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나
- 육아(育兒)가 곧 육아(育我)
나는 육아하는 아빠다
말 그대로 나는 평일 낮 시간을 19개월 된 딸과 함께 보낸다. 요즘 세상에 그리 드문 일도 아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흔한 일도 아니다. 나의 남자 친구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몇 안 되는 그들 중에 아이의 육아를 맡았던 친구는 없다. 오히려 다들 너무 안 봐서, 문제였다. 인터넷 카페들에 올라오는 사연들을 봐도 그렇다. 아빠가 육아를 맡는 경우는 드문 일이어서 ‘육아하는 아빠’류의 글이 하나 뜨면 금세 메인을 차지한다. 댓글엔 ‘아빠 육아’에 대한 온갖 찬사가 쏟아지는데, 육아하는 아빠로서 조금 민망할 정도다.
물론 나도 세상의 그런 찬사를 꽤나 즐겼다. 아빠가 육아하는 시늉만 해도 칭찬받는 세상에서 나 정도(아기와 관련된 모든 일을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는 정도)면 사연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와, 대단하시네요’라거나, ‘멋지세요’라는 식의 감탄을 보내준다. 거기에 마침 딸내미 머리를 새로 묶어주는 퍼포먼스라도 한번 보여주면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따로 없다. 물론 그런 순간에 나는 한껏 우쭐해져서 얼굴 가득 겸손을 머금곤 한다. 그것만 보면 나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지난 삼십 몇 년을 준비한, ‘준비된 아빠’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현실은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딸을 돌보는 이 일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아이를 돌보는 아빠’라는, 어쩐지 유행의 첨단을 걷는 듯한 속물스러운 만족감을 느끼는가 하면, 이러다가 우울증 걸리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막막한 기분을 종종 느끼기도 한다. 심하지는 않지만 이른바 경력 단절에 대한 스트레스도 없는 건 아니다. 또 그런가 하면 내가 이렇게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버텨주기 때문에 아내가 마음 놓고(?) 바깥 일을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에 자부심 비슷한 걸 느끼기도 한다. 이런저런 감정과 관념의 단편들이 하루에도 여러 번 자리를 바꿔가며 마음 한복판에 머물다 떠나는데, 그러다 보면 역시, 지친다.
어쩐지 아깝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엎어치나 매치나 정말 힘든 일이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지금껏 해왔던 어떤 일보다도 어렵지 않나 싶다. 그래서 그렇게나 감정이 복잡해지고, 괜한 허영으로 마음을 한가득 채우기도 하는 게 아닐까. 아이 돌보는 일이 힘에 부칠 때, 어쩐지 슬럼프인 것 같다 싶을 때면 감정이 더욱 양극단으로 오락가락 한다. 하루 종일, 손으로는 기저귀를 갈고, 입으론 아기를 달래면서 마음으로는 영 딴 생각에 몰두해 있다.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바로 그 순간에 나는 도망치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본전’이 생각났던 셈이다.
세상 여느 부모들처럼 나도 기꺼이 딸에게 갖은 정성과 사랑을 쏟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걸 쏟아 붓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나에게도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누가 하지 말라 그랬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어쨌거나 부모가 가진 복잡 다양한 욕망들을 제한한다. 쉽게 말해 아이가 눈뜨고 있는 동안에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이상의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아이가 잠들어도 그렇다. 날이 밝으면 당연히 아이도 일어나 오늘과 같이 활동할 것이므로 밤에 무슨 일을 하든 내일의 피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가 없다. 어느 한가지 욕망과 활동에 자신을 쏟아붓는 그런 일을 하면 안 된다. 직장생활이야 적당히 일하는 척도 하고, 슬쩍 졸기도 하고 대충대충 하면 안 되기는 하지만 그러자고 마음먹으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아이를 보는 일은 아무리 대충해도 요구되는 체력레벨이 꽤나 높다. 결국 아이가 자기 혼자 노는 걸 더 좋아하기 전까지, 제 부모를 시큰둥하게 바라볼 나이가 되기 전까진 언제나 ‘다음’을 생각하며 오늘을 보내야 하는 운명이다.
나는 물론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알았지만, 이 정도로 이럴 줄은 몰랐다. 아마 알았더라도 그냥 그렇게 아는 것과 실제로 겪는 건 완전히 다르다고 느꼈을 거다. 그러고는 똑같이 이런 내용으로 글을 쓰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고, 겪어야 할 바는 겪어야만 끝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렇게 또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본전’을 생각하곤 한다. 지금 딸이 없었다면, ‘커피 한잔 들고 공원 산책이나 하고 있었을 텐데’라거나, ‘이맘 때쯤 무슨무슨 게임이 나오지 않았던가’라거나, ‘낮에도 마음놓고 웹서핑 좀 하고 싶다’라거나 하는 식이다. 그런 망상은 흘러 흘러, 딸이 다 자란 몇년 후까지 흘러가서 그때되면 뭘 해야지, 뭘 해야지 하는 데까지 흘러간다. 그러다가 문득 울음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딘가에 머리를 박은 딸이 아빠와 엄마를 번갈아 부르짖으며 울고 있다. 그럴 때면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스럽기도 하고 그렇다. 아빠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히죽거리는지 딸이 알리야 없겠지만, 저한테 집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건 충분히 알았을 테니 말이다.
