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천(曲泉), 근기(根氣)의 샘물
바야흐로 근육의 시대가 도래했다. 훌러덩 옷을 벗기만 하면 초콜릿 복근과 잔 근육들로 무장한(!) 몸들이 드러난다. 비단 TV에서만이 아니다. 전 국민이 ‘근육=건강’이라는 도식 하에 근육 만들기에 몰두해 있다. 이즈음의 나의 몸. d자형 몸매와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이 몸은 게으름의 상징으로 낙인찍혔다. 아, 근육만 알아주는 이 더럽고 분한 세상!^^
무한도전 너마저!!
대체 근육이란 언제부터 이토록 ‘추앙’받아온 것인가. 사실 동양에서 근육이 강조된 적은 거의 없다.(참 다행이다.^^) 무사들을 그린 그림만 봐도 알 수 있다. 동양화에 등장하는 무사들의 몸은 얼핏 보면 어린아이의 몸처럼 보인다. 귀엽고 매끈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대로 울퉁불퉁하고 보기만 해도 주눅이 드는 근육들을 강조한 것은 서양이다. 다비드상을 비롯한 온갖 조각상들엔 근육들이 아주 많이 붙어있다. 약간 민망할 정도로. 심지어는 ‘아니, 저곳에도 근육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라는 의심이 드는 부위까지도 근육질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서양인들은 이토록 근육을 좋아했던 것일까. 이 이야기는 잠시 후에 좀 더 살펴보기로 하자.
예술분야가 아니라 일상에서 근육질의 몸이 주목받기 시작한 건 디지털 시대에 와서다. 디지털 문명은 몸을 직접 쓰지 않고도 세계 어디와도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이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선 이제 손가락 하나면 충분하다. 그만큼 몸을 쓸 일은 적어졌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근육질의 몸을 선호할까? 근육질의 몸이 되면 컴퓨터 자판이 더 잘 눌러지는 걸까? 아니면 스마트폰 터치가 더 잘되는 걸까? 아닐 게다. 아마도 여기엔 근육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정치경제학적 배치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건강과 성적 매력. 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선 근육질의 몸이 되어야 한다는 환상. 그리고 그 몸을 만들기 위해 자본과 땀을 쏟아 부어야 하는 시대. 이게 우리 시대의 근육이 그리고 있는 또 하나의 그림이다. 그런데 정말 근육이란 그런 상품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게 취급해도 되는 것일까.
근육의 역사
그리스의 근육질 몸의 역사에는 처음부터 줄곧 그리스인이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것들, 즉 동물이나 야만인 그리고 여성들과 비교하여 자신을 정의한 역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 구리야마 시게히사, 『몸의 노래』, 이음, 2013, 152쪽
서양에서 근육질의 몸이 강조된 건 그리스 시대였다. 그들은 근육을 통해 자신과 타자를 구분했다. 근육은 권력의 상징이자 정복을 의미했다. 반대로 야만인, 여성들, 노예들은 근육이 없는 몸으로 묘사됐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이 권력의 이방인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형상이 없는 몸과 부족한 열정 때문에 여성스럽고, 여성스런 목소리를 내며, 볼품없고 분절되지 않은 거세된 환관과 같다.” (구리야마 시게히사, 『몸의 노래』, 이음, 2013, 145쪽)
근육은 개인의 정체성과도 관련되어 있었다. 외부로부터 어떠한 침해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그것은 순전히 근육에 의해서였다. 하여, 그들은 근육을 “의지적 움직임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해석했다. 근육이 있어야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에 근육에 대한 관심은 또한 주체적 삶에 대한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었다.
의학에서는 해부학이 근육에 매달렸다. 우리는 흔히 해부를 하다가 근육을 발견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반대다. 초기의 해부학은 순전히 근육질의 몸이 어떻게 운동하는가를 밝혀내기 위해 행해졌다. 생명력을 주관하고 생성하고 창조하는 것의 힘이 이 근육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서양에서 근육은 그 자체로 인간의 본질에 해당했다.
근육보다는 맥의 흐름!
반대로 동양에선 근육이 강조된 적이 없다. 근육보다 중요한 것은 맥(脈)이었다. 맥의 핵심은 흐름에 있었다. 맥은 통로다. 이 통로로 기혈(氣血)이 흘러 다닌다. 이 흐름이 몸의 생명력을 관장한다. 그렇기에 무사들의 몸을 그릴 때에도 몸의 근육보다는 그들의 동작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보여주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운동이 생명력을 주관한다는 것. 그것이 동양에서 포착한 몸이었다.
