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석기 시대

[나의 석기 시대] 외모 지상주의의 기원

by 북드라망 2024. 12. 26.

외모 지상주의의 기원


1. 예뻐서도 줍는다
줍는 것은 본능이다. 인류는 채집을 하며 진화의 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주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 자기 손아귀에 쥘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것을 귀하게 보며 살았고,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채집을 생계에 맞춰서만 생각하다보니 이것이 다가 아니다 싶다. 왜냐하면 등산이나 산책을 하며, 해변에서 모래성을 쌓거나 헤엄을 치다가 그저 예뻐서 줍게 되는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인테리어에는 전혀 취미가 없는 나도 부엌이나 마루 책꽂이 위에 작고 이상한 물건들을 많이 두고 있다. 나는 왜 이상한 모양으로 부서진 조개껍데기라든가, 귀에 대면 바다 소리가 들리는 고둥이라든가, 착하게 생긴 돌멩이라든가에 끌리는가? 작고 쓸모없는 것을 향한 이 탐심을 어쩌면 좋아? 내 소유욕의 뿌리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특히 바닷가에서 무엇을 많이 줍곤 했다는데 생각이 미쳐, 서천에 있는 《국립해양생물자원관》(링크)을 찾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 아침 세종에서 서천으로 차를 몰았다. 전날 인류학 답사 밴드 ‘인문공간세종’의 모든 세미나가 끝났다. 나는 내일 해야 할 일이 없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무사 무욕한 마음으로 편안히 운전을 시작했다. 세종에서 서쪽으로 향할 때 만나게 되는 첫 번째 도시 공주를 지나자마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서쪽으로 멀리 무리를 지은 철새들이 고속도로에 가깝게 내려왔다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겨울인 것이다. 나는 학기가 끝났지만 저 새들은 긴 여행의 시작이다. 땅 위의 나와 하늘 위의 새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금요일 아침이라 고속도로에도 국도에도 차가 거의 없었다. 한 시간 반 정도 운전을 해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 도착했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별칭은 씨큐리움(See(바다) + Question(질문) + Rium(공간))이다. 씨큐리움 정면 사진을 찍기 위해서 입구를 멀리 보는 지점까지 나갔는데 거기서 다양한 바다 생물들을 얇은 나무로 표현한 제작물들을 볼 수 있었다. 무려 2016년 것이었다. 물고기들이 어우러져 파도가 되고 고래가 되고 …. 나무도 바닷속을 헤엄치고 싶다. 학생들의 협동 작품처럼 보였는데 비바람 다 맞으면서도 색이 별로 바래지 않았고, 나무의 결도 생생했다. 심해를 향한 나무의 꿈이 영원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평일 오전이라 관람객이 한 사람도 없으리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차들이 있었다. 들어갔더니 중장년의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관람을 하고 계셨다. 씨큐리움은 1전시실이 4층에 있어서 천천히 관람을 하며 내려와야 하는데 나중에 1증으로 다시 내려왔을 때는 사람이 더 많이 있었다. 전시 내내 나는 어른들의 재미있는 수다를 들었다. 다양한 바다 생물 박제품을 보시면서 저 동네 가야 먹을 수 있다, 이렇게 먹어야 맛있다 논쟁이 한창인 그룹도 있었고, 전시 설명 앞에서 한참을 연구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전시동은 창문을 다 가린 채 사방을 해양 생물 설명으로 푸르게 채워놓고 있었는데, 덕분에 물속에서 물고기나 해초가 수군거리는 것처럼 소음이 들려왔다. 

 

씨큐리움은 제1전시실부터 차례로 지구의 물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 바다는 또 어떻게 생기고 움직이는지, 최초의 생물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었다. 바다에 대해서도 해변의 다양한 생물들을 전부 아우르면서도 심해의 신비한 생태계와 미지의 바다 생물까지 다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 답사의 일차적 목표는 채집하는 인류 이해하기이므로, 나는 물과 뭍이 만나는 얕은 수면의 바다에 주목하면서 어르신들 사이를 둔한 물고기라도 된 듯 뒤뚱뒤뚱 비집고 다녔다. 
         


2. 바다의 탐미주의
씨큐리움에서 크게 세 가지 정도의 해변 상식을 깰 수 있었다. 첫째로 바다에는, 특히 해변에는 먹을 것이 참 다양하고 많다! 진짜다. 《전곡선사박물관》에서 소개하고 있었던 구석기 채집상에서도 다양한 구근류, 작은 열매들, 많은 벌레와 버섯들이 인상적이었는데 바다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거기는 더 다양한 먹거리가 있었다. 가장 채집이 쉬운 조개류만 보아도 대형 전시실 한쪽 면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종류가 많았다. 채집 생물로 조개를 겨우 떠올리고 있었던 나는 게도 종류가 엄청 많다는 점에 놀랐다. 어망같은 것, 작은 작살같은 것으로 잡을 만한 물고기들도 종류가 상당했다. 무엇보다 해조류의 종류가 엄청났다. 전시실에는 ‘바다의 푸른 숲’이라고 해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다양한 해조류를 잔뜩 소개하고 있었다. 씨큐리움은 각 물고기의 생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지만 나는 얼마나 쉽게 잡을 수 있는가? 잡을 만큼 예쁘게 생기냐에 관심이 갔다. 정말 많았다!! 