주거니 받거니
딸은, 아빠의 그런 본전 생각, 복잡한 감정들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제 시간에 일어나 놀고, 밥먹고, 또 놀고, 자고, 간식먹고, 놀고의 무한반복이다. 딸의 그 먹기, 놀기, 잠자기 사이클을 떠받치고 있는 건 결국 아빠의 구체적인 행동들이다. 내가 만약 그런 구체적인 행동들 중에 한두 가지를 빼먹고 안 해버리면 딸의 생활 전체에 영향이 간다. 결국 싫으나 좋으나 아빠로서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바로 그점 때문에 힘이 드는 것이지만, 달리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식의 마음의 갈등 같은 걸 겪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언제나 할 일이 있다.
본전 생각에 빠져들면 바로 그 점이 그렇게 힘든 것인데, 반대로 아빠가 감정적인 부침을 겪지 않고, 신체의 컨디션도 괜찮을 때면 그게 그렇게 고맙기도 한 것이다. 이를테면, 아이 돌보는 일과 관련된 온갖 일들이 쏟아져 나올 때, 그래서 그 일들이 재빠르게 해치우다보면, 문득 마음이 몹시 편안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물려받은 빚 생각도 안 나고, 도무지 뭘하면서 살아야 하나 싶어 걱정되는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도 사라진다. 내년 4월에 당장 이사갈 일이라든지, 읽고 싶어서 사놓고 펼쳐보지 않고 있는 책더미랄지, 넷플릭스 신작 드라마랄지 여하간에 마음을 시끄럽게 만드는 온갖 일들로부터 훌쩍 떠난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건 그냥 ‘기분이 좋다’는 느낌과는, 그러니까 닥쳐온 일들을 다 해결해내면서 느낄 법한 성취감이나 고양감하고도 다르다. 차라리 그건 그런 평온한 기분을 느끼는 데까지 이를 수 있었다는 데 대한 고마움과 비슷한 감정이다. 무언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생각해 보면, 사람이 사는 일에 무언가 보태고 빼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가서 사거나,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인생의 성질이 바뀌는 건 정말 어렵다. 인생의 성질이 바뀐다는 건 무엇보다 일상이 바뀌는 일이고, 욕망이 향하는 방향이 바뀌는 일이다. 딸이 태어나면서 그 모든 것이 바뀌고 말았다. 예를 들어 나는 정말이지 아침에 일어나는 걸 그 어떤 것보다도 힘들어 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거나 약속이 있으면 차라리 안 자고 나가는 걸 택할 정도였다. 지금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평일이나 주말이나, 언제나 7시에서 8시 사이에 꼬박꼬박 일어나게 되었다. 어쩔 수가 없다. 딸이 그 시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다음 날을 감안하면서 그날 저녁을 보내게 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식으로 일상이 바뀌면서 마음이 향하는 길도 바뀌게 되었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세상이야 어떻게 되든 당장 눈앞에 즐거운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결국 매사에, 그러니까 즐거운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간에 그 끝에는 공허감 같은 게 있었다. 가장 많이 바뀐 점이 있다면 바로 그 점이다. 지금도 물론 세상일이 어떻게 돌아가든 별 관심도 없거니와 거기에 ‘참여’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하지 않지만, 우리 아이가 세상이 주는 그런 풍파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자면 당연하게도 아빠가 그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눈앞의 즐거움에 취했다가, 공허감에 몸부림쳤다가 하는 식으로 살아서는 도저히 되지 않을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하루의 패턴이 바뀌고 마음이 향하는 길이 바뀌는 걸 보면 내가 아이에게 주는 것만큼이나 아이가 나에게 주는 것이 있다. 부모가 아이에게 삶을 선물한다면, 아이는 부모에게 다른 삶을 주는 셈이다.
