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병원 인문학』 지은이 내과 전문의 이여민 선생님 인터뷰
1. 내과 전문의로 30년 이상 일해 오셨는데, 인문학을 만나 공부하시기 전과 후에 진료에서도 차이가 있다고 말씀하시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인문학 공부가 언뜻 전혀 무관해 보이는 내과진료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환자를 볼 때 ‘질병’에 초점을 맞추고 검사 결과를 통해 환자 치료에만 집중했던 시각이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며 점차 ‘사람’을 향한 관심으로 확장되고 결국엔 그 질환을 일으킨 환자 생활 전체를 보게 되었어요.
고미숙 선생님의 『위생의 시대』에서 위생 권력을 배우고, 왕양명의 『전습록』을 읽으며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저의 태도를 점검하게 되었습니다. 30년 동안 동네병원을 운영하는 저에게 환자들이 꾸준히 찾아와주다 보니, 자신을 '대방동 명의'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전습록』에는 의사로서의 지식을 쌓아 ‘명의’라는 상에 사로잡히면, 환자가 나와 같은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알지 못할 수 있으니 경계하라는 말이 있어요. 그리고 정신분석의 유효성을 입증한 정신과 의사 카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의 자서전(『카를 융, 기억 꿈 사상』)에는 ‘의사인 나’와 ‘환자인 너’가 다르다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의사가 체면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치료에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인문학 공부를 통해 배운 동서양의 지혜는 조금씩 제게 스며들어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게 했습니다. 질병을 해결하는 처방에만 집중했던 의사에서 더 나아가 환자의 일상을 자세히 질문하고 들어주는 의사로 말이지요.
그리고 매일 먹는 밥이 지금의 몸 상태를 만들 듯이 10년 동안 했던 인문학 공부가 병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생자 행성』을 읽으면서, 치료해야 할 병원균에만 집중했던 시야가 ‘공생’의 관점에서 미생물을 보도록 넓어집니다. 또 ‘위대한 건강’을 말한 니체를 통해 건강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얻게 됩니다. 건강은 규격화된 정상 수치로 환자를 되돌리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창출하는 것이라는 사유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문학 공부를 통해 질병을 보는 다양한 눈이 생긴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인문학 공부를 통해 얻은 다양한 견해들을 바탕으로, ‘아파도 잘 살 수 있는 지혜’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2. 30여 년 동안 환자들을 진찰해 오시면서, 이전의 환자들과 최근의 환자들이 주로 앓는 병에 변화가 있을까요? 아니면 병을 대하는 환자들의 태도에 변화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책에는 통풍에 걸린 젊은이와 대사증후군으로 고생하는 29세 조카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대사증후군의 유병률이 높아지면서, 저는 인슐린 저항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참고해 주세요. ^^
또한, 암 발병 연령이 낮아지고 있음을 현장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유방암, 대장암, 갑상선암과 같은 암이 20대 청년들에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암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트레스도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녁 시간에는 충분한 자야 잠을 자는 동안 면역 T세포가 매일 생기는 암세포를 청소합니다. 이런 점에서, 잠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수면 문제도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고령자들의 불면 호소가 주였다면, 이제는 20대 젊은이들도 수면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이 경우, 카페인의 과다 섭취를 줄이도록 권유합니다. 더불어, 정신과가 아닌 내과 진료에서도 공황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많아졌어요. 반면, 중년 이후 환자들은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고위험군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관련 치료에 적극적입니다. 그래서인지 과거보다 뇌졸중 환자를 만나기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그리고 병을 대하는 환자들의 태도도 변화가 있는데, 인터넷의 영향이 크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병원에 와서 의사에게 물어야만 알았던 질병에 대한 정보를 이제는 인터넷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요. 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을 인터넷에 검색해보고 저마다 예측한 병명을 가지고 내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병명이 맞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저는 다시 환자에게 꼼꼼히 증상을 물어보고 그 병명이 아닌 이유, 또는 맞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어려움은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는 것이죠. 선입견으로는 미리 알아 온 병명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거나 약의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지나치게 믿는 경우입니다. 그러다 보면 약을 먹기도 전에 부작용부터 염려하여 약을 먹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의사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하죠.
결국 현대 의사의 역할은 단순한 진료를 넘어, 변화하는 질병 양상을 이해하고 환자들의 잘못된 의학적 선입견을 바로잡아주는 안내자의 역할까지 포함하게 된 듯합니다.
3. ‘암’이나 ‘죽음’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라고 본문에서 말씀하시는데요, 보통 사람에게 쉽지 않은 일인 듯합니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있을까요?
