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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톡톡] 아이를 잉태하는데도 '때'와 '장소'가 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8. 7.

시공간의 선택이 아이를 결정한다



21세기 섹스 신드롬 


남편이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섹스하기를 좋아해요. 그래서 예전에는 모텔에도 갔는데 요즘은 모텔이 하도 흔해서 다른 분위기를 찾아가요. 여름 휴가철에는 바닷가가 제격이죠. 밤에는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바위 뒤 같은 데가 좋고, 때로는 비가 오는 날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면 색다른 분위기가 연출되더라고요. 


남편 직업이 바깥에서 힘을 쓰는 일이라 고되다는 이유로 술을 많이 마시고 들어와요. 문제는 술만 취해서 오면 꼭 부부 관계를 요구한다는 거예요. 저는 술 취해서 하는 거 정말 싫거든요. 술 냄새도 역겹지만 취한 상태에서 섹스하는 건 왠지 거부감이 들어요. 아이 둘 다 그런 상태로 임신을 하게 됐어요. 맨 정신으로 한 날이 거의 없으니까요.

─ 이상 인터넷 자료 각색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야외 섹스 경험을 나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들의 무용담은 끝이 없다. 고궁이나 경치 좋기로 이름난 숲 등 분위기만 좋으면 어디든 찾아간다. 발기가 잘 되지 않거나 섹스 거부감이 있는 부부에게는 분위기를 바꿔볼 필요가 있다며 색다른 장소를 권유하기도 한다. 작년에 가수 비욘세(31)가 해외 ‘플론트(Flaunt)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루브르에서나 개선문 아래서 섹스를 하는 게 꿈이다." 라고 자신의 섹스 판타지를 밝힌 적이 있다. 그리고 연인이자 남편 제이지(43)와 무드를 잡는 데에는 90년대 R&B 음악이 꼭 필요하다며 섹스에 대한 로망을 과시하기도 했다. 장소만이 아니다. 섹스를 꼭 밤에만 해야 하나, 의문을 던지는 섹스족들도 있다. 이들의 눈에 피곤이 몰려드는 밤 시간의 섹스는 지루하고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단다. 그래서 한낮에 밝은 햇빛이 비치는 방안이나 야외에서 하는 섹스가 형광등 아래서보다 더 로맨틱하고 짜릿하다.


ㅋㅋㅋ


많은 사람들이 섹스에 대한 이런 환타지를 갖고 있다. 분위기 있는 장소를 찾는 부부도, 술 취한 남편의 섹스 요구에 불쾌감을 표하는 아내도 또 시간대를 옮겨보자는 사람들도 모두. 다만 취향이나 경제적인 여건, 대범함의 정도에 따라 선호하는 장소와 시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국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섹스는 어떻게 하면 쾌락을 더 크게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을까 하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그리고 임신은 그 부산물일 뿐, 생명을 창조하는 우주적 행위라는 인식은 거의 없다. 


섹스에 관한 이런 인식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듯하다. 그러니 두 사람의 감정을 최대한 흥분하게만 해 준다면 언제든 어디서든 무방하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경험하지 못한 환경이라면 더욱 매력적이다. 현대의학 분야의 부부문제 전문가들도 이런 부분을 문제 삼는 경우는 없다. 만약에 장소나 때를 가린다면 그것은 오로지 여성의 오르가즘이나 남성의 발기에 장애가 되는가와 연관 지어 생각할 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섹스는 두 사람의 기분을 ‘업’시켜서 발기가 되고 오르가즘을 느끼게만 하면 오케이일까?



천지창조와 아이 창조는 하나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덕과 지혜가 있는 아이를 얻기 위해서는 때와 장소를 가려서 성교를 해야 한다. 물론 현대인들도 때와 장소를 가리긴 한다. 그래서 분위기가 좋은 곳을 찾는 것 아닌가. 그런데 『동의보감』에서 가려야 한다고 말하는 때와 장소는 이와는 좀 다르다. 


