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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과학/과학 톡톡

연금술은 미신인가? -연금술과 실험, 그리고 과학자들

by 북드라망 2013. 9. 10.

실험이란 무엇일까? ②


먼저 자기 자신을 실험하라


연금술은 사기다?


연금술로 평범한 금속을 금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옛날옛날 중국에 ‘판’이라는 젊고 부유한 학자가 있었다. 그는 평범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에 심취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금술사 ‘러’와 그의 아내가 판을 방문하게 되었다. 판은 러에게 자기 집에서 연금술 작업을 해 줄 것을 청했다.


작업을 위해 실험실에 들어선 러는 판에게 경고의 한마디를 날린다. “실험실은 말이죠, 순결해야 합니다. 실험실 주위에 불순한 물질이나 부도덕한 것이 있으면 금속의 변성에 치명적이랍니다.” 그러고는 판에게 우선 금속을 변성시키기 위한 원재료로 금과 은을 요구했다. 순진한 판은 상당량의 금과 은을 가져다줬다.

그렇게 20일쯤 작업이 이루어졌을까. 러는 갑자기 어머님이 위독해지셨다며,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러는 너무나 미안해하며, 이후 작업은 아내가 남아 가르쳐줄테니, 그대로 따라만 하면 된다고 했다.


실험실에 러의 아내와 단 둘만 남게 된 판. 판은 사실 러의 아내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판은 더 이상 자신의 마음을 숨길 수 없다는 듯, 러의 아내에게 고백을 하고는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자 러의 아내는 깜짝 놀라 판을 밀쳐내며 외친다. “실험실에서는 아주 작은 얼룩도 결과에 치명적인 결과를 준다구요. 그걸 지금 모르시는거에요?”

이때 판의 시종이 들어와 연금술사가 돌아오고 있다는 전갈을 알린다. 그리고 곧 들이닥친 러.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얼굴로 러는 실험을 하던 연금로를 열어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치는게 아닌가. “이게 어떻게 된거야? 금속들이 모두 엉망이 되어버렸어. 분명 뭔가 사악한 영향 때문에 이렇게 된거야!”


러는 분노에 찬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판은 찔리는 마음에 덜덜 떨고 있고, 러의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실험실을 뛰쳐나갔다. 결국 판은 용서를 구하는 대가로 러에게 1,000냥을 지불하게 되었다. 그렇게 러는 못쓰게 된 연금로만을 남긴 채, 아내와 함께 돈을 가지고 홀연히 떠나버렸다는….

이것은 풍몽룡(1574~1646)이 전하는 연금술 이야기다. 우리로서는 판의 모습에 어리둥절해질 뿐이다. 어떻게 그런 걸 믿을 수 있지? 일반 금속이 금으로 바뀐다니. 더욱이 실험이 실험자에 의해 ‘부정을 탄다’는 식의 이야기에 어떻게 속을 수 있지?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어느 꽃뱀 부부에게 사기당한 순박한 청년의 이야기쯤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연금술은 그저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 하나의 사기만은 아니다.



비과학적 신비주의로서 연금술


많은 과학사가들에게 연금술은 과학이 아니다. 그건 분명 사기에 가까운 미신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사가들이 연금술을 몽창 무시하는 건 아니다. 연금술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금만들기를 비롯해, 향료나 약제를 만드는 작업 또한 포함한다. 과학은 이런 연금술의 작업, 즉 온갖 물질들을 용해해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던 그 실험의 과정을 화학의 전신으로 본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연금술이 ‘실험을 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연금술은 과학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 과학계에서 연금술에 대해 특히나 치를 떠는 부분은 그것에 담긴 신비주의다. 판의 이야기에서처럼, 실험자에 의해 실험이 부정을 탄다는 식의 이야기를 과학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판 이야기가 보여주듯, 연금술사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실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금술사들에게는 윤리적인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서구에서나 동양에서나 연금술사들은 연금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오로라 콘주르겐스』의 저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연금술사들은 건강하고, 겸허하며, 경건하고 순결하고 덕이 있으며, 신뢰성도 지니고, 희망에 차 있고, 자비로우며, 선하고, 인내심이 있어, 삼갈 줄도 알고 이해심도 깊으면서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게버는 자신의 저서 『완전성의 총체』에서 한 장을 할애하여 <연금술사 정신 일부에서 유래하는 장애들에> 관해서 서술해 두었다. 페트루스 보누스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연금술 집단에 들어오기 전에 자신들의 마음과 정신을 먼저 들여다볼 것을 충고하고 있다. 그들이 도덕적인 자질을 갖추지 않은 이상, 그들은 반드시 실패하게 되어 있다고.


