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톡홀름 이야기

[스톡홀름 이야기] 꼰대가 되고 싶다.

by 북드라망 2026. 9. 22.

꼰대가 되고 싶다.

Yeonju(인문공간 세종)


스웨덴으로 이직한 지도 어느덧 8년 차다. 그런데도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과연 이 사회에 얼마나 적응했을까. 8년이 지났지만, 나는 여전히 공항에서 커리어 몰입형 자기계발서를 집어 든다. 이번 출장지는 미국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The Diary of a CEO. 스웨덴에서는 아마 서점 한가운데에 진열되기 어려운 책. 하지만 미국에서는 충분히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책이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미국은 여전히 일의 중요도가 높은 사회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이민자들이 있다. 출장에서 가까운 동료와 식사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유럽에서 이민 온 사람이다. 그에게 일은 단순한 생계 수단이 아니라,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입지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 자체였다. 이민자에게 일은 선택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 된다. 반면 스웨덴은 조금 다르다. 높은 세율이 상징하듯, 이미 사회가 일정 수준의 안전망을 제공하고 있고, 새로운 터전을 ‘개척’하는 문화가 주류는 아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일이 삶의 중심이 되기보다는,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자리 잡는다. 나 역시 그 가치를 이해한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내 것이 되지는 않았다.



얼마 전, 매니저가 남은 휴가를 모두 쓰라고 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물었다. “그럼 중요한 회의들은 어떡하죠?” 그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그 회의들도 다 미루면 되죠.”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삶에서 일이 전부가 아니라 일부라면, 그게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걸 실행하려고 하면 다른 문제가 생긴다. 여러 사람에게 “ 제가 놀아야해서 일정을 미루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 그 짧은 문장 안에 작은 망설임과, 약간의 불편함이 들어간다. 나는 “삶과 일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균형을 위해 다른 사람의 일정을 움직이는 데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다. 이해는 했지만, 아직 몸에 배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꽤 유연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편협하거나 꽉 막힌 사람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런데 돌아보면, 나는 꽤 선택적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받아들이기 쉬운 것만 받아들이고, 불편한 부분은 여전히 내가 선택한 방식이 아니라, 그저 내게 주어진 기존의  식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의 변화 속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느리다.

출장 중에 읽던 책의 한 챕터에서 ‘변화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Michael Simmons의 말을 인용하며, 지금 40세가 60세에 겪게 될 변화는 지금보다 4배 빠르고, 지금의 10세에게는 1년의 변화가 단 11일이면 충분해진다고 한다. 세상이 1년을 11일로 압축한다. 이건, 꽤 무서운 말이다. 나는 8년 동안도 완전히 바뀌지 못했는데, 세상은 점점 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요즘 업무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워크샵에서 팀플로 진행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을 제대로 내지 못했다. 원래라면 3~4번의 미팅이 필요했다. 대신 나는 혼자 ChatGPT를 활용했다. 결과는 빠르게 나왔다. 너무 빠르게. 여러 사람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할 과정이 혼자서, 짧은 시간 안에 정리되어 버렸다. 어느 시점이 지나자 주고 받는 대화의 속도는 내가 따라잡기 힘들 정도였다. 이건 일의 방식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체중 감량조차도 이제는 약을 통해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시대다. 과거에는  간이 필요했던 변화들이 점점 압축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유연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마음의 유연성, 입장의 유연성, 그리고 방향을 잃지 않는 탄력성.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아직, 나만의 기준이 없다. 그래서 선택을 자꾸 외부로 넘긴다. 오늘 저녁 무엇을 먹을지조차 내 취향이 아니라, Instagram에서 찾은 추천에 맡겨버린다. 빠르고, 효율적이고, 틀릴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나는 점점 선택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 편도인 인생에서, 선택마저 외부에 맡긴다면 나는 결국 매년이 11일로 압축되는 속도 속에서 그저 흘러가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조금 더 ‘꼰대’가 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내 취향을 가지고, 내 기준으로 선택하는 사람.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를 스스로 받아들이는 사람. 많은 선택과, 그에 따른 실패를 감수하면서도 그 과정을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사람.

스웨덴 사람들을 보면,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려 한다. 외주를 주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직접 시행착오를 겪는다. 물론 높은 인건비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그들의 태도다. 왜 이걸 스스로 해야 하는지, 왜 이 방식이 맞는지에 대한 선명한 입장이 있다. 문득, 『오베라는 남자』에 나오는 스웨덴 사람들의 그 꼿꼿함이 떠오른다. 쉽게 타협하지 않고, 자기 기준을 끝까지 지키는 태도.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한다. 입장이 있고 난 뒤에 challenge를 받아 바꾸는 것과, 입장이 없는 상태에서 외부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리고 때로는 남의 입장을 내 입장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이런 상태에서 무서운 속도의 변화는 나를 더 빠르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나를 지워버 지도 모른다. 세상이 아무리 빨라지더라도, 나는 내 기준으로 선택하고, 그 선택의 결과까지 살아내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래서, 나는 꼰대가 되고 싶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