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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

다산 VS 연암 -라이벌 책 추천!

by 북드라망 2013. 7. 16.

북드라망에 『다산과 연암 라이벌 평전 1탄,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가 있다면, 블로그에는 라이벌 책 추천이 있습니다. 하하;; 물론 워낙 유명한 두 사람인지라, 읽어보신 분들도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딘가에 계실 ‘응? 이런 책도 있었어?’라고 반기실 분들을 위해 준비해 보았습니다.



아버지의 편지 VS 아버지의 편지


네 형이 멀리서 왔으니 기쁘기는 하다만 며칠간 함께 지내면서 이야기를 주고받아 보니 옛날에 가르쳐 준 경전의 이론을 하나도 제대로 대답 못하고 우물우물하니 슬픈 일이로구나. 왜 이렇게 되었겠느냐? 어린 날에 화를 만나 혈기를 빼앗기고, 정신을 지키지 않아 놓아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때때로 점검하고 지난날 배운 것을 복습했더라면 어찌 오늘 이 지경에 이르렀겠느냐? 한스럽고 한스럽다. 네 형이 이러니 너야 오죽하겠느냐? … 너의 형이 왔을 때 시험 삼아 술 한잔을 마시게 했더니 취하지 않더구나. 그래서 동생인 너의 주량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너는 너의 형보다 배도 넘는다 하더구나. 어찌 글공부에는 그 아비의 버릇을 이을 줄 모르고 주량만 훨씬 아비를 넘어서는 거냐?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89~93쪽


오랜만에 인사드리러 갔는데 경전 테스트에 음주 테스트까지! 게다가 멀리 떨어져있는 아들에게 형의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하면서 “그런데 너는 주량이 더 세다며? 헐~”이라고 말씀하시는듯한 이 포스! 아들 입장에서는 편지가 썩 반갑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아버지 입장에서는 일가친척들이 유배 당하고 처벌받은 시점에서, 어떻게든 가문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아들에게 심어주고 싶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동안 다산의 편지는 거의 ‘국민 아빠’의 편지처럼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그러고보니 국민 할매, 국민 엄마, 국민 여동생…은 떠오르는데 국민 아빠 캐릭터는 잘 모르겠네요, 음음;;)


마치 이렇게 말하는듯 하네요. "아들, 복습은 안 하고 술만 늘고... 이러기야?"



그런데 또 한명의 아버지가 있습니다.


과거 볼 날짜가 점점 다가오는데 모름지기 과장(科場)을 사고 없이 잘 출입했으면 한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97쪽


너희 형제는 걱정되지 않고 늘 마음에 잊히지 않는 사람은 효수(孝壽)니 우습구나, 우스워. 넌 모름지기 수양을 잘해 마음이 넓고 뜻이 원대한 사람이 되고, 과거 공부나 하는 쩨쩨한 선비가 되지 말았으면 한다.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79쪽


첫번째 편지는 연암이 첫째 아들에게 보낸 것이고, 두번째 편지는 둘째 아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당시 과거 시험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바람에 인파에 밟혀서 다치는 일도 왕왕 있었다고 합니다. 시험 잘 보라는 말 한 마디도 쓸법한데, 아버지는 그저 몸 조심히 다녀오라는 말뿐입니다. 게다가 둘째 아들에게는 “과거 공부나 하는 쩨쩨한 선비가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이 편지! (그리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기록하게 되지요.) 두 아버지의 모습이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여러분은 어떤 편지에 더 끌리시는지요?



다산의 절친 형님 정약전 VS 연암의 절친 협객 백동수


다산의 절친하면 떠오르는 둘째 형님 정약전!


정약전, 그는 아우보다 늦게 출사했다. 다산과는 달리 “무성한 수염에 풍채가 좋”았다. 성격도 호방하고 털털한 인물이었다. 술을 즐기며 출세에 연연하지 않았고, 동생 약용의 고지식함을 나무라기도 했다. “내 아우는 도량이 좋은 것이 유일한 흠”이라며.


―고미숙,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67쪽


유배시기에 폭풍 집필활동을 했던 두 사람,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생활을 하면서  『자산어보』(『현산어보』라고도 합니다)를 집필했습니다. 정약전과 다산은 편지로 의견을 많이 나누었다고 합니다. 일부러 玆山(자산)이라고 불렀던 집안 사람이 바로 다산입니다.


현산(玆山)은 흑산(黑山)이다. 나는 흑산에 유배되어 있었다. 흑산이라는 이름은 어둡고 처량하여 매우 두려운 느낌을 주었으므로 집안 사람들은 편지를 쓸 때 항상 흑산을 현산이라 쓰곤 했다. 현(玆)은 흑(黑)과 같은 뜻이다. 


―정약전, 『현산어보』서문 중


그런데 약전 형님은 흑산도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기록했을까요? 『현산어보』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홍합'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어서 옮겨봅니다. 군더더기 없는 설명과 그 효능까지! 정말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_+


껍질의 앞쪽은 둥글고 뒤쪽은 뾰족하다. 큰 놈은 길이가 한 자 정도이고 폭은 그 반쯤 된다. 뾰족한 봉우리 밑에 털이 더부룩하게 나 있어 돌에 붙는데 수백 수천 마리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조수가 밀려오면 입을 열고 밀려가면 입을 다문다. 껍질 표면은 새까맣지만 안쪽은 검푸르고 매끄럽다. 살색이 붉은 것과 흰 것이 있다. 맛이 감미로워 국을 끓여도 좋고 젓을 담가도 좋다. 그러나 말린 것이 몸에 가장 이롭다. 콧수염을 뽑아서 피가 나는 경우에는 지혈시킬 약이 없다. 이때 홍합의 수염을 불로 태워 나온 재를 바르면 신통한 효험이 있다.


