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트러블』 이후의 주디스 버틀러 ②
― 왜 어떤 삶은 다른 삶보다 더 위태로운가? : 주디스 버틀러의 ‘프레카리티’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직장을 잃을 수 있고,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이나 재난을 겪을 수도 있지요. 인간은 누구나 다치고 병들고 죽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누구나 취약한데, 왜 어떤 사람들은 훨씬 더 위태롭게 살아갈까요? 누군가는 아프면 일을 쉬고 치료를 받을 수 있지만, 누군가는 하루 일을 쉬는 순간 생계가 흔들립니다. 같은 재난이 닥쳐도 어떤 사람은 안전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그곳에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쟁은 모두에게 위험하지만 그 위험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버틀러는 바로 이 차이에 주목합니다. 후기 버틀러의 중요한 개념 가운데 ‘프레카리티(precarity)’가 있습니다. 조금 낯선 단어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먼저 ‘프레카리어스니스(precariousness)’와 구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하고, 먹을 것과 집, 의료와 사회적 관계 없이는 삶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래 다른 존재와 세계에 의존하는 취약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취약성을 버틀러는 ‘프레카리어스니스’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프레카리티’는 조금 다릅니다. 모든 사람이 취약하다는 사실과 별개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조건 때문에 특정한 사람들이 훨씬 더 큰 위험에 노출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위험은 공평하게 나누어지지 않는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많은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면 경쟁력이 부족해서, 가난하다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아서, 미래가 불안하다면 스스로 준비하지 않아서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삶의 불안정은 개인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됩니다.
하지만 버틀러는 질문을 돌려놓습니다. 정말 개인의 능력만의 문제일까? 어떤 사람들이 안정적인 주거와 의료, 노동조건에서 계속 밀려나고 있다면? 어떤 인구가 다른 인구보다 폭력과 빈곤, 상해와 죽음에 더 쉽게 노출되도록 사회가 구성되어 있다면? 그것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정치의 문제가 됩니다.
『주디스 버틀러의 세계』에서는 후기 버틀러가 신자유주의 시대의 권력을 바라보는 방식에 주목합니다. 국가는 반드시 사람을 직접 억압하고 죽이는 방식으로만 폭력을 행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보호하지 않는 것.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것.
어떤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불안정한 상태에 놓아두는 것.
그것 역시 삶과 죽음을 나누는 권력의 작동일 수 있습니다.
누구의 삶은 지켜져야 하는가
그러면 프레카리티라는 어려운 말은 우리에게 꽤 단순하면서도 불편한 질문 하나를 남깁니다.
누구의 삶은 지켜지고, 누구의 삶은 방치되어도 된다고 우리는 생각하고 있는가?
버틀러에게 이것은 단지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질문이 아닙니다.
전쟁에서 죽어 가는 사람들, 인종차별에 노출된 사람들, 자신의 노동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사람들,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우리가 어떤 죽음에는 크게 슬퍼하면서 어떤 죽음에는 무심하다면,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여기서 버틀러의 초기와 후기가 다시 만납니다.
『젠더 트러블』에서 ‘누가 여성인가’를 결정하는 규범의 경계를 물었다면, 후기 버틀러는 훨씬 더 근본적인 경계를 묻습니다.
누가 인간으로 인정되는가.
누구의 삶이 ‘살 만한 삶’으로 여겨지는가.

그런데 여기까지 오면 또 하나의 문제가 남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른 정도의 프레카리티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세상이 저절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저항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서 후기 버틀러의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 '연대'가 등장합니다.
버틀러가 말하는 연대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연대와는 조금 다릅니다. 버틀러의 연대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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