차이는 분명했다. 서양의 근육질 몸이 권력과 영토성의 상징이라면 동양의 맥에 대한 관심은 유동성과 변화를 의미했다. 겉으로 드러난 근육에서 자아를 찾는 방식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러 다니는 기(氣)를 통해 존재에 다가가는 방식. 그것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서로 다른 지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동양의학에서 근육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동의보감』에서의 근육
『동의보감』에 따르면 근(筋)과 육(肉)은 서로 다르다. 아예 파트 또한 나눠놨다. 근(筋)이 간(肝)과 연결되어 있다면 육(肉)은 비(脾)와 연결되어 있다. 팔을 뚝 잘라서 보면 더 흥미롭다. 가장 안쪽엔 뼈가 있다. 뼈는 신수(腎水)를 관리한다. 근은 간목(肝木)이, 그 다음에 맥은 심화(心火), 육은 비토(脾土)가, 피부는 폐금(肺金)이 담당한다. 찬찬히 보면 가장 안쪽의 수(水)로부터 목(木)-화(火)-토(土)-금(金)의 순서로 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근육이라고 부르지만 다른 지층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근은 간(肝)이 주관한다. 근의 문제가 생긴 것은 간(肝)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간(肝)은 나무의 기운이다. 높이 올라간 나무의 몸을 어루만져보면 근육이 아주 단단하다. 이 근육으로부터 움켜쥐는 힘, 버티는 힘이 나온다. 아무리 바람에 흔들려도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 것도 이 힘에 의해서다. 하여, 간과 근의 작용을 한의학에선 파극(罷極)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것을 견디고 극복하는 힘이 간과 근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이른바 근기(根氣)라고 하는 힘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는 말이기도 하다.
간과 근육에서 나오는 끈기!
몸의 근을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간(肝)이라면 부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것은 경맥이다. 사실 이 점도 좀 놀랍다. 경맥이 근을 관리하는 주체라니. 흘러 다니는 것이 장소에 고정된 것을 부리는 주체라니. 흔히 우리는 반대로 생각하지 않는가. 중심을 잡고 자리를 차지한 것이 주인이고 그 주위를 맴도는 것이 부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데 여기선 정반대다.
각각의 경맥엔 경근(經筋)이라는 근이 붙어 있다. 따라서 근에 병이 생기는 원인 또한 경맥의 문제가 일차적이다. 경맥의 흐름이 정체되거나 너무 과도해지면 경맥에 붙어있는 근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 경근들 가운데 중심에 해당하는 근이 있다. 그건 종근(宗筋)이라고 불리는 근이다. 종근은 가슴으로부터 생식기까지의 근육을 의미한다. 흔히 식스팩이 만들어지는 그곳이 바로 종근의 활동영역이다. 종근은 관절을 움직이고 뼈가 형체를 유지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생식기는 이 종근이 모이는 곳이다. 남자들이 초콜릿복근에 열을 올리는 것이 신체적으로 보면 굉장한 성적 표현인 셈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근육병들
한국은 파스의 왕국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파스의 종류 또한 엄청나다. 얼마나 많은지 한번은 파스를 잘못 사서 화상을 입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근육통이 일반화된 질병이기도 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앓고 있는 병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근육에 생기는 병들은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먼저 걷지 않으면 근육에 병이 생긴다. 특히 무릎은 몸에 있는 근육들이 다 모이는 곳이다. 이곳을 써야 근육이 건강해지는데 걷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물론 너무 오래 걸어도 문제다. 특히 근육을 상하게 하는 데는 육체를 과도하게 쓰는 것도 그 원인이 된다. “육체는 수고스럽고 마음은 편안한 사람은 질병이 흔히 근육에만 생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육체를 고생스럽게 하지도 않는데 왜 우리는 근육통을 앓는 것일까. 그것이 왜 이토록 빈번한 것일까. 이유는 습열에 있다.
