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해러웨이』 지은이 김애령 선생님 인터뷰
1. 이 책은 “해러웨이 이후, 해러웨이를 따라” 그녀의 텍스트를 ‘읽고 쓰고 엮은’ 책이라고 하셨는데요. 왜 ‘해러웨이’일까요? 선생님께서 해러웨이의 어떤 면에 이끌리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해러웨이에 이끌렸던 이유는, 현실의 급박하고 위기적인 사안들이 지닌 혼탁함, 불투명성, 혼종성을 유연하게 들여다보는 시선에 있었습니다. 말끔한 개념으로 가를 수 없고 명료한 틀로 포착되지 않는, ‘위생적’으로 단번에 해결하고 싶지만 결코 그럴 수 없는, 당대의 ‘지저분한’ 문제들, 트러블들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그 시선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유머러스한 비유와 문체로 독자의 사유와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명랑한 사유를 전달하는 전달하는 글이 재미있었고, 그 글이 건네는 초대에 응해 그것이 건네주는 아이디어들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해러웨이 읽기와 쓰기는 내 사유에 어떤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해러웨이 ‘이후’, 서양철학 전통에서 출발하는 ‘경계지어진 개체주의’나 ‘인간예외주의’, ‘인간-주체-서구-남성-로고스…중심주의’가 얼마나 허황한 것인지, 그저 이해하는 것을 넘어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세계와 이야기, 의미와 가치, 시간, 삶과 죽음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감각으로 사유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개체주의와 인간예외주의에 대한 비판이 해러웨이의 독창적이고 새로운 주장이 아니지만, 생태적 관계를 말하면서도 전체론적 설명을 거부하고 근본주의적 강령에 거리를 두는 해러웨이의 논의에서 나는 더 강력한 설명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 난지도나 청계천 등 우리 생활환경에 있는 장소들이 철학적 ‘쓰기’에 등장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새롭고, 한편으로는 낯설기도 합니다. 난지도와 청계천을 ‘사유’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난지천 공원, 노을공원, 하늘공원은 서울에서 내가 좋아하는 산책 장소입니다. 거기서 자전거를 타고, 떨어진 살구 열매를 줍기도 하고, 억새축제 기간에도 그곳을 찾습니다. 다른 한편 1980년대에 난지도 매립지에서의 삶을 기록한 르포를 읽었던 기억도 또렷이 가지고 있습니다. 노을공원이나 하늘공원을 산책할 때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혹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그 ‘쓰레기 산’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밟고 있는 이 땅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궁금해하지요. 복원된 청계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흐르고 수생식물이 자라고 물고기가 살고 철새가 찾아오는 인공의 천변에서, 우리가 기억하거나 잊은 도시의 역사에 대해, 그리고 청계천의 생태를 구성하는 다양한 것들과 그 생태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힘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세계에서 살고 있는가? 이 세계는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난지도 공원이나 청계천은 ‘도시의 재자연화’의 상징으로, 생태복원의 대표적 사례로 이야기됩니다. 우리가 매일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그 도시, 그 역사를 알고 있는 공간,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벌어지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고 사유하는데, 해러웨이의 ‘자연문화’나 ‘퇴비’ 같은 개념이 훌륭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쓰기’는 중의적입니다. 그것은 글‘쓰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개념을 ‘사용’하기, 관점을 분석에 ‘적용’하기를 의미하는 ‘쓰기’이거든요. 나는 해러웨이의 개념적 렌즈들을 세계를 읽고 사유하는 데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식으로 사용해보고 싶었습니다.
3. 이 책에서도 ‘글쓰기-기계’나 ‘SF’에 대해 다루고 계시고, 해러웨이의 독특한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계신데요, 선생님께 글쓰기는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글쓰기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해러웨이의 글은, 텍스트 읽기가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을 넘어 나아가도록 이끄는, ‘일종의 모험’에 초대 받는 일이라는 점을 일깨워 줍니다. 글쓰기와 텍스트 사이, 텍스트와 읽기 사이에서, 늘 더 생생한 무언가가, 더 의미있는 확장이, 이해뿐 아니라 오해를 통해서도 발생합니다. 용감한 문체는 용감한 사유의 전략적 수단이고, 해러웨이 같은 작가는 전복적으로 그것을 시험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강렬한 상상력을 자극하지요. (책표지에 실린 그림 “환대-애프터 해러웨이”는 해러웨이가 ‘카밀 이야기’라는 SF로 쓴 건덴 그 초대에 이미지적 상상력으로 응답하려는 즐거운 시도이죠.) 그러나 나의 글쓰기는 훨씬 조심스럽습니다. 그저 사유를 명료하게 전달하고자 씁니다. 그럼에도 그 글쓰기는 늘 그 이하이고, 또 늘 그 이상입니다.
