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500m로 이동한 교회
Yeonju(인문공간 세종)
특파원 글감도 찾고 스웨덴어 공부도 할 겸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1년에 두 번 들어가면, 내가 몰아서 볼 수 있도록.엄마가 6개월치 신문 중 흥미로운 기사들만 따로 모아두신다.
신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걸 내가 참 좋아했구나—요즘 스웨덴에서도 신문을 읽으며 그걸 새삼 느낀다.
사람 사는 게 어디서나 비슷하구나 싶다가도, 가끔 ‘헉’ 하는 기사를 만나기도 한다.
10월 초,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기사 하나를 읽었다.
교회가 이동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에 등장한 도시는 북극권에서 약 145km 떨어진 스웨덴의 북부 도시, 키루나(Kiruna)였다.
광산 채굴로 지반이 약해지면서 도시 전체가 조금씩 북쪽으로 옮겨지고 있다고 했다.
집과 학교, 병원뿐 아니라, 1912년에 지어진 키루나의 교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높이 35미터, 폭 40미터의 거대한 교회 건물은 시속 0.5km로 이틀에 걸쳐 북쪽으로 5km를 이동했다.
가장 어려운 일은 폭 24미터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었고, 그 길 위에 있던 가로등, 신호등, 다리까지 모두 철거해야 했다.
이 교회는 1950년대 이전에 지어진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꼽힌 적이 있다고 한다.
도시의 다른 대부분의 건물들은 해체되었지만, 이 교회만은 사람들의 손으로 ‘그대로’ 옮겨졌다.
기사에는 교회 이동 경로를 보여주는 지도가 함께 실려 있었다.
(구 시청 근처에서 출발해 광산 지역을 피해 동쪽으로 5km 이동)


그 기사를 읽는데, 문득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추석이나 설마다 늘 가던 경북 영주의 할아버지 댁.
매년 조금씩, 조금씩 풍경이 달라지더니 어느 해였던가—댐이 생겼다.
그해 이후로는 그 마을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한 물만이 그 자리를 덮고 있었다.
스웨덴의 그 교회는 오래된 역사를 지켜내기 위해, 사람들의 정성과 자부심으로 ‘들어 옮겨진’ 건물이었다.
허물고 새로 짓는 일에만 익숙했던 내게 그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매일 지나치는, 3년째 공사가 끝나지 않은 지하철역 근처의 현수막 한 줄.
당국에서 내건 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가끔은 계획대로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 문장이 유난히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람도, 도시도, 신문 속 이야기들도—모두 완성되어 가는 중일 뿐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지키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갈 때는 서두르지 않는 편이 좋았다.
달리지 않고, 속도내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 느린 걸음 안에서야 비로소 오래 남는 것이 생겼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내가 만든 것 중에서,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정말 소중히 지키고 싶은 건 얼마나 될까.
'스톡홀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톡홀름 이야기] 무지개 무한대가 가르쳐준 것 (0) | 2026.07.02 |
|---|---|
| [스톡홀름 이야기] 스웨덴에서 집 구하기 (0) | 2026.06.23 |
| [스톡홀름 이야기] 구스타브 3세(Gusatav III)의 극장에서 피가로를 만나다 (0) | 2026.05.26 |
| [스톡홀름 이야기] 맛없는 점심식당 (0) | 2026.04.28 |
| [스톡홀름 이야기] Yårslöfte (새해약속) – 通 (0) | 2026.03.13 |
| [스톡홀름 이야기] 노란 소책자 (0) | 2026.02.2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