남녀가 교합할 때는 마땅히 ㉠병정일과 음력 상현, 하현, 보름과 그믐, 초하루, ㉡바람이 심한 날, 비가 많이 오는 날, 안개가 자욱하게 낀 날, 몹시 추운 날, 몹시 더운 날, 번개가 번쩍거리는 날, 우레와 벼락이 치는 날, 천지가 캄캄한 날, 일식이나 월식이 있는 날, 무지개가 서거나 지진이 있는 날을 피해야 하는데, 이때 교합하면 神氣를 손상시켜서 좋지 않다. 남자에게는 더욱 더 해롭고, 여자에게는 병이 생기며, 자식을 두게 되면 전간 바보 멍청이 벙어리 귀머거리 절름발이 장님이 되거나 병이 많이 생겨서 오래 살지 못하고, 불효하고 잔인한 사람이 된다. 또한 ㉢햇빛 달빛 별빛 불빛이 비치는 곳, ㉣사당이나 절간, 우물, 부엌 변소 옆 무덤이나 송장 옆 등은 다 좋지 못한 자리이니 교합을 피해야 한다.


  ─ ‘婦人’, 「잡병편」, 『동의보감』, 법인문화사, 1645쪽


현대인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좀 뜬금없다고 할 것이다. 이 문명 시대에 웬 날씨 타령, 달 타령에 빛 타령이냐고. 그러나 이는 생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보이는 반응이다. 일단 『동의보감』, 「내경편」,  ‘신형’ 첫머리에 등장하는 손진인(중국 당대의 전설적인 명의)의 말을 들어 보자. 


‘머리는 둥글어 하늘을 본받고, 발은 모가 나 땅을 본받았으며......‘또한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이 있고, 땅에 초목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모발이 있다......이러한 것은 모두 사대(四大)와 오상(五常)을 받아 잠시 합하여 형체를 이룬 것이다.


  ─ ‘身形’, 「내경편」, 『동의보감』, 법인문화사, 200쪽


결국 우리 몸을 구성하는 요소와 성분이 모두 하늘과 땅, 즉 우주 자연의 그것과 다르지 않고 그 흐름 또한 이것을 본떠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주를 구성한 지,수,화,풍(地·水·火·風)이라는 네 개의 큰 것(四大)과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는 다섯 가지 변치 않는 것들(五常)이 잠시 ‘합쳐져서 형체를 이룬 것’이 사람이라고 한다. 우주는 곧 시공간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고 그렇다면 시공간에 감도는 기운이 생명을 만드는 요소라는 것이다. 즉, 성교의 순간에 여자의 난자와 남자의 정자, 그리고 천지의 기운이 고도로 응축되어 하나의 생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어 아이가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천지의 기운과 인간이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문명의 발달로 인간이 점차 자연의 리듬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만드는 남자와 여자도 그 천지의 기운을 받아 잉태되고 태어났으며 우주와 교감하며 그 리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어찌 천지자연과 따로 떼어서 생명의 창조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로 『동의보감』에서는 ‘덕과 지혜가 있는 아이’를 얻으려면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동의보감』은 왜 이런 것들을 가리라고 하는 걸까? 



음양교합에도 ‘시간’이 있다


우선 丙일과 丁일을 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병정일은 오행 중 火氣가 강한 날이다. 태양과 같은 큰 불(병)이든 촛불 같은 작은 불(정)이든 산포하는 성질을 가졌다는 점은 공통이다.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은 생명의 씨앗을 만드는 일이고 구체적인 형상을 갖는 씨앗은 기운(에너지)을 고도로 응축시켜야만 만들어진다. 그런데 화기가 강한 날은 기운을 응축하기보다는 흩어버리기 때문에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명체를 만드는 데는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게 좋다. 


다음으로 음력 상현과 하현, 보름과 그믐, 초하루를 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달의 기운과 관련이 있다. 동양에서 달은 음기를 주관하며 “음은 발산하는 (양의) 기운을 수렴하여 구체적인 결과물로 벼려내는 기운”(손영달, 『별자리서당』, 북드라망, 2014, 79)이다. 발산하는 기운과 수렴 응축하는 기운이 적당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단단한 씨앗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보름달과 그믐, 초하루는 음의 기운이 너무 성하거나 너무 약하거나 한 날이다. 그리고 상현이나 하현은 음기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때다. 따라서 음의 기운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날엔 성교를 피해야 하는 것이다. 