‘육아’는 사실 나(我)를 기르는 일
앞서 말한 것처럼 아빠는 여러모로 부족한 인간이다. 강제로 성실한 삶을 살면서 마음이 향하는 길도 수정 당했으면서도 여전히 예전의 그 재미있었던 것 같은 삶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아이를 돌보느라 접어둔 여러 일들을 떠올리며 억울해하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이건 여전히 내가 어떤 ‘과정’ 중에 있다는 데 있다. (현재 시점에서) 19개월이 지난 지금도 바뀌는 중이기도 하고, 앞으로 꽤 많은 날들이 남아 있기도 하다. 딸이 성장의 과정 속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딸은 요즘 그야말로 자아가 폭발적으로 제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조금이라도 제 성미에 거슬리는 게 있으면 울고불고 난리난리를 치기도 하고, 고집을 빳빳하게 세우고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식으로 굴기도 한다. 심지어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던 녀석이 가리는 음식도 생겼다. 이를테면 오이를 안 먹으려고 한다.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밉기도 하다. 물론 그럴 때면 미울 때가 더 많기도 하다. 밉다 뿐인가. 성질이 솟구쳐 올라와서 제 녀석이 아빠에게 하는 것처럼 소리를 꽥꽥 질러주고 싶을 정도다. 그렇게 굴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상황에 끌려들어가서 그녀의 페이스에 휘둘리고 만다. 잘 참다가도 어쩌다가 욱해서 ‘뭐 어떡하라고!’ 하며 큰 소리를 내기도 한다. 요즘은 훨씬 나아지기는 했다. 딸은 여전히, 아니 점점 더 그렇게 되었지만, 내가 좀 바뀐 것이다. 그건 나 스스로도 그게 참 대견스럽고, 자랑스럽고, 훌륭하다 여기고 있다. 무언가 하면 어쩐지 그 상황이랄지, 딸의 못됨이랄지 그런 것에 거리를 두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일단,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나는 최대한 냉정해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먼저 그녀의 나이와 내 나이의 꽤 상당한 거리를 떠올린다. 당연히 어느 모로 보나 아빠인 내가 딸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 더 크고, 힘도 세고, 할 줄 아는 것도 많고, 그러니까 살아오면서 붙은 관록을 비교조차 할 수 없다.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그걸 떠올리면 비로소 온갖 성질을 부리고 앉아있는 딸이 제 나이 두 살로 보인다. 가소로운 녀석. 말하자면 마음의 여유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 어떤 사태를 더도 덜도 아닌 채로, 딱 그 만큼의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건, 과장 좀 보태어 말하자면, 지금까지 내 평생의 과업 중 하나였을 만큼 잘 안 되는 일이었다. 언제나 사실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또는 더 작게 생각하곤 하였다. 그러면 당연히 평정심을 잃게 되고 쉽게 절망하거나 근거없는 낙관론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상황에 휘둘리고 만다. 타고난 성정이 워낙 그렇게 휘둘리기 쉬운, 거위털보다도 가벼운 사람, 일희일비의 화신, 그게 바로 나였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 문제를 풀고, 이렇게 열심히 훈련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만큼 아이도 나를 키운다.
나는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가
아이를 실제로, 이렇게 매일 앞에 두고 키우기 전에는 나름대로 되고 싶은 아빠의 모습이 있었다. 이를테면, 주말마다 캐치볼을 하는 아빠라든가, 이런 저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아빠라든가, 엄마 몰래 용돈을 공유하고 각자의 이득을 추구하는 뭐 그런 동지적 관계라든가 하는 식의 판타지들 말이다. 그런데 역시, 실제는 그런 판타지와 많이 다르다. 여전히 많은 아빠들이 그런 생각들을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많은 아빠들이 실제로 아이를 키우고 있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말하자면 그런 그림은 저 멀리 뜬 구름 위의 상상일 뿐이다. 이 바닥, 그러니까 전쟁의 포연이 가득한 이 현실세계에서는 당장의 하루하루, 그날그날 세팅된 각자의 기분에 따라 상황이 천변만변하기 때문이다. 당장 바나나 더 내놓으라고 때려부술 듯 유아식탁을 두드리는 아이를 앞에 두고 무슨 아름다운 캐치볼 공 굴러가는 소린가. 딸 덕에 나는 내일이나, 일년 후, 이년 후가 아니라 오늘을 사는 법을 배웠다.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소박하다. 딸이 도저히 혼자 감당 못할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빠에게 이야기 해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사실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그런 이야기들을 하지 않았다. 그 분들에게는 좀 미안한 이야기지만, 괜히 이야기하면 일이 더 힘들어질 것 같았으니까. 기꺼이 그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아빠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이건 단지 그러라고 이야기하고, 교육해서 될 문제가 아닐 텐데 어떻게 하면 그리 될 수 있을까. 무슨 방법이 있겠나, 딸을 대할 때 나름대로 체득한 방법대로 부정적인 감정은 절제하고, 긍정적인 감정을 기꺼이 드러내 보여주고, 열심히 바나나 상납하다 보면 자연히 되지 않을까 싶다.
- 정군
'지난 연재 ▽ > 다른 아빠의 탄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내와 나 – 남편이 되고서야 보이는 것들 (0) | 2019.01.18 |
---|---|
물러날 때를 아는 자가 진정한 승자 (0) | 2019.01.04 |
누가 이 아이들을 키우는가? (0) | 2018.12.28 |
‘아빠’는 처음이라... (0) | 2018.11.30 |
애 낳았다고 아빠가 되더냐 (2) | 2018.11.23 |
아빠가 되었다, 다른 삶이 주어졌다 (4) | 2018.1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