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에서 온 편지5 [마산에서 온 편지] 씨앗이 뿌려지던 날들 2 씨앗이 뿌려지던 날들 2 강가에나무(마산토박이)친구네 4남매에겐 한 가지 비밀스러운 것이 있었다. 토요일 오후만 되면 다 같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것이다. 궁금했다. 어딜 그렇게? 그것도 다 같이! 게다가 매주! 가는 것일까? 하루는 그네들을 따라가 보았다. 오르막길을 내려와 기찻길을 지나 부림지하상가를 건너 부림시장을 지났다. 한복집들과 여성복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좁은 골목을 빠져나와 6.25 떡볶이와 토스트를 파는 리어카들 사이로 다시 한참을 내려오니, 시장의 남쪽 끝이자 어시장이 시작되는 큰길을 앞두고 우뚝 솟은 종탑 건물이 보였다. 성당이었다. 친구네 형제들은 매주 토요일, 그곳에 갔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토요일마다 친구네를 따라 성당에 가기 시작했다. 여덟 살이던 해였다. 친구가 .. 2026. 6. 8. [마산에서 온 편지] 씨앗이 뿌려지던 날들 씨앗이 뿌려지던 날들 강가에나무(마산 토박이) 옛집 옆으로 난 골목엔 딸 셋에 아들을 막내로 둔 집이 있었다. 그 집 셋째 딸이 나랑 동갑이었다. 이제 막 문을 연 병설유치원의 첫 입학생으로 함께 다녔으니, 친구네는 그전부터 거기 살았을 것이다. 위로 세 살, 다섯 살 터울의 오빠를 두었던 나는, 어린 날엔 그것이 얼마나 큰 나이 차이였는지 오빠들의 놀이에 낄 엄두를 도통 내지 못했다. 성별이 다른 것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딸 많은 친구네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기 시작했다. 친구네 집은 골목에서 다섯 개 정도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대문이 있었다. 나는 계단 아래서 고개를 위로 바짝 쳐들고 친구를 부르기 시작했다. “친구야, 놀자~ 친구야 놀자~.” 아무 대답이 없으면 안에서 들어오라는.. 2026. 5. 11. [마산에서 온 편지] 사람을 닮은 마산 사람을 닮은 마산강가에나무(마산토박이) 마산에서 보내는 편지지만 이 지명이 사라진 지도 여러 해가 지났다. 하나의 생활권이었던 마산, 창원, 진해가 2010년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라는 명칭으로만 그 흔적이 남게 된 것이다. 계획도시 창원이 너른 분지에 상업지구와 주택지구가 잘 구획되어 있고, 도심을 연결하는 체계적인 도로망으로 정돈된 느낌을 준다면, 해군기지가 있는 진해는 군항도시답게 비교적 낮은 건물들이 안정감을 준다. 이 두 곳에 비하면 마산은 다소 정신없이 어수선하다. 간혹 창원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마산으로 오게 되면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1899년 개항 이후 일찍부터 발전해 온 마산은 기존의 지형을 유지하면서 해안선.. 2026. 4. 10. [마산에서 온 편지]그 마을의 옛집 그 마을의 옛집 강가에나무(마산토박이) 그 마을 아래에 우리 집이 있었다. 일곱 살 때 6.25 전쟁이 나자 서울을 떠나 원주 외가에서 피난 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가족들과 함께 마산으로 내려온 것이 1953년 봄. 그때부터 아버지가 예순여섯 해, 여기서 나고 자란 나는 마흔 해를 이 집에서 살았다. 지금은 산책길로 조성된 마을 초입의 기찻길을 지나면 그때부터 차츰 가파른 길이 나타나는데, 꼬부랑 벽화마을로 오르는 오르막길의 허리춤쯤에 우리 집이 있었다. 사람들은 우리 집 대문 앞에서 양손 가득 든 짐을 잠시 부려놓거나, 눈짓으로 남은 길을 가늠해 보기도 했다. 이 집에서의 처음 시작은 일곱 식구였다. 피난 길에 넷째 딸을 잃고, 원주에서 다시 아들을 얻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증조할머니를 모시고 자식 넷.. 2026. 3. 9.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