음양교합에도 때가 있다!


그렇다면 날씨가 불안정할 때 성교를 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앞에서 열거한 날들에는 모두 ‘심한’, ‘많이’, ‘자욱하게’, ‘몹시’와 같은 수식어가 있다. 이는 기운이 치우친 날씨에 성교를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미이다. 그러기에 왠지 상서로운 기운이 있을 것 같은 “무지개가 서는 날”도 피하라고 하는 것이다. 무지개가 서는 날이나 지진이 일어난 날이나 기운이 치우쳐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 이상과 같은 ‘때’를 가리라고 하는 이유는 먼저 성교를 하는 당사자의 신기(神氣)를 상하기에 좋지 않다는 것이다.(‘神氣’에 관해서는 이전 글, '욕망을 다스려야 아이가 들어선다' 참조) 특히 남자에게 더욱 해롭고 여자에게는 병이 생기며, 이런 날 잉태된 아이는 장애를 갖고 태어나거나 병이 많이 생겨서 오래 살지 못하고, 불효하고 잔인한 사람이 된다고 한다. 이는 모두 치우친 기운을 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남녀의 건강을 생각해서도 그렇고 아이를 생각해서도 그렇고 부디 ’기운이 조화로운 때‘에 성교를 하라는 것.   



음양교합에도 ‘장소’가 있다


빛이 비치는 곳, 하다못해 별빛조차도 피하라는 것은 왜일까? 이는 『동의보감』 「내경편」에서 양생의 대원칙 네 가지를 말할 때 이미 밝힌 바 있다. “밤에 불을 켜고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것”을 평생의 금기로 삼으라고. 불빛이 비치는 장소를 피하라는 것이다. 빛은 일단 양기이고 발산의 기운이다. 위에서 말한 병정일을 피하는 것과 그 이유는 비슷하다. 일단 밝은 곳에서는 시선이 집중되지 않고 산만해진다. 그러니 기운이 흩어질 수밖에. 아이를 잉태하기 위해서는 밖으로 향하는 기운을 안으로 모아 아래로 내리면서 최대한 응축을 해야 하는데 주변에 빛이 있어서 시선을 빼앗기면 기운이 산만하게 흩어지게 되고 생명 창조 활동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가 어려운 건 당연하다. 


음양교합에도 장소가 있다!


또 사당이나 절, 무덤이나 송장 옆 같은 장소를 피해야 한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사당, 무덤, 송장 옆 등은 귀신이 거처하는 곳, 즉 음기가 뭉쳐 있는 곳이고 부엌은 여자들의 일상 공간이긴 하지만 옛날 가옥구조에서는 집의 다른 곳보다 좀 낮고 어두운 데다가 온갖 음식들이 뿜어내는 냄새와 아궁이의 연기며 먼지들이 난무하니 이곳 역시 맑은 기가 흐른다고 보기는 어렵다. 변소 옆 또한 그 기운이 맑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수렴, 응축의 활동을 방해하는 곳, 즉 발산의 기운이 강한 곳, 그리고 지나치게 음적인 곳, 다시 말해 탁한 기운이 흐르는 곳은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이런 곳은 기운이 한 쪽으로 치우쳐 있는 곳이고 그런 곳에서는 성교를 하는 사람도 기운의 균형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천지의 조화를 ‘품은’ 아이를 낳는 법


그렇다면 허준이 『동의보감』을 쓴 당시와 달라진 환경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이러한 『동의보감』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선 성교를 쾌락의 문제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자. 앞에서도 말했듯이 성교는 남녀가 함께 생명 창조 활동에 동참하는 우주적 사건이다. 그렇다면 남자와 여자의 기운도 평정을 유지해야 하겠지만 그와 더불어 천지의 기운도 조화로워야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나’와 ‘너’만을 보지 말고 시야를 넓혀 우리를 감싸고 있는 ‘기운’을 살피라는 것. 천지의 기운이 치우침 없이 평정한 때에, 그리고 그러한 장소에서 성교를 하라는 것. 그래야 덕과 지혜가 있는 아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기운이 치우침 없이 평정한 상태 그것이 곧 여기서 말하는 덕이다. 


