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 ▽/뉴욕 : 도시와 지성21 뉴욕과 허먼 멜빌② 콘크리트 심해에 숨겨진 고래 찾기 콘크리트 심해, 그 신화를 찾아서 (2) : 뉴욕과 허먼 멜빌 ❙ 콘크리트 정글의 파(派) 뉴요커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뉴욕을 극도로 사랑하는 도시파, 뉴욕을 극도로 싫어하는 자연파. 도시파는 뉴욕의 돈이 만들어내는 자유를 좋아한다. 돈이 모이는 곳에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이면 욕망이 숨 쉴 틈새공간이 생긴다. 뉴욕처럼 다양한 인종, 직업, 성별, 취미에 개의치 않는 곳은 없다! 그러나 자연파는 뉴욕에서 화폐를 얻기 위해 치러야하는 대가를 끔찍하게 여긴다. 그들의 목표는 돈을 모아서 뉴욕을 탈출하는 것이다. 여유로운 자연(교외) 생활이 목표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 굳이 말하면 내 일상이 곧 뉴욕이라고 믿는 ‘생존파’다. 완벽한 일상이란 없고, 일상의 뉴욕은 늘 이 양극 사이를 왔다 갔다 할.. 2016. 7. 29. '콘크리트 정글'의 신화 - 뉴욕과 허먼 멜빌(1) 콘크리트 심해, 그 신화를 찾아서 : 뉴욕과 허먼 멜빌 미국 래퍼 제이지가 가수 엘리샤 키스와 함께 대박 친 뉴욕의 로고송은? 정답은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Empire State of Mind)’다. 제목은 몰라도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팝송이다. (뉴~욕, 뉴~욕, 뉴~욕 하고 반복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를 떠올려보자.) 이 곡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뉴욕, 콘크리트 정글, 꿈이 만들어지는 곳. 여기서 당신이 못할 것은 없어요.” 떠오르지 않는다면 직접 들어보시라! 콘크리트 정글. 진짜 대박난 것은 노래보다 이 한 구절이다. 그 후로 뉴욕을 다룬 온갖 가이드북, 기사, 리뷰마다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수식어가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콘크리트’로 표상되는 모던, ‘정글’이 연상시키는 미개척.. 2016. 6. 24. 진정한 '세계문명화'를 위한 노력 : 뉴욕과 에드워드 사이드 (2)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문화를 위하여 (2): 뉴욕과 에드워드 사이드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 재인용, 에드워드 사이드, 박홍규 역, 『오리엔탈리즘』, 교보문고, 2012년, 445쪽 이 아포리즘을 읽으면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아쉬움 없이 고향을 등지는 방랑자.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는 결연한 표정. 이 사람은 고향과 무슨 척이라도 지은 걸까? 아니다. 그는 지금 고향 땅이 아니라 고향이라는 표상이 제공하는 “감미로움”을 거절한다. 현재가 살기 팍팍하고 이해하기 힘들수록 과거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고향은 익숙한 과거를 붙.. 2016. 5. 27. 문화의 추방자이자 이민자, 에드워드 사이드와 뉴욕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문화를 위하여 (1): 뉴욕과 에드워드 사이드 논쟁하기 좋아하는 싸움닭. 이것은 ‘뉴요커’에게 붙은 무수한 딱지 중 하나다. 뉴욕에서 직접 살아보니 이 이미지의 유래를 알 것 같다. 여기서는 논쟁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마저도 논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뉴욕이 그토록 광고해대는 (그 놈의!) 다양성 때문이다. 다양한 인간들이 좁아터진 섬에 모여 살다보면 서로에 대한 오해와 몰이해, 잘난척이 어쩔 수 없이 생겨난다. 무지 자체는 괜찮다. 문제는 무지를 고집할 때다. 바로 그때 무지를 깨뜨리려는 자와 무지를 고수하려는 자 사이에 논쟁이 시작된다. 쿨하지 못해 미안한 이름, 문화 나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에 살 때는 과열된 애국심이나 유치한 반일 감정에 거리를 두며 나름 ‘쿨녀.. 2016. 4. 29.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