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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 이야기

[스톡홀름 이야기] 사람들은 릭스다그를 지나친다

by 북드라망 2026. 10. 28.

사람들은 릭스다그를 지나친다

Yeonju(인문공간 세종)

 

스톡홀름 여행자들은 대부분 같은 방향으로 걷는다. 올드타운이라고 불리는 감라스탄으로, 근위병 교대식이 있는 왕궁으로, 그리고 노벨상 연회가 열리는 시청으로.

 


그 길 사이에 스웨덴 국회의사당이 있다. 정확히는 헬게안스홀멘(Helgeandsholmen)이라는 작은 섬 위. 건물은 결코 소박하지 않다.  외관은 충분히 웅장하고, 물가에 걸쳐 서 있는 모습도 꽤 인상적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그 건물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바로 옆에 왕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대부분의 관광객에게 “Riksdag”라는 단어가 너무 낯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처음 스톡홀름에 왔을 때는 그랬다. 몇 번이고 그 앞을 지나쳤지만, 그 건물 안에서 스웨덴 정치가 실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걸 의식한 적은 거의 없었다.

 

스웨덴은 남북으로 아주 긴 나라다. 최남단 말뫼(Malmö)에서 최북단 키루나(Kiruna)까지 기차로는 거의 24시간이 걸리고, 비행기로도 두 시간 가까이 걸린다. 인구는 약 1,050만 명 정도. 한국보다 훨씬 적지만 국회의원은 349명이다. 인구 대비로 보면 꽤 많은 숫자다.  스웨덴은 왕이 있는 나라지만 실제 정치는 의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입헌군주제 국가다. 그리고 그 의회의 이름이 바로 “릭스다그(Riksdag)”다. 런던의 국회의사당처럼 관광 엽서의 중심에 있지도 않고, 베를린 국회의사당처럼 거대한 유리 돔으로 상징성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미국 국회의사당처럼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공간도 아니다. 하지만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방향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이 건물 안에서 결정된다.

 

 

(완전히 100% 인문세에 글을 쓰기 위해) 나는 스웨덴 국회의사당 1시간 영어 투어를 신청했다. 전 세계에서 온 28명의 사람들은 작은 공항보다도 더 소박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 뒤, 외투와 가방을 맡길 수 있는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물병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사진 촬영은 가능했고 동영상도 가능했지만, 라이브 스트리밍은 금지였다. 다들 잠깐씩 거울을 보고, 목도리를 정리하고, 휴대폰을 다시 챙겼다. 국회의사당에 들어가기 직전이라기보다는 어딘가 단체 견학을 온 분위기에 가까웠다. 정비를 마친 뒤 우리는 14명씩 양쪽 엘리베이터에 나눠 탔다. 그리고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공무원 율리아(Julia)의 안내를 받아 7층으로 올라갔다. 7층에서는 정부 건물과 총리 관저가 내려다보였다. 나는 당연히 그냥 오래된 건물들이겠거니 했는데, 율리아는 아주 담담하게 “저기가 정부청사예요”라고 설명했다.

일단 가장 흥미로웠던 건 선거 이야기였다. 스웨덴 총선은 4년에 한 번, 9월 둘째 주 일요일에 열린다고 했다. 전자투표가 아니라 종이 투표다. 한국에서는 선거날이 되면 하루 전체가 약간 이벤트처럼 느껴진다. 공휴일이 되고, 사람들은 아침 일찍 투표를 하고 어디론가 놀러 가기도 한다. 뉴스에서는 계속 투표율을 보여주고, 출구조사 자막이 떠다닌다. 그런데 스웨덴의 선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여기서는 선거가 이벤트라기보다 그냥 계속 이어지는 사이클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투표용지는 다음 선거 결과가 나올 때까지 보관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이상하게도 나는 ‘신뢰’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스웨덴은 우리나라 보다 훨씬 빨리 버스 정보 시스템의 API를 공개 해서, 누구나 필요한 앱을 개발할 수 있게 할만큼 digital화가 앞선 곳임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만은 아날로그를 택했다. 


국회의원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피커(Speaker)”라고 불리는 의장을 선출하는 것이다. 의장은 정치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없고, 국회의 규칙과 절차를 관리한다.

입법, 예산 결정, EU 법안 처리, 정부 견제, 외교정책 같은 일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를 조율하는 역할이다. 율리아는 의장을 설명하면서 계속 “how”라는 표현을 썼다.

무엇을 결정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결정할지를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뜻 같았다.  그리고 의장이 하는 주요 결정 중 하나는 여러 후보들 중에 총리를 결정하고, 총리를 Support하는 게 아니라 Tolerate 할 수 있는 총리를 선정한다고 했다. 총리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기보다, 함께 일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 표현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이런 중요한 How와 관련된 일을 리딩하는 의장 선출만은 비밀투표라고 했다. 다른 모든 투표는 이름을 공개한다고 한다. 표는 예상했던 것 처럼 종이로 진행되고, 의원 중 가장 연장자가 개표를 하며 이름을 읽어나간다고 한다. 개표에는 약 45분 정도가 걸린다. 흥미로운 건 투표함 이름이었다. 율리아는 그걸 “urn”이라고 불렀다. 내가 아는 urn은 화장 후 유골을 담는 단어였다. 그런데 실제로 보여준 투표함도 정말 큰 도자기 항아리처럼 생겨 있었다. 둥글고 묵직해서, 어딘가 쿠키 단지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큰 도자기는 의회장 한 나즈막한 단상 한 구석을 차지 하고 있다. 

 


또 재미있었던 건 좌석 배치였다. 의원들은 정당별로 앉는 것이 아니라, 출신 지역 기준으로 자리가 배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 일면식이 없거나, 혹은 서로 아주 싫어하는 정적이라도 옆에 나란히 앉아서, 기명 투표를 실시한다고 한다. 이 규칙에 대해서는 일부는 노르웨이와 스웨덴만 갖고 있는 독특한 규칙으로 서로가 더 점잖게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규칙이라고 하며, 한 편에서는 시대착오적이라고 변화를 외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의장은 그 규칙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율리아는 웃으며 말했다.

이후 우리는 실제 투표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지나 동관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이전 의장들의 초상화와 총리들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었다. 흥미로웠던 건 모두가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그림을 남겼다는 점이다. 어떤 의장은 재임 중 회의장에서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규칙을 바꿨고, 그래서 그의 초상화에는 커피잔이 등장했다. 또 어떤 의장은 자신을 보좌했던 사람 세 명을 그림 뒤편에 함께 그려 넣었다. 한때는 왜 굳이 사진이 있는데 초상화를 남길까 싶었다. 그런데 그 그림들을 보고 있으니, 단순히 얼굴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남기는 방식처럼 느껴졌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그림을 하나 남긴다면, 거기엔 무엇을 넣고 싶을까. 아마 나는 작게라도 스웨덴 국기를 넣을 것 같다. “이 사람은 한때 여기에서 살았다”는 표시처럼.

 


국회의사당은 웅장했지만 과시적이지는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내가 아는 스웨덴 같았다. 조용하고, 성실하고, 투명하게. 그냥 그렇게 자기 할 일을 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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