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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꽉 막힌 감정의 행간의 파악하려면? 간기(肝氣)를 조절하라! - 행간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4. 17.

행간, 걸으면서 사이 만들기



간울보이의 속풀이


“감정이 안 풀어지고 계속 되풀이돼요.”


최근 간기울결(肝氣鬱結)을 겪어 속이 상했던 남자(이하 간울보이)의 첫마디다. 


“의견이 안 맞아 화가 났는데 얘기를 하면 끝날 줄 알았어요. 근데 얘기를 하면 할수록 계속 쌓이기만 하는 거예요. 화가 났던 일이 자꾸 리플레이 되면서 얘기한 것들이 다시 쌓였어요. 상대방이 얘기하는 게 전부 다 고깝게 들리는 거예요.”


쌓인다, 되풀이된다는 말을 연신 늘어놓는 간울보이. 어렴풋이 간기울결이 어떤 증상인지 짐작이 간다.


희안하게 화가 안 풀리네~



“잠을 깊게 못 잤어요.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고, 잠을 자도 자꾸 뒤척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수업시간에 졸음이 오고 집중력도 떨어졌어요. 하루하루가 너무 피곤했어요.” 


감정이 울체되면 자꾸 그 생각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러다보니 잠을 자려고 누워도 잠은 오지 않는다. 애써 잠을 청해보지만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그러니 단잠을 못 자고 설핏 잘 수밖에. 밤이 이 모양인데 낮이라고 괜찮을까? 밤잠을 못 잤으니 낮에 졸음이 몰려오는 것은 당연지사. 말짱한 정신으로 활동해야 할 낮에 졸음으로 잠을 끊어서 보충하고 낮의 활동은 비몽사몽이 돼버린다. 그러다 다시 밤이 되면 자꾸 그 생각을 하고, 그러다 보니 잠을 못 자고…. 악순환의 연속이다. 


“살이 엄청 빠졌어요. 제 볼살은 웬만해서는 안 빠지는데 볼이 움푹 들어갔다니까요. 그때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피부도 거칠어지고 얼굴에 뭐가 나기도 했어요.”


이 말을 하고 있는 간울보이, 왠지 측은해 보인다. 감정의 울체가 몸의 울체로 단번에 나타난 걸 보니 간울보이를 이렇게 만든 간기울결, 만만한 놈은 아닌 게 확실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간울보이를 위한 혈자리. 이름하야 간기울결을 격파할 혈자리, ‘간울격파혈’ 되시겠다.



간기울결과 간주소설


의역학을 공부하면서 맨 처음 들었던 전문용어가 ‘간기울결(肝氣鬱結)’이었다. 그런데 이 용어가 낯설지 않았다. 정확한 뜻은 몰라도 그냥 뭔가 꽉 막혀서 정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는 감(感)이 왔다. 내가 입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어른들한테 무시로 들었던 것 같은 말, 일상에서 그냥 흘러 다니는 의학용어. 이것은 간기울결이 우리 몸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와 밀착되어 있는 병증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그렇다면 간기울결의 정확한 뜻, 짚고 넘어가자. 간기울결은 간기(肝氣)가 몰려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한다. 뭔가 꽉 막혀 있다는 건 감으로 때려 맞췄는데 그게 간에 몰려 있다는 거다. 흩어져야 할 간기가 흩어지지 않고 울결되어 병증을 일으킨 것. 이런 상태를 벗어난 것을 일컫는 말도 있다. 이것도 사자성어다. 간주소설(肝主疎泄)


(疏)는 막힌 것이 트여 소통된다는 것이고, 설(泄)은 발산한다는 뜻이다. 간주소설은 간이 기와 혈, 진액을 소통시키고 발산시켜 온몸에 잘 흐르도록 한다는 말이다. 이 기능은 간의 생리특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간은 그 자체는 음(陰)이다. 왜냐하면 간은 혈을 저장하는 장부이기 때문이다. 혈은 유형의 물질이니 음에 해당한다. 하지만 간의 작용은 양(陽)으로서 기를 소통시키는 동적 작용과 기를 상승시키는 승발작용을 한다. 이처럼 간은 기(氣)의 승강출입하는 운동을 하므로 온몸에 기를 고루 펴지게 하고, 혈액과 진액을 두루 운행되도록 추동한다. 따라서 간의 소설기능은 기의 승강출입 운동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간의 소설기능이 실조되는 것은 두 가지로 나뉜다. 간의 소설기능이 부족한 경우와 지나친 경우가 그것이다. 


