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아내와 나 – 남편이 되고서야 보이는 것들

아내와 나 – 남편이 되고서야 보이는 것들



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가 아빠예요"라는 말은 마음에서나 입에서나 걸리는 것 없이 나간다. 

“나는 아빠다.”

 역시,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러나 ‘제가 남편입니다’, 역시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마음에서나 입에서나 묘하게 걸리는 느낌이 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았더니, ‘아빠’라는 정체성은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던 열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마음속에 다져넣었는데 반해, ‘남편’이라는 정체성은 그냥저냥, 그런가부다 하며 (마음속에)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모르게 두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자, 우리 부부가 되기로 하자’ 하면서 부부가 되지 않았다. ‘아이가 생겼다’, ‘오! 그렇담 부부가 되면 되겠군!’ 하면서 부부가 되었다. 대개는 ‘부부가 되자’ 한 다음에 ‘아이를 낳자’ 이런 순서로 가니까 각각의 단계에 따라 새로 추가되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다져 넣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살아보질 않아서 정확하게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남편’으로서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관계의 정체성이 ‘연인’에서 ‘부부’로 이행해 가는 시기에 주로 아기를 봤다. 그러다보니 완전히 아빠가 되고 말았고, 여전히 남편으로 이행 중이다. 그런데 그게 무슨 문제가 있나? 그렇다. 사실 아무 문제없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겠나. ‘부부’의 모습이란 어느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어떤 상(像)이 그려지면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긴다. 세상엔 그려 놓은 그림처럼 되는 현실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바라는 남편’ 같은 남편이나, ‘바라는 아내’ 같은 아내는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그림 말고, 둘 사이를 묶어 놓는, 또는 연결하는 어떤 끈 같은 건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물론 여기에 ‘자식’은 살짝 빼놓자. 자식 말고 둘 사이에 관한 이야기다.




나에게는 뚜렷하게 각인된 장면이 있다. 그때의 그 장면이 오늘, 내가 아내에게 갖는 감정의 색조를 결정했다. 아내가 아이를 가졌던 초기의 어느 날이었다. 근무 시간이었는데, 일 때문에 나 혼자 잠깐 외근을 다녀와야 했다. 당시 사무실이 있던 건물에는 1층 중정에서 2층으로 바로 연결되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바라보면 2층으로 올라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아내와 인사를 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았는데, 그때 문득 마음속에서 어떤 결단이 섰다. 굳이 말로 옮기자면, 이대로 죽 갈 수 있겠다랄지, 내 삶이 크게 변하는 데 그걸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다랄지 그런 감정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묘한 기억이다. 사실 그날이 딱히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뭔가 특별히 좋은 일이 있는 그런 날도 아니었으며, 그날따라 몹시 센티멘탈해졌다든가 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말해두지만, 나는 이런저런 경우에 집착이 심한 편이기는 해도 이런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몹시 드라이한 사람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연인 간의 그런 어떤 ‘사랑’이라는 게 실재하는지도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 생각은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아 기르고 있는 지금도 크게 변함이 없다. 그랬는데, 그랬었는데 그날만큼은 확실히 달랐다. 진한 우정이라든가, 특별한 동료애 같은, 그때까지의 애정과는 질이 다른 어떤 감정이 의식을 휘감았던 것 같다. 그 전에도 물론 특별한 애정이 있으니 연인이 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날의 그 감정은 이전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날의 그 감정을 가지고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저쪽(아내)의 입장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날이 정말로 부부가 된 날인 것 같다. 이게 사실 몇 년, 몇 개월 더 지속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다시 말해두지만, 나는 이런 쪽으로는 몹시 드라이한 사람이어서 ‘영원한 사랑’이라든가, ‘변치 않는 애정’ 같은 건 좁쌀만큼도 믿지 않는다. 심지어 10대, 20대에도 그랬다. 그러니까 우리의 관계가, 지금의 내 마음이 언젠가는 필시 변할 거라고 생각한다. 생각건대, 아마도 내게서 "제가 남편이에요"라는 말이 아무 걸림없이 나갈 수 있을 때, 그때 또 한번 관계의 색(色)이 바뀌지 않을까 싶다.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


아내는 나에게 어떤 사람인가? 사실 마음 같아서는 ‘훌륭한 분이시다’ 하고 끝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니까 괜히 좋은 말이랍시고 구구절절 뭐라뭐라 하다가, 아차하는 순간 꼬투리 잡힐 말을 해서 오래도록 갈굼을 당하는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원래 남편들이란, 경향적으로 그렇지 아니한가. 

어쨌든, 그런 심정은 심정이고, 일단 시작한 글이니 목을 내어놓고 쓰는 데까지는 써보자며 결의를 다진다. 후. 시작해보자.