 

 


전시물 중에 ‘바다의 뷔페’가 있었다. 아주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나의 두 번째 상식이 깨어졌다. ② 전시를 통해 인간이 바다 숲의 주인이 아님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해초류는 바다 생물들이 알을 키우는 유치원이기도 하고 작은 물고기들의 마을이기도 한데, 여기는 또한 큰 물고기들의 식당이기도 했다. 특히 성게는 엽체가 두툼하고 넓은 해조류를 즐기는데 특히 미역이나 다시마에 환장을 하는 모양이었다. 딱 미역국과 김에 헐떡헐떡하는 나였다. 《전곡선사박물관》에서도 도토리같은 육지 열매 채집에 있어 인간 최고의 경쟁자가 다람쥐라는 점을 알았을 때 큰 좌절을 했었다. 그 번뜩이는 눈과 날랜 동작, 도처에 저장고를 위장해놓는 기술까지 도무지 게임이 될 수 없었다. 성게를 보니 바다 쪽 상황은 더 심각했다. 검고 뾰족한 이 욕심쟁이랑 어찌 붙을 수 있겠는가? 내가 덫을 놓아 다람쥐를 잡을 수도 있겠고, 송곳으로 쳐 성게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작 도토리나 미역을 눈앞에 두고 둘이 다툰다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성게도 나도 똑같이 미역을 즐긴다는 사실에서 묘한 동질감과 질투가 느껴진다.   


세 번째 상식파괴는, 상식이 완전히 파괴되는 문제는 아니었고 평소 생각이 좀 더 확장되는 데에 있었다. 바로 다양한 조개들의 무늬였다. 조개들은 그냥 예쁘지 않았고 엄청나게 다양한 모양과 무늬를 갖고 있었다. 동종의 조개류에서도 발견되는 다양한 무늬는 대단했다(특히 ‘개오지’류). 뿐만 아니라 조개류 자체가 종류가 많았다. 대왕조개, 진주조개, 국화조개, 쇠뿔조개 등. 어떻게 바다는 저토록 다양한 생김의 조개들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단 하나의 크기, 단 하나의 모양에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는 파도의 탐미주의에 기가 질렸다. 조개는 실로 먹기 위해서도 줍지만 아름다워서도 주울 만했다. 


나중에 세종에 있는 연구실로 돌아와 더 조사해보았더니, 기원전 16만 년 전에 조개는 화장품으로도 쓰였다고 한다. 인류 최초의 조개 섭식지로 주목받는 피너클 포인트의 해안 동굴에서는 작은 돌날과 붉은 적철석(hemetite) 조각, 조개껍데기가 발견되었다. 적철석은 짙은 회색이나 검은색을 띠는데 특정 물질과 함께 섞으면 붉은색이 나온다. 당시 피너클 포인트 사람들이 먹은 것은 주로 홍합이었는데, 적철석과 홍합 껍질을 섞으면 붉은 흙덩어리를 만들 수 있다. 인류학자들은 피너클 사람들이 뾰족한 돌날로 이 붉은 흙덩어리를 긁어 얼굴이나 몸에 바르며 각자의 신분을 나타냈을 것으로, 혹은 특정한 의례를 위해 구성원들 전부가 화장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매거진 F Clam》, 42쪽 참고).   


문득 많은 화가들이 조개의 아름다움에 주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으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1484~1486 제작)이 있다. 여기서 미의 여신 비너스는 흠 없이 아름다운 대왕 가리비 위에서 잔잔한 파도와 꽃바람을 우아하게 만끽한다. 해변을 걷던 보티첼리는 조개가 껍질 안에 탄생의 신비를, 생명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고 상상했을까? 살이 잔뜩 들어 있을 대왕 가리비를 보며 바다의 아름다움을 명상했다니, 식탐을 이기는 그의 미학이 놀랍다.  