사실, 모든 글쓰기는 결국 ‘실뜨기(stringfigures)’이고, 또 그래야만 합니다. 가늘게 떨리는 실가닥을 건네고, 전체적인 그림도, 완성도 없이, 행위로 연결하는 작업, 실패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놀이, 흔들리는 ‘고양이 요람(cat’s cradle, 실뜨기 놀이)’이라고요. 건네받은 선물 같은 한 가닥의 실마리를, 멋진 다음의 실뜨기 형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쓰면’,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4. 선생님께서는 ‘우리에게는 더 나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해러웨이 이후에 더 나은 이야기를 만들고 지어가는 실천적 놀이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철학을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그런 이야기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가능할까요?
세계를 이해하고 살아가게 하는 힘은 이야기에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야기가 세계를 만들고, 변화시키고, 그 안에서 살아가게 하고, 또 죽게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이 세계를 움직이는 지배적인 이야기들이 있지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이 강고한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삶과 죽음을 가르고, 경계를 구축하고, 존재자들을 분류하고, 미래를 예견하고, 똑딱이는 시계의 시간을 잽니다. 지금의 세계를 지배하는 이야기들은,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발전주의, 인간예외주의, 이분법적 위계들로 짜여 있고, 그것으로 세계를 짓습니다. 별다른 성찰없이 되뇌는 “공짜 점심은 없다” 같은 말, 모든 것을 거래로 환원시키고, 경쟁이나 혐오을 자연화하는, 그 나쁜 신화를 바꾸고 거기서 벗어날 출구를 열기 위해 ‘다른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둘러보면 놀랍게도, 더 좋은 ‘다른 이야기’들은 언제나 이미 있었습니다. 이 좋은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퍼뜨리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참여이고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이나 식물을 돌보는 반려인, 도시 공원의 산책자, 매일 커피를 마시면서 일하고 인터넷 상거래로 장을 보는 생활인, 몸과 건강을 생각하고, 노화와 돌봄을 고민하고, 계절과 기후에 대해 염려하는 일상인인 우리 모두는 ‘더 나은 이야기’를 가질 자격을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를 통한 세계 짓기 실천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들은 세계의 구체적인 작은 한 조각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관심을 갖는 작은 구체성으로부터, 그것이 어떤 것들과 연결되어 있고, 그 관계 안에서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살피는 세심한 작업이 중요하다는 걸, 나는 해러웨이를 읽으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누구나 알아차릴 수 있는 일이고, 또 어쩌면 이미 하고 있는 일입니다.
5. 이 책으로 해러웨이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요, 그런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이 책을 쓰려고 결심했던 이유는, 해러웨이를 소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해러웨이를 소개하는 좋은 책들이 이미 출간되어 있는 마당에, 이 작업이 꼭 필요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해러웨이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를 그녀의 비유와 문체를 손상하지 않으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텍스트들에서 재미있는, 쓸만한,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적용할 수 있도록 나누어 보고 싶었습니다. 내가 읽은 것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그리고 풍부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이 해러웨이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친절한 개론서가 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재미있는 안내서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나는 ‘모범적인 독자’에 속하지 못합니다. 어떤 텍스트든 정확하게 독해하는데 약하고, 직관적으로 만나는 아이디어에 이끌려 헤매는 편이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해석을 구부러진 방향으로 끌고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또 명쾌하게 설명하기를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개론적 설명보다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초대장으로 받아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독자들이 부담없이 자유롭게 해러웨이와 그녀가 소개하는 ‘촉수사유’ 친구들의 텍스트를 직접 읽고 쓰는 작업으로 연결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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