―『현산어보를 찾아서 1』, 270~271쪽


홍합에 이런 효능이! ^^



자, 이제 라이벌(!)로 넘어가 볼까요? 드라마로 유명해진 ‘무사 백동수’가 연암 박지원, 이덕무와 친했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백동수에게는 누이가 있었는데요, 이 누이가 '책만 보는 바보'로 유명한 이덕무에게 시집갔다는 사실! 그래서 백동수와 이덕무는 처남 매부 사이였습니다. 물론 이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친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박제가까지 의기투합하게 되지요.


어느 날, 백동수는 만취한 상태에서 박지원을 찾아가 술을 내놓으라고 했다. 연거푸 술잔을 비운 그는 가슴속에 쌓인 세상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 신세를 한탄하고 세상을 욕하다가 격정을 누르기 어려우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박지원이 어르고 달랬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의 과격한 말을 혹 남이 들을까 두려웠던 박지원은 술을 깨게 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자네 소행이 무례하니 볼기를 맞아야겠네."

박지원의 말에 백동수는 껄껄 웃으며 능청스럽게 엎드렸다. 박지원은 종이를 자르는 판자때기를 들어 백동수의 볼기를 열 대나 내리쳤다. 여태껏 누구에게도 맞은 적이 없었던 백동수는 벗이 볼기를 친다고 하자 기분좋게 응해주었다. 다음날 새벽, 술이 깬 백동수는 찬물 한 잔을 들이키고 어제 있었던 일을 곰곰 생각해보았다. 어제의 소동은 웃어넘길 장난이 아니라 깨달음을 주려고 벗이 내린 극약 처방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급히 의관을 차리고 박지원을 찾아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어 전날의 실수를 진심으로 사과했다.


―『조선의 협객 백동수』, 87~88쪽


당시 백동수의 나이는 스물 넷, 연암은 서른이었습니다. 친구의 술을 깨는 방법도 멋지고, 그 진심을 알아차린 친구도 멋지지 않습니까. ^^ 연암협에 가게 되는 것은 4년 후의 일이지요. 홍국영이 위세를 떨칠 때 백동수는 벗인 박지원이 걱정되어 달려옵니다. 그리고 함께 전국을 유람하게 되지요. 이때 개성에서 연암협을 만나 '연암'이라는 호를 짓게 되었다는 점~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를 읽은 분들은 아실 거예요. 하하;


이렇게 각자 떨어져있던 책들이, 따로 이야기되던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저는 이러한 인연을 발견할 때마다 신기하고 재미있습니다. 정약전과 연암은 만난 적이 없을까? 호방한 두 사람이 만났으면 어쩐지 잘 맞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다산과 백동수 역시 궐 안에서 마주치지 않았을까? 백동수가 정조의 신임을 받았으니 서로 마주칠 일이 없잖아 있었을 텐데~ 이런 상상을 혼자 하게 됩니다. 자, 여러분은 다산과 연암의 두 벗 중 누구를 먼저 만나보시렵니까?


드라마 <무사 백동수>를 보지는 않았지만, 승호군이 나왔다는 건 알고 있지요...(응?)


벗이란 ‘제2의 나’다. 그러므로 천 년 전의 옛사람을 벗한다거나 천 년 뒤의 지기를 기다린다거나 하는 말은 다 부질없다. 그런 말을 들으면 연암은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다. “아아! 귀와 눈과 손과 발은 나면서부터 한몸에 함께 붙어 있으니, 나에게는 이보다 더 가까운 것이 없다. 그런데도 이처럼 믿을 수 없는데, 누가 답답하게 천 년이나 앞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어리석게도 천 년이나 뒤 시대를 굼뜨게 기다릴 수 있겠는가?”

고로, 벗이란 반드시 ‘지금 이 세상’에서 구해야 한다. 만약 벗이 없다면 대체 누구와 더불어 보는 것을 함께 하며, 누구와 더불어 볼 것이며, 누구와 더불어 들을 것이며, 누구와 더불어 맛을 볼 것이며, 누구와 더불어 냄새를 맡을 것이며, 누구와 더불어 지혜와 깨달음을 같이할 것인가? 요컨대 우정이란 대의명분 혹은 목표의 공유 같은 것이 아니다. 천 년 전후를 오가며 자족하고 위로받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공감과 소통, 접속과 변용을 의미한다. 느낌(감각)과 깨달음(지혜)―이 둘은 모두 신체적 감응을 필요로 한다. 몸이 아니면 어떻게 느낄 것이며, 몸이 아니면 어떻게 깨달음이 가능할 것인가? 따라서 중요한 건 신체성과 현장성이다.


―고미숙, 『두개의 별 두개의 지도』, 55~56쪽


마케터 M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 10점
정약용 지음, 박석무 엮음/창비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 10점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돌베개
현산어보를 찾아서 1 - 10점
이태원 지음, 박선민 그림/청어람미디어
조선의 협객 백동수 - 10점
김영호 지음/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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