결혼 전에 그러니까 연애를 할 때는, 특히나 처음 연인이 될 무렵에는 아무래도 서로 비슷한 점들을 보게 마련이다. 보려고 하지 않아도 일단 서로 ‘호감’이 생긴 다음에는 비슷한 것들이 먼저 보이게 마련이다. 우리는 어땠을까? 우리도 그랬다. 음, 일단 나는 그랬다. 일을 하다가 만났으니 일을 대하는 감각이랄지, 속도랄지 그런 게 일단 비슷한 것처럼 보였다. 이를테면 두 사람 모두 일을 뭉개놓고 있다가 뒤에서 일을 받는 사람의 시간까지 촉박하게 만드는 식의 행태를 극도로 싫어했다. 무엇보다 일은 ‘돌아가야’ 하는 것이고 그러자면 앞사람이 시간을 충분히 벌어주어야 다음 사람들도 여유를 가지고 해나갈 것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그러니까 그런 식의 감각이 비슷했던 것이다. 또, 이런 것도 있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하나의 일관된 규칙을 가지고 일을 딱 마무리하는 그런 느낌, 그런 것도 아주 좋아했다. 게다가 나는 아내의 ‘후배’였으니 아내의 그런 일처리들을 보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고, 반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점만 보자면 아내는 그야말로 ‘원칙의 화신’ 같지만, 그게 또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갈등과 불화, 오해를 워낙 싫어하는 편이어서, 대립상황이 발생하면 기꺼이 자신의 주장을 내려놓는다. 이건 나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싸우기는 하지만, 답이 없는 상태로까지 가지는 않는다. 그건 순전히 아내 덕이다. 아내는 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절충안을 기가 막히게 내어놓는데, 결국은 승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아마 아내는 자기 주장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그러곤 ‘네가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하면 그렇게 해’라고 하겠지. 세상에, 그 말마저도 너무 옳아서 어쩔 때는 그냥 나 스스로가 좀, 뭐랄까, 쪼…쫌생이 같달까. 뭐, 사실이 좀 그렇기도 하다. 그러니까 그런 것이다. 내가 보기에 아내의 기본 속성은 옳은 사람이다. 그래서 고민스러운 일이 생기면 아내의 말대로 하는 게 좋다. 그렇게 해야 마음도 편하고. 왜냐하면 아내가 하라는 그것이 바로 옳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네가 편한대로 해라’라고 할 때조차 내 마음이 편한 대로 하는 것이 결국엔 ‘맞는 것’이다. 아내의 그런 점 때문에 나는 한없이 편안하기도 하고, 때로는 ‘아 좀 그런데…’ 싶은 정도의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이렇게만 써놓고 보면 아내가 막, 청렴한 독재자처럼 보일 테지만, 그런 건 아니다. 쓰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내는 웃기는 예능프로와 미드를 좋아하고, 귀여운 동물이나 단 커피도 몹시 좋아하는 사람이다. 웃음도 많아서 집에서 그냥 대화할 때 우리는 대체로 늘 웃고 있다. (나처럼) 불쌍한 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도 못할 만큼 다정하기도 하다. 그런데 막 그런 이야기들을 자세히 쓰다보면, 좀 오글거리니까, 그래서 그런 건 이렇게 조금만 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렇다면, 과연, 나는 아내에게 어떤 사람인가? 


앞서 말했듯, 연애를 할 때는 서로의 공통점이 눈에 더 잘 들어오게 마련이다. ‘결혼’은 반대다. 완전히 다르다. 연애가 이벤트라면 결혼은 생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생활’이란 무엇인가? 아침에 눈뜨자마자 상대의 얼굴을 보는 일, 함께 밥을 먹는 일, 늑장부리지 말라고 갈구는 일, 좀 씻으라고 타박하는 일 같이 온갖 잡다한 일들이 벌어지는 장(場)이다. 여기선 서로의 차이, 나와 다른 점이 훨씬, 훠얼씬 눈에 잘 들어오게 되어 있다. 왜냐하면 꼬투리를 덜 잡히는 사람이 이 장의 주도권을 쥐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와는 어떻게 다른지 판별하는 게 아주 중요해진다. 차이를 판별한 후에야, 익히 알다시피 ‘내가 맞네, 니가 맞네’ 하는 식의 다툼이 가능해진다. 

우리집의 생활은 어떤가? 당연히 아내가 주도한다. 아내는 나에게 속았다 한다. 일을 하면서 보니 내가 뭐든 빨리빨리 처리하길래 자기처럼 뭐든 후딱 해내는 타입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회사일처럼 안 하면 금방 문제가 드러나는 일은 빨리 해버리지만, 그 외에 다른 일들, 그러니까 빨리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안 생기는 일은 미루고, 미루고, 미루어서, 결국엔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해질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곤 한다. 아내는 다르다. 해야 하는 일 중에 어느 일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불편해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느냐 하면, 아내는 나에게 ‘그거 했느냐, 저거 했느냐, 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느냐’ 하고, 난 그저 ‘이제 할라 그랬는데’, ‘막 하려던 참인데’ 같은 말들을 주로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아, 뭐든 빨리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라고 하고, 나는 ‘성격이 급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였다니’한다.


