게 훌륭한 샌드백이 되기 위해 스파링 상대가 되곤 하는데, 점점 힘에 부침을 느낍니다. 둘째 딸에게도 말 잘 듣는 곰 인형이나 강아지가 되려고 하지만, 허리를 핑계로 자꾸만 병원놀이의 환자가 되려고 합니다. 동갑내기 아내의 말도 잘 들으려고 애쓰지만, 은근히 아내 앞에선 고집을 부려 맘대로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확실히 ‘육아’(育我)가 필요하네요. 


그런 저의 육아(育兒)와 육아(育我)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문탁네트워크’를 만난 지도 10년이 되어 가네요. 촉이 좋은 아내 덕분에(?) 발을 들여 놓았지요. 예전에도 공부는 별로 안 했는데, 요즘에는 밥벌이를 핑계로 더 안 하고 있습니다. 공부보다는 ‘스튜디오 지음’ 및 ‘동네영화배급사 필름이다’의 디자이너 겸 영화인 ‘청실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문탁네트워크’에 오기 전에는 ‘진 팀장’으로 회사 생활을 했었습니다. 야근을 밥 먹듯이 하던 건축인의 생활 도중 첫째가 태어납니다. 마침(?) 세상도, 회사도 어려운 시절이라 그 핑계로 육아에 입문해 버립니다. 어찌된 일인지 육아가 적성에 어느 정도 맞았나 봅니다. 그래서 육아휴직 이후 아예 퇴직을 결심합니다. 그 사이에 둘째도 만나게 되죠. 이후 아내와 주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자격증도 얻습니다. 그리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건축협동조합도 만들고, 또 다른 이웃들과 함께 같이 살 집도 짓게 됩니다. 지금도 여전히 집을 그리고 집 짓는 현장도 오가면서, 좋은 인연으로 만난 지인과 함께 ‘건축사사무소 아키페라’를 공동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주변의 도움으로 늘 육아(育我)하고 있네요.


2. 책 제목이 ‘다른 아빠의 탄생’입니다. ‘다른 아빠’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일반적인 ‘아빠’라는 상(像)과 다르다는 것일지, 아니면 어딘가 특별히 ‘남다르다’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이 모든 것들로부터 ‘다르고 싶다’는 것인지.... 아마 ‘다르다’는 의미 역시 세 분 선생님마다도 다 다를 듯한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다른 아빠’의 의미를 말씀해 주셔요.


[우자룡] 최근 언론에 ‘다른 아빠’로 육아 휴직을 하는 분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성공’을 일정 부분 포기하고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용감한 선택을 하신 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다양한 매체에서 ‘다른 아빠’를 소비하는 방식은 많이 불편합니다. 육아휴직을 선택한 아빠들에게는 분명 다양한 맥락들이 존재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엄마를 대신해 육아와 가사노동을 하며 여성의 어려움을 몸소 느끼고 있는 사람들로 단순화시키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겠지만, 이런 방식의 접근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인 싸움의 판을 깔아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남성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도 훌륭하다, 또는 새로운 아빠의 모델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그것이 하나의 억압의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걱정을 해 봅니다. ‘엄마’라는 호칭은 부르는 사람에겐 포근한 느낌일지 몰라도, 호명된 사람에게는 포근함을 주지 못하면 나쁜 사람이 될 것만 같은 억압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작금의 아빠 담론이 이런 맥락에서 ‘따라야만 하는 또 다른 모델’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육아와 출산이 고통으로 다가오는 사회적 구조는 고려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남성이 고통을 대신하는 것에 대해서만 주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른 아빠’란 하나로 규정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육아와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아빠도, 아이와의 놀이에 시간을 쏟는 아빠도, 돈을 많이 벌어 아이와 아내에게 경제적 풍요로움을 주는 아빠도, 아이의 교육에 관심을 쏟는 아빠도, 자신의 성공에만 집중하고 있는 아빠도 모두 ‘다른 아빠’일 것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관계 속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른 아빠’가 아닐까요?


