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 지은이 오선민 선생님 인터뷰
1. 책 제목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입니다. 책 제목을 키워드 삼아 한 가지씩 여쭙고 싶습니다. 첫번째는 ‘미야자키 하야오’인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선생님께서 이전에 소개하신 프루스트나, 카프카, 레비-스트로스 등과는 거리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왜 미야자키 하야오가 선생님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요?
저는 코로나 이후로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이례적이었던 이번 여름에는 말 그대로 ‘우리’가 ‘같은 태양’ 아래에 있음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노랗게 변하기도 전에 타 버린 은행나무라든가 휴가도 없이 일하는 에어컨이라든가, 많은 것들이 같이 폭염을 겪었어요. 저는 나 아닌 것, 인간 너머의 것, 보이지 않는 것들과 함께 있다는 생각에 숙연해지곤 했습니다.
만물 관계학이랄까, 그런 주제에 관심을 두고 여러 작가들을 찾아보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벌레에서부터 기계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마음이 있다고 말하고, 숲과 철의 공존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바라보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공생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입장은 기계나 정령까지도 인류의 동반자로 보는 정도였습니다.
초기작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는 환경오염으로 썩어 버린 대기 아래에서 방독면을 쓰고 겨우 버티며 사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딱 코로나 시절을 떠올리게 하지요. 80년대 중반 영화인데요, 미야자키는 그때부터 우리가 지상의 누군가가 뱉은 숨 덕분에 산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새는 추락하고 동물은 질식합니다. 내 공기, 네 공기를 나눌 수 없듯 우리는 숨을 나누며 함께 삽니다.
사실 제가 프루스트나 카프카와 같은 근대 소설가에 관심을 둔 것도 자의식 과잉으로 치닫지 않는 열린 글쓰기의 모범을 찾기 위해서였는데요, 그러다 보니 무문자(無文字) 사회의 신화를 연구한 레비-스트로스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언어화된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로 소통하는 애니메이션에까지 이르게 되었네요.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보다 멀리, 보다 깊게, 많은 것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설명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2. 두번째는 ‘일상’인데요. 애니메이션이 으레 그렇지만 미야자키 작품 역시 등장인물이나 스토리, 소재 등을 떠올려 보면 온통 비일상적인 것들뿐입니다. 마녀나 요괴(또는 요정)라든가, 저주라든가, 죽은 엄마를 만난다든가 하는 것처럼요. 그럼에도 선생님께서 미야자키 작품에서 발견하신 ‘일상’이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맞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배경이나 캐릭터 측면에서는 완전히 비일상적인 소재를 갖고 옵니다. 그런 경향이 첫 작품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부터 최근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줄곧 이어집니다. 지구 멸망의 날이라든가, 천공의 성이라든가, 800만 신들의 온천장이라든가, 인어가 태어나는 바다라든가 상상을 초월하는 시공간이 관객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지요. 그 안을 따뜻한 마음을 지닌 거대 벌레와 정원을 가꾸는 로봇, 푹신한 나무 정령의 토토로, 돼지의 얼굴을 하고 하늘을 나는 비행사 등이 돌아다닙니다. 보고 있으면 세상의 비밀스러운 한 부분을 엿본 것처럼 흥분됩니다.
하지만 실제 벌어지는 사건은 누구라도 알 만한 일상적인 것들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저주 풀기’라는 마술적 테마를 좋아하는데, 그 방법도 청소라든가 요리와 같은 일상의 노동에서 찾습니다. 사람이든 요괴든 밥을 먹어야 하고, 잘 쉬며 놀기도 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특히 청소하는 장면을 많이 그립니다. 청소란 닦고 쓸며 제 자리에 물건을 두는 일 아니겠습니까? 각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살아야 모두 상쾌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미야자키는 주인공들이 막 이사 온 집이나 큰 목욕탕 바닥을 닦는 모습을 그리면서 서로의 자리와 자기의 자리를 잘 살피며 하루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내 존재의 근간을 채우고 있는, 근본적 관계들을 보라는 의미로 일상 묘사를 강조한 것이지요.
3. 세번째는 ‘애니미즘’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애니미즘이란 어떤 것이며, 선생님께서 그동안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소개해 오신 인류학과 통하는 지점은 어떤 것일까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션(animation) 감독인데요, 애니메이션이라는 말 자체가 애니미즘(animism)에서 왔습니다. 활기(animacy)란 곧 생명력이고 이 힘이 발휘되어야 할 유일무일의 시공간이 바로, 지금 여기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저는 책의 제목을 ‘미야자키 하야오와 일상의 애니미즘’으로 했습니다.