응????? 간기를 조화롭게 하라고!!


먼저 간의 소설기능이 부족하면 간의 동적 작용과 승발작용이 장애를 받아, 기의 승강출입 운동이 잘 소통되지 못하거나 울결된다. 이것을 간실소설(肝失疎泄) 혹은 간기울결(肝氣鬱結)이라고 한다. 간이 소설기능을 잃어버려 간기가 소통되지 못하고 울결되는 것이다. 이때 간 경락이 지나가는 가슴과 옆구리·유방·하복부가 그득하면서 아프다. 


다음은 간의 소설기능이 지나친 경우인데, 이때는 기의 승발이 태과하고 하강이 불급해서 간기상역(肝氣上逆:간기가 위로 뻗침)과 간화상염(肝火上炎:간화가 위로 타오름)이 발생한다. 기가 상부에 몰려있으니 머리가 터질 듯이 아프고, 얼굴도 붉어지고, 눈도 충혈된다. 간경을 따라 흉협부가 창만하여 답답하고 화를 잘 낸다. 간화상염이 심하면 피를 토하거나 혼절하여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기의 승강출입 운동은 혈액의 운행과 진액의 산포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가 울체되면 혈액도 정체되면서 어혈이 형성되고, 진액도 정체되어 담(痰)이 된다. 때론 어혈과 담음이 서로 엉켜 덩어리가 생기기도 한다. 간울보이의 간기울결은 간의 소설기능이 부족한 경우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간울보이가 풀려고 했던 감정과 간의 소설기능은 어떤 관계일까? 이제 그 숙제를 풀어보자.



간울보이, 감정을 풀려면 간주소설부터


사람의 정신·의식·사유활동을 통틀어 신(神)이라고 한다. 신은 기쁨, 성냄, 근심, 생각, 슬픔, 놀람, 무서움 등의 감정으로 드러나는데 오장 중 심장이 이를 관장한다. 헌데 간의 소설기능도 신의 작용과 관련이 깊다. 왜냐하면 사람의 정상적인 생리활동은 기혈의 정상적인 운행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간의 소설기능이 정상적으로 운용되면 기기(氣機:기의 승강출입 운동)가 고루 펴지게 되고 혈액의 운행이 촉진되니 감정도 고루 펴지게 된다. 


감정의 변화는 먼저 기기의 소통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간의 소설기능이 잘되면 기기가 고루 펴지므로 감정적으로 자극이 와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기와 혈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므로 자극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헌데 간의 소설기능이 부족하면 간기가 울결되므로 감정도 울체되어 잘 풀어지지 않고 정체된다. 심정이 우울해지고 잘 슬퍼하며 근심한다. 또 간의 소설기능이 태과하면 간기(肝氣)와 간화(肝火)가 몸의 상부로 뻗쳐 마음이 조급해지고 화를 잘 내며 감정이 격동한다. 이러한 감정은 기의 활동뿐만 아니라 혈의 영향도 받는다. 


간은 혈을 저장하는데, 혈(血)은 혼(魂)이 머무는 곳이다. (…) 피가 너무 많으면 성을 내고, 부족하면 무서워한다.

─ 『동의보감』, 「내경편」, ‘간’(肝) 법인문화사, 396쪽


간은 혈을 저장하고 그 혈에는 감정이 깃들어 있다. 혈이 너무 많으면, 혈이 넘쳐 입과 코로 나오고, 혈에 깃든 감정도 넘쳐 위로 올라오니 성을 내게 된다. 반대로 혈이 부족하면 혈의 운동성이 떨어지면서 차가워진다. 찬 기운을 받아 엉겨서 걸쭉해지는데 이것을 어혈(瘀血)이라고 한다. 어혈은 몸의 순환을 정체시켜 울결되게 만든다. 감정도 마찬가지로 머물러 꽁하게 된다. 이렇게 꽁한 감정은 외부의 자극이 오면 그것을 위협으로 느껴 마음이 불안해진다. 


감정이 울체되면 외부의 자극이 위협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간의 소설기능의 측면에서 기와 혈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알아보았다. 결국 간울보이가 감정을 풀려고 해도 자꾸 쌓였던 것은 간의 소설기능이 불급한 상태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간기가 울체되다보니 혈도 울체되고 감정도 울체되었다.