차이는 또 있다. 말했다시피 아내는 정도(正道)가 없으면 모르겠는데 있으면 정도를 걸으려는 성향이 몹시 강하다. 그런데, 나는 정도(正道)가 가까우면 정도로 가고, 사도(邪道)가 가까우면 사도로 간다. 어떻게 가든 가려고 했던 거기로만 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남의 눈치는 꽤 많이 보기 때문에 내가 사도로 가는 걸 누가 보고 있다면 울며 겨자먹기로 더 먼길로 가기도 한다. 이 말은 역으로 보자면 아무도 안 볼 때면 기꺼이 바르지 못한 길로 간다는 이야기다. 이 점에 대해서도 아내는 내가 ‘원칙적’인 성품까지는 아니더라도 ‘원칙’을 어기는 것을 싫어하는 정도는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야 그랬겠지. 내가 어떤 선택을 하거나 할 때, 그리고 그걸 아내가 지켜볼 때는 (울며 겨자먹기로) 원칙을 선호했으니까. 


말하자면 나는 아내의 눈으로 보기에 도덕관념이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도덕’이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켜야 다른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성향은 또 한가지 차이를 만들어 내는 데, 나는 눈앞의 즐거움과 안락함에 기꺼이 나를 내어주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쾌락에 한없이 약하다. 반대로 아내는 즐거움도 좋지만, 그래서 그걸 기꺼이 누리지만, 그러는 중에도 내일을 생각해서 적당한 때에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기꺼이 절제하는 사람이다. 나는 처음에 그게 좀 답답했는데, 그 시절 내 입장은 이랬다. ‘밤새 노는 게 뭐가 나빠?’ 음, 지금 생각해 보면 ‘정규직 직장인’으로서 참 황당한 태도이기는 하지만 당시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눈 뜨자마자 아이를 봐야 하는 지금은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함께 ‘생활’을 시작한 후에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그랬다. 편한 대로 길을 골랐고, 즐거운 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뭐 지금도 그게 크게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정도껏 해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는 아내를 만족시키기엔 부족할 테지만, 인생이 여기서 끝은 아니니까, 아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런 나는 왜 ‘남편’의 길을 택했나?


다시 맨 앞의 그 장면을 떠올려 본다. 나는 왜 마음대로 막 사는 길을 내던지고, 이 길에 들어선 것일까? 만약 그때 결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친구와 (취미) 밴드를 만들어서 되지도 않는 음악을 한다며 밤새 놀고 있었을 테고, 월급을 받는 족족 기타며 만년필이며, 음반들을 사 모으고 있었을게다. 그러다 찬바람 부는 어느 날 공허감에 몸부림치며 누군가에게 소개팅을 부탁하고 있었겠지. 그렇게 살면 즐거울 때는 끝내주게 즐겁고, 괴로울 때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그랬다. 그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때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 내 마음, 내 환경 등, 여하간 그런 것들과 결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서른일곱, 젊다면 젊지만, 그렇다고 막 그렇게 젊다고 하기엔 스스로 떳떳치 못한 그 정도 나이, 그 정도 체력, 그 정도 정신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허무감 같은 게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참 애 같기도 하지만 아내의 남편이 되면 되겠다 싶었다. 단번에 훌륭한 사람이 되지는 않겠지만, 훌륭한 사람과 살면 훌륭한 물이라도 들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좀 나아졌는가? 물론 그렇다. 나는 정말로 나아진 것 같고, 더 나아질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이 인생의 어느 때보다도 편안하다. 세상에 대한 불만도 많이 줄이고 있다. 여기서 ‘세상에 대한 불만’은, 이 더러운 시장경제체제라든가, 80대20의 사회라든가, 금융자본주의와 그 하수인들에 대한 불만이라든가 하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남들에 관한 이야기다. 운전할 때 나를 열받게 하는 자들이라든가, 마트에서 무신경하게 카트를 끌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든가, 쩍벌남이라든가 뭐 이런 사람들이 사는 세상 말이다. 나는 정말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기도 한데, 요즘은 그걸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아내 덕분이다. 아내는 물론 그런 자들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크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랬겠지’라거나, ‘그런 식으로 그렇게 오래 사셨는데 어떻게 금방 바뀌겠어’라거나, ‘아마 초보여서 그랬을 거야’라거나 하는 식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게 좋다. 나 자신에게나, 세상에게나, 아내와 딸에게나.

그리하여 나는 즐겁게, 그런데 예전의 그 쾌락들과는 다른 의미에서(음, 이 즐거움이 바로 아타락시아?)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글 _ 정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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