애니미즘은 19세기 인류학자 에드워드 타일러(Edward Burnett Tylor, 1832~1917)가 무문자 사회의 여러 부족의 관습을 연구하며 만든 개념입니다.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도 혼이 들어 있다고 보는 사고예요. 지금도 세계 도처에는 영혼이라든가 정령으로 불리는 어떤 힘들이 동식물을 포함한 만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다고 생각하는 부족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야생의 사람들은 평범한 하루를 채우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 생명력을 뽐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애니미즘에서는 인간과 동식물, 심지어 광물이나 바람 등이 모두 영혼의 집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동등해집니다. 피부만 다를 뿐이지요. 야생의 부족들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전래 동화에는 구렁이와 결혼하는 소녀 이야기도 있고, 호랑이와 할머니가 산에서 떡으로 내기를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애니미즘은 각자가 처지는 다르지만, 서로 무관하지 않다고 보지요. 만물이 사귀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함께 살아갑니다.
인류학은 기본적으로 ‘다른 삶’에 관심을 두는 공부입니다. 인류는 실로 집단마다 다양한 문화를 계발하고 전파하며 지내왔습니다. 인류학은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지식이나 습관을 많이 소개합니다. 다르지만 동등한 존재들에 대한 감수성을 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인류학은 애니미즘과 통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을 꽉 채우는 것도 바로 이런 만물 동등의 시선입니다.
4. 이 책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부터 최신작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까지, 총 11편을 미야자키의 장편 작품 발표순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선생님께서 독자들에게 특히 중요하게 말씀하시고 싶은 작품을 하나만 꼽아 주실 수 있으실까요?
‘일상의 애니미즘’이라는 관점에서 가장 주목해 볼 수 있는 작품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입니다. 800만의 신들이 현실 세계에서 온갖 임무를 수행하다가 한 며칠 휴가를 내어 온천 여행을 다니러 온다는 설정이 특이하지요. 신들도 먹어야 하고 쉬기도 해야 한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어디 신만 그럴까요? 핸드폰도 지나치게 사용하면 과열이 되고 충전하지 않으면 방전이 됩니다. 기계도 먹고 쉬면서 일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만물이 저마다의 노고로 울고 웃는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저는 미야자키 감독이 온천장 구석구석을 대단히 자세하게 그렸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일꾼들만 다니는 복도 같은 데에서 깔끔히 정리된 상자나 막 쓰고 걸어 놓은 듯한 수건 등이 나옵니다. 세상에 나밖에 없는 듯해도, 도처의 공간이 누군가가 있었고 누군가가 있을 자리라는 의미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편협한 나의 시선으로는 다 포착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희로애락을 존중할 때 나의 희로애락도 존중받을 수 있습니다.
5. 이 책에서 미처 다 다루지는 못했지만,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을 보는 또 다른 팁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세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감상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애니메이션이고 캐릭터의 기본적 성격이나 외모 및 중요한 배경의 작화를 대부분 감독 본인이 그리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은 공동 창작물입니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으로 있는 지브리 스튜디오는 외주를 주거나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쓰면서 공장처럼 그림을 찍어 내지 않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움직이는 성처럼 특별한 경우에는 CG를 쓰기도 하지만 되도록 손-그림으로 영화 전체를 하나씩 다 채워 갑니다. 그림들이 다 완성되면 주제 음악이나 사운드, 성우들까지 참여하게 되니 작품 하나에 모이는 인원은 몇백 명이 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철저한 장인 정신으로 공을 들여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합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경우, 한 달에 일 분 분량 정도를 만들었다고도 들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에는 참 많은 캐릭터들이 나오지만, 그 뒤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태프 전부는 관객을 기쁘게 하기 위한 일념으로 그 모든 노고를 감내했겠지요. 그저 돈을 내고 극장에 가서 여가를 즐기는 관객에 불과하지만, 이런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누군가는 재능과 안목을 높여가며 피나게 노력을 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애니미즘으로 읽고 나서, 저는 다른 영화를 볼 때에도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야자키의 하야오의 영화는 우리에게 고마움을 가르칩니다.
*아래는 풀버전 인터뷰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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