 

여기서 하나 더 흥미로운 전시물을 소개하고 싶다. 씨큐리움에서는 특별전으로 〈신화와 현실 사이〉라고 해서 바다 괴물을 둘러싼 인류의 상상력을 소개하고 있었다. 전시 작품이 아주 많지는 않았는데, 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의 바다 괴물에 대한 신문기사와 영화 포스터였다. 제일 많이 거론되는 바다 생물은 두족류였다. 거대 오징어나 거대 문어 등 말이다. 씨큐리움 관람을 막 시작하게 되면 제1전시실 입구부터 조개들이 우르르 소개되는데 마지막 조개들 아래로 문어 한 마리가 전시되어 있다. 그 전시 면은 아래로는 추의 화신을, 위로는 미의 화신을 소개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문어는 왜 아름답지 않단 말인가? 누가 보기에 그런가? ^^ 

 

 

나는 또 구글에서 ‘인류가 사랑한 문어’ 혹은 ‘문어 회화’ 등을 검색해 보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예술품 하나를 발견했다. 캐나다 북서해안에 사는 하이다족 예술가들은 다음과 같은 멋진 문어 모자를 만든다고 한다. 하이다 사람들이 문어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것이 다양한 방식으로 주변 환경에 맞게 변색과 변태를 할 수 있어서다. 그들이 보기에 문어는 지혜로운데 융통성까지 있어 인간이 모범으로 삼기에 좋다. 이 문어 모자는 부드럽고도 힘찬 문어의 다리를 구불구불 멋지게 표현했다. 하이다 예술가는 문어의 흐느적거림을 우아하게 표현했다. 무엇을 아름답다고 볼지는 문화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씨큐리움의 전시물을 보니 둘 모두 아름답다.(링크)

 


3. 인류 최초의 화폐가 생산하는 것
보티첼리는 가리비에서 아름다움의 탄생을 상상했지만, 인류사에서 보면 개오지야말로 생명력의 화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씨큐리움에서 소개되고 있는 많은 개오지들을 보다가 그 하단부 무늬에 주목하게 되었다. 개오지의 껍데기는 등쪽이 아주 매끈하게 둥글고(거의 완전무결하게 매끈한 도자기를 연상시킨다) 아래는 그 껍질이 예쁘게 말려 들어가 최종적으로는 하단부가 느슨하게 S자를 그리며 벌어져 있는 모양이다. 나는 바로 이런 모양의 조개를 《대전 화폐박물관》상설 전시실 입구에서 본 적이 있다. 바로 자패(紫貝)다. 교과서에서 자패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 조개의 한반도식 이름은 ‘개오지’였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개오지는 주로 해조류·해면을 먹는데 그 중에는 식물이나 작은 동물을 먹는 종도 있다고 한다. 세상에! 조개인데 육식도 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20종이 알려져 있다는데, 열대-온대 지역에 분포하기 때문에 국내에는 쿠류시오 난류의 간접 영향을 받는 제주도에 많이 분포한다. 조개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최애(最愛) 조개로 손꼽힌다고 한다. 옴마. 정말로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갖고 있기 위해서 찾는 조개이다.  

 

모두가 탐하다보니 개오지는 화폐의 역할을 했다. 한반도에서만이 아니라 개오지류로 화폐를 만들어 쓰는 곳은 전 세계적에서 다 발견된다. 몰디브에서는 카우리(Cowrie)라고 불리는데 이 조개는 대항해시대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 윈난 지역의 국제무역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면서 무려 천년 이상 이 지역 전체에서 유통되었다. 아프리카에서는 20세기 초까지 카우리를 화폐로 사용했다. 

 

왜 카우리(개오지)였을까? 교과서적 설명은 ‘작고 형태가 단일하며 모조가 거의 불가능해서 화폐로 쓰기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같은 경제 인류학자는 모양이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레이버는 카우리가 생명을 낳는 여성성을 상징하며 화폐를 쓰는 이유는 그것을 교환하는 둘 사이에서 가치를 증식시키기 위해서라고 본다(데이비드 그레이버,『부채, 첫 5000년의 역사』참고). 일반적으로 화폐의 기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a) 내륙에서 고기는 있으나 생선은 못 먹는 사람이, 해안가에서 생선은 있으나 고기는 못 먹는 사람과 물건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b) 그다음 이런 교환의 장에 도끼는 있으나 천은 없는 사람이 가세하고, 다시 쌀은 있으나 밀은 없는 사람이 가세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교불가능한 다양한 가치들을 동시에 측정. 평가할 목적으로 화폐가 발명되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바로 이런 화폐 기원론에 반대한다.


그레이버의 스승인 마셜 살린스에 따르면 야생의 부족들은 자율자립을 최대한 도모한다고 한다. 자기 집 근처에서 나지 않는 생선에 욕심을 내다가는, 바닷가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대외의존도를 높이다가는 결정적일 때 노예로 전락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각 집단은 최대한 생계자립을 목표로 한다(마셜 살린스,『석기 시대 경제학』참고). 교환한다면 진실로 자기 마을에서 ‘구경할 수 없는 것’, 그렇지만 없어도 되는 말 그대로 ‘잉여’를 취득하기 위해서다. 그저 호기심으로 교환한다는 뜻이다. 마셜 살린스의 스승인 마르셀 모스에 따르면 생필품을 교환할 필요가 없는 사이에서는 서로 물건을 주고받을 때에는 먼저 어떤 의례를 먼저 치른다고 한다. 이런저런 물건을 적당히 주고받기 전에, 일단 우애적 관계를 먼저 수립하는 것이다. 이때 카오리처럼 생긴 조개가 화려하게 치장되어 선물로써 큰 역할을 한다(마르셀 모스,『증여론』참고).