사람이 잠이 들면 피는 간으로 돌아가는데, 만일 피가 안정되지 못하여 잠을 자려 해도 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 때문에 놀란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잠을 자지 못하게 된다.


─『동의보감』, 「내경편」, ‘몽’(夢) 법인문화사, 332쪽


피가 안정되지 못하니 감정을 풀기는 고사하고 잠을 자려고 해도 잠도 오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면 간울보이의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간울보이의 근본적인 치료는 간기를 소설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어혈을 푸는 것은 그 다음. 그렇다면 간주소설이 태과한 경우는? 물론 이때도 기를 먼저 소통시킨 후, 간열을 내린다. 이렇게 간주소설의 태과와 불급, 이 두 가지를 만족시켜 주는 혈자리가 있다. 이제, 오늘의 혈자리 행간이 등장할 차례다.  



행간, 간기울결을 격파하다


행간의 ‘행(行)’은 가다, 걷다, 나아가다라는 뜻이다. 동적인 움직임을 나타내니 기(氣)와 관련이 깊다. ‘간(間)’은 사이라는 뜻이다.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있는 혈의 위치가 이름이 되었다. 근데 또 다른 뜻도 있다. 병이 낫는 것을 병간(病間)이라고 하는데 이를 일러 병이 나았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행간은 기가 막힌 것을 통하게 하여 병을 낫게 하는 혈이다. 그런데 행간은 족궐음간경의 형혈(滎穴)로서, 오행상 화(火)에 속한다. 앞에서 본 ‘간화상염’은 간에 화기가 충천한 상태인데 혈자리도 화의 혈이라면, 불났는데 기름을 붓는 격이 아닌가? 하하, 이럴 땐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몸에 불이 났는데 기름을 부을 수는 없지 않는가. 이럴 때는 사법(瀉法)을 쓴다. 화 기운을 덜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법을 쓰는지 궁금하실 거다. 여기서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와야 한다. 잘못하면 몸에 기름을 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먼저, 족궐음간경락의 흐름부터 알아야 한다. 족궐음간경은 엄지발가락에서부터 몸통으로 흐른다. 침을 놓을 때 이 방향으로 찌르면, 간경의 흐름에 따라 간기를 보태주니 보법(補法)을 쓴 것이다. 간기가 부족해서 생긴  ‘간기울결’에는 보법을 쓰면 된다.


반대로 침을 몸통에서 엄지발가락 쪽으로 찌르면, 간경의 흐름에 역방향이 되면서 울체된 간기를 쏟아내니 사법(瀉法)이 된다. 따라서 ‘간화상염’에는 행간에 사법을 써서 불기운을 쏟아내도록 해야 한다. 나의 경험상, 사법을 쓸 때는 몸의 상태를 잘 관찰한 다음, 신중하게 쓰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수족냉증이 있어서 사법을 썼는데 오히려 발이 더 차가워진 경험이 있다.)

사실 간울보이가 간기울결을 치료하기 위해 행간에 침을 맞은 것은 아니다. 근데 간울보이는 지금 간기울결에서 벗어났다. 간울보이는 어떻게 이 난국을 풀었을까? 


“얘기를 하면 할수록 자꾸 꼬였으니까 오히려 얘기를 안 하는 쪽을 선택했죠. 안 보고 안 부딪히고, 그렇게 시간을 갖다 보니 사건 자체에 거리 두기가 자연스럽게 이뤄졌어요. 그렇게 거리를 두니까 제가 화낸 것이 오버한 거라는 게 보였어요. 그 사건을 차근차근 설득해서 풀어낼 자신이 없으니까, 감정이 훅 올라오면서 공격하는 것으로 화를 낸 거죠.”


사건 자체에 대해 거리 두기를 하면서 감정 풀기를 한 간울보이. 간울보이의 속풀이를 오늘의 혈자리 행간으로 다시 풀어보면 이런 풀이도 가능하지 않을까? 행간은 발로 다니면서(行) 울체된 간기와 감정을 상대방에게 쏟아내는 게 아니라 내 몸에서 덜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나와 상대에게 일어난 사건의 ‘사이’(間)를 만들어내는 것. 걸으면서 사이 만들기! 그 이름도 아름다운 혈, 행간이다.



이영희(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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