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톡홀름 이야기

[스톡홀름 이야기] 구스타브 3세(Gusatav III)의 극장에서 피가로를 만나다

by 북드라망 2026. 5. 26.

구스타브 3세(Gusatav III)의 극장에서 피가로를 만나다


3년 전 처음 스톡홀름으로 이사 왔을 때, 누군가 오면 스톡홀름 관광을 멋지게 해 주려고 나는 스톡홀름 역사 투어를 신청했었다. 스페인 출신의 노련한 가이드는 투어에 참석한 관광객 한 명 한 명에게 유명한 왕이나 역사적 인물의 이름과 역할을 주면서, 해당 장소에 도착하면 그 사람을 가운데 세우고 관련된 역사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흥미롭고 새로운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내가 맡은 이름 ‘구스타브’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점차 궁금해졌다. 한참을 기다려 투어가 거의 끝나갈 즈음(여덟 명 중 일곱 번째 등장인물), 나는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내가 여기서 죽었구나’ 하며 아쉬워했고, 다른 참가자들이 ‘그래도 너는 다른 사람을 죽이진 않았잖아.’ 하며 농담했던 기억이 난다. 

그 왕이 바로 구스타브 3세(Gustav III)다. 유럽에서 역사적인 장소나 인물에 대해 들을 때, 나는 항상 ‘그때 한국은?’ 하고 비교하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 ‘최초의 노벨상은 1901년이었다.’ 하면 ‘당시 우리나라는 대한제국이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식이다. 구스타브 3세가 집권했던 18세 말은 정조대왕의 시기로, 두 사람은 왕권을 강화한 개혁 군주로서 공통적인 측면이 있지만, 정조대왕은 탕평책을 통한 균형으로 신하들을 통제하며 개혁을 실시했다면, 구스타브 3세는 급진적인 개혁으로 의회를 약화시키려다 자신이 만든 오페라하우스에서 귀족에게 암살당했다. 귀족들은 실제 암살 전에도 몇 차례 왕을 살해하려는 시도를 했었고, 왕은 암살 당일에도 위험 경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가면무도회였기에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며 왕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반대를 무릅쓰고 참석했다. 역사 투어 가이드의 ‘뇌피셜’에 따르면, 왕이 입장하자 사람들이 길을 열어 주고, 주변에 왕의 시종들이 서 있어서 왕이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스톡홀름 왕의 암살을 소재로 한 오페라가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다.

 




오페라하우스는 또 다른 구스타브, 구스타브 아돌프 광장(Gustav Adolfs torg)에 위치해 있다. 구스타브 2세(Gustav II) 아돌프는 유럽의 30년 전쟁에 개입하면서 핀란드 전체,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독일 북부 등으로 영토를 확장한 왕으로 ‘북부의 사자왕(The Lion of the North)’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구스타브 아돌프 광장의 구스타브 오페라하우스는 광개토대왕로에 위치한 세종문화회관 정도랄까. 

공연장 티켓에는 다양한 에티켓에 대한 설명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향수를 뿌리지 말 것이었다. 깜빡하고 출근할 때 향수를 뿌렸던 터라 퇴근 후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바쁘게 공연장으로 향했다. 3층은 귀족이 아닌 평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기에 화려한 1층 로비와 달리 허전할 정도로 단출했다. 하지만 공연 30분 전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단출했던 공간과 대비되는 화려한 내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거대한 샹들리에, 천장 가득한 벽화, 황금빛 장식.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무대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가 위치한 무대 아래의 낮은 공간인 오케스트라 피트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그날의 공연은 ‘피가로의 결혼’. 모차르트의 오페라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전혀 내용을 모른 채 공연장에 도착해 나는 회원에게 제공되는 프로그램을 읽어 보았다. 예상보다도 더 막장 드라마 같은 줄거리였다. 후반부에 피가로의 결혼을 반대하던 부부가 피가로가 자신의 아들인 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내가 네 엄마다!”, “내가 네 아빠다!”라고 노래하는 대목에서 객석이 모두 웃음 바다가 되었다. 120년 전에도 내가 앉아 있는 이 자리에서 누군가 같은 장면을 보며 웃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 시대에 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언제 어디서든 쉽게 이야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요즘이지만, 이렇게 공연장에 와서 에티켓을 지키며 오페라를 감상하는 경험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화려한 로비를 지나면서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저 멀리 왕궁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하우스를 한 번 더 돌아보며, 언젠가 꼭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를 이곳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밤 11시, 여전히 불빛이 반짝이는 스톡홀름의 거리를 걸으며 기차역으로 향했다. 그날 밤 길은 너무나 유럽 같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