[정승연] 제목이 그렇게 되기는 했지만 딱히 ‘다르다’는 느낌을 스스로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제가 ‘다르지 않은 아빠’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럼 ‘다르지 않은 아빠’는 어떤 아빠일까요? 그건 말 그대로 ‘아빠’라는 말로 표상되는 이미지, 주중엔 밖에서 열심히 돈 벌고, 주중 저녁이나 주말엔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고, 그래서 종국에는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만들고 자식들의 성공적인 장래까지 책임질 수 있는 그런 욕망의 담지자로서의 ‘아빠’일 겁니다. 저희가 ‘다른 아빠’라면 그건 그런 표상과 조금 거리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보통의 아빠’와 그걸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욕망의 장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분투 중입니다. 경제적·사회적 성공이 어째서 안 좋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위해 내 인생을 모두 걸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겁니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자격지심이라든가, 어떤 좌절감 같은 걸 느낄 때도 있지만, 결국에는 그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편안한 길이니까요. 아마 저희 딸도 나중에 똑같은 고민을 할 테고요. 사회적 성공과 경제적 안정에 모든 걸 거는 삶을 살 것이냐, 아니면 그걸 포기하고 스스로 만족할 만한 길을 찾으려고 분투하는 삶을 살 것이냐 하는 고민 말입니다. 저희 딸이 결국 보통의 길로 가더라도 그건 저에게 아무 상관이 없긴 합니다만, 어쨌거나 그것 말고 다른 길도 얼마든지 있고, 이 아빠가 그 길을 따라서 살았고, 그 길을 내면서 살았다. 그런 걸 보여 주고 싶습니다. 아, 좀 멋있네요. 


[진성일] 과연 ‘다르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워낙 그 의미의 스펙트럼이 크다고 느꼈고 뒤에 ‘아빠’가 따라 붙으면서 더 어려워졌습니다. 아이러니하겠지만 아빠를 생각하면서 더 아빠가 어려워졌습니다. 제 직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일정한 자격시험을 통과해서 자격증을 취득하면 ‘건축사’가 됩니다. 하지만 건축사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아직 스스로도 잘 모릅니다. 오히려 건축사가 되었다는 건 이제부터 건축이 무엇인지, 건축사란 어떤 사람인지를 고민해 보게 되는 그 ‘시작’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빠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아빠’가 되었지만 스스로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직 모르고 있죠. 그건 아이가 자란다고, 육아의 기간이 길다고 해서 저절로 알게 되는 건 아닌 듯합니다. 아빠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 묻지 않으면 알 수 없지요. 첫째가 이미 열 살이 넘었고 1년 넘게 육아를 담당했다고 했지만, 이번에 책을 쓰게 되면서 아빠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질문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빠가 아니면 그런 질문은 어렵지요. 아빠가 된 후에 비로소 아빠에 대한 질문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는 질문 던지는 일도 어렵습니다. 결국 ‘다른 아빠’란 아빠란 누구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아빠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바뀌는 건 없을지도 모릅니다. 일상도 그대로 흘러가니까요. 하지만 내 안에 하나의 질문이 생겼습니다. 아빠란 누구지? 무얼 하는 사람이지? 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나는 아이를 어떻게 보고 있지? 아내와 나는 어떤 관계지? 나의 아버지의 마음은 어땠을까? 이걸 놓지 않고 질문하는 아빠라면 ‘다른 아빠’가 아닐까요? 