그러니 ‘덕과 지혜가 있는 아이’는 요즘 부모들이 원하는 ‘똑똑한 아이’와는 다르다. ‘덕’이 있는 아이란 앞에서 서술한 천지(음양)의 조화로운 기운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아이이다. 이런 아이는 안으로는 오장육부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밖으로는 천지자연과 교감하며 그 리듬을 타면서 살아간다. 이 리듬 안에서 안팎으로 자연스레 소통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매 순간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가 ‘지혜’가 있는 아이이다. 이런 덕과 지혜가 있는 아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 생명을 보존하고 삶을 영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즉 자기 생명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있다. 여기까지 동의를 했다면 이제 실천법이 궁금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법은 무엇일까? 


천지자연과 소통할 때 '덕'있는 아이를 낳는다.


우선 그날의 기운을 살피는 일이다. 이는 주거환경이 외부의 날씨와 무관하게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안락하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천지의 기운은 인간의 힘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요즘 같은 삼복지간이라면 화의 기운이 강한 때다. 이런 때는 섹스를 삼가는 것이 좋다. 물론 에어컨을 켜면 삼복이 무색할 정도로 시원하다. 그렇다고 천지의 기운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에어컨에서 나오는 찬 기운은 자연의 기운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리고 인공적인 찬 기운은 우리 몸과 자연의 기운이 소통하는 것을 인위적으로 바꾸어 몸의 균형을 깸으로써 자칫 사기(邪氣)로 작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몸은 자연의 리듬에 따라 ‘여름’을 살아가는데 그것을 억지로 바꾸는 게 에어컨인 셈이다.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도 마찬가지다. 우리 몸이 지나치게 난방이 된 실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추위를 조절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힘이 약해지고 그런 상태로 바깥 기운이 들어오면 한기(寒氣)와 바람(風)에 몸이 상할 수 있고 이런 기운이 섹스 시 조화로운 기운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동의보감』에서는 몹시 덥거나 추운 날, 일기가 불안정한 날은 피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사례 속의 부부처럼 비오는 날 빗소리를 들으며 야외에서 하는 성교는 운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 대신 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생명 창조에 끼어들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다음으로 성교의 장소도 살피는 것이 좋다. 『동의보감』에서는 달빛과 별빛까지 피하라고 하니 불빛 아래서는 당연히 삼가는 것이 좋겠다. 물론 요즘 같이 밤에도 방범등이 환하게 비치는 환경에서 빛을 피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커다란 거울에 요란한 조명, 화려한 인테리어로 장식한 모텔이나 호텔 등을 찾아 가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한낮에 밝은 태양 빛 아래서 하는 섹스가 로맨틱하다느니 짜릿하다느니 하는 환상은 접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요약하면, 조명이든 자연이 발하는 빛이든 빛이 비치는 곳을 피하고 기운이 조화롭지 못한 날씨와 장소를 피해서 성교를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 ‘덕과 지혜가 있는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장맛이 없으면 일 년 근심이요, 자식 잘못 두면 평생 근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예전에는 장이 모든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조미료였다. 그래서 해마다 늦가을이면 어머니는 알이 좋은 콩을 구해 메주를 쑤고 그걸 밟아 짚으로 묶어 처마 여기저기 매달아두었다가 적당히 뜨고 나면 반으로 갈라 햇볕에 널어 바싹 말리셨다. 그런 다음 설을 쇠고 날이 좀 풀린 뒤 午日(말날) 중에서도 청명한 날을 잡아 장을 담그셨다. 오(午)일은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비치는 날이다. 하루 중 그림자가 없는 시간이 오시인 것처럼. 그 중에서도 또 청명한 날을 골라 장을 담근다. 그래야 삿된 기운이 장 속에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는 천지자연의 기운과 소통하던 옛사람들의 삶이 만들어낸 자연스런 절차들이다. 장 담그는 날조차 이렇게 가릴진대 하물며 아이를 가짐에 있어서야 삼가고 조심해야 함을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오창희(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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