─앨리슨 쿠더트, 박진희 역, 『연금술 이야기』, 민음사, 129쪽


Joseph Leopold Ratinckx, , 1937



연금술에 있어서 연금술사는 실험의 한 요소다. 그래서 연금술사는 실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를테면 금을 얻는 과정들은 연금술사의 순결의 정도와 같이 간다. 연금술사의 인격이 순결하지 못하면, 가장 순결한 금속인 금을 얻을 수 없다. 그렇기에 금을 얻으려는 연금술사는 우선 자기를 순결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요컨대, 자기 수행이 먼저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은 연금술사들의 신비적 책들과도 관련된다. 연금술 책에는 금속을 정련하는 과정이 우리로서는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쓰여 있다. 하지만 연금술사들이 실험을 하면서 자기 수행을 하는 정도에 따라 차츰차츰 그 책 속의 말을 이해하게 된다. 책을 이해하는 정도는 연금술사 자신의 수행의 정도를 나타낸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연금술이야말로 신비주의의 극단처럼 보인다. 실험을 위해서는 먼저 실험자의 자기 수행이 있어야 한다니…이야말로 비과학적인 모습이 아닌가라고.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가 만날 얘기는 그 비과학적 연금술의 모습이야말로 과학 발전의 결정적인 열쇠가 된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현대의 연금술사, 메클린톡


바바라 메클린톡은 1983년 여성 단독으로는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생물학자다. 그녀는 옥수수 전문가로, 옥수수 유전자에서 벌어지는 일을 귀신같이 알아채는 능력을 가졌다. 이런 그녀에게 잊지 못한 특별한 경험 하나가 있었다.

1940년대 중반 스탠퍼드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스탠퍼드 연구소는 ‘뉴로스포라’라는 곰팡이와 씨름 중이었다. 수개월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연구소는 그 놈의 생식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연구소는 결국 메클린톡에게 도움을 청한다.

바바라 메클린톡(Barbara McClintock), 1902~1992

옥수수 전문가인 메클린톡에게 곰팡이 연구는 하나의 도전이었다. 그녀는 실험실에서 꼬박 사흘을 지냈지만, 조금의 성과도 내올 수 없었다. 그녀는 완전히 낙담했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른 듯했다. 그녀는 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는 그 문제를 해결해 볼 요량으로 산책을 나섰다. 유칼리나무가 쭈욱 늘어서 있던 길. 그 길가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긴 메클린톡. 그리고 ‘유레카!’ 그녀는 벌떡 일어나 실험실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마주한 현미경. 그 속에는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마치 곰팡이들이 태도를 바꿔 메클린톡에게 호의적으로 대하기로 마음먹은 듯, 그 놈들의 생식과정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메클린톡은 그렇게 일사천리로 연구를 진행했고, 일주일만에 그 곰팡이들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할 수 있었다. 이 연구를 부탁했던 조지 비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녀[메클린톡]는 무엇보다도 ‘유칼리 나무 아래서 벌어졌던 그 일’이 곧 문제의 해법을 얻는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믿고 있었다. 자기 내부의 큰 변화, 바로 그것 때문에 한결 명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올바른 방향을 새로 설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도대체 어떻게 자기가 그렇게 일사천리로 모든 일을 꿰뚫어 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이블린 폭스 켈러, 김재희 역, 『생명의 느낌』, 양문, 201쪽


‘자기 내부의 큰 변화’가 곰팡이들에 대한 실험에 결정적이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그 때의 사건에 대해 메클린톡이 직접 하는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자.


“이런 일은 그래요. 죽을힘을 다해 매달려도 문제 자체가 납득되지 않는 경우에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풀어야 해요. 그러면 저절로 답이 보여요. 그러면 문제가 언제 풀리는지도 알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뭘까요. 우리가 어떤 난관에 봉착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이 문제인지, 왜 지금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지 알아내는 거에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성찰해야 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들 하지 않지요. 글쎄요, 그때 나 자신에 대해서 어떤 질문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네요. 한 가지 확실한 건 실험실을 벗어나 밖으로 좀 나가 보자는 거였어요. 한참을 걷다가 유칼리나무 아래로 갔지요. 그리고는 내가 무엇 때문에 문제를 풀지 못하는지 먼저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어요.”