3. 세 분 선생님께서 이 책을 쓰시면서 마음가짐이나 생활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우자룡] 아내와의 관계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여전히 티격태격 싸우고 있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를 살펴보고 동시에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도 제 글을 읽으며 저에 대해 몰랐던 점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부부가 서로를 조금 더 알아 갈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직장에서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입니다. 직장인 학원에서 스무 살 전후의 성인 경계에 있는 재수생들과 주로 만나게 됩니다. 이전에는 뭐랄까, ‘멸시’의 시선에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면 책을 쓰고 난 후에는 ‘이해’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은 많지 않습니다. 재수생인데도 불구하고 절실함 없이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놀아 볼까를 고민하는 학생이 더 많습니다. 이들을 ‘생각 없는 녀석들’ 또는 ‘삼수할 놈들’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 자연스러운 욕망인 ‘놀기’를 추구하는 학생들을 이해하고, 그래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변화는 ‘겁’입니다.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있는 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아내에게 싫은 소리를 던지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전 같으면 불만이 있으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놓았었지만 이제는 마구 말합니다. 후폭풍이 두렵기는 하지만 ‘에잇, 모르겠다’라는 마음으로 마구 던집니다. 속 시원함 절반, 무서움 절반입니다. 예전에 무서움이 9할 이상이었던 것에 비해서는 많은 변화라 하겠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구 합니다. 윗사람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듣는 스타일이었는데 요즘 저는 상사의 잘못된 판단에 당당하게 목소리를 냅니다. 


[정승연] 아이를 키우는 일이 결국엔 나를 키우는 일이라는 점, 그 점이 좀 명확하게 마음속에 자리를 잡았달까요. 이건 사실 글을 쓰기 전에는 그다지 의식하지 못했던 겁니다. ‘육아’라는 게 아이를 키워 본 모든 사람이 알다시피 정말 힘든 일입니다. 과거엔 어땠을지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제가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에서 일을 하거나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다 놓고 생각해 봐도 아이를 키우는 일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고생에 대한 보상’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성적이 오른다거나, 돈을 많이 벌게 된다거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다거나 그런 것 말입니다. 육아의 보상은 아이가 건강하게 크는 것 밖에 없어요. 말하자면 정말 잘해야 겨우 본전인 셈이죠. 이건 놀랍게도 ‘양생’과 참 비슷합니다. 식욕, 성욕을 열심히 제어해 봤자 돌아오는 보상은 이전과 다름없이 건강한 자신의 신체 정도인 거죠.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과정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상태가 되면서 저는 어쩐지 스스로 좀 더 단단해졌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간단하게는 이것도 해냈는데 못할 일이 뭐가 있겠나 싶은 기분인 거죠. 


그렇게 내가 좀 달라진 걸 잘 의식하지 못했었는데, 글을 쓰면서 확실히 명확해졌습니다. 동시에 글로 써 놨으니 어쨌든 성숙해진 척이라도 하게 되었습니다. 부도나면 안 되니까요.


[진성일] ‘아내와 나’에 대해 쓸 때 조금 어려웠어요. 공유하는 게 많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디테일’에서 차이가 많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아내가 육아휴직을 하고 있었는데, ‘가장–전업주부’의 구조 속에서 아내와 나 자신을 보는 게 낯설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에는 안 보이던 부분이 조금씩 더 보이기 시작했죠. 둘이서 바쁘게 맞벌이할 때는 잘 안 보이던 것을 낯선 관계 안에서, 그리고 이 책을 쓰게 되면서 들여다보게 된 거죠. 


아이들을 대하면서도 달라진 부분이 조금 생겼습니다. 그저 어린 아이들, 옷 입히고 밥 먹여야 하는 아이들로만 보게 되진 않게 되더라고요. 아빠가, 부모가 그런 역할만 하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에게 집착해서 화를 냈던 부분도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고요. 그러지 말아야지 보다는 부모–아이의 관계에 얽매이거나 집착하는 게 위험하겠구나 싶더라고요. 


앞으로도 아이는 매일 자랄 것이고 내년 열두 살의 첫째는 처음이고, 아홉 살의 둘째도 처음일 테지요. 키우고 있으니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어쩌면 늘 새로운 아이를 만나고 있는 어설픈 아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을 한창 쓸 때는 이런 마음이 오래갈 것 같았는데, 막상 일상에서 아이들이랑 아내와 복닥거리다 보니 스멀스멀 흩어지네요. 

아, 다행히 책을 쓰면서 만나게 된 아빠들과는 술이든 책이든 계속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서로 얼굴 보면 이 책이 생각날 거고, 그러면 그때의 마음가짐도 잠시 되돌아보게 되겠죠. 그걸 떠나 아빠의 일상으로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난 건 확실히 달라진 점입니다.     

(내일 2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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