마르셀 모스에게도 스승이 있었으니 브로니스라브 말리노프스키다. 말리노프스키는 서태평양에 있는 다양한 섬 사람들의 교역을 연구했다(브로니스라브 말리노프스키,『서태평양의 항해자들』참고). 이 바다에는 화산 섬, 푸석하고 건조한 섬, 습기가 많은 열대의 섬 등 다양한 풍경을 지닌 섬들이 많다. 말리노프스키는 각각의 섬이 자율적인 방식으로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거대한 원을 그리면서 몇 년에 한 번씩 조개(특히 카우리)로 만든 팔찌나 목걸이를 교환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말리노프스키는 왜 하필 카우리인지를 따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눈에는 서태평양 사람들이 섬세하게 가공한 카우리 장신구를 ‘바이구아’라고 특별히 부르고, 다만 곁에 두고 보고 서로 나누는 것만으로 깊은 마음의 안정감과 상대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점이 들어 왔다. 이들에게 카우리-바이구아는 서로 먹고 사는 것이 달라도, 욕망이 달라도, 함께할 때 더 재미있고 편안해진다는 것을 알려주는 매개체였다. 말리노프스키의 연구 결과를 확장해도 되지 않을까? 인류의 대부분은 그런 관계성을 표현하기에 카우리만큼 적당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개우지의 바닥은 증식되는 관계의 가치를 상징한다. 개우지의 등을 보니 증식되는 관계 그 자체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알겠다. 

 


4. 바다의 유혹
서태평양 섬들 안에서 일어나는 거대하고 심오한 가치재 교환을 쿨라(kula)라고 한다. 쿨라 교환을 하는 이들은 선물을 받기 위한 원정 여행을 몇 년에 한번, 몇 달씩 한다. 이들은 선물을 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받으러 간다. 선원들은 받으러 갈 때 도착하는 해변가에서 자신들을 꾸미며 치장한다. 타자로부터 위대한 바이구아를 선물받을 만한 자임을 자랑하려는 것이다. 서태평양의 항해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외모를 가지고 다른 부족에게 큰 호감을 얻는 자야말로 명예롭다. 그 명예를 얻으면 무엇이 좋은가? 답도 외모에 있다. 더 멋있어지고 더 매력적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더 멋진 이들이 자신들에게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자고 조를 것이고, 그런 식으로 이들은 영원히 부유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것이다. 쿨라는 거대한 원을 이루기 때문에, 결국 바이구아를 주고받는 이들 전체가 한없이 건강하고 아름다워진다. 


서천은 바다가 있는 도시다. 씨큐리움을 나와 집으로 향하려고 보니 지도에 바다가 바로 뜬다. 목적지만 보고 도로를 달렸는데 걸어서 몇 분 거리에 길 끊어진 바다가 있었다. 해변을 걸으면서 뭔가 줍고 싶어졌다. 하지만 눈바람이 많이 불어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더 아름다워지려고, 타자를 끌어들여 자기 아름다움을 뽐내고 강화하려고 했던 서태평양 사람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들처럼 바닷가를 지나치기 어려운 이유는 아름다운 조개들이 인간을 유혹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바다에 매혹당하는 이유는 그것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다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잃다가는 빠져 죽는다. 서해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조개와 게가 많다. 그런데 간조 때 갯벌이나 바닷가에서 넋이 나가 줍다가 정신 차리고 보면 만조가 되어 바다에서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게 될 수가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는 큰일이 난다. 욕심을 내어서는 안 된다. 나를 먹어치움으로써 자기 아름다움을 증식시키려는 바다의 숨은 의도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홀린 듯 눈 내리는 고속도로를 달려 세종으로 돌아왔다.     

 

글_오선민(인문공간 세종)


※ 참고문헌 ※
《매거진 F Clam》, 42쪽 참고)
데이비드 그레이버,『부채, 첫 5000년의 역사』, 부글북스
마르셀 모스,『증여론』, 한길사
마셜 살린스,『석기 시대 경제학』, 한울

https://arthive.com/encyclopedia/305~The_shell_as_an_art_symbol_the_blessed_fruit_of_the_sea 
https://spiritsofthewestcoast.com/collections/the-octopus?srsltid=AfmBOop7nDUmzpXX8ekVQqI8slDrcLkqhK9rwlBNvS0blD-SiUWROSPB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