─위의 책, 201~202쪽


메클린톡이 실험에서 보여준 놀라운 능력의 비법, 그것은 ‘자기 성찰’이다. 이야말로 연금술이 말하는 실험자의 변화가 실험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말 아닌가. 그렇다면 메클린톡이야말로 현대의 연금술사라 말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대체 실험자의 변화가 실험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일까.


내장의 평화가 아니다, 내면의 평화(inner picce)! 물론 내면의 평화와 내장의 평화는 관계가 없진 않다;;;



먼저 자기 자신을 실험하라 


우리는 세상을 ‘그냥 막’ 경험하지 않는다. 일정한 지각의 구조 또는 사유 구조 속에서 세계를 만난다. 세계는 우리가 가진 사유구조를 통해 드러난 세계다. 아인슈타인은 이 말을 ‘이론이 관찰을 만든다’고 표현했다. 우리가 기존의 사유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 그 사유구조에 맞는 세계 밖에는 만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의 그 말은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된다. 그는 양자역학으로 나아가는 중 막다른 골목에 처하게 된다. 양자적 현상을 어떻게 원자 궤도로 설명해야 할지를 몰랐던 것.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당연시 여겨지는 원자 궤도는, 당시 하이젠베르크에게도 너무나 자명한 하나의 ‘사실’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자기 연구를 그 사실 속에서 해명해야 했지만, 도무지 그 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때, 하이젠베르크는 이론이 관찰을 만든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기존에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생각, 즉 원자의 궤도를 버린다. 그러자 그 때까지 원자 궤도의 모습으로 보이던 것이 다르게 보이면서, 문제의 해결 지점들이 보이는 것이었다. 하이젠베르크는 그것을 “새로운 여명이 펼쳐지는 느낌”이라고 회상했다. 그의 “오랫동안 닫혀 있었던 현관물의 열쇠”가 있던 곳, 그것은 자기 자신이 기존에 가졌던 사유를 버린 지점이었다. 



지난 연재글에서 자연은 우리의 질문에 따라 자신의 얼굴을 달리 보여준다고 말했었다. 그러나 어떻게 다른 질문을 던지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이제 우리는 하이젠베르크와 메클린톡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연금술사들이 말하던 바로 실험자 자신의 수행이었다.

메클린톡과 하이젠베르크는, 외부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 먼저 자기 자신을 돌아봤다. 요컨대, 자연에 질문을 던지기에 앞서 자기 자신에게 질문했다. 지금 내가 가진 사유구조가 어딘가에 고착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때문에 자연의 어떤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라고. 그들은 알았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 질문들을 던지지 않는 한, 그래서 자신이 먼저 바뀌지 않는 한, 실험의 성공은 요원한 것임을.


오늘날 과학에 대해 연금술이 가지는 의미는 단지 실험을 했다는 그 사실만에 있는 게 아니다. 과학자들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과하자들은 더 중요한 어떤 지점에서 연금술과 만나고 있으며, 그것은 과학의 강력한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것은 연금술사들이 실험에 가졌던 그 비과학적 마인드다. 실험은 실험자 자신과 함께 간다는, 그렇기에 세계에 대한 실험은 무엇보다 자기자신에 대한 실험이라는 그 마인드! 연금술사들의 이 마인드를 하이젠베르크의 말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자연과학에서도 탐구 대상은 더 이상 자연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 제기에 내맡겨진 자연이며, 이 점에서 인간은 여기서도 다시 자기 자신과 만나는 것이다.


─하이젠베르크, 이필렬역, 『현대물리학의 자연상』, 이론과 실천, 22쪽


그러니 이제 판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건 연금술이 미신이고 사기라는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판은 계속해서 연금술 작업에 실패했을 것이고, 그러면서도 금에 대한 욕심을 놓지 못했을 것이다. 이 때 등장한 게 러다. 판은 쉽게 금을 얻을 방법으로 러에게 연금술 작업을 부탁했다. 연금술적 맥락을 따져보면, 판은 자기 수행이라는 대가없이 쉽게 금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미신이 작동하는 지점은 여기다. 미신은 자지가 자기 자신과 만나지 않으려 할 때, 그래서 자기 문제를 누군가 대신해주기를 바랄 때 발생한다. 그러니 미신은 연금술 자체가 아니라, 판의 마음이라는 거. 그게 '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신근영(남산강학원 연구원)



생명의 느낌 - 10점
이블린 폭스 켈러 지음, 김재희 옮김/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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