욱신욱신 근육통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근육병은 근계(筋瘈), 전근(轉勤), 근위(筋痿)가 전부다. 의외로 근육병이 많지 않다. 근계(筋瘈)는 근육이 열에 의해서 쪼그라들면서 일으키는 경련을 의미한다. 과로로 인해서 열이 나면서 삭신이 쑤시고 아플 때 나타나는 증상이 근계다. 전근(轉勤)은 근육이 뒤틀리는 것을 말한다. 전근은 특히 “술과 고기를 많이 먹고 찬바람에 감촉되어 생긴다.” 술과 고기를 과도하게 섭취하고 길바닥에 널브러져서 자면 입이 돌아간다고들 하는데 그것이 전근의 일종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근위(筋痿)는 음위(陰痿)라고도 불린다. 발기불능이 그것이다. 이것은 “음란한 생각을 자주 하거나 성생활을 지나치게 했을 때” 생긴다. 문제는 역시 간기(肝氣)에 열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근이 엿가락처럼 늘어져 버린 탓이다. 다리에 맥이 풀려서 잘 걷지도 못하는 것도 이 근위의 일종이다.
처방은 간단하다. 이 병들의 공통점에 해당하는 열사(熱邪)를 제거하는 것이다. 또한 몸에 열이 나면서 생기는 습(濕)을 빼주는 것도 급선무에 해당한다. 간혹 근육통이 있을 때 몸을 써서 땀을 내고 나면 몸이 좀 풀리는 것 같은 이유도 이것이다. 또 다른 방법 한 가지. 근육이 땅겨서 펴지지 않을 때는 이런 방법도 있다.
외상을 당한 후 근육이 땅겨서 펴지 못하는 것을 치료하거나, 다른 병에서 근육이 오그라드는 경우에도 쓸 수 있다. 큰 대나무대롱을 1자 남짓하게 잘라서 양쪽에 구멍을 하나씩 뚫고 노끈을 꿰어 허리에 걸고 앉아서 발을 들고 주물러 주기를 오랫동안 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다. 어떤 사람이 말에서 떨어져 정강이가 부러져서 다리 근육이 오그라들어 걷지를 못하였다. 그때 한 도인(道人)을 만났는데, 이 방법을 가르쳐 주어 며칠 하였더니 곧 평상시처럼 나았다.
─『동의보감』, 「외형편·근(筋)」, 법인문화사, 831쪽
뭔가 특별한 게 있을 거 같지만 특별한 게 없다. 그냥 대나무를 구해서 허리에 차고 발을 주물러주기만 하면 된다. 참 쉽다.^^ 물론 이런 것들로 쉽사리 낫지 않을 때는 약을 써야 한다. 약을 쓸 형편이 되지 않을 때라면 혈자리에서 곡천(曲泉)혈이 즉효를 발휘한다.
구부러진 샘, 곡천(曲泉)
곡천(曲泉)은 무릎에 있다. 무릎은 걸을 때마다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는데 이곳에 있기에 곡(曲)이라는 글자를 썼다. 샘물을 뜻하는 천(泉)을 쓴 이유는 이곳이 몸의 모든 근육에 물을 대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무릎은 몸의 모든 힘줄이 모이는 곳이다. 곡천은 족궐음간경의 합수혈(合水穴)에 해당하는데 이곳을 자극해주면 물의 기운을 발동시켜준다.
이름대로 곡천은 물과 관련된 혈자리다. 그래서 몸에선 수액대사에도 효과적인 혈로 알려져 있다. 소변이 나오지 않거나 소변보기가 힘들 때도 곡천이 유용하게 사용된다. 또한 소변을 따라 흘러나오는 정액의 유출을 방지하기도 하는데 이게 다 종근(宗筋)을 관리하는 간(肝)과 연결되어 있다. 여자들의 월경장애에도 많이 쓰이는데 이러한 병증들의 공통점은 화열(火熱)이 쌓여서 생긴다는 것에 있다. 곡천은 이 화열을 끄는 샘(泉)이다.
뿐만 아니라 곡천은 생식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염증들을 치료한다. 고환염이나 요도염은 물론 전립선염, 음경통과 같은 열증을 잡아준다. 그럼 곡천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일까. “무릎을 굽혔을 때 무릎 안쪽 가로무늬 위쪽 끝 움푹 파이는 곳”이 곡천이다. 곡천을 찾기가 어려우면 무릎이 접히는 부분을 계속해서 마사지해줘도 효과적이다. 특히 몸에 열이 나면서 몸이 뻣뻣하게 굳을 때 이곳을 마사지해주면 몸이 좀 풀리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거다.
류시성(감이당 대중지성)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슬퍼요~
곡천을 끝으로 장장 2년여에 걸친 혈자리 서당의 대장정이 끝났습니다. 그동안 혈자리 서당을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좀 더 유익하고 재미있는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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