두려움은 왜 생길까요? 저는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지의 상태로 인해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피할 수 없는데, 죽음은 직접 경험해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부처님이 된 고타마 싯다르타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왕자의 신분까지 버리고 출가를 결심했을까요?
저도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이를 떨쳐내는 방향을 권하는 것이랍니다. 죽음에 대해 숙고하면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해진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법구경』을 읽으면 16세 소녀가 죽음을 성찰함으로써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죽는다는 것을 미리 생각해본다면 후회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기 위한 의지와 감사의 마음을 키울 수 있습니다.
최근 89세에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가 그랬어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13년 동안 혼자 생활했습니다. 80세가 넘어서 “이렇게 오래 살 줄 몰랐다”라고 자주 말씀하셨던 어머니는, 본인이 죽기 전에 자식들에게 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셨다고 해요. 그러고는 다소 무뚝뚝한 성격이셨지만, 아침에 일어나시면 “사랑한다. 고맙다”라는 안부 카톡을 날마다 보내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심장 검사를 위해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복부 검사로 췌장암 말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나는 병원에 들어온 김에 그냥 가겠습니다. 연명치료는 필요 없어요”라고 의사 선생님에게 말씀하시고, 3주 동안 병원에서 호스피스 케어로 평화롭게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췌장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않았어요. 이제 죽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시고 죽음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문병 온 많은 사람에게 편안함과 웃음을 선사했어요. 면회를 온 손녀에게는 “연애를 많이 해라. 사람은 많이 만나 봐야 한다.”라고 유쾌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죽은 뒤에 흰빛을 따라가세요”라고 『티베트 사자의 서』에 수록된 방법을 말했더니, 어머니는 “내가 죽은 뒤에 전화해서 알려 줄게, 나도 다 안다”하고 농담하셨습니다. 계엄이 터진 날 입원하신 어머니는 병상에서도 신문을 보시고 뉴스를 들으며 “나는 죽지만 세상에는 드라마 같은 일이 계속 일어난다”라며 호기심도 잃지 않았어요.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화가가 그려준 어머니 얼굴 캐리커처를 며느리에게 주면서 “이 그림을 장례식장에 두고, 너희들은 울지 말고 모두 웃어라”라고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명랑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86세인 고모는 “언니를 보니, 죽는다는 것이 무서운 일이 아니고 편안한 일이네”라고 말했습니다. 돌아가시기 2달 전 송광사 템플 스테이에서는 스님께 "잘 죽는 것이 무엇인지" 여쭤보고 싶어 하셨다고 합니다. 제가 다시 여쭤보자 어머니는 웃으시며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지!"라고 답하셨습니다. 이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Well dying is well living!"
죽음이나 암이 두렵다면, 무엇이 두려운지 자신이 탐구해보는 것이 두려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연구하면서 현재에 집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두려움을 줄이는 데 정말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4.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그런 건강한 삶을 위해 가져야 할 생활 습관이나 마음가짐 등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건강할 때는 건강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건강한 상태입니다.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나를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이들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주는 세상에 감사하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아프다면, 그것을 현재의 생활 습관을 점검하라는 몸의 신호라고 받아들여 보면 어떨까요? 우선 병원에 가서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증상만 가지고 인터넷 정보를 통해 진단하거나 주위 사람에게 물어서 추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동네 의원의 주치의와 꾸준한 인연을 맺는 것도 건강 관리에 큰 도움이 됩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생활 습관은 적정량을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제시간에 충분히 자는 것입니다. 또 술과 담배를 줄이거나 끊는 것이 좋습니다. 이 다섯 가지는 매우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환자가 지키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매번 이 다섯 가지를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곤 해요.
또 건강한 삶을 위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걱정을 지나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환자를 많이 봅니다. 사람의 뇌는 부정적인 것을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고, 지나친 불안이나 걱정은 심신의 질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 가기 싫거나, 시험을 앞두고 걱정이 심하면 배가 아프거나 두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시험을 앞둔 환자에게는 결과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말고, 15분 정도의 산책 시간을 확보하고 12시쯤 잠자리에 들라고 조언해요. 잠을 자면 뇌의 해마 부위에 공부한 내용이 저장되어 장기 기억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합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서 오늘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 하나를 하겠다고 다짐하고, 잠들기 전에는 오늘 잘 살았다고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5. 끝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면 해주세요.
진료실과 인문학 공부를 넘나들며 질병의 아픔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저의 경험과 공부를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여러분도 병의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지기를 바랍니다.
또한, 가까운 동네 병원을 자주 방문하세요. 동네 병원 의사와 자신의 병력에 대해 공유하며 진료받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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